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프가니스탄 사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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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개 | 탈레반의 공세 (반응 · 탈레반의 재집권 · 탈레반/2022년 · 탈레반/2023년) · 대규모 철수 (미라클 작전) · 내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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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탈레반 공세 2021 Taliban Offensive [1]د ۱۴۰۰ کال د طالبانو برید [2]هجوم ۱۴۰۰ طالبان | |||
원인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미군 철수 | ||
날짜 | 2021년 6월 ~ 8월 15일 | ||
장소 | 아프가니스탄 전역 | ||
결과 |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 완전격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멸망 | ||
영향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건국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종결 주요 수교국 외교공관 철수 북부동맹 재결성 | ||
교전국 | |||
교전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교전지원국 미국[3] 파병국 영국[4] | 교전단체 탈레반 교전 지원단체 알 카에다 파키스탄 탈레반 운동 | ||
전력 | |||
아프가니스탄군 명목상 최대 300,000명, 실제 최대 40,000여 명[5] 현지 민병대 추산 불가 교전지원국 미군 철수 중인 미군 5,000여 명, 추가 파병 3,000명[6][7] 파병국 영국군 500명[8] | 탈레반 추정 최대 220,000명[9] | ||
지휘관 | |||
아슈라프 가니 암룰라 살레 압둘라 압둘라 압둘 라시드 도스툼 비스밀라 칸 히바툴라 알리자이 아흐마드 마수드 이스마일 칸 아키알 나비 아흐마드 자이 조 바이든 마크 밀리 케네스 메켄지 |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압둘 가니 바라다르 시라주딘 하카니 수하일 샤헨 모하마드 야쿠브 압둘 할리크 마울라위 무바라크 카리 할리드 | ||
피해 상황 | |||
교전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군, 민병대 전사자 최소 10,000명 부상자 최소 5,000명 탈영자 2,324명 항복자 최소 6,000명 | 탈레반 전사자 정부군 주장 9,819명 부상자 정부군 주장 5,472명 포로 정부군 주장 54명 | ||
민간인 피해자 | |||
사망 최소 1,031명 부상 최소 2,043명 난민 최소 300,000명 ~ 최대 2,000,00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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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1년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틈타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상대로 벌인 2개월가량의[10] 공세이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무너졌으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장악하고, 결과적으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최종적 승리를 하게 되었다.2. 전개
2021년 탈레반 점령지역 변화 지도 |
차지한 주도(州都)의 개수 | 날짜 | 주(州) | 주도(州都) |
1 | 8월 6일 | 님루즈 | 자란지 |
2 | 8월 7일 | 주르잔 | 세베르간 |
5 | 8월 8일 | 쿤두즈, 사르에폴, 타하르 | 쿤두즈, 사르에폴, 탈로칸 |
6 | 8월 9일 | 사망간 | 사망간 |
8 | 8월 10일 | 파라, 바글린 | 파라, 풀리훔리 |
9 | 8월 11일 | 바다흐샨 | 파이자바드 |
13 | 8월 12일 | 가즈니, 헤라트, 바드기스, 칸다하르 | 가즈니, 헤라트, 칼라에나우, 칸다하르 |
18 | 8월 13일 | 헬만드, 구르, 로가르, 자불, 우루즈간 | 라슈카르가, 체르체간, 풀리알람, 칼라트이길자이, 타린코트 |
25 | 8월 14일 | 팍티야, 팍티카, 쿠나르, 파르야브, 라그만, 다이쿤디, 발흐 | 가르데즈, 샤란, 아사다바드, 마이마나, 메타르람, 닐리, 마자르이샤리프 |
30 | 8월 15일 | 낭가르하르, 바르다크, 호스트, 바미안, 카피사 | 잘랄라바드, 마이단샤르, 호스트, 바미안, 마무드이라키 |
2.1. 미군의 철수 이전
자세한 내용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2.2. 7월
탈레반은 아프간 전체 421개 지구 중 아프간 영토 3분의 1을 장악했으며 교전 중인 지역도 우세를 점하고 있다. # 7월들어 이틀간 15개 지구가 탈레반 통제권으로 넘어갔다.월스트리트저널은 2일,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의 비상 소개작전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대사관과 미국인 거주 단지에는 이미 장비 및 민간인들의 철수가 시작되고 있으며 대사관과 카불 국제공항을 잇는 헬리콥터가 준비되었다. 대한민국 외교부도 5일, 아프간 주재 교민의 조속한 철수를 요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철수 불응 시 여권법을 근거로 한 고발조치도 검토중이다. 아프간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중국 정부가 전세기로 중국인 210명을 귀국시켰다. #
정부군 1,600명이 탈레반과의 교전 후 타지키스탄으로 탈출했다. 전방병력이 와해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 탈레반은 정부군을 몰살하기 위해 계속 추격했으나 타지키스탄 국경을 넘자 그걸 기대라도 했다는 듯 멈췄다고 한다. 실제로 탈레반 지도부는 정부군이 국경을 넘어 도주하면 추격하지 말라는 명령을 이미 내렸음을 밝힌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8월 말에 아프간 주둔 미군이 완전 철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탈레반 재집권이 우려되고 있다. #
탈레반의 세력 확대가 일어나면서 주민들 중에는 무장을 하고 탈레반과 격전을 치르거나 아프간을 떠나는 현지 주민들이 늘고 있다. #
탈레반은 7월 9일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영토의 85% 이상을 탈레반이 차지했다고 밝혔다. # 게다가 탈레반이 이란의 국경지역, 중국의 국경지역도 장악했지만, 아프간 정부 대변인은 부인했다. #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나토군의 아프간 철군은 실수라고 비판했다. #
탈레반이 항복한 아프간 특공대 22명을 거리에서 총살했다. # 탈레반은 아프간군 포로는 무조건 죽이고 봤던 전적이 많아 학살 자체는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포로로 잡힌 다국적군은 거의 없는 편인데 항복권유를 해도 대부분 거부하고 싸우다가 전멸했다. 대표적인 예로 2010년대 전투가 한창일 당시 탈레반이 승리 중이라며 언론에 공개한 프랑스군의 무기와 장비는 정찰 중이던 프랑스 파병부대를 기습해 거의 전멸시킨 뒤 얻은 것인데, 1개 분대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 부대는 탈레반의 항복권고를 거부하고 싸우다 전원 전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거리에서 대놓고 죽인 건 주민들이 봐도 저항하지 못할 거라는 걸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프간 상황이 심각해지며 탈레반의 세력확장에 의해 사망자와 난민들이 대거 발생되고 있다. #
7월 18일에 아프간 국방부는 탈레반에 대한 공습과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적어도 53명을 죽이고 38명을 부상시키는 전과를 올렸다고 밝혔다. # 그리고 터키 내무부는 터키-이란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한 아프간 난민 130여 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
탈레반은 아프간 국경의 90% 이상을 장악했다고 밝히면서 피난민들이 비자를 신청하여 인접한 국가들로 피난을 가고 있다. # 게다가 미군 통역사로 일했던 아프간인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당했다. #1#2
7월 22일에 CNN은 미군이 아프간군과 합동으로 밤새 2차례나 드론으로 공습했다고 보도했다. #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아프간 정부를 계속 지원한다고 밝혔다. #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 31개 주에 야간통금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 탈레반 점령지에서는 이미 미국 개입 전 통치체제로 돌아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교육시설 이용 및 외부활동 금지가 강요되고 있다. 말로만 공개적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과 의료지원을 한다고 할 뿐 애초에 전형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거짓말을 반복하면서 탈레반은 세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피난민들은 정부통제구역으로 피난을 가는 상황이며 탈레반 점령지에서 미국 및 아프간 정부협력자나 군경인사들을 학살 및 보복처단하고 있다. 심지어 약탈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 다만 탈레반 점령지에서도 기존의 반(反)탈레반 민병대가 탈레반에 저항하고 있는 것을 보면 탈레반 점령지도 통제상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 하자라계 민병대는 과거 탈레반의 갖은 차별을 받은 바 있어서 하자라계 민병대들은 극렬히 저항하고 있다.
그래도 7월 23일 자 전황을 보면 정부군이 일부 지역을 탈환한 듯하다. 정부군의 영역이 6월보다는 조금 는 것을 알 수 있다. # 하지만 이런 분전에도 결국 아프간군의 문제는 장기적인 소모전을 할만한 역량과 인적 자원은 없다는 것이다.
탈레반이 아프간의 유명 코미디언을 살해한 영상이 공개되자 탈레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
탈레반이 칸다하르, 헤라트, 라슈카르가를 포위하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 그리고 민간인들도 탈레반으로부터 고향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있다. #
2.3. 8월
헬만드 주의 주도인 라쉬카르가를 공격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탈레반 병력이 갈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살폭탄테러 같이 전술을 사용해서 시가지까지 정부군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미 공군의 AC-130의 지원으로 라쉬카르가를 점령하지는 못 했다.8월 3일에 주 아프간 미국 대사관과 주 아프간 영국 대사관은 칸다하르주 스핀 볼다크 지역에서 최근 자행됐다고 보고된 탈레반의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 전쟁 범죄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
카불에서 국방장관을 노린 테러가 발생했다. # 게다가 정부 쪽 언론인이 탈레반에 의해 암살당했다. # 거기에다 쿤두즈까지 탈레반에 의해 함락당했다. #
8월 4일, 아프간 남부 헬만드주 주도인 라슈카르가 한 지구만 제외하고 탈레반에게 사실상 함락 직전이다. 물론 아직은 교전 중이라고는 하지만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헬만드 주의 라슈카르가 넘어간다면 사실상 헬만드주가 공식적으로 장악되었다는걸 의미하는 상황이라 아프간 남부일대이자 파키스탄 국경지역이며 파슈툰족 지역인(님루즈(Nīmrūz)-헬만드(Helmand)-칸다하르(Kandahār))의 정부통제력의 상실인가 유지인가의 분수령이 될 전망으로 보인다. #
8월 6일, 아프가니스탄 34개 주의 주도(州都) 중 처음으로 아프간 남부에 있는 님루즈(Nīmrūz)주의 주도인 자란즈가 함락당했다.# 원래는 6일에 탈레반 측이 장악했다고 선언했지만 아프간 정부는 교전중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부지사 테러 행위를 기점으로 AFP를 포함한 외신소식으로 7일에 완전히 점령한 것으로 보인다. # 자란즈뿐만 아니라 북부의 주즈잔주(Jowzjān) 주도 셰베르간에까지 탈레반이 진출한 상태이다. # 그리고 북부 셰베르간은 자란즈에 이어서 탈레반이 진출했다는 소식이 8월 7일에 있은 지 단 하루 만인 8월 8일부로 탈레반이 점령, 두 번째로 주도(州都)를 점령했다. #
8월 9일(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6개의 주도를 함락시켰다. 이날 탈레반 손에 넘어간 도시는 전날 함락된 쿤두즈 아래에 위치한 사망간주의 주도 아이바크다. 이로써 탈레반은 나흘 만에 님루즈주의 주도 자란즈, 주즈잔주의 주도 셰베르간, 사레폴주의 주도 사레폴, 쿤두즈주의 주도 쿤두즈, 탁하르주의 주도 탈로칸, 사망간주의 주도 아이바크. 총 6개 주도를 장악했다. #
8월 9일, 탈레반은 쿤두즈와 샤르에폴을 추가 점령하여 남부와 북부 각각 주도 4곳을 점령하게 되었다. # 아프간군은 교전만 시작하면 도망치기 바쁘고 거의 무혈입성 형식으로 들어오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답게 그렇게 혐오하는 서양과학기술 물품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지 약탈을 상습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서 치안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고 한다. 덤으로 미국에서는 이 내전이 장기화될 추세로 판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 게다가 아이바크까지 탈레반에 의해 함락됐다. # 정부군과 탈레반간의 치열한 전투과정에서 사흘간 최소 어린이 27명이 사망했다. # 탈레반 세력이 확대되면서 군벌들 중에는 탈레반에 합류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
8월 11일(현지시간) 시점으로 이미 아프간 정부는 붕괴 직전의 수준이며 헤라트와 카불 등 극히 일부 지역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탈레반은 사실상 중국 등 반미국가들과의 회담에서 암묵적으로 승인을 받은 상태이며[11] 아프간 정부는 난민송환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등 이미 패배를 기정사실로 보고 탈출을 준비하는 실정이다. 그나마 탈레반의 공세를 전멸을 각오하고 버텨내는 코만도 병력이 빠르게 고갈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소멸되면 아프간 정부의 수명도 그날로 끝날 것이다. 즉 탈레반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12]
8월 11일 기준,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주도 3곳을 추가 점령하여 총 9곳의 주도를 점령했다. 점령된 3곳은 파라 주의 주도 파라, 바글란 주의 주도 풀-에-쿰리, 바다흐샨 주의 주도 파이자바드이다. #
8월 11일, 탈레반에게 장악된 주도는 총 9곳으로 늘어났다. # 주도 점령을 기준으로 보자면 65%의 영토를 장악했다고 볼 때 상황이 무척 아프간 정부에게 암울해진 상황이며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철수에 대해서 미련이 없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또한 한국에서 지원했던 PRT 및 병원에서 근무한 아프간인들의 망명 요청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 그리고 01년 축출전 탈레반 체제 회귀는 사실상 기정 사실로 보이고 있다. 이미 정부협력을 했던 아프간인들은 부족과 상관없이 모조리 다 죽이고 있고 심지어 코미디언마저 죽이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게다가 탈레반 체제 강화및 보상심리라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지 약탈은 기본이요 여성들 사회활동 금지와 더불어서 조직원들과의 강제 결혼이라는 사실상 성노예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대놓고 성노예화를 못하고 결혼이라는 걸 애세우는 목적을 볼때 IS가 벌인 지하드 알 니카 때문에 이슬람권의 지지를 못받은 문제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밍기적밍기적 대던 아프간 부족사회를 부정하듯이 남성들은 전부 강제 징병하고 있다고 한다. #
8월 11일 미국, 러시아, 중국, 파키스탄 대표단은 카타르 도하에서 모여 '트로이카 플러스' 회담을 진행했다.
