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I 선정 100대 영감을 주는 영화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2006년 미국영화연구소는 역대 미국 영화 중 가장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또 그들의 정신을 고양시킨 100개의 영화를 선정했다. | ||||
<colcolor=#fff> 1위 | 멋진 인생 | ||||
<colbgcolor=#a0522d> 2위 | 앵무새 죽이기 | ||||
3위 | 쉰들러 리스트 | ||||
4위 | 록키 | ||||
5위 |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 | ||||
6위 | E.T. | ||||
7위 | 분노의 포도 | ||||
8위 | 브레이킹 어웨이 | ||||
9위 | 34번가의 기적 | ||||
10위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
11위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 ||||
12위 | 아폴로 13 | ||||
13위 | 후지어 | ||||
14위 | 콰이 강의 다리 | ||||
15위 | 미라클 워커 | ||||
16위 | 노마 레이 | ||||
17위 |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
18위 | 안네의 일기 | ||||
19위 | 필사의 도전 | ||||
20위 | 필라델피아 | ||||
21위 | 밤의 열기 속으로 | ||||
22위 | 야구왕 루 게릭 | ||||
23위 | 쇼생크 탈출 | ||||
24위 | 녹원의 천사 | ||||
25위 | 설리반의 여행 | ||||
26위 | 오즈의 마법사 | ||||
27위 | 하이 눈 | ||||
28위 | 꿈의 구장 | ||||
29위 | 간디 | ||||
30위 | 아라비아의 로렌스 | ||||
31위 | 영광의 깃발 | ||||
32위 | 카사블랑카 | ||||
33위 | 시티 라이트 | ||||
34위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 ||||
35위 | 초대받지 않은 손님 | ||||
36위 | 워터프론트 | ||||
37위 | 포레스트 검프 | ||||
38위 | 피노키오 | ||||
39위 | 스타워즈 | ||||
40위 | 미니버 부인 | ||||
41위 | 사운드 오브 뮤직 | ||||
42위 | 12인의 성난 사람들 | ||||
43위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
44위 | 스파르타쿠스 | ||||
45위 | 황금 연못 | ||||
46위 | 들백합 | ||||
47위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
48위 | 아프리카의 여왕 | ||||
49위 | 게리 쿠퍼의 재회 | ||||
50위 | 씨비스킷 | ||||
51위 | 컬러 퍼플 | ||||
52위 | 죽은 시인의 사회 | ||||
53위 | 셰인 | ||||
54위 | 루디 이야기 | ||||
55위 | 흑과 백 | ||||
56위 | 벤허 | ||||
57위 | 요크 상사 | ||||
58위 | 미지와의 조우 | ||||
59위 | 늑대와 춤을 | ||||
60위 | 킬링필드 | ||||
61위 | 사운더 | ||||
62위 | 브레이브 하트 | ||||
63위 | 레인 맨 | ||||
64위 | 검은 종마 | ||||
65위 | 태양속의 건포도 | ||||
66위 | 실크우드 | ||||
67위 | 지구 최후의 날 | ||||
68위 | 사관과 신사 | ||||
69위 |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 | ||||
70위 | 광부의 딸 | ||||
71위 | 폭력 탈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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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위 | 에린 브로코비치 | ||||
74위 | 강가딘 | ||||
75위 | 심판 | ||||
76위 |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 | ||||
77위 |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 ||||
78위 | 델마와 루이스 | ||||
79위 | 십계 | ||||
80위 | 꼬마 돼지 베이브 | ||||
81위 | 소년의 거리 | ||||
82위 | 지붕 위의 바이올린 | ||||
83위 | 디즈씨 도시에 가다 : 천금을 마다한 사나이 | ||||
84위 | 형사 서피코 | ||||
85위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 ||||
86위 | 스탠드 업 | ||||
87위 | 워킹 걸 | ||||
88위 | 성조기의 행진 | ||||
89위 | 해롤드와 모드 | ||||
90위 | 호텔 르완다 | ||||
91위 |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 ||||
92위 | 페임 | ||||
93위 | 뷰티풀 마인드 | ||||
94위 | 굿바이 마이 라이프 | ||||
95위 | 마음의 고향 | ||||
96위 | 위대한 승부 | ||||
97위 | 마담 퀴리 | ||||
98위 | 베스트 키드 | ||||
99위 | 레이 | ||||
100위 | 불의 전차 | ||||
2006년 발표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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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필드 (1984) The Killing Fields | |
장르 | 전쟁, 드라마 |
감독 | 롤랑 조페 |
각본 | 브루스 로빈스 |
제작 | 이아인 스미스 데이비드 퍼트남 |
출연 | 샘 워터스톤 행 S. 응고르 크레이그 넬슨 존 말코비치 아돌 퍼가드 줄리언 샌즈 |
촬영 | 크리스 멘게스 |
편집 | 짐 클락 |
음악 | 마이크 올드필드 |
제작사 | 골드 크레스트 필름스 |
배급사 | 워너 브라더스 Thorn EMI 스크린 엔터테인먼트[1] 컬럼비아 픽처스 합동영화 |
개봉일 | 1985년 2월 1일 1985년 6월 1일 |
상영 시간 | 135분 |
국내 흥행 | 서울 개봉관 925,000명 |
제작비 | 1,447만달러 |
월드 성적 | 3,760만달러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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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4년 영국에서 제작된 킬링필드를 소재로 한 영화.[2]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감독은 프랑스계 영국인인 롤랑 조페로 프랑스어에 능통한 프랑스계 유대인이다. 1447만 달러로 만들어 전세계적으로 376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제57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 촬영상, 편집상을 수상했고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에 노미네이트됐다.
