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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연극 심볼.jpg 연극 | ||
입성날짜 | 1991년 9월 30일 | ||
위치 | 7000 Hollywood Blvd.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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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0029><colcolor=#ffffff> 라이자 미넬리 Liza Minnelli | |
본명 | 라이자 메이 미넬리 Liza May Minnelli |
출생 | 1946년 3월 12일 ([age(1946-03-12)]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장 | 160cm |
학력 | 채드윅 스쿨 |
직업 | 배우, 가수, 댄서 |
영화 데뷔 | 1949년, '즐거운 여름'[1] |
활동 기간 | 1949년 ~ 현재 |
부모 | 부 빈센트 미넬리 모 주디 갈란드 |
배우자 | 피터 앨런(1967년~1974년) 잭 헤일리 주니어(1974년~1979년) 마크 게로(1979년~1992년) 데이비드 게스트(2002년~2007년) |
형제자매 | 이부여동생 로나 러프트 (1952년생) 이부남동생 조이 러프트 (1955년생) 이복여동생 크리스틴 니나 미넬리 (1955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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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배우, 뮤지컬 배우, 가수, 댄서.2. 상세
친어머니는 <오즈의 마법사>(1939)의 여배우 주디 갈란드, 친아버지인 빈센트 미넬리는 뮤지컬 영화 <세인트 루이스에서 만나요>(1944)의 감독이다. 부모로부터 뮤지컬에 대한 재능을 물려받아서 어린 나이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경력 초기에는 주로 어머니와 함께 아역으로 나왔고, 60년대 중반부터 클럽과 극장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라이자 역시 굴곡진 삶을 살았으나 어머니 주디 갈란드가 거의 생체실험 수준으로 촬영을 위한답시고 심한 학대를 당한 것에 비하면 어머니보단 비교적 평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2] 이후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거물 배우로 성장하게 된다. 23세 때 어머니를 잃었다.영화배우로서 대표작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카바레>. 이듬해인 73년에는 'TV로 방영되는 콘서트'라는 기획으로 제작된 "Liza with a Z"로 TV 배우이자 뮤지컬 배우로서도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둘 다 밥 포시가 연출과 안무를 맡았다. <카바레>를 작곡한 잔 캔더[3], 작사가 프레드 에브[4], 머넬리가 여기에서 입었던 빨간색 홀터 드레스 뿐만이 아니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때 착장하고 있던 옷까지 만들었던 홀스턴[5]까지 네 사람은 머넬리와의 협업 속에서 개개인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포시, 캔더, 에브는 'Liza with a Z'로 머넬리와 함께 에미상을 수상했다.
"Liza with a Z" |
한참 정상을 달리던 20대 시절엔 훌륭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외모로 유명했으나, 30대에 접어들며 어머니처럼 알코올과 약물에 중독되어 점차 목소리와 외모가 망가지기 시작한다. 당연히 사생활도 엉망이 되어갔고, 침체기에 빠진 머넬리를 도와준 사람은 이부 여동생 로너 러프트였다.[6] 중독을 극복한 이후에는 맑았던 음색이 완전한 탁성으로 바뀌었는데, 뮤지컬 배우로서는 오히려 호소력과 성숙미가 생겼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정극 연기보다는 뮤지컬 양식의 연기에 특화된 배우였고, 출연작 대부분이 춤과 노래가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정극에도 출연했지만 뮤지컬과 달리 대중에게 유명하지 않다. 주연을 맡은 뮤지컬 영화 <뉴욕, 뉴욕>(1977)의 주제곡도 인기가 높아 대표곡으로 꼽힌다. 가수로서도 활동했지만, 본인의 정체성을 '뮤지션'보다는 '뮤지컬 배우/엔터테이너'에 두었기 때문인지 대부분 기성곡이나 뮤지컬 넘버의 리메이크 앨범이었다.
<Tell Me That You Love Me, Junie Moon>(1970) |
1980년대에는 펫 샵 보이즈와 협업한 'losing my mind'란 곡으로 함께 활동했다. 1981년에는 영화 <아서>에서도 여주인공을 맡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둔 바 있다.
1990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비경쟁부문인 '그래미 레전드 어워드'를 수상해 EGOT을 달성했다.
