마이 페어 레이디의 주요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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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피그말리온
작곡: 앨런 제이 러너, 프레드릭 로우
감독: 조지 큐코어
출연: 오드리 헵번, 렉스 해리슨 외
1. 개요
1965년 제3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향상,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수상작 / 각색상, 편집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후보작조지 버너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을 앨런 제이 러너와 프레드릭 로우가 뮤지컬화한 작품으로 1964년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2. 예고편
3. 줄거리
음성학자인 헨리 히긴스 교수(Professor Henry Higgins: 렉스 해리슨 분)가 절친인 피커링 대령(Colonel Hugh Pickering: 윌프리드 하이드-와이트 분)과 묘한 내기를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1]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하층 계급의 여인을 한 명 데려와 정해진 기간 안에 교육시켜 우아하고 세련된 귀부인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냐, 없냐'가 그것.이 내기의 실험 대상으로 그들이 선택한 여인이 바로 빈민가 출신으로 꽃을 파는 부랑자 여성 일라이저 두리틀(Eliza Doolittle: 오드리 헵번 분)이다. 일라이저는 발음을 고치면 더 잘 살 수 있다는 히긴스의 말에 혹해서 히긴스 교수를 찾아간다.[2] 그리고 끊임없는 개인 교습을 받게 된다.
몇달 간의 노력 끝에 히긴스는 일라이저를 예쁘게 꾸며 경마장에 데려간다. 일라이저는 하층 계급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때의 말투가 튀어나와, 절반의 성공만 한다.[3] 그 후 대사관에서의 파티는 성공적으로 마치는데 아름다운 옷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완벽한 상류층 계급의 억양으로 대화하는 일라이저는 모두의 관심을 끄는 여성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기에서 이겼다는 생각에 그저 기쁜 히긴스와 달리 일라이저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완전히 상류층에 속할 수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히긴스는 발음만 바꾸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일라이저는 히긴스의 집을 나가고, 히긴스는 자신이 일라이저를 그동안 좋아했던 걸 인정하게 된다.[4] 영화는 끝까지 말다툼을 하다가도 결국 일라이저가 히긴스에게 돌아오는, 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이 부분이 원작과는 다르다. 피그말리온에서는 일라이저가 히긴스에게 자기를 말만 번듯하게 하는 괴물로 만들어놓았다고 따진다. 그러자 히긴스가 어떻게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하냐며 다투며 파국적인 엔딩으로 끝난다.[5]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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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95 / 100 | 점수 8.7 / 10 | 상세 내용 |
||<-2><tablealign=center><tablewidth=480><tablebgcolor=#fff,#191919><tablebordercolor=#f93208><bgcolor=#f93208> ||
신선도 95% | 관객 점수 90%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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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별점 4.6 / 5.0 | 관람객 별점 3.9 / 5.0 |
5. 제작 비화
브로드웨이판 "마이 페어 레이디"는 56년 초연 이후 7년 동안 2717회나 공연될 정도로 크게 성공했다. 이렇게 흥행에 성공한 컨텐츠는 영화화되는 건 당연. 판권 경쟁이 치열했는데 최종 승자는 워너 브라더스였다. 1962년 워너는 영화화 판권료로 500만 달러를 지급하였는데 이 금액은 현재 가치로 4000만 달러에 해당하는 거액이다."마이 페어 레이디"의 초연 주역을 맡은 것은 렉스 해리슨과 줄리 앤드류스로 영화화 버전에도 두 사람이 캐스팅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었으나 앤드류스는 배제되었다. 사실 해리슨도 배제될 뻔 했다. 그 당시 워너의 대표였던 잭 워너는 케리 그랜트를 히긴스 교수로 세우려고 했으나 그랜트가 해리슨이 히긴스 교수를 맡지 않는다면 영화를 아예 볼 생각이 없다고 강경하게 나왔다. 앤드류스가 브로드웨이에선 스타였지만 할리우드에선 인지도가 낮았던 탓으로 2천만 달러 가까이 투입되는 대작에 캐스팅하는 데는 부담이 있었다. 원작자는 반발했지만 이미 어른의 사정으로 버스는 떠났으니 어찌하리오.
