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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80000><colcolor=#EDE4D3> 연도 | <colbgcolor=#EDE4D3><colcolor=#980000> 2008년 | |
이름 | 배용준 | |
분야 | 배우 | |
화관문화훈장(5등급) |
연기대상 대상 | ||||
송일국 (2006년) | → | 배용준 (2007년) | → | 김명민 송승헌 (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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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50인의 인물로,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였다. 선정을 위해 KBS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내외 전문가그룹 100명과 인구 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성별, 연령별로 구성된 KBS 국민 패널 1,800여 명이 참여한 1차 설문 조사로 100명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하였다. 이어 3주간 KBS 공영방송 50주년 홈페이지(kbs50.kbs.co.kr)를 통해 일반 시청자 7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하였다.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50인은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KBS를 빛낸 50인 선정자문위원회’에서 적격성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다. [A]: 가요무대 음악 감독을 맡은 KBS 악단장으로, 2022년 사망하였다. [B]: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을 기획, 연출한 P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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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안성기 | 비 | 배용준 | 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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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0B4FF><colcolor=#FFFFFF> 배용준[1] 裵勇浚[훈음]|Bae Yong Jun | |
출생 | 1972년 8월 29일 ([age(1972-08-29)]세) |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3]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거주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하와이 |
본관 | 성주 배씨 |
신체 | 180cm, 75kg, O형, 265mm |
가족 | 아버지 배영진, 어머니 송기옥, 여동생 |
배우자 박수진(2015년 7월 27일 결혼 ~ 현재) 아들 배동우(2016년 10월 23일생) 딸 배동희(2018년 4월 10일생) | |
학력 | 서울명일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한영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영상학 00 / 중퇴[4]) |
종교 | 무종교[5] |
소속사 | 무소속[6] |
데뷔 | 1994년 KBS 드라마 〈사랑의 인사〉 |
링크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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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배우 및 작가, 기업인, 전업투자자.1세대 한류를 이끈 한류스타로, 특히 2000년대 드라마 겨울연가로 극동아시아권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일본에서 정말 크게 히트해 한류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하며 한국문화를 전파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에선 가장 유명한 한류스타라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
2010년대 이후엔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하고 연예기획사 키이스트의 오너로 있다가, 2018년 SM 엔터테인먼트에 키이스트 경영권을 넘긴 후 SM 주식을 양도받아 대주주로서 활동하고 있다. 연예계 대표 주식부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2. 데뷔 전
1972년, 배영진, 송기옥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아버지의 영향으로 6살 때부터 태권도와 유도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어린 시절에 태권도 경기 도중 상대방에게 눈을 맞아 시력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배용준은 대학입시 낙방과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인해 어려워진 가정 형편으로 자원 입대를 하려 했지만 낮은 시력으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았다.
학창 시절은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성장했다. 한영고등학교 입학 당시까지는 성적이 중·상위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사춘기 시절 영화에 심취하면서 진로가 변경됐는데, 이후 학교 공부를 등한시, 시간 날 때마다 극장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고3 때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 두 차례나 낙방했고 다시 마음 잡고 재수 공부하기 위해 진위사라는 절에 들어갔는데, 엉뚱하게도 공부 대신 벌꿀 내리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얼굴과 손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벌떼가 우글거리는 벌통을 만지는 기술인데 그가 절에서 배운 것은 그것 하나 뿐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어릴 때부터 반듯하고 잘생긴 외모 덕분에 주위에서 "배우 한번 해봐"라는 소리를 듣던터라,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지도 있어 배우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결국 대학 입시를 포기하고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가, 영화사 스태프로 들어갔다.[8] 말이 스태프지 길거리에서 영화 홍보 전단을 뿌리거나 촬영 전후 온갖 뒤치다꺼리를 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이때 영화 '삘구'와 배창호 감독, 이정재 주연의 '젊은 남자'에 단역으로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삘구는 원래 94년작이나 개봉이 밀려 97년에야 국내 공개되었고 흥행에 참패했는데, 배용준이 일본에서 유명세를 얻자 다시 발굴되어 거의 10년이나 지나 일본에서 개봉이 예정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 상영은 배용준이 삘구의 일본 개봉을 막으려 고액에 매입을 시도하는 등 강한 반대로 인해 상영되지 못했다.[9]
이후 합동영화사의 스태프로 일하면서 친구와 연기 공부도 하고 발레도 배우며 준비하던 중 KBS 오디션에 특채로 뽑혔다. 나이상 91학번이지만, 실제로 한창 활동중이던 2000년, 성균관대 자기추천전형으로 입학하였으며, 졸업은 하지 않았다.
