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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문화훈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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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61E2B><colcolor=#ffffff> 코리아나 Koreana | |
멤버 | 이승규, 이애숙, 이용규, 홍화자 |
전 멤버 | 안영희, 홍신윤, 홍윤식, 이명주, 김유희, 김규식 |
활동 기간 | 1976년 ~ 1990년대 |
데뷔 | 1976년 ([age(1976-01-01)]주년) |
소속사 | 불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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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6년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혼성 음악 그룹. 손에 손 잡고, The Victory로 유명하였다.2. 멤버
<rowcolor=#fff,#ddd> 성명 | 생몰년도 | 포지션 | 기타 |
이승규 | 1950년 1월 19일 ~ | 보컬, 기타, 관악기 | 배우 클라라의 부친 |
이용규 † | 1954년 7월 16일 ~ 2021년 3월 3일 | 리드 보컬, 드럼 | 이승규의 남동생 |
이애숙 | 1959년 3월 14일 ~ | 리드 보컬 | 이승규의 여동생 |
홍화자 | 1943년 11월 22일 ~ | 리드 보컬, 베이스 | 이승규의 형수 |
3. 활동
3.1. 아리랑 싱어즈, 코리아나
1976년에 파이브 핑거스[1][2]의 멤버였던 기타, 보컬의 이승규, 드럼, 보컬의 이용규 형제와 이들의 형수[3]이자 리드 보컬, 베이스의 홍화자, 따로 트리오 활동을 하던 홍화자의 오빠 작곡, 편곡, 키보드의 홍신윤, 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리드 보컬인 안영희, 동생 편곡, 키보드, 관악기, 보컬의 홍윤식 이렇게 두 사돈 집안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아리랑 싱어즈로 시작하게 된다.1977년 유럽 스위스를 거점으로 삼고, 전 유럽으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그룹의 주축이었던 홍신윤과 홍윤식 형제는 그룹에서 유이하게 작곡, 편곡, 그리고 키보드를 담당하는 멤버였으며, 그룹의 태동기부터 리더 역할을 넘어선 음악 감독 역할을 했다.
1978년 아리랑 싱어즈 시절의 최대 히트곡인 러시아 민요 Dark Eyes 의 편곡과 I Love You You Love Me 의 작곡 모두 홍신윤이 했다.
그러다 이 곡들이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국내 팬들도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1979년, 위에 두 곡을 포함해서 발매한 Discorea 앨범의 큰 히트에도 불구하고 1981년 음악적인 리더였던 홍신윤 안영희 부부가 탈퇴한다.
그렇게 남은 이들은 관악기, 보컬 이명주, 베이스, 보컬 김규식, 리드 보컬 김유희를 새로 영입하여 그룹 이름을 코리아나로 바꾸고 탈퇴한 리더 홍신윤의 동생인 홍윤식의 지휘 아래 1982년, Burning Fantasy 앨범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앨범이 크게 히트하지는 못했어도, 그룹은 70년대의 인기를 계속 유지했지만 1983년 김규식, 김유희가 결혼을 하면서 그룹에서 탈퇴한다. 이후 이용규 이승규 형제는 친남매 이상규와 이애숙이 결성하여 주로 서독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Cathy & Coins'[4] 그룹에서 자신들의 여동생인 이애숙을 참여시킨다. 이애숙은 'Cathy & Coins' 그룹 소속일 때 1977년 서독 ARD TV가 주최한 노래 경연 대회에서 '신시내티 트레인'의 곡으로 그랑프리를 차지하고, CBS와의 전속 계약으로 여러 앨범에 참여하면서 Highlights 앨범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앨범도 Dark Eyes 나 I Love You You Love Me 같은 히트곡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이후 앨범에는 외부 작곡가들의 곡으로 채워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앨범에는 코리아나 외에 아리랑 싱어즈도 병행해서 표기되어 있었다.
1985년 이명주와 유일한 작, 편곡자이자 리더인 홍윤식마저 탈퇴하면서, 그룹의 리더는 이용규에게 넘어가고 이승규, 이애숙, 홍화자 이렇게 우리가 아는 4인조 코리아나로 축소되었다.
3.2. 4인조 코리아나의 시작, 전성기
이들은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주제가를 담은 음반을 발표한다. 개막식 때 명곡으로 꼽히는 조르조 모로더 작곡의 손에 손 잡고를 부르면서 국내에서 유명해진다.당시 국내에선 교포들이 만든 3류 가수 수준으로 취급했다.[5]
88 올림픽 와중에 부른 주제곡인 손에 손 잡고[6] 외에도 역시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한 The Victory를 냈는데, 이후 큰 인기를 끌었다.[7] 여담으로 이후 코리아나는 국내 펩시 CF 광고에도 출연했는데 여기서 'To The Victory, 우리는 펩시세대' 라고 The Victory의 가사를 개사해서 광고송을 부르기도 했다.
1993년에는 대전 엑스포 주제곡인 <그날은>을 부르게 되어 손에 손 잡고에 이어 또 한 번 히트를 치게 되었다. # 1996년에는 2002 월드컵 홍보곡인 <We Are One>을 냈었다.