대신 워너가 선택한 일라이저는 당대 최고의 스타인 오드리 헵번으로, 헵번은 이 영화 출연으로 영화 역사상 2번째로 100만 달러를 받는 여배우가 되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비비안 리’ 공식처럼,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일라이저=줄리 앤드류스’ 일 정도로 앤드류스의 뮤지컬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헵번의 캐스팅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정작 앤드류스 본인은 처음부터 영화화에 자신이 뽑힐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일종의 되면 좋고 말아도 상관없는 심리라고 할까.
워너 사는 헵번이 일라이저의 뮤지컬 넘버를 소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워너 사가 헵번에게 기대한 건 오직 흥행을 담보해줄 수 있는 헵번의 인기였다. 애초에 헵번의 캐스팅은 무리수였다. 헵번은 뮤지컬 경력이 있긴 했지만 해당 배역들은 고도의 가창력을 요구하지 않는, 소위 쉬운 배역이었다. 하지만 일라이저 역은 고도의 가창력이 요구되는데다가 뮤지컬 넘버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가창력이 딸리는 헵번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운 배역이었다.
워너 사는 헵번 몰래 노래를 더빙할 뮤지컬 가수 마니 닉슨을 섭외했다. 당시 가창력이 부족한 배우들의 더빙은 너무나 당연한 일들이었다. 오히려 본인이 다 소화하고 싶어한 헵번이 특이한 경우였다.
촬영이 어느 정도 진행됐을 무렵 헵번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큰 충격을 받아 촬영장을 뛰쳐나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물론 다음날 촬영장에 찾아와 정중하게 사과하고 수습했지만 말이다. 헵번은 크게 반발했으나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자포자기 상태에서 영화사의 결정대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영화가 반쯤 진행됐을 무렵, 할리우드에 헵번의 노래는 모두 더빙이란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언론에선 워너 사에 사실 확인 요청을 했고 워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소문을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하기 이르렀다. 논란이 확산되자 워너에선 헵번이 노래한 부분은 반 정도는 된다고 해명했으나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논란 속에 완성된 마이 페어 레이디는 당시 할리우드 장인들이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었고 자그마치 7천만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 비평가들의 찬사도 잇따랐고 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8개 부문을 휩쓰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더빙 논란과 각종 구설수로 인해 앤드류스에게 엄청난 동정 여론이 생겨났고 앤드류스의 모국인 영국에선 흥행에 실패했다.
줄리 앤드류스는 <메리 포핀스>에 캐스팅되었는데, <마이 페어 레이디>의 흥행을 앞지르고 최종 흥행 1억 달러 ·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3개 부문 후보 지명에, 본인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및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 2관왕을 차지함으로서 자신을 캐스팅에서 탈락시킨 워너 브라더스 사에 복수를 했다. 또한 이듬해에도 앤드류스가 주연으로 캐스팅 된 영화 하나가 최종 흥행 1억 5천만 달러에 아카데미 시상식 10개 부문 후보 지명 및 최우수 작품상 · 감독상 · 음향상 · 편집상 · 편곡상 5개 부문을 수상하고, 앤드류스는 그 영화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또 다시 2연속으로 수상하는데, 그 영화가 바로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본인이 전혀 의도한 게 아님에도 인지도로 줄리 앤드류스의 배역을 뺏었다는 여론에 시달려야 했고 당시 할리우드에서 더빙은 비일비재했고 앞서 말한 데버러 카는 찬사를 받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는 영광을 누린 데에 반해, 햅번 본인의 연기는 저평가되고 후보에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무려 12개 부문에서 후보가 됐으며 알짜 부분(작품, 감독, 각색, 연기 등등) 상은 다 휩쓴 대작의 타이틀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부분은 2015년 9월 20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다.