8월 12일 북서부 바드기스 주의 주도 칼라아이나를 포함, 주도 9곳이 점령당했고, 아프간 전역의 65%가 탈레반에게 장악되었다는 소식이 있은 지 단 하루 만에 수도 카불마저 위험한 상태이고 아무리 늦어도 30일 이후에는 탈레반의 완전승리까지 언급되고 있다. # 미국에서 예측한 6개월조차도 못 버티고 있다는 얘기다. # 공산정권이 4년은 버텼고 심지어 전역 장악까지 할 정도의 기염을 토해냈던 것에 비하면 형편이 없다 정도가 아니라 의지 자체도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공산정권의 붕괴도 소련이 지원을 할 수 없게 되었던 91년 소련 붕괴 이후에서야 무너진 것이지 아니었다면 오히려 당시 공산 아프간 정부와 대립하던 무자헤딘이 박살날 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한심한 추태가 계속된다는 건 미국이 그동안 새워놓은 대리 정권의 기반과 이 뒤에 있는 미국의 통치 정책의 형편없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탈레반 집권 후 문제를 고려하여 아프간인 강제추방을 잠정중단하였다. # 이러한 현실 속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아프간 전면철수가 지나치게 성급했다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 본인부터가 후회 없다고 강조하지만, 탈레반과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만행을 전세계가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도덕성 문제나 미국의 철수에 대한 비판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물론 최소한 아프간 신정부가 남베트남의 반만 했어도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개입으로 선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기에 남베트남의 구원을 포기한 것에 대한 실패의 성찰도 있지만 아프간전이 9.11테러라는 명분이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아프간 정부가 미국 눈치도 보면서 의지를 가지고 남베트남만큼만 했어도 미국은 일단 전선을 유지한 후, 세속통치 지역을 분리하자는 식의 국제적 합의라도 이끌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보면 그것조차도 못한 채 남탓만 하다가 스스로 탈레반에게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시한부 목숨 상태가 된 셈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탈레반은 민간인에 대한 보호와 여성이 최소한 부르카를 쓰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하는등의 이슬람 토호국 운운하며 선전하고 있으나 포로학살과 보복 및 탈레반 조직원들과 여성들의 강제결혼과 약탈을 지속하고 있음이 계속 언급되고 있다. #
8월 12일 탈레반은 가즈니 주의 주도인 가즈니를 점령했고, 이제 카불에서 불과 150km 지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 현재 헤라트를 공격하고 있는데, 아프간 정부군도 벼랑 끝에 몰리자 이제는 어느 정도 저항을 하고 있어[13] 의외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게다가 정예부대가 집중포진해 있는 상황이라 탈레반의 돌파에 쉽게 무너지지 않고 있어 아프간 정부군의 피해도 크지만 탈레반도 전사자만 900명이 넘어갔고, 부상자까지 합치면 수천명으로 추정된다. 현재 헤라트에서 지역 민병대도 탈레반에 맞서 싸우고 있고 생각보다 피해가 커지고 있다.[14]
결국 8월 12일부로 아프간 정부군의 최고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인 왈리 모하마드 아흐마드자이 장군[15]의 해임이 확정됐다고 보도했다. # 후임으로는 아흐마드자이 장군[16]으로 교체되었다고는 하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은 상태이다. # 탈레반 상대로 악착같이 싸우는 코만도 출신들 위주로 지휘부를 개선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반전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며 탈레반은 가즈니 시(가즈니 주(Ghaznī) 주도)를 점령함으로써 카불 진격의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한다. 가즈니주와 카불주간에는 바르다크(Vardak)-로가르주(Lowgar)밖에 없다. 그 주 크기도 매우 작은 편이기에 보통 가즈니주의 가즈니시가 교두보로 보고 있는 편인데 여기가 점령당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가즈니시 점령이 무혈입성이라는 사실이다. 탈레반과 거래한 주지사와 경찰서장이 안전하게 도주하고 있는 영상이 확인되면서 이들이 얼마나 스스로 의지도 없는 주제에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징징거리는지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다 하겠다.[17]
한편 같은 날인 8월 12일, 아프간 서부에 있는 헤라트주(Herat)의 주도인 제3도시 헤라트[18]도 함락당했다. # 헤라트 함락은 참으로 어이없이 벌어졌다. 헤라트의 정부군 수뇌부가 살마 댐을 시찰하러 갔는데, 내부에 잠입해 있던 탈레반에 포위를 당해 항복했고 그대로 탈레반으로 전향했다. 당연히 사령관이 전향했으니 정부군이 담당하는 헤라트 동부 전선이 붕괴되었고, 탈레반으로 전향한 207군단장이 헤라트 서부 전선에서 싸우고 있던 이스마일 칸을 반격작전을 해야 하니 동부 전선으로 오라고 부르는 기만책을 썼다. 헤라트 동부 전선으로 간 이스마일 칸 일행은 갑자기 탈레반에게 포위되었고, 같이 간 정부군은 그대로 탈레반에 뇌물을 받고 항복한다. 그 사이 헤라트 도심에 있던 시장은 탈레반이 살마 댐을 폭파시켜 헤라트를 수장시키는 수공 작전을 벌이겠다며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항복해야 했다. 결국 이스마일 칸은 탈레반에게 포로로 붙잡혔다.[19] 아프간 정부의 서부 전선은 완전히 붕괴되었고, 헤라트로 보낸 정부군은 가장 핵심적인 정예병력이었는데 그대로 탈레반으로 항복하거나 와해되었다.
8월 13일에는 제2도시 칸다하르[20]도 함락되었는데 함락 이유가 가관이다. 탈레반이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정부군이 맞서 싸우지 않고 험비 등의 군용 차량을 타고 그대로 줄행랑을 쳐 방어 인력이 공백이 되어버린 것이 그 이유.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두려워서 과속을 하면서까지 도망가게 만든 원인인 탈레반 보병들은 유유히 걸어서 시내로 진입했다. # 정치적 고향을 수복한 탈레반군의 사기가 더더욱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라슈카르가도 함락되어 이제 카불 등 일부 지역만 남았다. 또한 타린코트와 칼라트, 차그차란, 풀리 알람까지 함락되었다. 특히 풀리 알람은 로가르주의 주도로, 카불로부터 불과 50 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카불 자체도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미군은 대사관 보호 등을 위해 병력 3,000여 명을 재투입하였다. # 미국은 철수 이후 그래도 6개월 정도를 예상했으나 완전히 철수하기도 전에 이미 탈레반의 승리가 확정되는 모양새이다.[21]
칸다하르-가즈니-카불을 잇는 주요 도로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교전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이다. ## 그 이후 라쉬카르가도 함락되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측에 남은 대도시는 사실상 카불밖에 없다. 그나마도 수만 명의 잔여 병력으로 도시와 그 주변만 겨우 통제하는 실정이며, 외곽은 20만이 넘는 탈레반이 완전히 포위했다. 아직 본격적인 공격이 이뤄지지는 않고 있으나 이미 도시를 봉쇄했기 때문에 그냥 두는 것만으로도 카불의 아프간인들 모두 몇 달 내에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8월 13일, 미군 3,000명과 영국군 600여 명을 재배치하는 재파병 결정이 긴급하게 이루어진 상태이다. # 공식적으로는 자국민 대피 목적이라고 하며, 실제로도 아프간군을 돕거나 다른 걸 할 만한 여력은 되지 않는다. # 또한 미국과 영국만이 3,600명을 재배치했을 뿐, 다른 국가들은 애초에 탈레반의 승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한국처럼 승인하지 않고 무시하느냐 중국처럼 대놓고 승인 및 적극 협력하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역시 8월 13일 부로 중부 우루즈간 주의 주도인 타린코트와 남부 자불 주 주도인 칼라트도 탈레반에게 함락되었다. 또한 중서부 고르 주의 주도 차그차란과 카불 남부 로가르 주의 주도 풀리 알람까지 함락되었다. 특히 풀리 알람은 카불로부터 불과 50 km 밖에 있는 곳이고 로가르주 경계만 넘으면 바로 카불이다. 이로써 탈레반은 하루 만에 무려 추가로 주도 9개를 함락하여 34개 주도 중 절반인 17개 주도를 장악하게 되었다.
중부지역의 친정부 주들[22]과 카불을 잇는 라인이 무너지면서 이들 주는 완벽하게 탈레반에게 포위되었다. 정부군은 탈레반 병사만 보이면 적전도주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민병들도 전투의지를 잃고 있기 때문에[23] 머지않아 대부분의 지역이 탈레반에게 점령당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의 점령에 맞서기 위해 아프간에서 한 여성 군수가 탈레반과 전투를 치르고 있다. #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즈니시 점령 하루도 안 되어서 카불에서 50km까지 탈레반이 들어온 상태이다. # 가즈니-카불이 150km 거리인 걸 감안하면 하루 만에 100km나 밀렸다는 소리다.
한편 미국의 철수에는 더더욱 가속이 붙고 있는데 특히 CNN의 정보통이 파악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카불이 72시간 이내에 완전 포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현재 대사관에서는 기밀문서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자료가 불살라지고 있다고 한다.
8월 14일 탈레반이 마자르이샤리프에 대한 공세를 펼쳤다. # 가니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 수백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피난길에 올랐지만# 탈레반이 카불 남쪽 11km까지 진격했다. #
같은 날, 파키스탄과 접한 팍티카 주 주도인 샤란과 동부 쿠나르주의 주도인 아사다바드까지 함락되었다. 팍티카 주의 주지사와 관리들은 탈레반에 항복하고, 카불로 이동했다. 그리고 아사다바드의 관리들은 인근 낭가르하르 주로 이동했으며, 낭가르하르 주에서도 정부군과 탈레반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24] 이로써 34개 주도 중 20개가 탈레반에 함락되고, 카불은 점점 포위되고 있다. ##
카불로 모여드는 난민은 공식 추산만 25만 명이고 비공식적으로는 50만인 상황이며 주로 여자와 아이들이라고 한다. 이미 탈레반이 강제결혼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우민화 교육을 다시 시작하고 있어서 이 점을 피하기 위해서인 것을 보이는데 난민 보호를 위한 식사제공이나 거주지역 제공이 매우 열악한 상태이다. # 이미 파키스탄에만 난민 150만이 확인되고 있어서 파키스탄이 미국에 대한 불만이 크다. UN은 국경개방을 호소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25]
한편 미국은 미군 철수 후 대사관 직원 철수라는 로드맵을 짰는데 아프간 정부군의 졸전으로 인해 일찍 무너져 내리면서 카불까지 진격해 오는 속도가 예상을 초월한 속도였던지라 결국 중부사령부의 예하부대 총 8,000명가량의 병력을 대사관 직원 대피 및 국제공항 호위 작전에 들어갈 예정이다.[26]
2.3.1.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 항복
북부 발흐 주의 주도이자 대도시인 마자르이샤리프가 결국 함락되었다. 도스툼과 누르 등 지도자들 및 관리들과 정부군은 아무다리야 강에 접한 국경 도시 하이라탄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도망쳤다. 상술한 반탈레반 여성 군수 살리마 마자리(Salima Mazari)[27]도 발흐주 차킨트군에서 싸우고 있다지만 전망이 매우 어둡다. 기어이 차킨트군이 포위당하고 15일에 탈레반에 생포되었다는 비보가 들어왔다. # 여성인데다 탈레반의 주의를 잔뜩 끌었기 때문에 참수당할 것이 확실시된다.[28]마자르이샤리프 함락 이후 아프간 정부군에서 가니 대통령이 교전 중지 명령을 하달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발흐 주가 거의 함락되면서 정부군이 간신히 차지하고 있던 북부 국경과 중부 친정부 주들을 잇는 라인이 끊어졌고, 북부 국경은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었다.
같은 날, 동부 라그만 주의 주도인 메타르람도 함락되었다. 또한 중부 다이쿤디 주가 탈레반에게 항복했고, 주도 닐리에서 두 발의 총성이 들렸다는 소식이 아프간 법무부 장관에 의해 발표되었다. 북부 파르야브 주의 주도 마이마나도 함락되었다. 낭가르하르 주의 Khogyani 지역도 탈레반이 점거하였고 주도 잘랄라바드 또한 다음날 함락되었다. 알 자지라 방송 잘랄라바드가 함락된 것은 아프간 정부가 통제하고 있던, 카불을 제외한 마지막 주요 도시 지역이 점령당했다는 뜻이며, 파키스탄과 접하고 있는 동부 국경 또한 탈레반이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불은 완전히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었으며, 탈레반은 34개 주도 중에서 26개 주도를 차지하였다.
탈레반이 카불 국제공항을 공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카불에서 정부군이 야반도주#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BC는 카불을 제외한 모든 주요 대도시들을 탈레반이 통제하고 있다고 긴급 보도했다. #
또한 낭가르하루 주의 파키스탄과 접한 국경 도시 Torkhan도 탈레반이 접수했고, 카불-잘랄라바드 고속도로가 8월 15일 전날 밤 탈레반에 의해 폐쇄되었다가 낭가르하르 주의 함락 이후 재개통되었다.
중부 바르다크 주의 주도 마이단샤르와, 동부 호스트 주의 주도 호스트(Khowst)도 함락되었다. 또한 바그람 공군기지가 있던, 카불 북부 파르반 주의 바그람 구역도 탈레반에 함락되었다. 바미안 주의 주도 역할을 하는 바미안 구역도 함락되었다. 낭가르하르 주의 Surkh Rod, Ghani Khel 구역도 함락되었다.
카피사 주가 주도 마무드이라키를 포함, 완전히 탈레반의 수중에 떨어졌다.
카불 시를 둘러싸고 있는 카불 주의 수루비, 카라바그(Qara Bagh), 바자라미, 바그만 지구를 탈레반이 점령하였다. 정부군은 카불 주의 데 사브즈(Deh Sabz) 구역에서 후퇴했다.
카불 주재 미국대사관에 헬기들이 도착해 직원들을 철수시키면서 미국의 프리퀀트 윈드 작전이 다시 데자뷰되었다. #
트위터에서 카불의 상황이 계속 전해지고 있는데, 카불 외곽에서 탈레반을 기다리는 민중#과 카불 시내에 진입한 탈레반 요원#의 모습이다.
한국시각 오후 4시 기준으로 카불 외곽은 이미 탈레반이 진입하고 있다고 아프간 관리가 밝혔다. # 이미 바부르의 묘지 겸 정원인 바그 에 바부르에서 탈레반 대원이 목격되었고, 카불에 소재한 은행에서는 탈레반이 들이닥치기 전에 뱅크런이 발생했다.