3. 활동
1994년 오디션을 통해 KBS 특채 탤런트로 발탁되어 청춘 드라마 <사랑의 인사>로 데뷔하게 된다.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재벌 2세 역할로 큰 인기를 얻었는데, 당시 20대 여대생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순위로 배용준이 꼽히기도 했다.그리고 <파파>, <첫사랑>, <맨발의 청춘> 등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톱스타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99년에 방송 된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이후에는 많은 작품의 캐스팅 제의를 받았지만 역할 등의 의견이 맞지 않아 작품이 무산되면서 2001년 <호텔리어>에 출연하기까지 2년 간의 공백기를 갖게 되었고, 2000년에는 성균관대학교[10] 예술학부 영상학과 00학번으로 뒤늦게 입학해 학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허나 이런 공백기 때문인지 드라마 배우로서는 그만한 원톱을 찾기 힘들 정도의 흥행 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평가절하되는 측면이 있었다.[11]
그런데 일본에서 욘사마 열풍이 터지면서 그의 인생에도 터닝 포인트가 찾아왔다.
2004년 11월, 나리타 공항 입국 당시 영상.[12][13][14]
2002년 그가 출연한 겨울연가가 2004년 일본 지상파 TV를 통해 방영되면서[15] 그는 명실상부한 욘사마[16]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며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실상 일본 한류스타의 시발점이자 주역. 때문에 당시 언론의 보도는 가히 도배 수준이었고, 배용준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거의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최상급 스위트룸이 제공되었는데 1박 98만엔인 방과 한 층 전체를 빌렸고, 해외에서 고용한 보디가드까지 완비된 상황. 또 당시 헬기로 그의 이동경로를 촬영, 호텔에선 밀착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정도였다.
2004년 발매된 근육질 사진집 역시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이와 관련해 배용준 사진집 판매 대행사 측은 공식 홈페이지에 "『더 이미지 볼륨 원The Image Vol.One』 판매 개시 사흘 만에 10만 부가 팔렸다" 라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판매된 배용준의 사진집 세트는 세금 포함 한화로 약 15만 1200원이었는데, 10만 세트가 판매로 약 151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이례적인 것은 사진집이 초 고액인 15만원 대 였는데도 이 정도 팔렸다는 것은 확실한 구매층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후 욘사마의 인기로 인해 일본에서 개봉된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배용준이 여러 여자를 꼬시는 바람둥이에 꽤 리얼한 정사신도 여러번 있는 주인공역으로 나오면서 일본 배용준 팬들 중엔 욘사마에 대한 환상이 깨져 기겁하고 우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일본 야후 영화 같은 평점 사이트에서도 5점 만점에 2점대로 평가가 상당히 안 좋은 편. 일본팬들에겐 스캔들에서의 배용준의 이미지는 흑역사. 영화 자체는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며 2004년 일본에서 흥행 수익 2위로 성공한 한국 영화이다. 국내 흥행과 평도 좋았고 유럽에서도 평이 좋았다. 전도연, 이미숙이라는 연기파 배우들의 연기와 더불어 쇼테를로 드 라클라의 소설인 <위험한 관계>(이미 미국에서 영화화되었으며 프랑스에선 발몽이란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졌다.)를 조선시대에 잘 재현했다는 평. 허나 이때 호평받은 이재용 감독은 이후 다세포 소녀를 감독하며 뭉개진다.
허나 배용준의 인기는 여전했는데, 사실 이 때쯤부터 그는 의도한다 싶을 만큼 철저한 이미지 바꾸기에 돌입한다. 자신의 부드러운 매력보다는 남성적인 매력도 어필하고 싶었기에 그는 2004년에 근육질 몸매를 만들어 화보까지 찍었으며, 이때도 일본 내 배용준 팬들은 기겁을 하였지만 그냥 받아들인 듯
이후 2005년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에 출연. 최루성 짙은 멜로물답게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로 멘붕한 일본 팬들에게 다시 욘사마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어필되어 300만 관객을 모으며 당시 한국 영화 사상 최고 일본 흥행작이 되었다. 한국에선 관객수가 80만명에 그쳤으나, 이미 제작 초기 단계에 일본에 700만달러(약 66억원)로 선수출하여 손익분기를 넘었고 이후 개봉하여 일본에서 27억엔(약 23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2007년엔 잡음이 많았지만 어쨌든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 주인공 담덕으로 출연해 그해 MBC 연기대상과 인기상을 받게 된다. 특히 인기상은 투표결과 100만표가 나왔을 정도.
다만 이후 작품들에선 까메오와 단발성 특별출연만 함으로써 사실상 배우 생활을 접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론 건강 문제가 꼽힌다. 태왕사신기를 촬영하면서 손가락 뼈가 골절되는 등 자잘한 부상을 입다가 급기야 척추부상까지 당하면서 여러차례 수술 및 재활훈련을 해야 했고, 이후 드라마 컴백을 타진하고 있었으나 패혈증 진단을 받으면서 거의 반강제로 배우 생활을 쉬게 되었다.