[3]
2. 예고편
3. 등장인물
- 샘 워터스톤 - 시드니 섄버그
- 행 S. 응고르 - 디스 프란
- 존 말코비치 - 알 로코프
- 줄리언 샌즈 - 존 스웨인
- 크레이그 T. 넬슨 - 리브스 소령
4. 기타
영화의 메인테마곡. 영국의 뮤지션 마이크 올드필드가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편곡한 것이다. 엔딩 크레딧의 배경음악으로 나온다. 마이크 올드필드는 이 영화에 사용한 스코어를 모아 The Killing Fields라는 앨범을 냈다.
중반부 프놈펜의 함락을 앞두고 미국인과 일부 현지 시민들의 철수 장면에 삽입된 음악 '철수'(Evacuation).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카불이 탈레반에 다시금 함락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충격 속에 미군의 지원으로 황급히 탈출하게 되자 이 음악이 다시금 주목받았다. 이 음악은 1985년 한국 공익광고협의회의 안전운전 공익광고에도 쓰여서 당시 한국에서도 귀에 익은 사람들이 많다.#
작중 중반부 프놈펜 함락 이전까진 디스 프란의 실제 경험담이고, 장르도 로드 무비[4]였다. 이후 시드니 섄버그, 알 로코프 등 자신을 지켜주던 미국 백인들이 모두 강제 본국 송환되고, 크메르 루주 치하에 홀로 떨어져 온갖 고생 다하는 고생담은 행 S. 응고르의 실제 경험담이다. 장르도 다큐멘터리 영화로 바뀐다.[5] 영화에 나온 도마뱀을 잡아 몰래 숨겨서 턱없이 부족한 배급량의 식사 때 보태어 먹거나[6],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지금 자신이 정처 없이 걷고 있는 길이 의도적이 아닌 자연스럽게 사람 시체가 쌓여져 만들어진 길이란 사실을 깨닫고 너무 놀라서 도망이고 뭐고 풀썩 주저앉아버린 일[7], 자신이 의사인 것을 숨기고 택시 기사 행세를 해서 살아남은 경험담 등등 모두 행 S. 응고르의 실제 경험담들이다. 그럼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던 크메르 루주는 행 S. 응고르에게 갖은 고문을 가했고, 기어이 오른손 새끼손가락 첫마디를 잘라갔다.
롤랑 조페는 이 영화와 〈미션〉으로 꽤 국제적으로 이름을 날렸고, 〈시티 오브 조이〉(1992)부터 그저 그런 범작 정도의 평가를 받기 시작하더니 자신이 제작을 담당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쫄딱 망하고, 2년 뒤 자신이 제작・감독을 담당한 주홍글씨(1995)도 흥행, 비평에서 완전 말아먹으며 본격적으로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2000년대 와서는 4.4.4라는 쏘우 아류작을 연출했으며, 2011년에 한국에선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There Be Dragons'을 연출해 3600만 달러 제작비를 날려버린 440만 달러 흥행을 기록하고 평도 그냥 그렇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젠 예전 명성만 까먹는 감독 신세가 되었다. 사실 이 사람은 1980년대부터도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감독이다.[8] 특히 백인 우월적인 시각의 백인의 의무를 강조하는 연출들이 많이 까인다. 본작 「킬링필드」 역시 이 비판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2017년에는 포기븐(The Forgiven)라는 영화를 연출해 데스몬드 투투(포레스트 휘태커가 연기했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는데 평은 그냥 그런 범작이다.