이 와중에 미국 국무장관 안토니 블링컨은 "현재 아프간의 안보 상황과 폭력을 줄이기 위한 우리의 시급한 외교적, 정치적 노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통화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탈레반의 카불 함락이 기정사실화된 만큼 가니 대통령 및 아프간 지도부와 그 가족, 그 외 카불 시민들의 망명을 논의하는 통화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곽까지 진입한 탈레반은 카불을 완전히 포위하고 공식 성명으로 카불 시내로는 진입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본인들은 평화로운 입성을 원한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포위를 통해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은 외국인들이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
결국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탈레반에 항복하였으며 정권 이양에 합의했고 탈레반 과도정부가 설립되었다. 아프간 정부군은 해산되었으며 공항, 병원은 정상 운영된다고 한다. 또한 탈레반 카타르 도하 정치사무소의 지도자는 카불시내에서 폭력 행위를 하지 말 것과 탈출을 원하는 이들을 자유롭게 보내주라고 지시하였다. #
아직 탈레반이 점령하지 않은 곳은 중부 일부[29]와 동부의 누리스탄 주, 판지시르 주 정도 뿐이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항복하면서 조만간 점령할 예정이다. 이렇게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패망했다. 하지만 암룰라 살레 부통령[30] 등은 판지시르에서 최후의 저항을 하기로 결의한 상태. 판지시르는 탈레반의 사주로 알카에다에게 암살된 아프간의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본거지였던 곳으로, 마수드를 추종하는 북부동맹과 타지크인 등의 성지이다. 8월 16일 이들은 샤 마수드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의 휘하에서 항전할 것임을 밝혔다.[31]
2021년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내무부 트위터는 "자유란 어떠한 제한이나 제약 없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안보군과 국방군은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란 트윗을 남겼다. #
2021년 8월 16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 도착 직후 "학살을 막기 위해 떠난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2014년, 2019년 모두 가니 후보와 대선 결선투표에서 경쟁하였던 압둘라 압둘라 국가최고화해위원회 의장(전 부통령, 전 외무장관)[32]은 가니를 "수많은 아프간 국민들을 내버리고 무책임하게 도망친 '전직' 대통령"이라고 비난하였다. 특히 카불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 따르면 가니 대통령은 항복 직전 엄청난 액수의 돈을 차 4대에 싣고 도망쳤으며, 돈 중 상당 액수는 헬리콥터에 들어가지 않아 활주로에 버려두고 도망갔다고 하여 급격하게 인식이 나빠졌다. # 이에 대해 인도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 트위터에 “도망자 대통령을 위해 일했다니 부끄럽다. 알라께서 배신자를 응징하시길!”, “나라를 다 쑥대밭으로 망쳐놓고 사기꾼 부하들과 함께 도망쳤다."라고 맹비난했다가 트윗을 삭제하는 일도 생겼다. #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다시 장악하기 직전 아프간 정부와 만나 2주간 휴전을 잠정 합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
3. 반응
자세한 내용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반응 문서 참고하십시오.4. 여파
4.1. 정부 항복 이후
자세한 내용은 탈레반/2021년 문서 참고하십시오.4.2. 철군 및 탈출
자세한 내용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4.3. 판지시르의 저항
자세한 내용은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서 참고하십시오.4.4. 반탈레반 시위
8월 18일 잘랄라바드 시위 | 8월 19일 카불 시위 |
아프가니스탄을 재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통행금지령을 내렸다고 카마통신이 현지시간 19일 보도했다. #
19일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을 맞아 탈레반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정부가 바뀌더라도 아프간 국기를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탈레반 국기 게양을 거부했다.
잘랄라바드에서 처음 발생한 반탈레반 시위는 독립기념일인 이날을 맞아 아프간 전역으로 확대됐다. 다이날 동부 도시 아사다바드에서는 탈레반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하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수도 카불에서도 집회 시위가 진행된 가운데, 총격전이 벌어졌다. #
4.5.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자세한 내용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폭탄 테러 문서 참고하십시오.5. 난민
미군에게 보내지는 아기[33] |
국가 | 지역 | 규모 | 대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버지니아 포트 리(Fort Lee) | 최대 수만 명 |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 | 최대 20,000명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최대 20,000명 |
이번에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사태는 2010년대 난민 사태와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는데 상술한 것처럼 이전까지 호주로 유입되던 인도네시아 난민 혹은 지중해에서 유입되던 나이지리아, 콩고 난민의 경우 절대다수가 성인 남성 다시 말해서 사실상 무자격 경제 이민자였다면, 이번에는 여성과 어린이가 중심이 된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그동안 반난민 시위를 주도해왔던 극우 성향 시민단체들이 난민 유입을 반대하던 이유가 "난민으로 유입되는 인구가 대부분 성인 남성", "테러와 성범죄 가능성"인데, 지금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 관련해서는 이런 명분이 안 먹힌다.
- 8월 5일자 유럽의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독일, 그리스, 네덜란드의 내무장관은 EU 집행부에 난민 송환이 계속될 수 있도록 아프간 정부와 "협상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전문가는, 2021년 약 1,200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이 EU 국가에서 추방되었으며 대부분은 자발적으로 이탈했고 200명은 강제로 추방되었다고 말했다. AP통신
- 8월 14일 카타르에서 아프간 난민 8천명 수용에 동의했다. # 그동안 카타르는 2015년까지 4년간 시리아 난민을 단 1명도 받지 않은 주제에 오히려 유럽 각지의 난민촌에 사이드 쿠틉의 이슬람주의 선교를 적극 후원하여 극단주의 테러를 조장해왔다는 비판을 듣던 상황이라 이번에는 생색내기 용으로 일부 난민을 수용하게 되었다. 애초에 카타르 내 탈레반 사무실에서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비롯한 탈레반 간부들이 호의호식하던 게 알려진 상황에서# 이번에도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을 또 거부하고 난민촌에 극단주의 선교를 후원하면, 과거 알카에다 돈세탁했다가 경제제재 맞고 파탄났던 나우루 꼴이 나는 수가 있다.
-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17일 TV에 나와 "아프간에서 이탈리아를 도왔던 이들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자유와 시민권, 인권 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노출했던 이들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측은 탈레반의 수중에 넘어간 아프가니스탄 현지 지원 인력 철수 작전을 본격화하고 있다. #
- 유럽 국가들은 2015년의 시리아 내전 당시 유럽 난민 사태를 떠올리며 아프간 난민 수용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 오스트리아는 아예 이번에는 절대 아프간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카를 네함머 오스트리아 내무장관은 아프간 인근 지역에 난민 센터를 지어야 한다며 "아프간인들이 오스트리아에 올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36]
- 그리스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는 대규모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프간 붕괴에 대한 영향을 유럽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EU가 아프간에서의 난민 대량유입에 대비한 강력한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난민이 유럽으로 오지 않고 터키, 중앙아시아,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 머물 수 있도록 협력과 지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네덜란드는 두번째 아프간 피란민 수용시설을 마련해 178명의 아프간 피란민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 네덜란드 북부 자우스캄프 지역의 첫 수용시설이 이미 꽉 찬 상태여서다. 현재 자우스캄프 수용시설에는 400여명이 넘는 아프간 난민이 머물고 있다. 두 번째 임시 수용시설에 머무르게 된 아프간 피란민 178명 중 129명은 23일 오전, 네덜란드 당국이 보낸 여섯번째 수송기를 탄 이들이다.
- 프랑스로 피난을 간 아프간인 중 5명이 탈레반 소속으로 밝혀지자 프랑스내에서 논란이 발생했다. #
- 에어비앤비는 세계 아프간 난민 2만명에게 에어비앤비 플랫폼에 등록된 숙소를 제공할 계획이다. #
- 카불 공항으로 접근이 어려워지자 아프간인들중에는 육로를 통해 파키스탄으로 가는 경우가 늘고 있다. #
- 탈레반의 2차 집권이 이뤄지면 아프간인 51만명이 해외난민이 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
- 파키스탄은 아프간 난민을 한명이라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
5.1. 미국
- 미국은 최대 3,500명의 미군과 그 가족과 함께 일한 통역사, 특별 이민 신분(Special Immigrant Status, SIV) 자격을 갖춘 아프가니스탄인의 이민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역은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포트리(Fort Lee)로, 미군 군부대 기지이다. VOA, 미국 국방부, 워싱턴포스트
- 약 2,500명의 아프가니스탄인의 첫 번째 그룹은 7월 30일 포트리에 도착했다. 이미 2008년부터 SIV를 발급받은 아프간인 약 7만명이 미국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5.2. 캐나다
- 캐나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캐나다의 노력에 기여한 아프간인들을 위한 특별 이민 프로그램을 계속 시행하기로 했다. 미국과 달리 난민 타운을 만드는 형태가 아닌, 캐나다인의 집에 초대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구적인 고향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
- 캐나다는 최대 20,000명의 "여성 정치인, 인권 운동가, 언론인, 박해받는 소수 종교인, 성소수자"를 수용하기로 했다.
- 최대 20,000명의 여성 정치인, 인권 운동가, 언론인, 박해받는 소수 종교인, 성소수자 개인 및 이전에 재정착한 통역사의 가족을 포함하여 기존 재정착 흐름을 통해 이미 캐나다에 입국한 특히 취약한 그룹에 초점을 맞춘 특별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 로이터 통신
- 이미 8월 초에 집과 마음을 열기를 갈망하는 전국의 캐나다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고 한다. 이 쏟아지는 선의와 열렬한 지원을 확인한 정부는 더 많은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캐나다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환영하자고 주장했다.
5.3. 영국
-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영국인은 약 4,000명으로, 8월 첫째 주에 영국 외무부는 모든 영국 국민에게 출국을 권고했다. BBC
-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대사관은 지난 몇 주 동안 1,800명을 포함하여 이미 3,100명 이상의 전 아프간 직원과 그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도록 지원한 영국의 아프간 이주 및 지원 정책(ARAP)을 돕고 있다.
- 8월 17일 영국이 5,000명에서 최대 20,000여명의 아프간 난민을 수용하기로 밝혔다. 탈레반으로부터 인권 유린에 가장 취약한 여성, 종교인, 소수민족 등에게 우선적으로 난민 신청권이 주어질 예정이다. #
- 영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나치게 서둘러 철수함으로써 수백명을 더 철수시킬 기회를 잃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
- 영국에 정착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은 영어 교육은 물론 영국식 가치와 문화, 시민 의무 등을 집중적으로 교육받을 것으로 보인다. #
5.4. 독일
- 독일 16개 주 정부는 아프간 현지에서 독일군이나 정부를 도운 아프간 현지 직원, 위험에 처한 여성이나 아이들 등 난민들을 수용할 채비를 하고 있다. 독일 최대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독일연방군과 정부 등을 도왔던 아프간 현지 직원 800명과 시민권과 예술, 언론 분야에서 일하던 여성들 1,000여 명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독일군과 정부 등을 도운 아프간인과 가족은 바덴뷔르템베르크에서 1,100명, 니더작센에서 400명, 브레멘에서 150명 각각 수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아프간 여성과 어린이 300여 명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함부르크에는 약 200명의 난민을 위한 임시 쉼터가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 그러나 독일 내에서는 "2015년 유럽 난민 사태의 재현은 안 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제20대 독일 연방하원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아르민 라셰트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총리 후보 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지사도 최근 이같은 입장을 나타냈다.
-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서방국가와 함께 일했거나 지금 위험에 처한 아프간인들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5.5. 대한민국
-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카타르와 독일에 설치된 아프간 난민 수용소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 본토 내 미군기지 및 한국, 일본, 이탈리아 등 해외에 있는 미군기지에 난민을 분산수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 만약 주한미군 기지가 선정된다면 경기도 평택시에 소재한 캠프 험프리스[37] 또는 오산 공군기지[38]에 난민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다.
- 이에 대하여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에 대해, "전혀 논의된 바 없고 적절한지도 의문이다"며, "수송문제들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을 위해 일해온 아프간인 400명을 우리 정부 자체적으로 난민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한미동맹의 틀에서 미국과 협조할 수 있는 사안이며, 인도주의 차원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일시적 수용이 아닌 국내 체류권 부여 등 장기 체류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다. #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 미군기지 등 제3국에 난민을 임시 수용한 뒤, 심사를 통해 미국에 입국시킬 계획임을 밝혔다. 경유지 선정 대상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여러 대륙 국가 전체로 지목하여, 해외미군기지 난민수용 검토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다만, 해외 미군기지 내 장기 수용이나 제3국으로의 이민이 아닌, 난민 심사를 위해 임시 수용을 하는 "경유지"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 일단 미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 중동의 미군기지를 경유지 및 임시수용시설로 활용하기로 하면서 주일미군, 주한미군 등 아시아 주둔 미군기지를 이용한 아프간 난민 수용설은 일단락된 상황이다. #
5.5.1. 미라클 작전
자세한 내용은 미라클 작전 문서 참고하십시오.5.6. 호주
- 호주의 ABC 뉴스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위해 3,000여 개의 비자 프로그램을 오픈했다. 우선 순위는 호주에 이미 가족이 있는 사람, 여자와 아이들, 하자라족 같은 박해받는 집단이다. 하지만 코로나 문제로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
5.7. 일본
- 23일 일본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주재 일본대사관과 일본국제협력기구 등에서 근무한 현지 직원과 그 가족의 일본 입국과 관련해 난민 인정 검토에 들어갔으며,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자국민과 현지 직원 등을 대피시키기 위해 항공자위대 수송기 3대를 파견했다. 23일 저녁 C-2 수송기 1대, 이날 오후 C-130 수송기 2대가 각각 아프간 인접국인 파키스탄을 향해 출발했다.