여담으로, 2000년 초반 일본 한류붐 당시 안티들은 배용준의 팬들이 주로 중장년층 여성에 국한되어있다고 폄하하는 시선도 일부 있었지만, 이는 좁은 시선인게 이런 일부 계층의 팬들이 이후 일본내 한류 열풍을 다른 세대에까지 전파시키는 주춧돌이 되었단 점에서 그 중요성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티비 채널 선택권은 여성이 가지는 경우가 많고, 가족 내 자녀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렇다보니 주로 중장년층 여성이 다수였던 그의 팬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그들의 자녀 혹은 손주들에게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았다. 2020년대 기준으로 20대~30대 젊은 한류팬들에게 처음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언제냐고 물으면 많은 경우가 가정에서 조부모 혹은 부모의 영향으로 팬이 되었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그는 그리 길게 활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큰 영향력과 발자취를 남긴 배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1월 13일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그의 대표적인 홈페이지의 도메인이 다른사람에게 팔렸고, 현재 가족들이 하와이에 거주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는데 사실상 은퇴한게 아니냐는 반응들이 많다. #1 #2
4. 배우로서 평가
배우 활동 당시엔 필모그래피를 보면, 작품 텀도 1~2년 정도이고 단막극도 출연하는 등 다작배우는 아니었어도 꾸준히 연기변신을 하는 상당히 영리한 배우였다.- 젊은이의 양지 : 재벌가 자제로 자랐지만 영화감독의 꿈을 접지 않는 섬세한 영화감독 지망생.
- 파파 : 6살 난 딸아이를 둔 능글맞은 이혼남 대학강사.
- 첫사랑 : 주인공의 동생으로 초반에는 사고 치는 문제아였지만[17] 비범한 머리를 지닌 덕분에 명문대 진학에 사법고시를 1차 합격 등의 기염을 토하다, 복수를 위해 잠시 휴학 후 유통 분야에서 막후 실세로 활약하여 목표했던 복수를 끝내고 법대생으로 돌아가는 인물.
- 맨발의 청춘 : 폭력배 집안 사생아. 깡패 가문의 피를 거역하고 경찰대에 입학하여 올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물.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혼자서 여동생을 키워왔고 성공을 위해 부잣집 아가씨에 접근하는 등 속물적으로 살지만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닫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뇌종양 판정을 받아 결국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는 캐릭터.
- 호텔리어 : 입양아로 버려져 미국에서 자랐다 한국의 호텔을 인수하러 온 냉혈한 기업사냥꾼. 이후 아버지와 여동생을 만나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삶의 목표가 바뀐다.
-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 사대부 집안 출신이나 춘화를 그려대고 여자 후리기 바쁜 바람둥이.
- 외출 : 콘서트 조명감독. 아내가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불륜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충격에 헤매이다 아내와 바람이 난 상대방의 배우자와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
대충 살펴봐도 이 정도다. 게다가 드라마,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더 많다. 이처럼 배용준은 자기 커리어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과감히 수정해나갈 정도로 괜찮은 판단력을 지닌 배우였다. 뜨자마자 이미지 변신에 들어갈 정도로 도전적이면서도, 그런 노선에 아집을 지니진 않았다. 대본을 보는 눈도 상당히 좋아, 청춘의 덫에 밀려서 시청률은 떨어졌지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도 노희경 작가의 작품으로 그 당시 PC통신에서 우정사 커뮤니티가 생겼을 정도로 엄청난 매니아를 양산했던 작품이었다. 한편, 이렇게 무리하다 싶을만큼 다양한 역할을 맡아본 경험 덕분인지 연기력도 일취월장하게 된다. 자기 이미지를 고수할 줄도, 파괴할 줄도 아는 능란한 연기자라는 평도 받았다. 고3 때 로버트 드 니로의 비열한 거리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나 연기 공부, 연출 공부도 꾸준히 한 점에서 보면 오히려 스타보다는 배우에 가까운 모습이란 평도 있었다.
그러나 겨울연가 신드롬이 터지고 난 이후 그의 행보들은 상당히 아쉽다.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뽑은 가장 과대평가된 배우로 뽑히는 불명예를 얻기도. 배우 이순재 역시 인터뷰에서 최민식과 송강호, 이병헌, 배용준을 비교한 적이 있는데 최민식, 송강호, 이병헌의 경우 꾸준하게 연기 활동을 이어간 반면에 "배용준은 '겨울연가' 하나로 끝난 사람이다. 솔직히 이후 그 이상의 작품이 나온 적이 없다. '태왕사신기'는 전혀 안 맞는 역할이더라"라고 평가했다. 물론 재능있는 후배가 활동이 적어 안타까운 마음에 한 소리일텐데, 이순재가 언급한 배우들 면면[18]을 보면 그가 배용준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이전까지만 해도 배우로 상당한 의욕이 있었으나, <태왕사신기> 이후 부상,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쉬고 출연하려고 했던 작품들도 무산되면서, 이제는 콘텐츠 제작에만 참여하거나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정도로 물러난 듯 싶다.