4. 근황
참고로 원년 멤버 4명 모두 가족 관계이다.[8] 이승규, 이용규, 이상규, 이애숙은 친남매이고, 홍화자는 이들 남매의 이부 형(어머니가 같은 형)이자[9] 올림픽 당시에 매니저였던 김영일의 아내이다. 이승규는 배우 클라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현재 리더는 맏형인 이승규이고, 리드 보컬은 세계적인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10]에게 '천 년에 한번 나올 목소리'라는 극찬과 함께 인정받았던 이애숙이 맡고 있다. 현재는 코리아나 3형제 중 막내 동생인 이상규도 다시 함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홍화자는 2004년부터 국내에서 '코리아나 홍' 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했다.[11] 행사 공연을 위주로 활동했으나 2024년 기준으로 80대의 고령인 지라 활동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전 멤버인 이용규의 무남독녀 이래나는 1994년생으로 명문대인 예일 대학교에 재학 중, 2016년 4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와 결혼했으나, 그 해 11월 4일에 22세의 나이로 돌연 사망[12]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13] 딸을 앞세우고 대외 활동을 거의 안하던 이용규는 지병인 암 치료를 받다가 딸의 사망 시점부터 4년 4개월 가량 지난 후인 2021년 3월 3일 오후에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세.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6일에 진행되었다.
초기 리더였던 홍신윤은 스위스에 거주하며 상당한 고령임에도 최근까지도 음악 활동을 했고, 원래 경희대 음대 클래식 작곡 전공이었던 동생 홍윤식은 귀국한 뒤에 클래식 음악가로 복귀하여 양주시립교향악단, 강릉시립교향악단 등의 지휘자를 역임했다.
또한 이 외에, 홍화자의 직계 가족은 아니지만 홍화자의 5촌 조카들인 가수 홍성민과 가수 홍종명[14]은 각각 2007년, 2012년에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2022년에 들어서는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하며 선거 유세에 여러번 참가하기도 했다.[15]
2023년 3월 4일에 이애숙이 간만에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으며, 녹슬지 않는 훌륭한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을 뽐냈다.
2024년 12월 28일,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에 출연하였다. #(1시간 40분 부터)
[1] 1962년에 처음 결성된 '쇼케이스' 라는 이름이 전신으로 해당 명칭을 1965년까지 쓰다가 '리틀 큐피드' (1966~1970), '코리언 플라워즈' (1971~1975) 라는 명칭을 거쳤다.[2] 애초에 1962년에 만들어진 쇼케이스라는 그룹도 이승규, 이용규 형제의 아버지인 이광구가 결성한 밴드였으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적부터 음악을 시작했던 셈이 된다. 1950년생인 이승규가 1962년 당시에는 무려 12살때였고 이때부터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니 가히 신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형제가 성인이 된 1970년대가 되자 아버지부터 그룹의 리더 자리를 물려받고 코리언 플라워즈가 되었다.[3] 이부형이자 매니저인 김영일의 부인.[4] 대표곡으로 Over The Moon, 신시내티 트레인 등이 있으며, 독일의 공영 방송국 ARD 차트에서 16위를 기록한 전적이 있는 실력파 그룹이었다. #[5] 그래서 이들이 신군부의 어느 높으신 분의 친인척이라는 루머도 있었다.[6] 앨범에는 "손에 손을 잡고"로도 표기되어 있다.[7]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내부 자료에 따르면 사실 원래 이 곡이 공식 주제가였고 '손에 손 잡고'는 개막곡으로 사용할 용도일 뿐이었다는데 의외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바람에 두 곡의 운명이 뒤바뀌었다고 한다.[8] 리더 이승규 가족이 털어놓는 코리아나 비하인드 스토리, 2008-09-01, 레이디경향[9] 그룹 '코리아나' 단장 김영일씨 별세, 2001-05-16, 중앙일보[10] 'Daft Punk'와 'Giorgio By Moroder'를 합작한, 전자 음악의 세계적인 대부이다. 아카데미상 3회 수상.[11] 이보다 전에도 본명인 홍화자 명의로도 솔로 활동을 했다. 2003년 태풍 매미가 내습한 구 마산시 피해 현장에 위무 콘서트가 열렸을 때 유진 박과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12] 사인이 공개되지 않아서 루머만 난무했다. 재학 중인 예일대에서는 부고를 올리며 추모하자는 뜻만 밝혔고, CJ 측도 단순히 사망했다고만 발표할 뿐 사인에 대해서는 알려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 다만 사망 즈음에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고인이 복학을 앞둔 상태에서 신경쇠약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는 점, 현지 경찰이 범죄와 무관한 병사나 자살에 대해서는 사인을 발표하지 않는다고 사인을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널리 보도되지는 않았으나 현지 매체에서는 신혼집이 있던 6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다는 기사가 났다.[13] CJ 그룹 며느리 사망 비보 그후, 2016-12-13, 우먼센스[14] 90년대 드라마 OST로 각광받았던 가수이며 디지몬 어드벤처, 가면라이더 파이즈의 한국판 오프닝을 부르기도 했다.[15] 윤석열, ‘손에 손잡고’ 캠페인송으로 쓴다…코리아나, 지지 선언, 2022-03-04, 조선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