- 25일 밤부터 26일 오후까지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아프간 카불 공항으로 향한 일본 자위대 수송기가 카불 공항에 두 차례 착륙했지만, 대피 희망자 중에 1명도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수송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피 희망자에게 자력으로 공항까지 이동하라고 요청했지만, 당사자들 입장에선 공항 접근로가 너무 위험하고 혼란스러워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며, 설상 가상으로 27일 자정에 카불 공항 근처에서 두 차례나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혼란이 가중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의 미라클 수송 작전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어 난민도 아닌 자국민 한 명도 구출을 하지 못하면서 비난 여론이 일자 일본 정부는 아프간 잔류 일본인 등에 대한 대피 지원을 내일(27일)까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대피 지원 대상은 최대 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일본 정부는 이들을 일단 인접국으로 대피시킨 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일본 혹은 제3국으로의 출국을 지원할 방침이다. #
- 미국이 8월 말까지로 아프간 철수 시한을 정해 놓아 최대 500명으로 잡았던 일본 정부의 대피 희망자 이송 작전은 사실상 무위로 끝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계획한 이번 대피 작전의 일환으로 아프간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교도통신 통신원으로 일해온 야스이 히로미(安井浩美·여·57) 씨 한 명뿐이다. 그는 자위대 C-130 수송기편으로 27일 오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탈레반의 재장악 이후 아프간에 거주해온 일본인이 자위대 수송기편으로 대피한 것은 처음이다. 현재 아프간에는 출국을 원하지 않는 소수 일본인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일본 정부의 아프간 난민 구출 작전은 언론에서 출정식까지 알리며, 탈레반이 미리 눈치채게 만들었던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은 이 출정식을 보고 24일 대변인이 일본인이나 현지인들은 남아 있으라는 위협성 발언을 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일본인을 포함한 대피 희망자 수백 명이 한국과 비슷하게 20대 이상의 버스에 나눠타고 카불공항으로 출발했지만,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이동을 포기하는 상황도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
- 구조 작전 실패를 두고 일본에서 비판여론도 있자 이걸 빌미로 자위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구출 작전은 자위대법 84조의 4에 근거하는 「수송」으로, 공항내에서의 일본인들의 유도와 항공기에 의한 대피가 중심.동법은 수송을 '안전하게 실시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때'로 한정하고 있으며, 미군이 안전을 통제할 수 있는 공항 내에서만 활동하도록 했다. 자위대 자위관이 대피 희망자를 데리러 가서 경호하고 데려올 수는 없었다. 2016년 시행된 안전보장 관련법으로 새로이 재외 일본인들의 구출과 경호를 허용하는 '보호'(자위대법 84조의 3)가 가능해졌으며, 보다 강력한 무기 사용 권한도 부여되었다.그러나, 파견처가 되는 수용국의 동의나 현지의 치안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요건으로,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간에서의 적용은 보류했다. 24일의 자민당 국방부회 등의 합동 회의에서 자위대법의 완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졌다. 방위성 내에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논의를 시작했으면 좋겠다"며 법 개정에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5.8. 중국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받아줘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웨이보에 올린 교수가 분청들의 사이버 테러를 받고 하루만에 게시글을 삭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 향후 전망 및 평가
아프간 정부가 사실상 붕괴되어 2021년 8월 15일 결국 항복하고 평화적 정권이양을 약속하면서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중국 정부는 탈레반 정권을 승인하였고, 향후 아프가니스탄이 소말리아처럼 무정부 상태로 남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에게 있어 바랄 수 있는 시나리오는 탈레반이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보고 시위에 나선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의견을 경청하여 튀니지의 엔나흐다[39] 수준으로 갱생하는 것 밖에 없다.미군이 완전히 발을 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정부는 거듭된 졸전으로 수도 카불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들을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진격한 탈레반에 빼앗겼고, 판지시르 등 일부 지역에서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등 잔존 반탈레반 세력이 저항하고 있으나 사실상 말이 세력이지 병력은 최소 2천 명, 최대 1만 5천 명밖에 안 되어 거의 오지인 판지시르만을 지켜내는데 급급한 부족군대 수준으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탈레반은 마약을 통한 자금줄과 노획한 장비로 특수전 보병을 만들 정도로 갈수록 강성해져가는 반면 아프간 정부군은 점차 병력이 소모되고 지속적인 패배에 전의를 상실해 현재는 거의 과거 남베트남군처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도망가고 있으며, 현 아프간 지도층은 탈레반에게 잡히면 최소 교수형 또는 총살형 확정인데다 최악의 경우 무하마드 나지불라의 사례와 비슷하게 신체 훼손을 당하는 동시에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는 관계로 아프가니스탄에 잔류하는 대신 해외망명을 통한 해외도피에 착수했고, 판지시르 지역은 아흐마드 마수드 가문의 타지크족에 대한 영향력과 험준한 지형 때문에 겨우 지켜내는 수준이지 탈레반을 무너뜨릴 정도의 병력도, 무기도 없기 때문이다.[40]
아프간전 종전의 가장 결정적인 징후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이 아프간 내 통역 등 협력자들의 대규모 해외이주작전을 이미 개시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아프간에 남겨두면 서방의 앞잡이란 이유로 처형당하는 것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연좌제로 처단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41] 탈레반은 이미 이들을 발견하는 족족 죽이고 있기 때문에 통역들은 불법체류자가 되어서라도 도망가려고 하고 있으며, 앞으로 수십년간 이들의 거취가 국제사회의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만 해도 수백명에 달하는 아프간 협력자들이 난민신청을 했으며,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반응이 없으나 같이 일했던 한국인들이 그들의 한국으로의 이주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아프간 정부는 미 공군의 지원 하에 아프간 정부의 유일하게 믿는 군부대이자 정예 특수부대 코만도가 수도 카불 등 몇몇 지역만 겨우 통제하면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반탈레반 민병들의 보조하에 탈레반의 공세를 겨우겨우 막고 있다. 그러나 미군의 무인기 공습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은 점령지역의 남성들을 강제징집해 총알받이로 투입하며 사실상 준 인해전술로 계속 밀고 들어오고 있으며 아프간 정부군은 이미 전의 자체를 상실한 상태다. 그나마 저항을 이어가는 코만도 병력은 3만에 달하지만 이들도 지속적인 탈레반과의 전투로 계속해서 전투손실로 인해 전투가용 병력이 줄어들고 있으며 사실상 대부분의 지역이 탈레반에게 장악되어 사상자 보충이 불가능한 상황이고 보충이 되더라도 풍전등화 상황에서 전투병을 양성하기 위한 시간이 있을리가 없다. 그나마 정부군이 아닌 코만도 병력은 생존한다면 지속적으로 저항하거나 이전 6월 22일에 항복을 한 특수부대원들을 죽인 탈레반의 모습 때문에 코만도들은 탈레반이 항복해도 살려주지 않기 때문에 악착같이 저항하며 버티는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 점령이 성공했더라도 오랫동안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피해복구와 아프간의 부족들간의 둘러싸인 이해관계 문제, 당분간 제한된 군사로 전역이 산악지대로 둘러싼 영토들을 통제해야 하며 여기에 전쟁 이후에도 잔존한 저항 세력들 토벌해야 하며[42] 이후 서방과 미국의 의한 각종 경제제재와 외교문제, 치안문제, 경제문제와 식량문제, 민심문제, 심지어 집권 후 자기네들끼지 권력다툼 문제 등 향후 해결할 과제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탈레반도 미래가 썩 밝다고 볼수 없는 상황이며 집권하더라도 최소 10년간은 국제에 더 이상 눈엣가시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지내야 할 판이다.[43] 만약 향후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높은 확률로 다시 내전이 발발할 것이며[44] 최악의 경우 2011년 미군 철수 이후의 혼란 틈에 공백기를 이용해 급속도로 성장한 ISIS가 등장하는 사례처럼 탈레반보다 더 막장세력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이렇게 곳곳에 내전이 다시 발발할 수 있는 여지가 널리고 널린 상황에서 탈레반이나 혹은 다른 한 쪽이 외부 세력(특히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경우 아프가니스탄은 또다시 외세와의 전쟁에 돌입하게 될수도 있다. 즉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자 세계의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웃국가 파키스탄은 이번 탈레반의 승전을 계기로 미국 입장에서 지정학적 가치를 상당부분 상실하였다. 파키스탄은 해상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이유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수준의 경제 원조를 받았다.[45]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이 파키스탄을 통해 원조한 금액은 결과적으로 탈레반의 발흥으로 이어졌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에는 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파키스탄으로 간 원조 금액 대부분이 부정부패로 증발한 것은 물론, 파키스탄 정부의 협조도 받은 돈에 비해 미적지근했다. 이 때문에 미국 공화당에서 원래부터 말이 많았었다. 엄청난 원조금을 받았음에도 미국에게 대충대충 협조한 결과 도널드 트럼프 정권 이후 원조금이 상당부분 삭감당하면서 경제위기에 빠진 파키스탄은 이번 미군 철수를 계기로 미국과 사이가 더 소원해지는 것은 물론 경제도 더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파키스탄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는 것이 애초에 명분도 없이 이라크 전쟁으로 전선을 넓혀서 패주하던 탈레반들이 다시 기사회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파키스탄 북부 국경지대가 엉망진창이 되도록 만든 게 미국이다. 다만 현재 미국의 동맹 EU가 제발 아프가니스탄 난민 좀 못 오게 대신 수용해달라고 파키스탄에 읍소하는 상황이 되면서, 원조금을 아예 끊어버리기는 힘들게 되었다.
또한 탈레반은 자국 내에 기생하고 있는 IS를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소탕하려 들 것이다. 실제로 IS와 탈레반은 서로 충돌하여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여러모로 겨뤄온데다, 공격적이고 확장을 꾀하는 IS를 내버려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46] 더군다나 이슬람 근본주의 세계에서 탈레반은 초강대국 미군을 대상으로 승전하면서 대의명분을 획득한 것과 대조적으로, ISIS의 경우 이스라엘에는 단 한 번도 공격한 적이 없으면서 대신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민족주의를 문제 삼아서 가자지구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이유로 현재 와하브파나 살라프파 내에서도 강약약강 쫄보라는 식으로 평판이 바닥을 기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조선시대 사림들과 마찬가지로 명목상 대의명분이 중요한 법인데, 탈레반은 대의명분에서 ISIS를 압도한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탈레반의 승전에 환호하는 지금이 자국 내 IS의 씨를 말릴 절호의 기회이다.
중국이 탈레반을 인정하는 뉘앙스를 취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탈레반을 지원한다고 해버리면, 나름 껄끄러운 인도를 상대로 전쟁까지 발발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어버리고, 쉽게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6.1. 여성 기본권 침해 우려
유엔아프간지원단(UNAMA)에 따르면 올 1~6월 아프간 사상자 수는 5,183명(사망 1,659명)이었는데 사상자의 약 32%가 어린이였고, 여성은 14%였다.[47] 탈레반이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남성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간신히 개선되어가던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인권 상황은 다시 퇴보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탈레반을 지지하는 부족들의 경우 여성은 아예 족보에도 올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서 족보는 전사 명부이기 때문이다. 전투원이 될 수 없는 여성은 족보에도 올라가지 않으며, 출생 증명서에도 어머니 이름 없이 아버지 이름만 들어가고 결혼 청첩장에도 신부 이름은 들어가지 않으며 여자 묘비에 사망자 본인 이름조차 안 적힌다. # 이런 상황에서 서구인 여성 기자가 탈레반 대원들과 인터뷰하며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여성 정치인에 투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니, 탈레반 대원들 입장에서는 표정관리하는데 실패하고 웃음을 터트리는게 당연했다. #[48]
여성의 교육권이 사실상 완전히 박탈될 것이 예상된다. 탈레반은 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염산 물총을 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고, 파키스탄의 여성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매국노이자 이스라엘의 스파이, 창녀 등으로 비방하는 프로파간다를 조장해왔다. 탈레반은 최근에도 새로운 지역을 점령하면 가장 먼저 학교를 장악하고, 여학교는 문을 닫거나 아예 불태운다. 지난 5월 9일 수도 카불 시내 하자라인들이 주로 다니는 여학교 3곳에 대규모 폭탄 공격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현지 언론은 이 사건의 배후가 탈레반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물론 탈레반은 국제 여론을 의식해서 당장은 여학생들의 교육권을 100% 박탈하지는 않겠지만 여학생들에게 하레디 학교 비슷하게 기초적인 작문이나 산수나 같은 것도 안 가르치고 샤리아만 세뇌시킬 게 뻔하다. 쿠란이나 하디스에서 수학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대개 지주나 금융업자를 겸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산수에 무식할수록 소득 증대에 유리하다. 비교하자면 양구군 악덕상인들이 국군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갖은 억지를 부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근현대 이래 수구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문맹 퇴치 운동, 초등교육 보급 및 여성 복식의 자유를 적극 반대해왔다. 또한 이슬람 지역도 초등학교 교사와 유아교육직 종사자의 여성 비율이 다른 직종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인데, 아프간도 초등학교 교사가 거의 다 여성이라서 여성의 직업활동이 금지된다면 이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시절 때 보여줬듯이 교사 부족 현상이 나타나 남학생의 초등교육도 심하게 쇠퇴할 것으로 보인다.[49] 고위 관료, 고위 군벌, 율법학자들이 전문적인 교육자를 고용해 아들 교육을 시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일반적인 남학생들이 교육받는 것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탈레반도 이를 의식했는지 여성 인권에 대한 존중을 약속하긴 했다. 향후 권력을 쥐더라도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히잡을 쓰면 여성은 학업 및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으며 여성 혼자 외출하는 것도 허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워낙 탈레반의 여성 인권 침해가 악명이 높다보니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 결국 점령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여성들을 억압하는 정책이 나오고 이런저런 사건이 폭로되면서 탈레반은 여성 개개인을 하나의 인격으로 여길 의지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남녀공학 학교가 사회악이라 없애야 한다는 탈레반 이런 탈레반에 대해 아프간 여성들이 탈레반과 싸운다고 밝히는 등 총을 들고 시위를 하며 저항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 또한, 아프간내 교사들은 탈레반의 압력에도 여학생들을 교육을 계속한다고 밝혔다. #
사실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여성이 심각하게 차별받는 지역이다. 미군 주둔지에서도 자연스럽게 여자를 때렸다고 할 정도니. 미국의 영화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WTF)'에서 등장한 일화가 있는데, 마을에서 우물이 너무 멀어 여자들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 해서 가까운 곳에 우물을 만들었더니, 자꾸만 우물이 파괴되었다. 처음엔 무장세력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범인들이 마을 여자였다는 것이다. 마을 남자들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먼 우물이 필요했던 것. 탈레반이 오기 전에도 상황이 이런 판국이었으니 탈레반의 폭정이 얼마나 심할 지는 말하지 않아도 비디오다.