5. 여담
- 윤석호 PD가 연출한 2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KBS 드라마 <사랑의 인사>, <겨울연가>
- 전기상 PD가 연출한 3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KBS 드라마 <사랑의 인사>, <이별하는 여섯 단계>, <파파>
- 2010년대 이후로 사실상 연예계에서 은퇴해 이면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과거 리즈 시절엔 여러편의 드라마를 히트시킨 성공한 배우이자 한류 열풍의 시초를 다진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1세대 한류 스타였다. 한국 방송 단일프로그램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 첫사랑에 출연하여 청춘스타로 발돋음했고, 이후 2002년 주인공을 맡았던 겨울연가가 2004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사실상 일본 한류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19]
- 욘사마란 극존칭이 그의 애칭인 것만 봐도, '사마'(様)가 붙는 대표적인 예시가 일본 황실이라는 점에서 '사마'가 '님' 이상의 극존칭임을 알 수 있다.[20][21] 사실 한국어에서 일상적인 존칭으로 많이 쓰이는 '님'은 '사마'보다 '~상'(さん)에 가깝다.[22] 사마는 '~느님'에 가까우니 한국어로 굳이 바꾸자면 욘느님.[23] 어쨌든 2020년대 현재까지도 일본 내 한류스타 중 최고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배우 중에선 그 아성을 뛰어넘을만한 스타가 나오기 힘들어 보인다.
- 일본에서의 인기만 부각되어 다른 해외에서의 인기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배용준은 한국 연예인 최초로 대만 교과서에 등장했을 정도로 중화권에서도 인기가 높은 한류 스타였다.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이 되었으니 대단하긴 하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인기가 좋았다. 이러한 아성을 입증한 것이 배우로서 거의 최초로 창작물에 재연된 인물이다.[24] 사실상 한류붐의 시조격이 되는 배우들의 레전더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최초의 한류스타 세계적인 톱스타였던 인물이다.
-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25]의 조합원으로 활동해서 네티즌들에게 귀족노조라고 비판받은 흑역사가 존재한다. # 배우들 월급이 가수들보다 많은데 노동조합이라니(...)라며 한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허나, 이는 잘못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조결성률이 낮고 사회 전반의 우경화로 인해 노조에 대한 인식이 다소 낮은 한국에서나 고소득자들로 구성된 노조를 무작정 귀족노조라고 깔 뿐이지, 서구권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배우들이 죄다 배우노조의 조합원인 경우는 흔하다.[26] 비단 서구권에서는 연예인 노조 이외에도 경찰 노조나, 군인 노조 등, 한국인들 인식 상 노조와 관련없어보이는 직종들도 거의 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시아권에 비해 사회가 상대적으로 좌경화되어있다보니, 노조를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보아서 그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연예인들은 제작자나 영화 감독, PD같은 제작진들이나 연예기획사 관계자들 앞에서는 거의 을의 위치에 있다보니, 자신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건 당연하다.
- 배우 최다니엘이 배용준을 따라 했다고 한다.
- 이미지와는 다르게 PSP 게임을 하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 전도연과 함께한 작품이 많다.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 단막극 <이별하는 여섯단계>,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까지 무려 3작품에 같이 출연했다.
- 배용준의 대표작하면 아무래도 '겨울연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팬들 사이에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호텔리어'야말로 배용준 드라마 커리어의 진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배용준 스스로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를 꽤 아낀다고. '호텔리어'는 당시 배용준의 인기 때문인지 후반부 결말이 초기 설정과는 바뀐듯한 모습도 보여줬다.
- 배용준으로 인해 일본에서 한때 한국 남성의 이미지는 "긴 웨이브 헤어에, 뿔테안경, 꼬인 목도리[27], 부드러운 미소, 로맨틱 가이"로 정의되기도 했다. 물론 진실은 저너머에.[28][29] 다만 이로 인해 한류팬들의 이미지가 괴짜라고 불려지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가정주부들이 한국에서 오는 연예인 한명을 맞이하려 공항에 나가 몇시간이나 기다린것도 부족해 심지어 어떤 여성팬은 아이까지 업고 나와서 기다릴 정도로 극성이었는데다 호텔까지 와서 저녁시간까지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러다보니 당시 일본인들의 사고로서는 한국에서 온 젊은 남자배우 한명 때문에 '가정에 충실해야 될 아낙네'들이 '오덕'들이나 할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꼬라지'에 질려버린 것이다. 뭐 별거갖고 트집잡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역지사지로 만일 한국의 가정주부들이 톰 크루즈가 방한한다고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무려 4천명이나 앉아 기다리고 있는것도 모자라 그가 묵고있는 호텔 주변에 저녁시간까지 있다고 한다면 똑같은 반응이 나왔을 것은 사실이다.
- 2000년대 한류 4대 천왕 중 두목을 맡기도 했다.
- 한국에서 ~사마(님)라는 호칭이 널리 쓰여지기 시작한 것은 욘사마 열풍 이후부터다.[30]
- 마이바흐 62의 오너다.
