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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16 11:37:15

오즈의 마법사(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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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오즈의 마법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파일:attachment/unesco-memoryoftheworld.gif
이름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Victor Fleming 1939)
produced by Metro-Goldwyn-Mayer
국가·소장 국가: 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소장: 뉴욕 조지 이스트먼 하우스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2007년
제작시기 1938~1939년 (개봉 1939년)

1. 개요2. 평가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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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저작재산권 보호기간(공표 후 50년[1])이 지났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간편하게 볼 수 있다.

1. 개요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획기적인 촬영기법을 선보인 명작 판타지 뮤지컬 영화이다.[2]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인기에 힘입어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기도 했으며, 그 중에서 역시 빅터 플레밍[3]이 감독하고 주디 갈란드가 주연한 이 영화가 제일 유명하다. 이 영화의 주제곡인 Over the Rainbow(무지개 넘어)는 세월을 초월하는 명곡. 컬러영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캔자스에서의 장면은 세피아색 흑백 화면으로 비춰지다가 오즈에 떨어진 도로시가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컬러 화면으로 바뀌는 연출이 대중에게 잘 먹혔기 때문이다. 사실 컬러 영화는 본작 이전에도 존재했다.[4]

원작의 캐릭터를 코믹하게 재해석하여, 전반적으로 매우 밝은 분위기이다. 원작의 경우 세계관이 동화적이긴 하지만 의외로 어두운 내용이 많은데(대표적으로 나뭇꾼이 인간의 몸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부분), 영화에서는 나뭇꾼의 춤이나 허수아비와 사자의 몸개그, 노래 등을 이용해 극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것을 막았다. 원작 소설도 유명하지만 이 영화가 워낙 레전드라, 많은 이들이 "오즈의 마법사"라 하면 이 영화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1930년대는 아역 배우의 인권이 처참하게 유린되던 시기였다. 주디 갈란드 역시 그녀의 어머니와 MGM의 소유물 취급을 받으며 돈 버는 기계로 철저하게 착취당했다. 주디뿐만 아니라 셜리 템플, 재키 쿠건[5], 미키 루니 등 당시 대부분의 할리우드 아역 배우들이 모두 이런 취급을 받았으며, MGM은 모친의 묵인 하에 주디를 십여년간 학대하며 부려먹었다.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에도 시골 소녀 도로시를 연기하기에는 주디가 너무 토실하다며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을 먹였고[6], 하루 식사는 닭 수프 한 그릇으로 제한했으며, 하루에 담배를 80개피씩이나 피우도록 강요받았다. 허수아비, 나무꾼, 사자 역을 맡은 배우들도 꼬마 여자애가 주연을 맡은 데 불만을 품고 주디 갈란드에게 매몰차게 굴며 촬영 중에도 주디를 자기들의 뒷편으로 몰아붙였다. 감독인 빅터 플레밍 역시 냉혹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주디가 사자의 몸개그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면 뺨을 때렸다고 한다. 주디 갈란드에게 친절했던 사람은 단 한 명, 나쁜 서쪽 마녀 역을 맡았던 여배우 마가렛 해밀턴 뿐이었다.[7][8]

1939년작 영화가 워낙 레전드인지라 이후에도 TV 영화 혹은 TV 드라마로 제작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화 쪽에서 오즈의 마법사 관련작은 잘 나오질 못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디즈니에서 제작한 공식 후속작인 돌아온 오즈가 만들어졌는데, 1편의 밝은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완전 어두운 노선을 택해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감독은 편집자로 더 유명한 월터 마치.[9]

그런데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도로시 역을 맡았던 주디 갈란드가 죽은 날, 이 작품의 시작점이었던 캔자스에서는 거대 허리케인이 불었다고.

2. 평가

메타크리틱
스코어 100/100 유저 평점 8.3/10
로튼 토마토
[[https://www.rottentomatoes.com/m/the_wizard_of_oz_1939|신선도 99%[10]9.4점에 달한다!]]]관객 점수 89%
IMDb
평점 8.1/10
(IMDb Top 250 232위[11])

3. 여담

영화의 노래들 중 'ding dong the witch is dead(딩동, 마녀가 죽었다)'가 2013년에 영국의 각종 음원차트에서 1~3위를 차지한 일이 있다. 이유는 바로 마거릿 대처가 사망하였기 때문.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마거릿 대처 항목을 참고할 것. 이후 2016년에는 친 도널드 트럼프 진영들이 힐러리 클린턴의 낙선을 두고 이 곡에 비유하기도 했다.