대도시에서도 학교 여학생들을 내쫓는 판인데 지방 농촌 사회는 말할 것도 없다. 취재 결과 원칙상 여성은 종교 수업만 받을 수 있고 실제론 여자애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기자가 탈레반 점령지 아이들에게 왜 학교에 못 가냐고 물어봤더니 "탈레반이 그건 나쁜 거랬어요."라고 대답했다. # 부르카를 쓰지 않고 히잡만 썼다고 구타하거나 맨발이 보이는 샌들을 신었다는 이유로 여자아이들도 마구 구타당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
여학교 기숙사 학생들이 대놓고 성희롱을 당하거나 부르카를 쓰지 않은 여성이 총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상황 및 호텔에 투숙한 커플을 불륜으로 몰아 구타하는 사례 등이 나오고 있다. #
8월 18일, 탈레반측은 아프간은 더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며 이슬람법의 통치를 받는다고 밝혔다. 게다가 여성역할은 율법학자들이 결정한다고 밝혔다. # 탈레반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던 자마아티 이슬라미가 만든 희대의 악법 후두드 법이 부활할 수도 있다. 1978년 지아울하크 정권이 집권하고 자마아티 이슬라미가 정권의 실세로 떠오르면서 1979년부로 후두드 법이라는 악법이 파키스탄에 도입되었는데. 이 후두드 법에 의하면 성폭행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법의학과 정황 증거 대신에 남자 증인 4명을 내세워야 한다. 그러나 대가족 중심의 남아시아 사회 특성상 강간 사건의 증인을 잘못 자처하면 가족 전체가 다시 피의 보복을 받을 우려로 쉽게 증인을 구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도 오히려 간통죄로 내몰리는 것으로 악명 높았던 법이다.[50] 한 때는 파키스탄 감옥 내 여성 수감자 70~80%가 후두드 법 때문에 오히려 간통죄를 뒤집어 쓴 강간 피해자였다. 상류층 여성 이외의 서민층, 빈민층 강간 피해자의 신고를 원천 차단할 목적으로 악용되던 해당 악법은 자마아티 이슬라미가 몰락한 2006년에야 마침내 폐지되었는데, 당시 자마아티 이슬라미 멤버들은 샤리아 대신 법의학과 정황 증거라는 타락한 서구 법을 도입하면서 성문란을 조장하고 쿠란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며 발악하였다. #[51]
아프간 여성 축구대표팀의 주장이 탈레반 점령 하의 아프간 여성 인권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 이미 해당 인물은 근본주의자들의 살해 위협으로 덴마크로 망명한 상황이며, 비슷한 사례로 2001년 탈레반 정권 전복 이후 여성 앵커 샤리마 레자위가 최초로 방송에서 니캅 없이 히잡만 쓰고 방송하다가 친오빠에게 명예살인당한 사례,# 21세기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공군 조종사가 친척들이 가족 망신 시키지 말라며 폭행하여 미국으로 망명한 사례 등이 있었다.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시절에도 이랬는데,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얼마나 더 퇴보될 지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8월 18일에 아프가니스탄 기자 마리암 나바비는 60시간째 집에만 있었다고 밝혔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아프간 여성들의 처지를 알리고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했다. #
6.2. 향후 탈레반-중국 간 관계
자세한 내용은 중국-아프가니스탄 관계 문서 참고하십시오.이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일대일로에 참여하고 있었다. 탈레반은 쇄국을 내세우는 만큼, 탈레반이 집권하면 일대일로 프로젝트에서 탈퇴할지도 모르지만 ISIS 와는 달리 탈레반은 팽창주의적 경향은 없고, 중국과의 일정한 커넥션은 있기 때문에 중국과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미국의 보도도 있었다. #월스트릿저널 7월 9일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회담 차 방문한 탈레반 인사들이 구소련권 국가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다. # 또한 러시아 및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탈레반의 혹시모를 준동에 대비해 합동 훈련을 준비하는 상황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탈레반의 집권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이다. 일단 탈레반 집권하 아프가니스탄 신정부는 반미 태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탈레반과 미군은 적으로서 오랫동안 교전을 해왔기 때문에 당분간은 미국과 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탈레반은 미국 대사관 유지를 요청했다. # 하지만 미국 내 여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고,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 결성되어 탈레반과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기보다는 당분간은 현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6.2.1. 제2세계 이익론
일단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은 서방권이 바라는 것과 다르다. 오히려 중국과 탈레반이 밀월관계를 이룰 가능성이 더 높다. 우선 탈레반은 국내외 비판 여론을 차단하게 위해 인터넷과 언론을 완전 통제할 수 있는 가혹한 검열 시스템이 필요한데[52] 이런 기술을 가장 확실하게 이전시켜 줄 파트너가 바로 중국과 그 동맹국 이란이다. 이미 탈레반은 FT 통신을 통해 인터넷을 검열할 것이며 여성의 외출은 남성을 동반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천명했다.[53]한국인들은 탈레반이 직접 혹은 위구르를 부추겨서 중국 내에 각종 테러와 자살 공격을 일으켜주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 탈레반이 위구르족을 해방시켜주겠답시고 중국과 적대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AFP 이미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하는 약 2,000명의 위구르족은 탈레반이 자신들을 다시 중국으로 넘길까 두려워하고 있다. # 중국 인근에서 일대일로에 참가하는 나라들은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대신 자국 내에 망명한 위구르족을 넘긴 적이 있다.
2002년 이전에 말 그대로 종교극단주의 단체였던 탈레반과 달리 2002년 이후의 탈레반은 아편 재배로 이익을 얻는 지주들과 아프간 내 여러 군벌들이 중심이 되어 재편된 집단이라 위구르인들에 신경 쓸 이유도 없으며,[54]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국경선이 광활한 것과 다르게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을 잇는 와칸 회랑은 비좁고 교통이 불편할 뿐더러,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목인 타슈쿠르간 자치현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구역이다.[55]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 타지크인과 위구르인은 같은 순니파 하나피파에 속하므로 서로 종파 문제는 없다. 그러나 와칸 회랑과 타슈쿠르간의 거주민들은 수니파가 아니라 소수종파 시아파 이스마일파를 믿는 파미르인들이다. 파슈툰인들과 위구르인들은 거주지역을 맞대고 있지 않다.[56] 오히려 이러한 근거없는 행복회로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중국 공산당의 위구르 인권침해 정책들의 명분이 될 가능성만 높힌다.
애당초 탈레반은 알카에다나 ISIS[57]와는 달리 전세계의 이슬람화는 관심 없고, 파슈툰족 지주들의 기득권을 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다. 이미 탈레반은 자신들에게 합류한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 극단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노릴 것을 우려하여 미군과의 전투에서 최일선에 내세워 소모시킨 역사가 있다. 파슈툰족이 주류인 탈레반은 이슬람을 믿는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 하자라인 등 아프가니스탄 내부에 존재하는 튀르크 계열 민족들 및 타지크인과 대립하고 있는데, 같은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튀르크 계열인 위구르족을 적극적으로 도울 가능성은 낮다.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고 그의 테러단체의 은신처를 제공한 것도 탈레반에게 눈엣가시 같았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를 알카에다가 암살해주는 대가로 그런 것이지 오사마 빈 라덴의 이념에 적극 찬동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9.11 직후에도 탈레반은 '우리는 빈라덴과 관련 없다'고 성명을 발표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탈레반 정부가 중국과 밀착할 이유는 많다. 그리고 탈레반이 소말리아와 흡사한 양상으로 무정부 상태와 내전이 발발할 위협성도 있지만 중국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이를 무마시킬 가능성도 낮지 않은 편이다.
- 지정학적 이유: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주변국 중 투르크메니스탄은 친중,친러 독재 국가이며, 이란과 파키스탄 역시 친중이고 북쪽의 국경을 면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경우 민간 감정은 중국에게 적대적일지는 몰라도 경제가 러시아에 잡혀있는 상황이다. 즉 아프가니스탄 주변국 중 친미반러, 친미반중을 동시에 갖춘 국가를 찾기 힘들다. 이미 중국은 탈레반과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고 있다. 2021년 8월 중국 정부는 탈레반 관계자를 중국으로 초청하여 회견을 갖고, 카불 정부의 몰락이 임박하자 탈레반 정부의 승인을 검토할 정도라고 한다. 외신기사 애초에 중국은 EU나 미국과 다르게 외교 대상국의 인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탈레반의 부패한 지도층을 매수한다면 미국은 중동의 동맹을 하나 더 잃게 된 셈이며, 설상가상으로 이미 친중 국가가 된 이란, 시리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일부 지역이 친중 국가에 편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 경제적 이유: 탈레반이 2001년에 정권을 상실했던 이유이자 아프간 구 정부가 형편없이 패퇴했던 이유 중 하나가 민생경제 부분은 여전히 시궁창이었기 때문이었고, 탈레반도 불안감에 떠는 대도시 중산층들을 다독이고 정권안정을 담보하려면 당연히 안정적인 돈이 필요하다. 탈레반이 집권하면 당연히 미국과 서방의 인도적 식량 지원은 끊기게 될 텐데 자체적으로 이 인구를 부양할 수 있을지 의문. 다만 중국이 이미 탈레반과 사전 접촉을 했던 것으로 보아 탈레반 정부를 인정할 가능성이 높고 중국은 인접국인 아프간이 괜히 혼란스러워지는 걸 원치 않을 것이므로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할 수도 있다. 중국 입장에서는 직접 3~4천만 명을 먹일 식량을 다 원조할 필요는 없고 중동 각지의 해외 아프가니스탄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을 제재받지 않도록 막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정권 운영을 위해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해결이 안 나던 미국의 처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 안보적 이유: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하면서 남기고 간 저속기인 헬기를 대거 얻는데 성공했는데, BBC에 따르면 탈레반 점령 전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공항의 위성사진을 비교한 결과 탈레반이 최소 수백 대의 군용기를 손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영국 데일리메일도 그 규모를 블랙호크 45대를 포함해 200대 이상으로 추정했다. 이로써 탈레반이 극단주의 무장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공군력을 갖춘 조직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워리어 플랫폼(개인장구류) 역시 안구와 지문 인식이 가능한 생체인식 수집 및 식별 장치까지 확보했으며 야간 투시경, 헬멧, 통신 장비, 방탄조끼 등 각각 수백만 원 상당의 고가 군사 장비 수만 개를 손에 넣었다. 문제는 이 무기들이 북한, 중국, 이란, 러시아, 시리아 등의 반미 국가들에게 넘어갈 경우이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이 무기들이 전 세계 반군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이들 무기를 구매한 뒤 재판매하거나 분해해 다른 무기로 제조할 가능성도 제기됐다.[58]중앙일보 기사
실제로 중국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2021년 8월 16일 성명에서, '아프간 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는데 우리는 아프간 인민의 염원과 선택을 존중한다'며 "아프간 탈레반 측은 중국과의 좋은 관계 발전을 원하며 중국이 아프간 재건과 발전에 동참해 줄 것을 기대한다는 뜻을 표시했다. 그리고 아프간 영토를 이용해 중국을 해치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면서 "우리는 이를 환영한다"고 밝혀 중국이 탈레반 정권을 공식 승인했다. 즉, 탈레반 정권 치하 아프가니스탄이 오늘날의 소말리아처럼 무정부 상태로 남을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리고 비록 선전용일 수도 있지만 중국의 공식 관영매체 신화통신을 통해[59] '미국 패권 쇠락의 조종이 울렸다'며 미국을 조롱하였다. 기사 17일에는 덧붙여 어제 불행하게 미국 비행기에서 떨어져 숨진 영상이 사람들을 매우 놀라게 했다.”라고 말문을 연 뒤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의 아프간 목표가 재건이 아니라며 진심을 말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는 다른 나라 내전에 정력을 투입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고 했다."라며 “미국은 걸핏하면 군사 간여하고 무력을 남용하는 정책을 진정 반성하길 희망한다.”라고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균열을 조장했다. #
또한 일각에서 중국 대신 탈레반의 파트너로 제시되는 인도의 경우, 카슈미르 문제 등으로 인해 이슬람계 민족과 갈등이 있는 건 비슷하며 8월 18일 현재 판지시르 북부동맹과 탈레반 사이에서 간을 보는 정황이 보이는 데다 전통적인 협력관계인 파키스탄과의 적대 문제도 있기 때문에 손잡기 쉬운 상대가 아니다. 또한 인도는 그 체급상 냉전 시절에도 1세계 2세계 사이에서 자기이익에 따라 왔다갔다 했던 전적이 많아 설령 탈레반이 인도와 협력을 체결한다고 해도 서방의 기대와는 달리 인도가 적극적인 대중 견제에 힘을 쏟지 않는다면 중국과의 관계가 반드시 악화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부분도 있다.
6.2.2. 제1세계 이익론
중국은 2021년도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옹호하는 상황에서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단체와 밀월 관계를 시도하면서 국격을 더 실추시켰다. 비교하자면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의 칠레, 니카라과 등지에서 친미 성향이기만 하면 살인과 고문을 일삼는 독재정권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지원해주고 이를 실리 외교로 포장하려다 결국 국격이 실추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물론 외교라는 자체가 그 개x끼는 우리 개x끼 식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안그래도 중국의 신장 위구르의 무슬림 탄압문제와 아프가니스탄 국경이 위구르와 경계가 접하면서 미군 철수에 미국에게 강하게 비난하는 동시에 왕이 외교부장이 바쁘게 아프간의 주변국가들인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을 순회하며 방문할 정도로 중국 정부가 강하게 경계하는 중이다.[60] 탈레반 역시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라 중국에게 간섭할 상황이 아니며 따로 탈레반 지도자가 중국 외교부장과 접하면서 아프간 장악이 중국 위구르 지역의 저항 세력들과 연계하지 않는 조건으로 탈레반의 가혹한 통치를 묵인하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지만 향후 탈레반 세력이 회복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고 위에서 언급한대로 아프간 내부에서 내전이 터질 우려가 커서 중국까지 불길이 옮겨갈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이 미국이 겪은 것과 동일하게 각종 테러와 충돌을 겪어 어쩔 수 없이 중동 정세에 개입하거나 하게 되면 중국의 외교, 안보 전력이 분산되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단순한 희망사항이라고 보기만은 어려운 것이 중국이 미국만큼 자국민 인권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중국의 청년층은 과거 산아 제한 정책 등의 영향으로 소황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세대이다. 중국 군경 수천여 명 넘게 전사한다면 전사자들의 부모들이 곱게 가만히 참는다는 보장도 없고 중국 사회에서 미국의 월남전 반전 여론과 유사한 비판 여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탈레반이 밀월관계를 이룰 가능성이 더 높다는 가설도 어디까지나 탈레반의 정권이 잘 정착한다는 전제조건이며 탈레반 내 여러 군벌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하는 여러가지 이유로 내전이 발발할 경우 탈레반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는데, 만약 탈레반 홀로 수습이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중국 무경부대가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될 가능성은 있다. 이들은 정식 중국군 소속이긴 하나 군대보다는 경찰로 분류되기 때문에 투입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반대 세력이 외세의 개입으로 간주해 또 하나의 전쟁으로 확대되거나 아프간의 내전 중에서 어느 한쪽이 궁지에 몰리게 되면 신장 위구르 독립 세력에게 접촉할 가능성도 있다. 탈레반 정권이 정착하는 것보다 소말리아와 흡사한 양상으로 무정부 상태와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상당하기 때문에[61] 중국도 맘 편히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미국은 오히려 그동안 전쟁에 소비되었던 천문학적인 예산을 다시 필요한 분야로 돌릴 수 있다.[62]
즉 향후 탈레반이 아프간에서 잘 정착할지 아니면 내전이 터질지 여부에 따라 중국과 아프간 관계가 달라질 것이다. 물론 중국도 바보는 아니라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무마시키려고 할 것이지만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만큼은 아니더라도 과연 중국이 지원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정도로 청렴한지 의문인 상태다. 애초에 일대일로에 참여한 제3세계 국가들 중 일대일로를 통해 제대로 국력을 신장시킨 나라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미국처럼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물 붓기로 자원만 낭비할 수도 있다.