- 기본적으로 아줌마 킬러에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이미지인데, 외모는 미남이라기 보다는 미인, 그러니까 잘생겼다고 말하기보단 예쁘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31] 실물을 본 한 어머니는 '걔네 엄마는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겠더라'고 묘사했고, 배용준이 자주 이용한다는 세탁소의 주인은 '예쁘다'로 일관할 정도라고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욘사마 팬들의 상당수가 중년 여성이다. 그러나 예쁜 용모와는 반대로 숨겨진 몸짱 속성으로 2004년 근육질 화보를 공개해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했다.[32]
- 간간히 나오는 주변인들의 에피소드에 따르면, 성격이 의외로 소탈하면서도 남자다운 것 같다.
- 시력 문제로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배용준이 징병검사를 받은 1991년 당시는 현역 자원이 충분해서 조금만 신체적 결함이 있으면 병역면제 혹은 방위병 판정이 나올 때였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는 별로 없다. 1998년 라식 수술을 받았고 겨울연가 이후에는 무도수 안경을 쓰고 있다.[33]
- 공교롭게도 배용준이 출연한 드라마 중 조소혜 작가가 집필한 젊은이의 양지와 첫사랑 두 작품에서 배용준이 분한 등장인물 모두[34] 극중에서 병역을 면제받는 설정이고[35], 두 작품 모두 배용준이 연기한 인물들에게 특별한 사람들[36]을 군대에 보내는 아쉬움을 겪는다. 또한 이 두 작품 모두 최수종♡하희라 부부와 접점이 있다.[37]
-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은 만큼 일웹을 돌다 보면 2차 창작 사이트에서 종종 그의 패러디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미지가 비슷하다며 많이 보이는 것은 블리치의 아이젠 소스케. 신의 물방울의 잇세는 아예 배용준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캐릭터이다. 때문에 이쪽은 한국 드라마판 얘기가 나왔을때 당연히 배용준을 캐스팅 할 예정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호의 기본 컨셉의 경우 태왕사신기의 환웅. 그 외에도 곱슬머리+부드러운 인상 및 성격+뿔테안경이면 한방에 연상된다고 한다.
- 당시 일본 중노년층 여성들에게 얼마나 폭발적인 인기였는지는 일본의 유명 동화 작가 사노 요코[38]의 에세이집[39]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노 요코는 평생 대중 문화에 관심도 없고 꽤나 시니컬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소문의' 겨울연가를 한 번 본 후, 한류 광인이 되어 하루종일 배용준을 비롯해 한류 드라마만 보다가 턱이 돌아갈 정도였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본 여성들의 취향을 파괴시킬만큼 마약적 중독성과 늪 같은 매력을 가진 존재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
- "한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발언한 바 있는데, 그 중심에 서 있는 배우로서 한류가 '점령하다', '정복하다'는 외국인들이 듣기엔 선정적이고 오해를 살 여지가 있어, 한류보다는 문화교류 같은 것으로 바꾸자고 해서 배개념이라는 별명이 붙여지기도 했다.
- 이러한 개념 정신은 일본인 관광객들의 부상 소식에도 그대로 발휘되었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조금이라도 배용준의 흔적을 보고자 애니메이션 겨울연가 촬영장이 있는 강릉시 정동진의 모 리조트를 찾아갔다가, 때마침 전국적인 강풍 덕에 시설물이 무너지는 바람에 수십명이 부상을 입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 배용준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입원해 있는 강릉 모 병원을 찾아가 한 명도 빠짐없이 방문해 위로 및 사과의 말을 전했고, 치료비 및 귀국 항공권까지 전액 부담해 주는 것은 물론, 일본으로 돌아갔더라도 피해보상은 확실히 해주겠다고 밝혔다.
- 도호쿠 대지진 때 일본에 10억원(약 7,300만엔)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금액은 한국정부가 기부한 50만 달러보다도 훨씬 많고 일본 주요 은행 및 증권회사들이 기부한 금액(보통 1억엔)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우익 사이트로 유명한 2ch에서조차 칭찬댓글이 쏟아졌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근처에 있는 욘사마님 공식 상점에 가서 답례로 상품 사오고 경배하겠다는 글도 있었다. 그리고 기부를 안한 일본 연예인들과 자칭 2ch 우익들은 뭐하고 있는 거냐고 까이기도 했다.
- 사실 거액기부가 처음은 아니다. 니가타 지진 당시 4억원 기부. 수마트라 지진 당시 4억원 기부. 일본의 불우이웃 돕기 프로그램인 24시간 테레비에 3억원 기부. 한국에 수해피해가 났을 때도 3억원 기부. 태안반도 석유유출 사태 당시에도 3억원 이상 기부했다.
