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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rd Man (1949)
1. 개요
실제로 스파이로 일한적이 있는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각본을 쓴 1949년작 영국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제작사는 런던 필름스. 배급사는 브리티시 라이언 필름스.
감독은 캐럴 리드(1906~1976).[2]
2. 줄거리
2차대전 후 미국 소설가인 홀리 마틴스(조셉 코튼,1905~1994)는 친구 해리 라임(오슨 웰스)을 만나기 위해 비엔나에 오자마자 그가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홀리는 해리의 동료와 주치의, 건물 관리인 등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죽음을 유발한 교통사고의 정황을 듣게 되지만, 이들의 말이 조금씩 달라 사건의 진상에 의문을 품게 된다. 홀리를 주시해온 현지 경찰 캘러웨이(트레버 하워드,1913~1988)는 홀리에게 해리가 유명한 사기꾼이었고, 가짜 페니실린 암거래로 많은 어린이들과 임산부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전한다. 홀리는 친구의 명예를 회복하고 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해리의 애인이었던 여배우 안나 슈미트(알리다 발리,1921~2006)가 그를 돕게 된다. 홀리는 점점 안나에게 끌리지만, 그녀는 홀리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해리의 사체를 운반했던 제3의 인물을 찾는 과정에서 홀리는 누명을 쓰기도 하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도 처한다. 그러던 어느 날, 홀리는 안나의 집 근처에서 의문의 사나이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는 바로 해리 본인[3]이었다. 그의 죽음은 위장된 것이었고, 거기에는 또 한건의 살인 사건이 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홀리는 과거의 악행에 대해 반성하기는 커녕 그를 협박하기까지 하는 옛 친구 해리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홀리는 해리를 보호하려는 안나와 해리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경찰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결말은 궁지에 몰리는 해리가 죽고 싶다는걸 간접적으로 알려주자, 주인공이 살해한다.
영화 속에서 유명한 씬은 빈의 관람차를 주인공과 해리가 같이 타는 부분으로, 여기서 오슨 웰스가 직접 썼다는 해리의 대사가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30년간 보르자 가문의 압제를 겪었지. 그들은 전쟁, 테러, 살인, 피바람을 겪었지만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를 만들어냈어. 스위스는 형제애가 있었지.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리며 500년을 보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게 뭐가 있나? 뻐꾸기 시계뿐이지."
다만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이, 스위스 또한 수차례의 외부의 침입과 내전으로 신음했던 나라였다. 그리고 근대 이전의 스위스 연방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기에도 곤란한 편. 더불어 뻐꾸기 시계는 독일이 원조다(...)
또한 관람차 속에서 가짜 페니실린을 유통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던 해리를 향해 그 가짜 페니실린으로 인해 사람이 죽지 않겠느냐며 홀리가 힐난하자, 그에 대한 대답으로 해리가 밑의 점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하는 대사도 유명하다.
"저 밑의 점 중 하나가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해보게. 동작을 멈추는 점 한 개당 2만 파운드씩을 벌 수 있다면, 이보게, 자네는 정말 돈을 갖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얼마나 많은 점들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계산해보겠는가? 소득세도 없는 돈일세. 소득세도 없다고."
3. 읽을거리
각본을 쓴 그레이엄 그린은 각본과 함께 같은 이름의 중편 소설을 썼다.영상
마지막에 가로수들이 펼쳐진 길에서 해리의 애인이던 안나가 그녀를 기다리던 홀리를 무시하고 말없이 지나가는 이 장면은 영화속 명장면으로 유명하다.[4] 원래는 홀리가 해리의 장례식장에서 안나의 손을 잡고 나가는 해피엔딩으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캐럴 리드가 거부하고 만든 엔딩이라고 한다. 또한 홀리가 담배를 무는 장면은 배우의 애드리브로, 안나가 홀리를 지나쳤는데도 감독이 컷 사인을 내리지 않자 홀리 역의 조지프 코튼이 담배를 물어 태웠고, 그제서야 컷 사인이 떨어졌다고 한다.