설령 위의 제2세계 이익론에 따라 중국과 탈레반 정권 간에 이슬람교와 관련된 갈등이 생겨나지 않는다 해도, 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은 중국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인도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63] 세계 주요 산유국 중의 하나인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 인도로 통하는 가스관이 건설되었는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 입장에서는 인도에 판매하는 가스 수수료가 쏠쏠한 수입원이 될 것이 자명하다. 더욱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국경 폐쇄 및 파키스탄의 아프가니스탄 예속화 시도로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사이가 매우 나쁜 상황인데, 아프가니스탄 입장에서 파키스탄을 견제하려면 아무래도 중국보다는 인도가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현실적이지는 않은 것이, 위에서도 서술했듯이 인도는 힌두교 국가이고 파키스탄과의 분리 독립 이유도 종교 때문이었다. 게다가 탈레반은 파키스탄보다도 막장에 극단적인 이슬람 단체이다. 탈레반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인도는 이미 반탈레반 세력인 북부동맹을 지원하는 등 절대 탈레반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 인도는 탈레반을 공격한다고 가정해도 국제적인 명분이 충분하고 중국도 버거워하는 나름의 군사 강국인 반면 중국 입장에서는 탈레반을 돕자고 인도와 전면전을 벌인다는 건 세계적으로 욕먹고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자리로 추락하는 어리석은 짓이기에 탈레반을 도울 명분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서 중국의 탈레반 지지는 미국을 견제할 목적의 립서비스이지 당연히 탈레반을 미국보다 지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중국도 탈레반을 비롯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 자기들도 잘 알고 있는데, 집에 얼씬거리는 독수리 쫓아내자고 자기들의 집에까지 불을 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알다시피 중국은 시진핑 중심의 독재국가인데, 민주주의는 아니어도 일당 독재국가인 중국에게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은 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중국 역시 지금은 탈레반이 딱히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그냥 놔두다시피 하는 것이지 만약에 한 번이라도 관계가 서먹해지거나 갈등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 당장에 미국보다도 더한 위협을 가하거나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결국 험악한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에 영원한 동맹이 없다고는 하지만 중국-탈레반 관계의 경우 더더욱 그렇다.
탈레반의 집권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에 테러가 빈발할 것을 우려했는지, 중국 공안부는 타지키스탄과 합동 대테러 훈련을 시작했다. #
이외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퍼붓던 돈을 덜었다는 점에서, 빈부격차와 코로나 등으로 혼란한 국내 상황을 어느정도 정리하는데 예산을 쓸 수 있다는 점이 소소하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2.2.1. 부록: 양안관계
중국은 환구시보를 통해 코로나 2차 유행으로 한 차례 초토화된 대만 및 차이잉원 행정부에 대해서도 미국은 종이호랑이니 언제든지 아프가니스탄처럼 미국에게 배신당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어제는 사이공, 오늘은 카불, 내일은 타이베이일 것이다."는 발언을 했다. #, # 그리고 이 상황에서 친중 성향의 국민당이 흔들렸는데[64], 국민당 소속 자오사오캉(趙少康) 대만 중국방송공사 이사장은 15일부터 사흘 연속으로 페이스북에 '대만은 아프간 사태에 긴장하고 미국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며 “민진당의 무딘 정책으로 인해 대만 국민들은 아프간이 대만의 ‘전거지감(前車之鑑·앞서간 수레를 거울로 삼는다)’이 될 가능성을 모르고 있다”라고 주장했다.이에 쑤전창 대만 총리가 대만이 아프가니스탄처럼 미국의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중국 관영매체들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대만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그러나 대만은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기기 부품 주요 생산국으로서 아프가니스탄과는 입지를 달리하기 때문에, 돈 문제로 철수한 아프가니스탄과 경우가 다르다. 게다가 미국 입장에서 대만을 상실하면 태평양에까지 중국의 영향력이 닿아 주일미군이 있는 오키나와는 물론 자국령 괌 미군기지는 물론이고 필리핀, 베트남을 상대로도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루트가 더 많아져 훨씬 위험해지는 상황이 온다. ANZAC 역시 미사일의 범위에서 안전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은 탈레반과 달리 전쟁을 하면 잃을 것이 많은 국가라 탈레반처럼 미친 척하고 침공할 수도 없다.
미국의 대중국 전선의 핵심국가는 호주와 일본이고 일본을 지키기 위해서는 대만과 한국이 필수적이다. 아프간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미국이 상호 동맹을 맺은 세 국가인데다 경제규모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선진국이며 군대도 지역강국수준으로 아프간 정부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질과 양을 보유하고 있다. 손해만 보는 아프간과 태평양 무역지대 및 남중국해에 대한 항해의 자유를 지키려는 미국입장에서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지켜야만이 중동에 대한 안정적인 영향권 행사와 석유수송라인을 사수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아프간은 미국의 동맹국에 소속조차 된 적이 없다. 또한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약소국인 조지아는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멸망할 뻔했으며 친러에서 친미로 돌아섰다.[65]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 일본, 대만과 NATO 등 동맹이 침략 당하면 미국은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은 어떤 국가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밝혔다. #
6.3. 미국-중국 패권 경쟁에 끼칠 영향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고대 실크로드 유역, 즉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거쳐 남유럽과 동유럽까지 경제적으로 결속하려고 하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실크로드가 지나는 요충지인데다가 중국의 접경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축출되었다는 것은 중국에게는 긍정적인 일이다. 새로운 탈레반 정권이 친중일지, 반중일지, 중립일지는 아직까지 불명이나, 확실한 것은 이제 막 끝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서방권과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반중 성향이라고 해도 미국의 엄호를 받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에 비하면 잠재적인 위험성도 훨씬 적으며, 여차하면 세속주의 강대국인 중국 입장에서 그냥 이슬람주의 테러리스트 단체로 간주해 분쇄하기도 편하다.다만 그 점이 역으로 작용하여 아프가니스탄 문제가 미국-중국 패권 경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상술한 것처럼 탈레반 정부는 비실거리다가 멸망한 이슬람 공화국보다 더 취약한 기반을 태생부터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상실한 것으로 인해 유럽과 일본 등의 중요한 동맹국들이 미국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 역시 없다. 그리고 애초에 아프가니스탄 인근 지역에는 완전한 친미 국가가 없으므로[66] 베트남 전쟁 때처럼 도미노 이론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잃었으므로 중국 서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지정학적인 옵션들을 상실했으며, 그 권역을 중국을 비롯한 제2세계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미국의 유의미한 동맹들 역시 유의미한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 즉, 아프가니스탄을 잃은 현재는 미국이 손해를 입은 것은 맞지만, 그게 패권 경쟁의 향방을 결정지을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그동안 낭비한 전력과 비용을 얼마나 신속히 재정비할지, 중국이 미국과 탈레반 정권에 대해 무슨 전략을 취할지에 따라서 손익계산서 역시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막 시작이라는 이야기.
그러나 단기적으로,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 당시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 바라보는 국제사회[67]의 신뢰도가 크게 낮아질 가능성은 피할 수 없으며,[68] 미국을 도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서방권 동맹국들의 불만도 달래줘야 하기 때문에 한동안은 위축된 상태로 동맹국 위주의 신뢰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고, 그 때문에 일정 기간은 중국의 행보를 견제하지 못할 수 있다.
6.4. 이라크 내전과의 비교
이번 사건은 여러모로 이라크 내전과 비교가 된다. 이라크 내전 역시 미국의 실책이 큰 것으로 평가받지만, 미국에 의해 재탄생한 이라크 신정부는 석유라는 자금줄과 그래도 (사담 후세인 시절과 후세인 정권 이전이던 바크르 정권과 카심 정권, 하심 왕조의 이라크 왕국 시절에도) 중동에서 나름 체계는 잡혔던 국가였다. 애초에 사우디아라비아를 긴장시키고 주변국가인 이란, 쿠웨이트 등과 전쟁을 벌일 정도의 국력은 됐었다. 그리고 전후 발 빠른 재건 행보와 ISIL로 인한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유럽이 이에 호응하고, 러시아까지 개입을 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처럼 국가 막장화의 상황은 어느 정도 면했다.[69] 이라크 신정부 역시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이라크 신정부와 비교하기에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이라크가 어마어마한 국력차이와 당시 사용하던 기갑과 전투기들의 기술력과 성능차이로 인해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에게 패배하며 미군과 미국산 무기들의 무용담들만 유명하게 퍼져있지만, 사실 국력차이를 고려하면 이라크도 그 미국과 연합국 조차 고전을 하게 만들정도의 전투를 여러번 한적이 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몇몇 베테랑 구 이라크군[70] 출신 교관급 인물들이 ISIL에 맞서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신 이라크군에 합류하며 이들이 경험한 노하우들이 그대로 전수되며 전투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라크는 그래도 미국이나 타국의 군사지원을 적극 활용하고 봉급을 안 주는 큰 추태는 부리지 않았으며 그들이 미국의 지원자금을 받은 것도 있지만 석유 자금으로 국방력에 엄청난 투자를 했고 미국으로부터 웃돈을 얹어 M1 에이브람스 전차를 긴급 발주받아 배치시간을 단축시키는 등 기타 서방국가들로부터 최신형 무기들을 신속히 도입하고 새로운 전력인 황금사단 창단 등 미국의 원조를 군사력에 투자해 혹시 모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와의 전투를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었으며, 이전부터 이라크군은 중동전쟁과 이란-이라크 전쟁, 걸프 전쟁 등지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쿠웨이트 등과 싸우면서 실전 경험도 갖추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은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이라크에 ISIL에 맞설 쿠르드족 자치정부와 휘하 군대인 페쉬메르가 같은 동맹세력을 놓고 떠났는데 이런 조치들로 인해 동맹세력이 어느 정도 있어서 재정비할 시간을 번 이라크는 긴급발주한 최신 무기들이 도입되고 재정비한 특수전 병력도 최신장비로 떡칠하면서 총반격에 나선 덕에 아프가니스탄 꼴은 면하게 됐다. 거기다가 이라크의 경우 IS라는 탈레반보다 더 악독한 놈들과 전쟁을 치렀지만 이라크는 아프간과 다르게 나름 인프라도 있고 자금줄이 있었다는 점과 쿠르드족 자치정부 군대인 페쉬메르가의 활약으로 IS를 몰아내는데 성공하며, 이라크 내전에서 승리했다.[71]
한편 아프가니스탄은 1978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에는 소련과 무자헤딘의 전쟁, 여러 차례의 내전으로 정규군의 조직 인프라가 박살난 상태였으며 이라크처럼 석유라는 돈줄이 되는 자원이 없었기에 군대를 재정비할 자본도 인프라도 없었다. 파키스탄 정부도 북서부가 파키스탄 정부가 포기한 탈레반 장악 지역에다가 중국과 닿아있는 지역은 탈레반 장악 지역이다. 이란은 원래부터 탈레반의 적대세력이며 현 아프간 정부와 교류가 깊기에 떠난 미국을 대신해 정권 유지를 도와주고는 싶지만 현재 이란과 국경을 접한 아프가니스탄 서부지역이 탈레반에게 함락당해 육로를 통해서 무기와 자금을 보내지 못하는 등[72] 그야말로 아프간 정부는 사방이 적대세력이거나 고립무원인 셈이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간은 부족사회여서 중앙정부 입김이 안 닿는 것도 있었으며 부족들 대부분은 탈레반을 지지하며 미국-아프간 전쟁 당시 사멸 직전인 이들을 보호해준 부족도 있었다. 여기에 아프간 정부는 미국과 기타 서방국들의 지원 태반을 군납비리로 날려먹거나 탈레반과 상대하며 목숨을 바쳐 지키는 군인들의 월급을 안 주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아프간 정부군이 그냥 항복하는 사태도 벌어졌었다. 결국 아프간 정부는 미군이 떠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매우 빠르게 항복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현재 이라크도 사정이 나을 뿐 여전히 각지에서 활보하는 IS 잔당들의 소탕에 2021년 현재까지도 국력을 소모하는 상황이며,[73] 흔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원동력이 된 것으로 이야기되는 황금 사단의 경우, 일반적인 정규군이라기 보다는 정권 유지를 위한 친위대의 성격에 더 가까운 군대였고 반 IS 민병대들도 같은 시아파인 이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냉정하게 말하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잘 해서 이라크가 IS를 이겼다기보다는, 그냥 이라크 자체가 세속국가 경험이 길었던 것과 이란이 IS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한 것이 큰 거라고 봐야지, 미국의 영향력은 사실상 소멸했다 봐야 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이라크 철수 이후 이라크에 가지고 있던 영향력을 IS와의 전쟁에서 이라크 정부와 시아파 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이란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후세인 정권 축출 후 친미 정권 수립이라는 목적 달성에서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하며, 명목상으로 패전의 형태를 벗어낫을 뿐, 형식적인 문제가 아닌 실질적 목적 달성을 기준으로 보면 패전이라고 볼 수 있다.[74]
결국 현지 사정에 무지한 대가를 치렀다는 점에서 이라크 전쟁도 아프간 전쟁과 같이 미국이 실패 원인을 복기해야 하는 전쟁으로 봐야 할 것이다.
6.5. 베트남 전쟁과의 비교
자세한 내용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서 참고하십시오.6.6. 탈레반 신정부와의 외교 문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몰락하고 탈레반이 집권한 새로운 신정부가 들어선 만큼, 타국과의 외교관계는 완전히 새로 구성될 전망이다. 일단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전세계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의 향후 향방은 알 수 없다.[75] # 물론 중국, 러시아 등 제2세계 국가 주재 대사관의 경우에는 전 정부 출신 대사 및 외교관만 교체하여 그대로 운영이 가능하겠으나, 문제는 미국, 유럽 등의 서방국가 주재 대사관이다. 외교관 소환조치, 대사관 폐지, 대표부[76] 혹은 연락사무소로의 격하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존재하겠지만, 이는 향후 행방을 지켜봐야 되는 부분이다. 일단은 카타르 대사관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미국의 이익대표부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는 그대로 계승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탈레반은 반미, 반서방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반서방 국가와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두터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다에시가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했을 당시 다소간의 협력이 이뤄진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은 탈레반 집권하 아프간 체제를 공식 국가로 승인하였다. # 다만 러시아의 경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타지키스탄 내전을 치른 전적이 있고, 러시아 입장에서 탈레반을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의 중앙아시아 세력 확장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외교관계는 미지수다. 러시아 대사관은 탈레반의 외교공관 안전보장 약속을 이유로 들어 대사관 철수를 부인하였으나# 이후 카불 상황이 악화되자 일부 공관원들을 철수시키기로 했으며 국가 승인에 대해선 공식성명으로 '지금 당장 성급히 결정하지 않겠다', '행동을 지켜보겠다' 등의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또 함락 즉시 UN 안보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서방 국가와 한국, 일본 등 제1세계 국가와의 외교관계가 가장 큰 문제다. 일단 이들 국가의 대사관은 아주 소수의 핵심 인력만 남기고 철수하거나 아예 100% 모두 철수한 상태이다. 탈레반과 직접적으로 교전해왔던 미국 및 나토 회원국은 물론이고 당분간은 제1세계 국가와의 정상적인 외교관계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제1세계 대사관과 외교인력의 완전철수를 요구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Windows의 소프트웨어도 불법복제판을 제외하면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그래도 서방 국가와의 외교관계가 복원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재 군벌들의 연합체인 탈레반 체제가 한 쪽 계파로 어떤 형태를 거치든 통합되기라도 하면 체제 안정과 함께 외교관계 회복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기반이 확고한 독재자가 이끄는 체제에는 외교 수단이 잘 먹힌다. 군벌들의 이해관계를 모두 찍어누르고 강고한 지지기반을 등에 업은 지도자가 적어도 백두혈통 같은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이 점을 역이용해 서방 국가와 좋아지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 교류를 하는 수준까지의 관계 회복을 노려볼 수는 있다.