- 은퇴를 갑자기 할 수도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내적 갈등이 있는 듯하다.#
- 태왕사신기를 찍던 도중 말에서 떨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때 어깨를 다쳐서 재활치료를 받았고 패혈증까지 오는 위험한 상황을 겪은 후, 아직까지 작품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때 트라우마가 커서 은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 2014년 9월 19일 홍삼 사업 관련해서 사기혐의로 피소되었으나, 동년 12월 무혐의 처분되었다.#
- 2015년 5월 14일 아이돌 그룹 슈가 출신의 배우 겸 방송인인 13살 연하 박수진과의 결혼을 발표했다. 그리고 동년 7월 27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당일 식장에 수많은 하객과 국내외 팬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 중 일본인 팬만 100여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배용준은 팬들에게 사비로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 비용만 천여만원에 이른다고 전해졌다.# 허나 해피하게 끝났을 결혼식의 마지막 피로연 자리에서 벌칙으로 신부의 엉덩이를 만지는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악의적인 댓글을 단 악플러들을 고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6년 10월 23일에 득남하였다. 10개월 뒤인 2017년 8월 23일엔 둘째 임신 소식도 전하였다.# 이후 2018년 4월 10일에 둘째를 득녀하였다.
2018년 봄 디스패치에서 박진영과 배용준이 개신교 사이비 계열 종교 단체로 취급받는 구원파 집회에 참석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냈는데, 배용준 측은 "자신은 구원파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단지 친분이 있는 박진영이 주관하는 성경 공부 모임에 참가한 것일 뿐"이라는 해명을 했고, 박진영 역시 논란에 대해 "구원파 집회가 아니라 자신이 사재를 들여 마련한 성경 공부 자리였으며, 100명이 넘는 참가자 중에 구원파 신도 몇분이 자기 강의 듣고 싶다고 우연히 찾아와 앉아있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디스패치도 더이상 파고들 건 없었는지 이후 기사를 삭제하며 사실상 논란이 마무리된 상태다. 다만 박진영의 부인이 구원파 유병언의 조카로 알려져 있으며, 박진영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박진영은 예루살렘에서 스스로 공부를 한 것이지, 목사 자격증은 없다. 목사 안수도 받지 않은 어떻게 본다면 자격이 없는 사람의 주도로 성경을 해석하고 100명에게 강의한다는 것(사실 웬만한 교회보다도 큰 규모다.) 자체가 위험한 일이고, 이단 논란의 소지가 있다.
- 박진영과 드림하이라는 드라마에 제작자로 참여하여 혹시 감독이나 제작자로써 진로변경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친구와 의기투합한 것일뿐, 정우성이나 김윤석처럼 배우에서 감독으로 직접 연출을 맡은 작품은 아직까지 없다.
6. 필모그래피
6.1. 드라마
<rowcolor=#FFFFFF>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활동 | 시청률[40] |
1994년 | 사랑의 인사 | 김영민 | 주연 | ||
1995년 | 젊은이의 양지 | 하석주 | 62.7% | ||
드라마게임 : 이별하는 여섯단계 | 경민 | 단막극 | |||
해풍 | 장문영 | ||||
1996년 | 파파 | 최현준 | 30.0% | ||
컬러 (시리즈: 블루) | 옴니버스 | ||||
1996년 ~ 1997년 | 첫사랑 | 성찬우 | 65.8% | ||
1998년 | 맨발의 청춘 | 장요석 | 31.3%[41] | ||
1999년 |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 강재호 | 29%[42] | ||
2001년 | 호텔리어 | 신동혁 | 38.6% | ||
2002년 | 겨울연가 | 강준상/이민형 | 28.8% | ||
2007년 | 태왕사신기 | 환웅/담덕 | 31.9% | ||
2009년 | 호텔리어[43] | 특별출연 | |||
2011년 | 드림하이 | 정하명 | 특별출연, 제작 |
6.2. 영화
<rowcolor=#FFFFFF> 개봉 연도 | 제목 | 배역 | 활동 | 관객수 | 흥행 |
1997년 | 삘구[44][45] | - | 단역 | 5,634명 | 실패 |
2003년 |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 조원 | 주연 | 352만명 | 성공 |
2005년 | 외출 | 인수 | 80만명[46] |
6.3. 배용준이 카메오 혹은 패러디가 되어 등장한 작품들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삘구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 작품이다.- 20세기 소년
정확히는 겨울연가의 포스터가 "하얀 소나타"라는 이름으로 패러디되어 과자 상자로 등장한다. 물론 그 상자의 겉에는 활짝 웃고 있는 욘사마와 최지우가 그려져있다. - 감자도리 - 제목이 대놓고 감사마라고 하며 겨울연가를 패러디한다.
- 개구리 중사 케로로 - 기로로가 일곱으로 분리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사마'라는 이름의 자아로 나온다. 이때 머리스타일에 머플러, 옷, 미소까지 영락없는 배용준 패러디.
