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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3 16:23:55

거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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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거열형.jpg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부마 정종에게 거열형이 집행되는 장면
드라마 왕과 비에서

1. 개요2. 집행 방법3. 한국사에서4. 서양에서5. 거열로 처형된 사람들6. 거열이 표현된 콘텐츠7. 기타8. 관련 문서

1. 개요

거열형()은 사형의 방법 중 하나이다. 환열(裂), 환형(轘刑)으로도 불린다.

중국전국시대 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변법과 개혁으로 유명한 나라 재상인 상앙이 개발했다고 전하며, 과 사지를 밧줄에 묶어 의 힘으로 각각 반대 방향으로 당겨 찢어 죽이는 방법이다. 이름에 수레 거가 들어가는 이유는 밧줄을 소의 몸에 묶은 모습이 우마차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사극 등에서는 이를 오해하여, 실제 수레가 형 집행에 동원되는 연출이 나오기도 한다.

2. 집행 방법

5마리의 를 이용해 당기기에 오우분시(五牛分屍)라고도 하고, 몸이 5조각이 나므로 오체분시라고도 한다. 잘 안 찢어질 경우에는 망나니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칼집을 내기도 했다. 능지형 정도는 아니라도 심히 아프게 죽을 것은 확실하다.

실제로 거열형을 실행하면 무릎 관절 혹은 허벅지 관절부터 찢어지지만 허벅지 관절이 뜯어지는 상황은 거의 없다.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무릎부터 파열한다.[1] 또한 보통 상상하는 모습대로 양 손목과 발목에 줄을 묶었다간 손발만 뜯겨져 나가 죽지 않을 것이므로 실제로는 팔꿈치와 무릎에 줄을 묶는다.

이 벌을 고안해낸 상앙은 결국 죽은 뒤 이 형벌부관참시를 당했다. 사형대 기요틴을 고안해 낸 기요탱 박사가 기요틴의 이슬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소문에 불과하지만 상앙의 거열은 사실이다. 산 채로 당한 것은 아니고 숙청의 위기에 몰린 상앙이 반란을 일으켰다 사로잡혀 죽임을 당하자 그 시체를 함양으로 끌고 가 거열에 처했다. 그는 변법으로 진나라에게 부국강병을 이뤄주고 전국을 통일할 발판을 마련해줬지만, 무자비한 처벌을 한 터라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러서 거열당한 뒤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다투면서 그의 살을 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로 반란을 꾀한 역적을 처형할 때 쓰이며, 동양권은 물론 유럽에도 마녀이단, 반역자 등 중죄인을 처형할 때 비슷한 방법을 썼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루이 15세의 암살 미수범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앵이 말 3마리에 묶여 처형당한 장면은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미셸 푸코의 대표 저작 <감시와 처벌>의 도입부에 전근대의 대표적인 형벌로써 매우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 잔혹함 때문에 공개처형의 한 방법으로 쓰이기도 했다.

사실 고대 기준으로도 너무 잔인한 처벌이라 춘추전국시대 지식인들도 거열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며, 중국에서는 978년 요나라에서 평왕의 아들 진가가 부왕을 살해하려다 거열형에 처해진 후에는 공식 형벌로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2]

3. 한국사에서

한국사에서 기록 상 나타나는 최초 집행은 통일신라시대에 있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로 유명한 신라의 48대 왕인 경문왕 시절 반란을 일으켰던 이찬 근종이 거열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 형벌이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 시대로 알려져 있다. 간혹 능지처참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형벌이다. 사극 '왕과 비'에서 능지처참을 한다고 해 놓고서는 거열형을 하는 장면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런 오개념을 더 키웠다. 그리고 다른 사극에서도 거열형을 시전하는 장면이 '능지처참/능지형'이라는 이름 하에 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3]

실록에 보면 능지형을 했다는 구절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열로 보이고 태종황희의 대사에서도 조선에서는 거열로 능지를 대신한다는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능지형이 너무 비인간적이고 잔인하여 거열형으로 대체하여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조 때 사육신 및 그 공범자들에 대한 처벌에 대해 '죄응능지처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거열형을 하고 효수를 부가했다고 하니 조선시대에는 능지처참을 거열형으로 집행한 것이 맞는듯 하다. 거열과 능지가 서로 다른 형벌이라고 어느 정도 알려진 게 오히려 21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즉, 사극에 나오는 그 장면이 고증오류는 아니란 소리.

거열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은 사람은 《왕과 비》79회와 176회를 보길 바란다. 제국의 아침 93화에서도 효은태자가 이렇게 죽었고, 불멸의 이순신 38화에서 사화동이 이렇게 죽는데 죽는 모습만 안 나올 뿐 꽤 리얼하다. 과거 사극 《황진이[4]와 《대왕 세종[5]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미수에 그친다. 특히 위의 영화 혈의 누(영화)에서는 제대로 우마를 동원해 천호진이 맡은 강객주가 끔찍한 모습으로 처형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온다.[6] 이밖에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1회에도 등장했다.

4. 서양에서

프랑스에서도 시행되었으며, 루이 13세 시대에 행해진 처형에 대해 세밀한 묘사가 남아있다. 소 대신 말을 쓴 게 동아시아와 다를 뿐.