대한민국[77]과 일본의 경우 탈레반과 직접적으로 대적한 적이 없는 만큼 미국과 나토국보다는 외교관계 복구가 수월할 수 있다.[78] 다만, 해당 이 두 국가를 결속시키는 미국의 양해와 동의가 전제되어야 외교관계 수립이 가능할 확률이 높으며, 대 아프간 제재가 발동되면 그 기회는 더욱 요원해질지도 모른다.
그 외에 2021년부터 비공식적으로 친(親)이스라엘 노선을 걷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79], 오만과의 외교관계도 문제가 될 여지가 남아있다.
만약 탈레반이 끝끝내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UN에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모든 외교적 지위와 권리를 승계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는 어느정도 현실화될 것이다. 유엔이 처음 출범할 때, 자유, 인권, 인간존엄성 등이 명시되어 있는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가 않아서 사실상 국력으로 유엔 회원국들이 된 사례가 매우 많다. 해적과 오랜 내전으로 사실상 멸망 직전인 소말리아, 김씨 왕조의 오랜 세습독재로 사실상 나라 전체가 감옥인 북한, 사실상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의 개인 국가인 에리트레아, 혁명수비대와 강압적인 신정통치, 인권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이란, 악명높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1949년부터 현재까지 8500만명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위구르인들을 수용소에 가두어 참혹한 인권 말살을 저지르고 있는 중국 등 인권을 무시하는 나라들은 전부 높은 인권이 보장되는 지역이여서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것이 아닌, 국력 또는 군사력으로 유엔 회원국이 된 사례다. 군대무용론 참조. 탈레반이 기존의 북부동맹의 잔당들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아프가니스탄을 통일하면 아프가니스탄은 유엔에서 증발하게 되는데, 유엔에서 탈레반에게 지속적으로 인권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1996년 탈레반 정권 당시에는 북부동맹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 영토 내에 조금이라도 세력이 잔존했었기 때문에 굳이 탈레반을 UN 회원국으로 인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 탈레반이 아프간 전체를 전부 장악하기 직전의 상태라 그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80]
반면, 물밑교섭을 통해 일부 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복구할 가능성도 있다.
6.7. 내전 가능성
현재의 탈레반은 기존의 순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아니라 여러 군벌이 뭉친 단체이기에, 후에 군벌간의 권력 투쟁을 발단으로 소요사태나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미군 철수 과정에서 IS-K에 의해 자살폭탄 테러가 일어나 미군과 탈레반인 100명 이상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동안 다소 잠잠했던 IS가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간에 다툼이 극렬해져 내전의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또한 아프간 북부 지역에서 반 탈레반 동맹이 결성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권력다툼이 다자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현재 미군들이 완전히 철수한 후에도 판지시르의 아흐마드 마수드와 암룰라 살레가 구정부군과 민병대를 모아서 조직한 아프가니스탄 국민저항전선을 중심으로 각 지역에서 탈레반에 맞서는 세력들이 늘어남으로써 내전은 전국으로 확대되었다.6.8. 우려되는 사항
- 전쟁이 끝난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식량 사정이 매우 악화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전 식량 자급이 가능했던 아프가니스탄은 이후 인구 증가 및 난민 인구로 인한 삼림 파괴까지 # 겹쳐서 탈레반 정권 시절 기근에 시달린 바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200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약 2,100만 명에 불과하였으나 전쟁 기간 동안 미국과 국제 사회에 의하여 대규모 식량 원조를 받으면서 2021년 현재 인구가 무려 3,900만 명까지 늘어났다.[81] 이렇게 전쟁 와중에도 인구가 20년만에 거의 2배 증가하면서 인구 압력은 막대하게 늘어났지만 그동안 농지가 딱히 크게 늘지도 않았고, 원래부터 아프가니스탄 땅 자체가 원체 척박한 땅이며, 식량보다 아편이 더 많이 생산될 정도다. 사실 인구 급증에 따른 식량 부족 문제는 이미 전쟁 초기부터 우려되고 있던 문제였다. # 기본적으로 식량증산을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적 여건인 데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형세를 보이고 있어 맬서스 트랩이 심화될 우려를 낳고 있다. 최악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이 소말리아 비슷하게 무정부 상태가 지속된다면 해외 원조조차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어질 것이고, 김정일 정권 시대 북한과 비슷하게 대기근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시절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의 튀르크계 우즈베크인, 키르기스인, 투르크멘 등은 2등 시민으로 시아파 소수자들은 다시 3등 시민으로 강등될 것이 뻔하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의 튀르크계 민족들은 탈레반의 민족 차별에 맞서 북부 동맹의 중추 역할을 맡았던 바 있으며, 하자라인의 경우 미얀마의 로힝야와 비슷하게 역사적, 인종적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인 대부분에게 미움을 받는 상황이다. 결정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주민 대다수가 수니파인데 이들은 종파가 시아파 12이맘파이다. 2001년 탈레반 붕괴 이후 하자라인들이 탈레반 테러의 단골 표적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군에 가장 협조한 민족 집단인 만큼 이들의 처지는 베트남 전쟁 당시 몽족 비슷하게 민족 집단이 박살나서 뿔뿔이 흩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베트남은 명목상 사회주의 공화국이었기에 몽족에 대한 명시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고향에 잔류한 하자라족들은 최악의 경우 아예 무국적자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
- 문화유산의 파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미 탈레반은 여러 문화유산을 파괴해온 전력이 있다. 당장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교 등장 이전에 불교 지역이었으므로 불교 문화유산도 상당히 많았는데, 과거 세계유산 바미안 석불을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한 전력이 있다. 그 외에도 카불 국립박물관의 유물 2,000점 등 많은 문화유산을 파괴했었다. 한국에도 2016년 순환전시된 적이 있고 신라의 금관과의 관련성으로 주목을 받은 아프간 틸랴테페 금관도 차라리 해외가 안전하다는 이유로 십수 년간 해외 전시를 돌아다니다가 하필 2020년에 카불로 돌아갔는데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국제 사회의 눈치 때문에 과거처럼 대놓고 도끼나 로켓, 화염방사기 등으로 문화 유산을 반달하지는 못하더라도 보존 관리를 하지 않고 훼손되도록 방치할 것이 뻔하다. 1970년대 약 10만여 점에 달하던 카불 박물관 유물은 내전과 탈레반의 폭정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약 70%가 소실된 상황이다. #
- 하자라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던 바미안 석불 복원 공사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자라족의 경우 불교 신도가 아닌 이슬람교 12이맘파 신도이지만 바미안은 이들의 주요 거주 지역이기도 하고 탈레반이 반달한 바미안 석불을 주도적으로 복원하면 국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입지도 개선되기 때문에 바미안 석불 복원 행사에 직접 연등을 들고 참여할 #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현재 상황에서 하자라족은 바미안 석불 복원은커녕 해외 집단 망명을 고려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 반지성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코로나 19 방역에 힘을 쓸지 의문인 상황이다. 안 그래도 아프간의 이웃 나라인 이란과 파키스탄도 위생 상태나 방역 체계가 딱히 좋다고 볼 수는 없어서 이란, 파키스탄 국경을 통해 코로나가 퍼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탈레반이 코로나 대처를 전혀 못하고 방치하는 수준은 아니고, 브라질에 비해서는 나름 대처를 하고 있다고는 한다. 뭐 이슬람 교리 중에 손과 발을 깨끗이 하라는 게 있긴 하고, 탈레반도 코로나 19 예방 캠페인 영상을 올리고는 있다.
-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인해 과학 기술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
결론적으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서쪽 이웃 국가인 이란을 많이 부러워해야 할 심각한 처지가 되었다. 이란 역시 인권 문제로 지탄을 받는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이지만 최소한 대학생 중 여대생의 비율이 60% 이상으로, 초등 교육조차 반대하는 탈레반에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이고,[82] 어느 정도의 세속 문화는 제재하지 않으며 최소한 자국의 고대 역사 유적을 보존하는[83] 수준의 기본 상식은 있는 정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란도 결국 폭압을 견디지 못한 이들의 열망이 폭발하고 말았다. 2022년 이란 시위 참조.
7. 여담
- 아프가니스탄 국가대표팀의 2020 도쿄 패럴림픽 참가가 무산되었다. 당초 8월 16일에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카불 국제공항이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시민들로 아비규환이 되어 마비가 되자 도쿄 패럴림픽 위원회에 불참을 통보하였다. 다만 8월 24일에 열린 개막식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선수 입장 순서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비록 선수는 단 한 명도 참가하지 못 했지만 자원봉사자가 대신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들고 입장하였는데, 국기는 기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국기를 사용하였다. 2명의 선수가 인권단체 등의 도움으로 호주로 탈출하여서 28일에 일본으로 들어왔다.
- 이란은 군사적으로 이득을 보았다. 이란으로 망명하는 아프간군이 탈레반에 미군이 퍼준 무기들을 절대 내줄 리가 없으니 상당 수의 M16 소총과 험비 군용차 등 미군 무기들이 이란 측에 노획되었다.
- 공교롭게도 사태가 발생하기 불과 2주 전부터 내전으로 인해 공관이 철수하는 영화가 상영 중이어서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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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공 함락
-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
[1] 파슈토어, Də 1400 kāl də Tālibāno brid[2] 다리어, Hojum-e 1400 Tālebān[3] 일부 공습 지원, 중도 철수[4] 미국과의 동맹관계 및 현지 자국민 보호 등의 목적[5] 부패한 고위 관료들이 봉급을 횡령하기 위해 병력 규모를 실제의 7.5배 정도로 부풀려 등록했다.[6] 2021년 8월 15일 기준 철수가 진행 중이며, 아프가니스탄 현지에 체류 중인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인력들만 잔류 중이다. 일부 공습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아프간 정부 몰락이 확실시되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아프간군의 항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7] 2021년 8월 17일 기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안정화를 위해 약 2,500명이 남아 있다.[8] 미군과 마찬가지로 현지 영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잔류 중이다.[9] 미군 주둔 시절 6만 명이었지만 점령지 강제징집과 친정부 민병대의 전향으로 종전 직전에는 2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된다.[10] 6월경부터 8월 15일까지[11] 특히 중국은 탈레반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위구르 지역을 건들지 않으면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12] 사실 미국 입장에선 더 이상 아프간 정부를 도와 줄 이유가 없다. 빈라덴을 이미 죽였고, 현재 남은 탈레반 세력은 사실상의 왕국을 세우려는 군벌집단에 가까운 자들이라서 외부에 위협을 가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 수준으로 최소한의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는 노력이라도 했다면 조금이나마 명분이 있었겠지만, 현 시점에선 존재가치가 없는 정부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미국 입장에선 탈레반의 승리가 짜증나겠지만, 이해관계를 따져보면 굳이 막을 이유도 없다.[13] 아프간 정부가 해당 지역에서 존경받고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나지불라 정권, 탈레반 정권 시절부터 계속 소련과 나지불라 정부군, 탈레반과 싸워온 무자헤딘 출신 군벌 사령관 ‘이스마일 칸’을 주둔군 지휘관으로 임명할 정도라고 한다.[14] 이렇게 된 것은 탈레반이 수십만을 보유하고 있지만 각 지역을 완전히 장악할 정도로 병력 규모가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소련군도 200만 명이 없으면 장악이 불가능하다고 본 곳이 아프간인데 고작 30만의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완전통제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카불에서 헤라트로 지원병력도 가끔 보내는 등 일정부분 보급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지만 탈레반에게 피해를 더 주는 건 가능한 것. 출처[15] 파벌싸움하기로 유명한 정치장군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자세한 건 링크 참고.[16] 부대패치를 단 것을 보건데 코만도 출신으로 보인다. 위기상황이 오다보니 그나마 악착같이 싸우는 코만도 출신들로 지휘부를 구성하는 듯하다.[17] 당연하지만 이들은 외국으로 나가면 권력이 하나도 없는 난민 망명객 신세다. 그렇다고 아프간에 남아있겠다고 하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게 된 탈레반은 아쉬울 게 전혀 없으니 이들을 살려두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18] 이란과 접경지역으로 이란의 관문으로 평가받던 도시로 유명한 요충지이다.[19] 이후 그는 이란으로 탈출했다.[20] 남부에 있다. 탈레반의 정신적인 고향이며 이곳에서 탈레반이 결성되었다.[21]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철수한 것이 7월 2일인데, 딱 1달 조금 더 지난 상황이다.[22] 주로 하자라인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다.[23] 실제로 북부동맹 지역으로 분류되는 주들 대부분이 이미 탈레반에게 항복하고 샤리아법에 따른 지배를 받고 있는 중이다.[24] 낭가르하르 주의 주도가 잘랄라바드이며, 이 도시도 8월 15일 함락됐다.[25] 당장 주변국에서 미국의 영공이용 및 미군 기지 활용을 거부하고 있다.[26] 탈레반은 부족을 무시한 강제 대량 징병으로 빠르게 각 주의 주도들 및 국경 지대를 안정적으로 장악하고, 카불을 포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이들이 이토록 속전속결이고 전략적인 움직임을 보인데는, 장장 20년간 미군과 싸우면서 살아남은 자들이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부사관 역할을 하면서 강제 징병한 병사들을 지휘하는 게 크고, 또한 탈레반을 지지하는 부족들과의 연계도 신경써왔다고 보는 게 맞다.[27]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출신이라 한다.[28] 그러나 이후 알려진 소식에 의하면 다행히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 이런 유명 인사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탈출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추방시키는 것으로 끝냈는데 미국과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으니 다 데리고 가라는 식으로 나온 듯 하다.[29] 주도는 전부 점령됐다.[30] 이 사람은 붕괴한 구정부에서 정보기관장이었기 때문에, 붙잡히면 끔살 확정이다. 나지불라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 공산정부의 국가정보원장이었다. 또한 살레는 마수드의 부관 출신으로, 마수드가 살아있던 시절 북부동맹 내에서 No.5였다.[31] 어차피 이들은 항복해도 살 길이 없다. 가니 행정부 내외에서 계속 항전을 주도한데다 탈레반이 미국보다 더 증오하는 북부동맹의 중요인사들이니 곱게 죽여주면 그나마 다행이고 탈레반이 지금까지 한 짓으로 볼 때 경기장에서 대놓고 사지가 찢기거나 아니면 목이 잘릴 것이다. 