1998년 미국 영화 연구소(AFI)에서 역대 최고 미국 영화 걸작 100에 넣었는데 영국에서는 엄청 분노하고 곧이어 영국 영화 협회(BFI)에서도 1999년 뒤늦게 역대 최고 영국영화 걸작 100에 이 영화를 넣으면서 왜 멋대로 남의 나라 영화를 미국 영화로 선정하냐고 불쾌하게 여기고 미국 영화 연구소에 항의하며 당장 미국 영화 걸작 100에서 빼라고 논쟁을 벌였다. 이 영화는 판권도 영국 영화사가 가지고 있는 영국 영화이기에 그렇다.
다만 제작자 중 하나인 데이빗 O. 셀즈닉(1902~1965)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레베카 ,킹콩 등등 제작자로 유명했던 미국인이었다. 물론 감독인 영국인 캐럴 리드도 공동 제작했고 또다른 공동 제작자인 알렉산드르 코르다 (Alexander Korda,1893~1956(는) 헝가리계 오스트리아인으로 헝가리 이름은 Sándor László Kellner이었듯이 다국적 제작자를 둔 영화이고 미국인 공동 자본으로 만들어지기는 했다.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과 감독 캐럴 리드를 비롯 제작진 전체가 혹독한 제작 강도를 이겨내기 위해 다같이 암페타민을 해댄 걸로 유명하다. 셀즈닉은 벤제드린[5]을 부숴 손에 쥐고 시시때때로 혀로 찍어 가루를 삼켜댔다.
한국에서 미개봉했다가 2008년 8월 9일에서야 개봉했다. 비디오로 90년 초에 발매되었으며 1984년 7월 28일 일요특선 외화로 KBS3(현재 EBS)에서 오후 1시 10분에 더빙 방영했으며 1990년 10월 6일 주말의 명화로도 재더빙하여 방영한 바 있다.
저작권이 만료되어 유튜브에서 무료 감상이 가능하다.1부2부
4. OST
피치포크 선정 최고의 스코어 14위 |
안톤 카라스가 작곡하고 치터로 연주한 메인 음악
더불어 술집 악사로 벌어먹기도 하던 오스트리아인 안톤 카라스(1906~1985)가 맡은 음악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년도 안돼 당시로서는 엄청난 대박인 OST 음반이 50만장이 팔렸다.
카라스는 가난한 공장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0대때부터 기계 수습공으로 일하며 살아갔지만 어릴적부터 오스트리아 전통 악기인 치터(Zither)를잘 연주해 빈 음악원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거리 악사로 살아가야 했다. 그러던 그는 1948년 리드 감독이 오스트리아에 있는 Heuriger라는 술집에 들러 한잔하다가 이 술집에서 연주하고 있던 카라스의 연주를 듣고 음악을 의뢰하게 된 것.이 음악 하나로 카라스는 이름을 알리게 된다. 교황인 비오 12세 앞에서 연주도 하고 네덜란드 및 영국, 일본 등까지 해외 공연까지 가며 큰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카라스는 이 음악이 너무 알려지는 바람에 이후로 다른 음악에서 빛을 못보고 1960년대에 은퇴하여 카페에서 치터 연주를 하며 살아갔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 맥주 에비스의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철도역 에비스역의 발차 멜로디로도 사용된다.
[1] 1948년은 예산 문제로 미개최되었고, 1947년 2회 칸 영화제는 뮤지컬 코미디 부문, 심리 애정 영화 부문, 애니메이션 디자인 부문, 사회 영화 부문, 모험 범죄 영화 부문 5부문으로 나뉘어 시상했다.[2] 오슨 웰스가 감독이 아니다. 참고로 그는 이 영화에서 10분 정도 나온다. 단, 자신 배역의 대사는 직접 썼다고 한다.출처[3] 104분의 러닝타임 중 65분이 지날 때쯤 처음 등장, 주인공을 미행하다가 해리를 알아보는 안나의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미행이 들키고, "누구냐? 나와!"라고 소리치는 주인공의 호통에 밤거리가 소란스러워지자 항의하려고 창문을 연 집의 조명을 통해 어둠 속에서 등장한다. 이 웰스의 등장 장면을 영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등장 장면으로도 꼽는다고.[4] 이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엔딩 장면에서 후에 밀정 엔딩 장면에서도 오마주했다.[5] Benzedrine. 암페타민의 상표명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