- 갓파 쿠와 여름방학을 - 주인공 코이치 엄마가 겨울연가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 그라나도 에스파다
백호가 태왕사신기 버전 배용준을 페이스 모델로 했다. - 냥코이
땡중 키리시마 케이조가 욘사마 복장을 했다. - 도서관 전쟁(애니메이션)
주인공 이쿠가 어머니 토시코에게 권한 잡지 표지를 보면 영락없는 배용준이다. - 두 사람은 프리큐어 Max Heart
제 15화에서 나오는데, 이 에피소드에선 욘사마가 아닌 얀사마로 개명이 되어 나온다. 게다가 겨울연가에 관련된 사진이나 특대 포스터 등 캐릭터 상품까지 나오게 된다. - 블리치
아이젠 소스케의 모델이다. - 아따맘마
여기서는 이름이 최용준으로 최지우는 배지우로 쉽게 말해 성을 맞바꿔서 등장했다. - 안녕 절망선생
화이트 데이 편에 초콜릿 가게 입간판으로 출연. 애니메이션에서도 출연한다. - 엽기인걸 스나코
아이돌로 등장. - 유희왕GX
17화에서 쥬다이와 쇼가 도둑잡기를 하고 있던 방에 붙어있는 포스터로 등장. - 은혼
'한류 스타' 식으로 한 컷 지나간다. - 크레용 신짱
노하라 미사에, 마사오의 엄마가 팬이고 작중 TV에도 나온다. - 초밥 아가씨 사치
1권에서 애인과 함께 미나토 초밥집에 와서 초밥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역할로도 나온다. 안경을 쓰고 목도리를 두른 모습이 영락없는 배용준이다. - 최강전설 쿠로사와
쿠로사와의 생각에서 등장. - 도박묵시록 카이지
효도 카즈야의 모델이다. - 학원묵시록 HIGHSCHOOL OF THE DEAD
카메오라고 하기는 뭐한게 등장하기는 했지만 <놈들>, 그러니까 좀비가 돼서는 특수부대원에게 헤드샷. 왜냐하면 저 작품의 원작자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극우파다. - 해파리 공주
치에코의 어머니가 팬이다. 욘사마 보러 한국에 가기 위해 숙소인 아마미즈칸을 팔려고 했지만 욘사마가 일본 활동에 전념하기로 하자 포기한다. 단, 이름만 나왔다. - 삘구
스탭 시절에 조연으로 잠깐 등장했던 한국 영화로 그의 첫 영화 데뷔작. 1994년작이지만 검열에 걸리고 더불어 여러 사정으로 제대로 개봉하지 못했다가 97년에서야 잠깐 개봉하고 막을 내렸다. 여기서 조폭 중 하나로 나와서 이민우에게 음모를 잘린다. 그런데 잊혀졌던 이 영화는 일본에서 배용준 인기가 높아지자 2005년 배용준 데뷔작이랍시고 <첫사랑 백서>라는 제목으로 크게 홍보되며 개봉했다. 물론 팬들은 엑스트라를 겨우 벗어난 악역 수준으로 나온다면서 안보기 운동을 전개했고, 일본 몇몇 언론은 배용준이 이걸 5천만원에 판권을 사려고 한다는 엉터리 기사까지 싣기도 했다. 다만, 이건 일본 언론 탓이 아니라 감독부터가 당시 한국 언론에 5억원에 판권을 사려고 했다며 배용준 측 탓으로 일본 개봉이 보류되었다고 주장했다. 물론 배용준 측은 헛소리라면서 무시했고 일본에서 무사히 개봉하여 한국에서처럼 금세 막을 내렸다. 단, 배용준 초기 모습을 보고픈 일부 욘사마 팬들이 그래도 보긴 봤다고 한다. 참고로 감독이 유진선으로 1988년 영화 매춘으로 엄청난 대박인 서울 43만 관객을 기록한 감독이고 이후로 2류 에로물 전문으로 감독했다. 강철수 원작 만화로 만든 돈아 돈아 돈아(1991)도 그가 감독한 영화. 2000년대 오면서 전혀 작품 활동이 없다. - 죠시라쿠
배용준이 안경을 벗으면 아저씨가 된다는 설정을 집어넣었다. 학원묵시록과 마찬가지로 작가 쿠메타 코지가 혐한으로 유명한 편이다. - 화려한 식탁
직접 등장이 아니라 간접적인 등장. 화려한 식탁 17권의 삿포로 스프 커리 에피소드 때 마키토가 한류 돌솥 커리를 내놓으면서 한 퍼포먼스가 아무리 봐도 겨울연가의 배용준이다. - 하이큐
오이카와 토오루의 모델이다. - 신의 물방울
역시 간접적인 등장이라고 봐야할 지 애매. 작가 아기 타다시가 배용준의 팬을 자처하면서 모델로 삼아 만든 토미네 잇세. 참조로 배용준 본인도 이 만화를 좋아한다고. - 효게모노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에 붙들린 임해군[47]이 배용준으로 나온다. 배용준을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장동건의 어색한 일본어 구사를 패러디한 대사를 하는데, 이 대사가 아무리 봐도 현대의 아줌마 한류 팬들을 패러디한 것 같은 나이가 좀 있는 시녀를 한방에 뿅 가게 만들어서, 그 도움을 받아 탈주하려고 하다가 들켜서 가토에게 한대 얻어맞는다. - 아이돌 데이즈