즉 이들이 끝까지 싸우기를 결행한 이유는 국가에 대한 마지막 죄책감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어차피 저항말고는 살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32]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이끄는 북부동맹의 대변인 역할을 했으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부터 마수드를 수행하는 수행비서였다. 마수드 사망 직후 북부동맹 소속 대원들한테서 일부 돈을 갹출해 세운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재단을 이끌며 북부동맹 점령지 내 여성, 어린이 교육에 힘써왔던 교육자이기도 했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설 경우 압둘라 압둘라는 처형당할 가능성이 99.99%일 정도로 탈레반 정권의 눈엣가시 인물 중 하나다.[33] 이 아기는 카불의 한 택시 운전사가 집으로 데려가 아들처럼 키우다가 아프간에 남아있는 친척들이 찾아주었다. #[34] 이 루트는 탈레반 헤로인 밀수 루트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란, 터키는 아프간에 대한 감정이 매우 나쁘며, 특히 이란은 주된 마약 밀수 루트라서 마약중독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있다.[35] 우간다는 영국 식민지 시절 이미 인도/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상인들의 이민 정착이 활발했었던 지역이라(쿨리 문서 참조) 생각보다 적응이 쉬울 수도 있다. 이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전후하여 상당수의 시아 보흐라파 상인 인구가 이주정착한 바 있다.[36] 여담으로 이듬해 솅겐 조약에 들어갈 수 있었던 유럽연합 회원국인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오스트리아만의 반대로 인해 가입이 좌절된 것도 이 영향으로 인한 것으로 추측된다. 대신 크로아티아가 솅겐 조약이 받아들여지면서 2023년 3월부터 효력이 시행되었다. 참고로 이 불법 난민의 육로루트가 튀르키예를 거쳐 불가리아 → 루마니아 → 헝가리로 된 것도 이 때문인 듯 하다.[37] 캠프 험프리스의 경우 미국 본토를 제외한 해외 미군기지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기 때문에 난민 수용에 있어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자체 활주로와 군 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38] C17을 비롯한 각종 대형 항공기를 착륙시킬 수 있는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다.[39] 극단주의 이슬람에서 온건한 이슬람 민주주의로 전향한 정당이다.[40] 실제로 아프간 정부는 패망이 기정사실화되자 난민신청을 한 자국민들을 송환하지 말 것을 세계 각국에 요청했다고 한다. 곧 나라가 탈레반에 장악당할테니 난민들이 본국으로 송환된다면 탈레반에게 재판도 없이 끔찍하게 살해당할 게 뻔하다는 논리였다. 또한 국민 저항 전선 측도 본거지 판지시르에서 바글란 주로 진격을 시도했으나 하루만에 탈레반에게 패하고 다시 판지시르에 틀어박혔다. 그나마 바글란주에서는 쟁탈전이 진행 중이라 아예 판자시르에만 쳐박혀 있다고 볼 수는 없으며, 파르완주를 탈환했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저항군 측이 불리한 건 사실이다.[41] 외교와 첩보는 신의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라, 단순히 뒷처리가 귀찮다고 협력자들을 전부 방치한 채로 버리고 간다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아프간에서 협력자들을 버리고 떠난 것을 본 다른 나라의 친 서방세력 및 협조세력이 서방에 대한 신의를 버리고 협력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탈출시키려 하는 협력자들이라면 상당히 뛰어난 인재이거나, 여러 기밀작전에 참여하면서 서방 입장에서는 새어나가서는 안 될 정보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42] 북부동맹이 여전히 탈레반의 큰 위협으로 남아있으며 3만의 코만도 병력도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정부군의 코만도 잔존 병력들과 탈레반을 싫어하는 구 아프간 정부의 정치인사들이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를 중심으로 탈레반을 겨냥한 전쟁을 개시했다는 이야기도 들릴 정도.[43] 만약 탈레반이 샤리아 정책을 완화하고 북베트남처럼 적극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면서 서방 국가들과 외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탈레반은 북베트남만큼 개념 있는 국가집단이 결코 아니다. 사실 통일베트남이 개방정책 계기가 중공과 중월전쟁을 펼친게 결정적이었다.[44] 실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아프가니스탄 본토에서 내전이 무려 3번이나 연달아 벌어졌었다.[45]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트럼프 정권 초기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보다는 친중국가 파키스탄에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원조하는 상황이었다. 2018년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금 총 8억달러 삭감, 중단했던 우크라이나 군사비 원조 재개 2억 5천만달러 책정[46] 다만 IS와 탈레반 교리 해석은 둘 다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공개적으로 타크피르를 하기 힘들다. ISIS의 사상적 기반은 사이드 쿠틉의 이슬람주의이고 탈레반의 사상적 기반은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근본주의 신학인데, 사이드 쿠틉과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서로 친분이 두터웠고 극단주의 성향도 유사했다.[47] 부르카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총을 맞아 비명횡사한 여성 사례는 탈레반이 온건 통치를 발표한 시점인 8월 17일 이후 발생한 사건이 아닌 8월 8일 무렵 발생한 사건이라고 한다. #[48] 인터뷰 영상 자막을 보면 웃음을 터트린 후 바로 촬영 좀 멈춰달라 말하는 (자막으로 Stop Filming) 모습이 나온다.[49] 참고자료[50] 이게 얼마나 쓰레기같은 악법인가 하면 적어도 중세 이슬람 왕국들도 남자 증인 4명을 요구한다는 점은 똑같았지만 적어도 기소한 피해자가 증인 4명을 못 찾았다고 오히려 간통죄로 처벌하는 경우는 없었다. 간통죄로 처벌하려면 역시 증인 4명이 필요한데, 오히려 강간을 신고한 피해자 여성을 간통죄로 처벌할 때만 증인이 필요없고 그저 증인을 못 찾았다 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악마의 증명을 도입한 것이 바로 이 후두드 법의 특징이다.[51] 사족으로 요즘은 다행히도 파키스탄 내에서도 해당 법의 폐단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2020년부로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가 도입되기는 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아프가니스탄이다.[52] 탈레반을 풍자하던 코미디언이 처형당한 후 시신이 나무에 걸려있던 사례에서 보듯 탈레반은 표현의 자유를 용납할 의향이 없다.[53] "탈레반은 1990년대와 같이 가혹한 규제와 이슬람 규범을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은 여전히 아프간 사람들의 인터넷 접속을 제한해야 하며, 여성들은 남성 보호자를 동반하고 외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54] 탈레반이 북동부 지역을 제외하고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에도 위구르 문제는 거의 언급하지도 않았다. 화웨이 탈레반 지원 의혹이 터졌을 때 이것 때문에 위구르 언급을 피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을 정도.[55] 18세기 청나라가 신장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하던 당시에도 아프가니스탄의 두라니 왕조와 서로 이동로가 너무 험하고 좁아서 서로 사절로 비난만 주고받으면서 전쟁을 포기한 역사가 있었다.[56] 그러니까 탈레반 입장에서는 다른 지하디스트들의 위구르 해방 요청에 대해서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서 못 간다. 니들이 직접 걸어가보던가"라고 대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57] 만에하나 ISIS가 탈레반 대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다고 해도 강약약강으로 유명한 ISIS가 중국을 공격할 확률은 희박하다. 애초에 ISIS는 만만한 소수민족 등등을 대상으로는 갖은 만행을 일삼아도 강군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에는 털끝하나 못 건드린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ISIS는 하마스를 상대로 자살테러를 벌이면서도, 이스라엘에는 일체의 공격을 삼가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마저 보코 하람 이외에는 대부분 등을 돌린 상황이다.[58] 물론 북한의 기술이 미국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만에 하나 북한이 이 무기들을 역설계 한 뒤 독자적으로 개발에 성공한다면 국군에게 어느 정도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2020년 10월 북측의 열병식에서 (비록 의장용 총기인 것이 뒤늦게 확인되었지만) 특수부대들의 개인장구류 및 화기들이 대폭 강화되었는데 최악의 경우 독자적으로 생산하거나 암시장에서 구매한 이 무기들이 전방 일선 부대들까지 보급될 수도 있다는 소리이다.[59] 환구시보가 아닌, 중국 정부의 공식 관영매체 신화통신의 입장이다.[60] 90년대 초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당시 소수의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이 자원병으로 참전한 역사가 있긴 하다.[61] 원래 권력을 잡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실제로 이라크 전쟁 때 미군이 철수한 이후 내전이 터졌는데 하물며 여러 부족 간으로 이루어진 아프가니스탄이라면 내전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62] 애초에 소련이 아프간 전쟁 이후 얼마 못 가 붕괴된 반면 베트남 전쟁으로 천문학적 비용과 패전을 경험했는데도 여전히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했었다.[63] 인도는 전통적으로 제3세계 포지션이었으나 오늘날 서방에서 중국의 대항마로 밀어주는 추세이다.[64] 참고로 친중이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친중이 아니다. 애초에 국민당은 장제스를 중심으로 국공내전으로 피터지게 싸운 끝에 쫓겨난만큼 중국 공산당을 상대로 친화적일 수가 없으며 하나의 중국에 대해서도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만큼 중국 공산당과는 방향성도 바라보는 것도 다르다.[65] 아프간 정부군은 약체인 조지아군과 비교해보면 아프간 군이 처참할 정도다.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조지아가 러시아보다 공군력이 처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공포로 러시아 군용기를 격추한걸 보면 러시아 입장에서도 조지아군을 얕보면 안된다는 점이다.[66] 이란과 파키스탄은 어차피 친중 노선을 타는 중이다. 파키스탄은 외교적으로 친미 성향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더 가까운 사이다.[67] 특히 제3세계[68] 다른 나토 동맹국들과 달리,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패망 이후 협력자 구출과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69] 단,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나토 5조가 유일하게 적용된, 미국과 나토 동맹국 모두가 참전한 전쟁이며, 파키스탄 뿐 아니라 러시아와 이란의 협조가 있었기에 내륙국인 아프간에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70] 여기서 말하는 구 이라크군은 2003년 해체된 사담 후세인 치하 이라크군이다.[71] 다만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령은 ISIL과의 전투에서 초반에 큰 활약을 펼친 것에 고무되어 독립을 시도하다가 국력을 회복한 이라크 정부에게 석유산지를 회수당했다.[72] 물론 육로로도 안 된다면 하늘을 통해서 지원을 해줄 수도 있지만, 탈레반도 바보가 아닌지라 이란 국적 비행기들을 격추시키며 이란의 지원을 막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73] 전성기와는 달리 강도, 산적떼 수준이지만 치안 유지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골을 썩히고 있다.[74] 냉정하게 말해서, 수많은 미국 언론들과 국제정치 쪽 인물들은 아프간 전쟁이건 이라크 전쟁이건 패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75] 한국에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이 있다. 하지만 탈레반 정권 장악 이후 공식적인 입장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76] 비슷한 예시를 들자면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중화민국 대사관이 1990년 이후 건물은 그대로 두고 이름만 주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타이페이 경제문화대표부(駐沙烏地阿拉伯王國台北經濟文化代表處)로 갈아 치운 것을 들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대만 관계 문서 참조. 다만 이 경우 단교 이후에도 비공식적인 교류는 계속해서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한 것이다. 실제로 사우디는 중국 대륙과 대만 모두 우호관계라 이렇게 해도 별 문제는 없다. 다만 단교 당시 사우디의 파흐드 국왕이 대만을 특별히 배려해서 간판만 바꿔달 수 있었지, 파리나 서울에 있는 중화민국 대사관은 얄짤없이 중공에 뺏겼다.[77]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청에 의해 오쉬노 부대를 파병한 적이 있긴 하나, 평화유지 활동과 경호 경비 임무를 목적으로 파병하였기 때문에 탈레반과의 직접적인 충돌은 피해왔다.[78] 현실적으로 그러진 못할 것이다. 북베트남은 통일전후에 공산국가와 대립을 겪는 서독, 일본, 프랑스, 영국과 정상적으로 수교하고 적대시했던 프랑스마저도 북베트남의 UN가입에 찬성했으며 북베트남은 종교국가가 아니었기에 변화를 이끌 수 있었다. 또한 북베트남은 처음부터 미국과 관계개선을 고집했기에 가능했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정권 잡자마자 어그로 행위 자제하는 것 제외하고 러시아는 간접적으로 인정해줬을 뿐 중국만 탈레반 정권을 인정한 것을 제외하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에 대해 적대시했으며 변화라곤 여성도 언제든 취업 가능하고 교육 받을 수 있다고 천명했으나 실상은 이슬람 율법에만 고집했기에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 만일 과거와 다른 북부동맹이 탈레반 몰아내고 집권하면 외교관계 복구가 수월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79]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의 실권 장악 이후.[80] 특히 미국과 유엔은 중앙정부인 중화민국이 대만에 멀쩡히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UN에 승인해버린 치명적 외교적 실수가 있다. 이에 비해 탈레반은 중국 대륙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 직전에 놓여 있어 국제 외교의 형평성이 의심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공산당도 사실상 탈레반과 같은 방식으로 중국의 전체가 아닌 단지 대부분을 장악했고, 탈레반 못지않은 폭정을 저지르는 국가인데 왜 중국은 정식 국가로 승인했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장악했음에도 UN 정회원국으로 인정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UN의 논리대로라면 중화민국은 단지 국공 내전에서 패하여 영토를 대부분 잃은 상태지만 정부 자체는 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엔에서 쫓겨났는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내전에서 패해서 영토를 전부 잃고 정부 자체도 아예 망한 상황에서 탈레반을 UN의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멋대로 위성국을 세운 도네츠크, 루간스크와 재수복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과 달리 당시 중화민국이 외교적으로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상황이였다. 이렇게 되면 유엔의 공정성을 당연히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81] 역설적으로 이렇게 증가한 인구는 탈레반에게도 병력 충원에 큰 도움이 되었다.[82] 호메이니 시절에 강경 이슬람 극단주의 일변도로 돌아갔던 여성 정책의 일부를 호메이니 사후에 완화시켰다.[83] 다만 이는 또 이란에서 페르시아의 위상이 어마어마해서일 수 있다. 호메이니조차 1971년 팔레비 왕조 치하에서 열린 아케메네스 왕조 건국 2500주년 행사에 악마의 행사라 말했다가 대중들의 뭇매를 잔뜩 맞자 처음에는 행사 자체를 너무 과하게 낭비를 해서 악마의 축제라고 한 거라고, 나중에는 와전되었다거나 오해였다고 그렇게 평생 동안 해명해야 했을 정도로 위상이 극도로 높은 데다가 특히 이웃해 있으면서 사이가 나쁜 아랍인을 상대로 이란인들의 자부심은 페르시아이다. 애당초 서쪽으로는 트라키아와 이집트, 동쪽으로는 파키스탄까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이후 한 번 멸망했다가 재수립된 뒤에는 서역의 초강대국 동로마 제국과 제대로 맞짱 뜰 정도로 강성했던 페르시아 제국이 자부심이 될 수 없으면 그 외 이란 역사의 어떤 것도 역사적 자부심이 될 수가 없다. 이란 역사상 초강대국이었던 시기는 익히 알려진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그 외에는 마케도니아 왕국, 이슬람 제국, 몽골 제국과 같은 외부 세력의 침공의 역사였으니까. 여기에 페르시아가 남긴 유적지들은 오늘날 이란의 관광 자원이 돼주기도 하고. 간단히 말해서 현재의 이집트, 이라크, 레바논이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페니키아 문명 및 그 유물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