2022년,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레이디 가가와 함께 작품상 시상자로 참석했다. 2000년도부터 투병한 뇌염으로 인해 휠체어를 탄 모습이었다. 이때 말을 하기 어려운 머넬리를 위해 레이디 가가가 협력하면서 시상하는 모습을 보여 훈훈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3. 출연작
- Tell Me That You Love Me, Junie Moon, 1970
- 카바레(Cabaret), 1972
- 럭키 레이디(Lucky Lady), 1975
- A Matter of Time, 1976
- 뉴욕, 뉴욕(New York, New York), 1977
- 아서(Arthur), 1981
- A Time to Live, 1985[7]
- Stepping Out, 1991
4. 사생활
어머니처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고 현재까지 4번 결혼하고 4번 이혼했다.첫 번째 남편은 뮤지션 피터 앨런이었는데, 무려 장인인 마크 헤런과 눈이 맞아 머넬리를 배신하는 영화로도 만들기 힘든 막장 사건을 벌인다. 오죽하면 훗날 인터뷰에서 '다들 피터가 게이인 걸 알고 있었다. 나만 빼고. 그 일을 겪은 이후로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되었다'고 이야기 했을 정도.
두 번째 남편 잭 헤일리 주니어는 <오즈의 마법사>(1939)에서 나무꾼 역할로 출연한 배우인 잭 헤일리의 아들이다. 즉, 자기 어머니를 괴롭게 만든 사람들 중 한명이 시아버지가 되는 셈이다. 당연히 주디 갈란드가 살았으면 펄쩍 뛰었겠지만 이때 주디는 죽은 지 한참 뒤였다.
2002년 네 번째 남편 데이빗 게스트와 결혼할 때 마이클 잭슨이 신랑 들러리를 섰다. 남편과는 마이클 잭슨의 30주년 기념콘서트를 함께 관람하다가 인연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유일한 임신 때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자녀는 없다.
5. 여담
-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있어 중독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베티 포드 센터에 입소한 뒤 긴 금지사항 안내를 전부 읽었다. 유명인사들 중 해당 센터 입원을 제일 먼저 스타트 끊었던 친구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전화로 금지된 게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더니 테일러는 그걸 다 읽고 있었냐며 놀라워 했다고 한다. 그런 건 무시하고 낫기나 하라는 말과 함께.
- 게이였던 디자이너 홀스턴과 7~80년대에 매우 친밀한 사이였다. 홀스턴은 머넬리에게 대리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홀스턴이 사망했을 때 홀스턴과 역시 친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추모 기사가 실린 잡지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 따라서 머넬리는 홀스턴의 생애를 다룬 "홀스턴"이란 드라마에서 중요 인물로 등장한다. 머넬리 역은 크리스타 로드리게즈(Krysta Rodriguez)가 맡았는데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홀스턴 역은 이완 맥그리거.
- 예술가로서 어머니 주디 갈란드보단 아버지 빈센트 미넬리를 더 높이 치는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완벽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버지 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세상에 유일무이하다"고 말했다.
- 뉴욕 맨해튼 54번가에 있던 디스코 나이트클럽 Studio 54의 고객이었다. 1977년에 문을 열고 86년에 닫은 이곳은 높은 외모 기준 입구 컷[8]으로 악명이 높았는데, 많은 스타들이 단골로 이름을 올렸다.
[1] 주디 갈런드 주연 영화.[2] 주디 본인도 돈독이 잔뜩 오른 어머니에 대한 원한이 더 컸지 부모에 의해 아역 배우가 된 것 자체를 싫어한 건 아니어서 라이자도 주디에 의해 아역배우가 된 것이다. 아역배우 자체에 대한 염증이 있었다면 애초에 주디가 라이자에게 연예인을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3] John Kander.[4] Fred Ebb.[5] Halston.[6] 로너 러프트 역시도 부모의 영향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에 노출된 여파로 어머니, 언니와 마찬가지로 약물중독을 겪은 바 있다고 고백했다. 거기다 70년대는 굳이 연예계가 아니라도 사회 전반적으로 68운동의 영향으로 마약을 비롯한 불법 약물이 유행하던 시기였다.[7]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8] face control(фейсконтрол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