영화의 주연 배우 행 S. 응고르(Haing S. Ngor)[9]는 실제로 아내와 가족들을 캄보디아에 남긴 채 탈출한 의사로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10][11] 살아생전 캄보디아 난민들을 위해 기부를 많이 했고 이 작품 이후 간간히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인으로 출연한 영화의 출연료를 기부했다.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 〈하늘과 땅〉에서도 극중 여주인공 아버지인 베트남인으로 나왔으며 홍금보가 나오는 〈동방독응〉에서도 베트남인으로 출연했다.
그는 1996년 2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검사측 주장으로 크메르 루주의 보복성 암살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와 당시 화제가 되었으나 수사 결과 거리의 아시아계 불량배 일당들이 돈을 노리고 벌인 강도 살인이었음이[12] 드러났다. 그리고 이때는 크메르 루주도 서북부 산간 오다 멘쩨이 지방에서 오늘내일 하면서 근근히 버티던 수준이라 미국까지 가서 보복 암살을 벌일 여유도 없었다.[13]
범인은 모두 3명으로 1998년 4월 16일[14] 판결이 내려졌는데 탁 선 탄은 징역 56년형, 인드라 림은 징역 26년, 제이슨 찬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내려졌다. 범인들은 단순 강도 살인으로 중형을 받았지만 재판시 검찰측의 일부 증거 조작으로 인해 2004년 판결이 뒤집힌다. 다만 다시 번복되었고, 2005년 7월, 최종적으로 처음 형이 유지되었다.# 인드라 림은 2018년 가석방되어 현재 숨어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캘리포니아라 한다.#
행 S. 응고르가 연기한 실존 인물 디스 프란(1942.09.23) 씨는 2008년 3월 30일에 미국 뉴저지주 뉴브런즈윅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당시 65세였다. 특이하게 원래 실화를 영화화할 경우 실제 사건이 일어난 한참 뒤 영화화하는 경우가 대부분[15]인지라 실존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이 대부분 나이가 훨씬 더 어린데 본작은 특이하게 디스 프란을 연기한 행 S. 응고르(1940.03.22)가 나이가 더 많고, 행 S. 응고르는 본업이 배우가 아니다. 본업은 산부인과 의사. 가족과 아내[16]를 캄보디아에 남긴 채 1979년 어린 조카 한 명만 데리고 탈출한 그는 캄보디아에 남겨둔 친지와 가족들을 항상 그리워했었고, 캄보디아의 국적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며 캄보디아란 자신의 조국이 없어져 버려 1986년 미국으로 귀화했다. 1996년 2월 25일 LA 차이나타운에 있는 자신의 집 앞에서 노상강도 3명과 마주쳐 그들이 첨부터 눈독 들였던 자신의 롤렉스 시계는 아무 미련 없이 건넸지만, 자신의 아내 사진이 들어있는 목걸이만은 넘겨줄 수 없었기에 완강히 버티다가 살해당했다. 생전 목걸이 착용하고 찍은 사진
영화 마지막에 사용된 노래는 존 레논의 Imagine이다. 평화와 인류애, 반전주의를 상징하는 노래답게 결말부에 잘 어울린다.영상
5. 한국 개봉 및 일화
한국에선 합동영화[17]가 수입해 1985년 6월 1일에 개봉했다. 국내에는 반공 영화로 간주하여 수위가 상당함에도 초・중・고교에서 학교 단체관람을 주도하면서 서울 관객 92만 5천이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이 시기만 해도 관객수는 서울 관객만 집계되었다. 지방은 커녕 직할시(오늘의 광역시)인 부산, 대구, 대전 관객도 집계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도 지금보다 덜 한 시절이라 서울 관객 100만이면 지방 관객까지 추산할 경우 최소 200만 이상이 관람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당시 초・중・고교 가릴 것 없이 이 영화를 단체 관람했다.[18] 이는 당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흥행이자 지금으로 쳐도 전국 관객 800만 이상급이다. 공산 정권에 의한 학살이 부각된 내용 덕분에[19] 반공 메시지 선전과 맞아 떨어지면서 1980년대 땡전 뉴스로 대표되던 당시의 국내 언론에서도 열렬히 찬양했다.비슷한 예로 90년대 흑태양 시리즈를 교육목적으로 고어물인데도 지상파에서 더빙 방영한 사례가 있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흥행은 반공 분위기를 탔다는 비아냥이 나오지만 그래도 영화 자체는 상당한 수작이며 음악도 상당한 평가를 받았다. 땡전뉴스의 선두주자 KBS도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사흘 전에 이 영화를 KBS 1TV 명화극장으로 긴급 편성해 방영했는데[20], 시기가 시기인지라 몇몇 언론에선 비판 여론이 있었다. 1988년 4월 30일에는 남베트남 패망일(딱 13년 되던 날) 특별기획 앙코르라면서 KBS1에서 밤에 재방영했으며 이로부터 몇 달 뒤인 1988년 11월 18일 금성사가 VHS 비디오테이프로 냈고, 2001년 스펙트럼DVD에서 DVD로 냈다.