주역 캐릭터인 사자, 나무꾼, 허수아비, 마법사, 마녀 모두 현실 세계에서 도로시가 알고 지내던 지인의 얼굴이며 배우도 같다.[12] 이 지인들은 영화 결말부에서 허리케인에 휩쓸렸다가 살아 돌아온 도로시의 병문안을 온다. 이때 우린 모두 믿어지지 않는 꿈을 꾸곤 한다며 아픈 도로시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정말 도로시와 함께 에메랄드 시티에 다녀왔는지 모를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원래 도로시의 마법 구두는 은색이지만, 이 영화에선 컬러 촬영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붉은 색으로 바꾸었다. 이 붉은 구두는 영화사에서 길이 남을 역사적인 소품으로 남아 경매로 매우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 총 몇 컬레가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현재는 다섯 짝의 구두가 남아있다. 그런데 그 중 한 짝이 2005년 도난당해 행방 불명이었다가, 다행히 2018년 FBI를 통해 신발을 되찾았다.(정보출처)

그밖에 미스터리 갤러리에서 상당히 흥했던 떡밥으로 영화 중에 목 매달아 자살한 난쟁이 배우가 영상에 찍혔다는 흠좀무한 도시전설이 있었다. 영화와 관련된 도시전설 항목 참고.

사우스파크에서도 패러디했는데, 오즈가 벤쿠버이고 가다가 만나는 동료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져있다.(마법사가 남자 어린이들이랑 성교를 못하게 해서 화가 난다던가)그리고 오즈의 마법사는 무려 사담 후세인(...)

이 영화의 명대사는 "집만 한 곳은 없다"인데, 한국에서도 헬조선이라고 비하하며 탈조선 바람이 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시 한국으로 국적 회복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도로시의 명대사를 되뇌이며 왔을 것이다. 1965년에 대히트하여 록음악의 대중화에 공헌을 한 애니멀즈의 "We Gotta Get Out Of This Place(우린 여길 벗어나야 해)"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어수선한 사회에서 각 계층, 각 개인이 처한 불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모두 이 곡을 불렀다. 마치 도로시처럼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꿈꿨을텐데, 시골소녀 도로시는 지루한 시골을 벗어나 현실도피적으로 저 무지개너머 어딘가에 있는 환상속의 세계를 꿈꿨으나, 결국 집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는게 목표가 된다. 사이렌2의 여고생 야구라 이치코는 수학여행을 하다 배가 침몰하여 죽었으나, 자신이 죽은 지도 모른채 떠돌아다니는 그녀의 명대사는 "집으로 돌아가고싶어(이에니 카에리따이)"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나, 도로시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며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영화 개봉 31년 만에 주역 배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절반이나 고인이 된 탓에 허수아비 역할의 볼저, 나무꾼 역할의 헤일리, 마녀 역할의 해밀턴만 모였다. 볼저랑 헤일리가 주디를 그렇게 괴롭힌 한심한 놈들이라 이거여


[1] 2013년 법 개정 이전에 공표된 저작물이므로 70년이 아닌 50년을 적용받는다.(뭐 물론 이미 법 개정 당시에도 70년이 넘은 상태었으니 아무 상관 없겠지만...) 가끔 유튜브에서 저작권 신고로 인하여 내려가는 경우가 있는데, 국가마다 보호기간이 달라서 오인신고가 들어가기 때문이다.[2] 당시에 획기적이였던 277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환상적인 화면과 촬영기술을 선보였다. 도로시가 회오리바람에 휩쓸려가는 동안 창 밖에 나타난 하늘을 나는 자전거 장면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의 테마와 이미지에 그대로 반영되는 등 후대 판타지 영화에 미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3]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그 감독[4] 인터넷에서는 '최초의 컬러 영화라서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는 연출을 넣었다'라는 식으로 소문이 와전되기도 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전에도 컬러 영화는 있었고 컬러 영화를 구현하는 테크니컬러 기법 자체는 1단계 과정은 시연된 지 30년도 더 되었고(1917년), 오즈의 마법사에서 사용된 테크니컬러 4단계 과정마저 영화 개봉 당시(1939년) 등장한 지 5년이 넘은 상태였다.[5] 찰리 채플린과 호흡을 맞췄던 아역 배우. 미국의 아역 배우 보호를 위한 법인 "재키 쿠건법"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6] 이 당시에는 히로뽕을 요즘 카페인 마냥 써댔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폭격기 조종사가 많이 썼고, 헤르베르트 브루네거라는 친위대의 수필을 보면 운전병들에게 이것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7] 관련 기사.[8] 우연인지 악연인지 주디의 딸 라이자 미넬리는 허수아비를 맡았던 배우 잭 헤일리의 아들 잭 헤일리 2세와 결혼했다. 따라서 주디와 잭은 사돈 관계가 되겠지만 당시 주디는 고인이었고 둘의 결혼 생활도 길지 않았다.[9] 이 영화 돌아온 오즈로 데뷔했으나, 그게 망해서 편집자로 되돌아갔고, 주연은 강렬한 외모로 유명한 어린 시절의 페어루자 보크가 출연하였다. 흥행에는 망했으나 작품 자체는 장점이 많기 때문에 평론가 NC는 좋은 평가를 내렸다.[10] 평론가들이 매긴 평점이 무려[11] 모두 한국 시각 2017년 8월 10일 기준[12] 사자, 나무꾼, 허수아비는 농장의 일꾼이고 마법사는 교수였으며 마녀는 도로시를 괴롭히는 이웃집 노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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