게다가 상대역인 렉스 해리슨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시상을 본인이 했으니 속이 오죽하랴. 나중에 시간이 흘러 헵번의 연기가 재평가되고 최소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는 올랐어야 했다는 인식들이 강해졌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때 시상식에 참석한 헵번의 얼굴을 보면 억지로 미소 짓고 있는 듯한 모습이 자주 포착돼서 팬들의 슬픔을 자아낸다. 이후 헵번의 작품 선택은 더 신중해졌고 여기에 가정 불화와 재혼, 출산 등이 이어져 사실상 은퇴했다.
그래도 헵번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났고 영화 자체는 걸작이라 여러모로 소장 가치가 있다.
본작에서는 일라이저 역에 원작 뮤지컬에서 일라이저를 연기한 줄리 앤드류스가 캐스팅에서 배제당하고 오드리 헵번이 캐스팅됐지만, 재미있게도 각종 외국어 더빙판에서는 이후 메리 포핀스와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줄리 앤드류스를 더빙한 성우들이 본작에서 오드리 헵번의 일라이저를 더빙했다. 프랑스어 더빙판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줄리 앤드류스를 더빙한 성우들이, 독일어 더빙판에서는 메리 포핀스에서 줄리 앤드류스를 더빙한 성우들이 본작에서 일라이저의 성우를 맡았고 이탈리아어 더빙판과 유럽 스페인어(카스티야어) 더빙판에서는 두 작품 모두에서 줄리 앤드류스를 더빙한 성우들이 본작에서 일라이저의 성우를 맡았다.[7]
6. 여담
- 2018년부터 미국 의회도서관의 National Film Registry에서 영구히 보존하는 영화이다.
-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에그시(태런 에저턴)가 이 영화를 보았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에그시의 발음이 런던 뒷골목 양아치의 말투고 콜린 퍼스의 발음은 정통 신사의 그것이라 꽤 상징적인 부분. 사실 이 영화는 아니고 콜린 퍼스가 주연인 동명의 엎어진 영화이다.
- <공자다정(公子多情, The Greatest Lover)>이라는, 일명 성반전 버전의 마이 페어 레이디라 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도 있다. 곽요량 감독의 1988년작 홍콩 영화로, 주윤발과 매염방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홍콩으로 몰래 밀입국해 들어온 촌스럽고 경박스러운(...) 대륙 청년 전진(주윤발 분)이 사교계의 여왕인 아니타(매염방 분)를 만나 일류 플레이보이로 교육받으면서 점차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
[1] 이것은 원작인 피그말리온의 내용이고, 이 영화에서 히긴스와 피커링은 서로의 이름만 알고 있던 사이였다가 일라이저 덕에 서로 알게 되어 교제를 시작한다.[2] 영국은 계층간 발음, 억양 차가 다른 나라보다 심해서 억양만으로 출신이 드러난다.[3] 그 와중에 프레디(제레미 브렛)라는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른 사람들이 일라이저를 슬슬 이상하게 생각할 때 프레디는 웃으면서 일라이저의 대화를 맘에 들어 하고, 히긴스의 집에서 계속 그녀를 기다린다.[4] 경찰에 일라이저를 찾겠다고 실종 신고를 하는데 그녀의 눈 색깔을 대답 못하는 피커링과 달리 히긴스는 갈색이라고 바로 답이 나온다.[5] 원작 희극을 극장에 올릴 때부터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자는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질린 버너드 쇼는 대본 뒤에 긴 산문으로 된 후일담을 덧붙여서 히긴스와 일라이저가 이어질 수 없는 이유를 직접 설명하기까지 했다.[6] <왕과 나>의 캐스팅도 <마이 페어 레이디>의 캐스팅과 비슷한 면이 많다.[7] 프랑스어판과 독일어판에서는 메리 포핀스와 마리아의 성우가 다르고, 이탈리아어판과 유럽 스페인어(카스티야어)판에서는 메리 포핀스와 마리아의 성우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