[1] 현재의 뤼미에르 사진 및 텔레비전에 전신[2] 영어 위키백과에도 영국 영화로 분류한다.#[3] 영화의 한 장면. 사진 속 인물이 걸어가는 곳의 흙 속에 파묻혀 널부러진 건 전부 사람의 뼈다.[4] 주인공 일행들이 기자단이다 보니 직접 겪는 것이 아닌 취재의 입장에서 보고 들은 것임에도 수위 센 장면들은 넘쳐난다.[5] 또한 극 분위기가 이젠 홀로 남은 주인공이 직접 겪는 경험담이기에 확 바뀌고 분위기는 더욱 암울해지게 된다.[6] 영화엔 나오진 않지만 이때 벌레나 설치류, 뱀, 전갈 등등을 감시의 눈을 피해 구해먹었다고 한다. 이때 식용인지 아닌지 구분하는데 자신의 의학적 지식을 요긴하게 사용했다고.[7] 상단에 첨부된 스틸샷 속의 장면이다.[8] 〈미션〉은 작품성은 좋지만 영화 속 서구 중심주의적, 기독교 중심주의적 색채가 짙다는 부정적인 평이 있다.[9] 캄보디아 화교이다. 성씨는 吳(오)씨이다.[10] 비중만 보면 샘 워터스톤보다 이쪽이 주연이라 인종 차별이 아니냐는 논란이 거셌다. 이 때문에 워터스톤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이후에도 저예산 영화나 TV 드라마에 주로 출연했다. 그나마 현재는 NBC의 로 앤 오더, HBO의 뉴스룸 등에 비중있는 조연으로 나온다.[11] 참고로 이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연기한 F. 머레이 에이브러햄이 수상했다.[12] 사건 보고서에 의하면 강도를 만난 응오는 롤렉스 시계를 풀어주었지만 가족의 사진이 있는 목걸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이유로 살해당했다. 다만 이 부분은 현재도 논란이 있다.[13] 후일 생포된 크메르 루주 고위 간부는 이 살인이 폴 포트의 직접 명령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14] 공교롭게 바로 전날 폴 포트가 죽었다고 한다.[15] 물론 〈지옥의 묵시록〉처럼 베트남 전쟁 끝나기 전부터 제작 들어간 케이스도 있다만 〈지옥의 묵시록〉은 제작 기간 자체가 지옥이었다고 하며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몸무게가 무려 100 lb(45.3592 kg) 넘게 줄어들어 탈수증으로 병원에 실려갔었다. 이 와중에도 정줄 놓지 않고 〈지옥의 묵시록〉 완성이 끝나기 무섭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제작 도와주러 가는 깡다구를 발휘한 코폴라의 시네마에 대한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16] My Huoy Chang 또는 Huoy Ngor라고도 발음된다. 1978년 크메르 루주 지배 아래 영양실조로 사망. 당시 행 S. 응고르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함께 사망하므로 행 S. 응고르는 한순간 모든 걸 잃었다.[17] 배우 고은아의 남편 곽정환이 세운 영화 수입/제작사로, 서울극장도 운영했다.[18] 다만 부모님 세대들이 초・중・고등학교 때 극장에서 단체관람한 영화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봤다간 큰코다친다. 수위가 굉장히 세다. 괜히 R 등급이 아니다.[19] 하지만 정작 영화 본편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어용 기자들을 보내 자기네 입맛에 맞는 기사들을 쓰게 하는 등 미국의 악행들도 많이 부각되는 편이다.[20] 같은 시기 MBC 주말의 명화에서도 베트남전을 다룬 반공 영화 <워버스(War Bus)>(1985)를 긴급 편성했다. 이 영화는 실화를 토대로 만들었지만 이탈리아와 필리핀 합작의 저예산 영화로 쏟아져나온 막장 베트남전 영화 중 하나로 감독이나 배우들은 듣보잡임에도 일단 반공 영화랍시고 개봉하고 더빙 방영까지 한 것. 유튜브에 무자막이긴 해도 풀버전이 올라왔다. 제목처럼 전쟁 와중 스쿨버스를 타고 달아나려던 백인들이 미 해병 몇 명을 만나 겪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