영국에서는 교수척장분지형(Hanged, drawn and quartered)[7]이라 하여 남성 대역죄인[8]에게 가해지는 극형이었다. 이 형벌을 받은 대표적인 예가 윌리엄 월레스, 그리고 가이 포크스와 영국 상원의회 폭약 테러 주동자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교수척장분지형은 거열형 단독이 아니라, 우선 죽지 않을 정도로 교수형(Hang)에 처하다가 내려서 반드시 산 상태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draw) 뒤, 이후 목을 베고 사지를 자른(quarter) 후에 효수하는 형벌이다. 13세기부터 시행된 기록이 있는 유서깊은 형벌로 1814년에는 법이 개정되어서 교수형 단계에서 완전히 죄인을 죽이고 이후 시신 훼손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법제상으로는 1870년까지 남아있었다.

그 외에도 racks(랙스)라고 거열형과 비슷하게 줄로 사지를 묶어 잡아당기는 틀을 애용했다. 양쪽에서 바퀴를 돌리면 점점 밧줄이 감겨 팽팽해지는 방식이다. 다만 이쪽은 사형법이 아니라 고문의 일종이었으므로 사지가 찢길 때까지 늘이지는 않았다.

그 외에 남아시아, 페르시아, 신성로마제국러시아세계의 여러 문화권에서 조금씩 다른 형태로 존재해 왔으나, 밧줄로 사지를 묶어 찢어버린다는 형식은 공유되었다.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는 'Dismemberment'라는 용어로 총칭하며, 'Quartering'이란 단어도 쓰인다.

5. 거열로 처형된 사람들[9]

6. 거열이 표현된 콘텐츠

7. 기타

가시개미개미들은 자신들을 습격한 곤충들을 상대로 거열형으로 맞선다고 한다. 적대적 곤충을 마비시킨 후 팔과 다리를 잡아당긴다.

8. 관련 문서


[1] 신체 구조상 무릎 관절보단 고관절 부분이 훨씬 깊고 단단히 붙어있기 때문이다.[2] 그러나 능지형과 박피형은 계속 쓰였다.[3] 영화 혈의 누에서도 능지처참을 한다고 해 놓고 거열형을 집행했다.[4] 김정한을 거열하려 했으나 황진이의 춤을 보고 마음을 바꾼 중종 덕분에 살아났다.[5] 대마도에서 온 첩자 평도전을 잡아다가 거열하려 했으나, 막 당기려던 순간 황희 덕분에 간신히 살았다.[6] 다른 예시들과는 달리 실제로 사람의 사지가 찢어진다.[7] 한국어판 브리태니커에서는 drawn and quartered를 '마예4열형(馬四列刑)'이라 번역했다.[8] 여성의 경우 화형에 처해졌다.[9] 사후 거열도 포함.[10] 첩이라지만 실상은 정실부인에 가까웠는데 장희재는 원래 아내는 내버려두고 숙정을 정실부인처럼 아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장희재의 처가 복수로 이 둘은 물론 남인들이 한 짓을 죄다 까발려서 죽게 되었다.[11] 귀인 조씨의 일대기를 다룬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는 애향이 귀인 조씨에게 맞아 죽는 걸로 각색되었다. 애초에 후궁이 추국 죄인을 멋대로 때려죽였다는 점에서 개연성을 상실한 장면이다.[12] 드라마에선 오토바이로 당하고 실제로는 랜드 크루저로 당했다고 한다.[13] 남자들이 모여드는데는 죄인은 무조건 벌거벗기고 죽였다는 것도 컷다. 여자라고 대우는 다를 거 없다. 관리의 강간은 덤.[14] "Hanged, drawn, and quartered"라 불리는 영국의 유서 깊은(?) 대역죄인 처형 방식이다. 교수척장분지형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일단 목을 메달았다가(hanged - 교수) 내려서 눕혀놓고, 배를 갈라서 뱃속의 장기들과 성기를 꺼내서(drawn - 척장) 희생자가 보는 앞에서 태운 뒤, 목을 치고 사지를 분해(quartered - 분지)해서 도시(또는 죄질이 크면 전국)의 네 모퉁이에 보내서 효수했다. 신체가 뜯어질 때까지 잡아당기는 것은 아니므로 엄밀히 따지면 거열형과는 다르지만, 목적이나 일부 집행 방식이 매우 유사하다.[15] 이 부분은 베트남의 비슷한 이야기인 "땀과 깜 이야기" 가 와전된 듯하다. 베트남은 물고기로 젓을 만들기 때문에 젓국물만 먹는다. 따라서 팥쥐에 해당하는 깜의 어머니가 먹은 느억맘 이 깜의 시체로 만든 것이니 이야기가 이루어지지만, 한국에서는 육고기로 젓을 만드는 풍습이 거의 없다. 콩쥐팥쥐 원본에는 거열 및 그 후 젓갈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엄연히 육고기로 젓갈을 만든 역사가 있다. 대역죄인이나 천륜을 거스른 범인을 처형한 후 육신을 찢어 팔다리, 내장을 분리해 팔도로 순회 전시시킬 때에 소금에 절여 독에 담아 보냈는데, 결과적으로 젓갈이 되기는 하나 이 경우는 식용이 아니라 방부 처리를 한 것이다.중국에서 흔했던 처형 방법이니 한국에 알려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16] 로고의 모양이 거열형의 모습과 비슷해서 짤방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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