주인공이 오디션에 합격해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할 때, 어머니는 한류 드라마에 빠져 '저녁 먹기 전에 들어오라'고 대답했다. 목도리 걸친 남자가 머리 긴 여자와 서로 실땅님~과 자갸~라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볼 때, 배용준임이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 니세코이
아주 살짝. 89화에서 오노데라 코사키의 어머니 오노데라 나나코가 배용준 팬임을 인증했다. - 용과 같이 시리즈
2 서브 스토리에서 이루전으로 등장. 그런데 일루전의 일본어 발음과 흡사하기에 키류가 일루전이라고 하며, 이루전은 자신을 "이루전" 이라고 정정한다.[48] 유일한 한국음식점인 한래에 들어갔을 때 만나며, 키류에게 카무로쵸 안내를 부탁한다. 얼마나 무사히 안내를 해줬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이후 키류가 몰려드는 아줌마 팬들을 막아줄 때 택시로 달아난다. 자세한 사항은 이유종 항목 참조. 3편에서는 이루전의 광팬인 야쿠자의 부인 때문에 고생한다. 7편에서는 한물 간 배우로 요코하마 이진쵸의 술집에서 주정을 부리는 모습으로 나와 충격을 주지만 알고보니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으며,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 마탄전기 류켄도
포스터로 등장. 작중 고로케집을 운영하는 이노마타 쿠니코가 좋아하는 배우로 나온다. 어느정도냐면 배용준 포스터 붙여놓고 기도하고 있을 정도. - 보스 1999
배영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 포켓몬스터 AG
포켓몬스터 AG 128화 지우와 대결하는 트레이너가 배용준과 흡사하게 생겼다. 머플러와 안경, 트렌치코트를 입고있고 여성팬이 많은 것으로 묘사되는 걸로 보아 모티브가 배용준인 듯. - 천하제일 일본최강무예가결정전
이토 잇토사이의 모델이다. 작중에서는 늙은이라 알기 어렵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머플러와 안경, 트렌치코트가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모티브임을 보여주고 있다.
6.4. 홍보대사
- "2010~2012년 한국방문의해" 대한민국 홍보대사“한국방문의해 홍보대사 배용준, 2010년 한국 홍보 포스터 공개”
- 2009년 이와야마 칠예 미술관 명예관장“일본 이와야마 칠예 미술관 명예관장으로 배용준 위촉”
- 2008년 2008 한류엑스포 인 아시아 홍보대사
- 2008년 한국 방문의 해 홍보대사“배용준 대한민국 홍보대사 위촉 “세계에 한국 알린다””
6.5. 저서·사진집
- 2009년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저서“배용준 책, 韓日이어 中까지 출간...아시아 베스트셀러 등극하나?”
- 2004년 사진집 《The Image Vol.One》“배용준 화보집 ‘200억 대박’ 예고…한국 21일,일본 25일 각각 발매 돌입”
6.6. DVD
- 2010년 영화 《배용준 3D in 도쿄돔 2009》
- 2006년 "배용준 아시아 투어 2005 April Snow Promotion TAIWAN / JAPAN / KOREA / CHINA ~" (포니캐년, 2006년 11월 22일 발매)
- 2006년 "April Snow ~ 재회 ~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이벤트 DVD-BOX" (인터랙티브 미디어 믹스, 2006년 5월 31일 발매)
- 2005년 "배용준 DRAMA BAE YONG JOON" (포니캐년, 2005년 11월 16일 발매)
6.7. 기타
- 2009년 스카이 퍼펙트 커뮤니케이션! TV 애니메이션 <겨울연가> 더빙
- 2002년 가요 컴필레이션 앨범 《동감 2집》자켓모델 with 차승원, 장혁, 김재원, 조인성
- 2001년 조성모 4집 <잘가요 내사랑> MV
6.8. 광고
6.8.1. 국내
- 1995년 농심그룹 〈큰사발〉 with 권오중
- 1995년 롯데삼강 〈월드콘〉
- 1995~1996년 나산패션 〈메이폴〉
- 1995~1996년 롯데제과 〈가나 초콜릿〉 초콜릿 with 이본
- 1996년 롯데제과 〈마카리나〉
- 1996년 LG전자 〈LG 숯불구이〉 전자렌지
- 1996년 LG생활건강 〈마이빈〉
- 1996년 롯데제과 〈덴티스트 껌〉
- 1996 ~ 1997년 LG생활건강 〈더블리치〉 샴푸
- 1996 ~ 1997년 롯데제과 〈제크〉
- 1996 ~ 1997년 LG전자 〈LG 통돌이〉 세탁기 with 김지호
- 1996 ~ 1997년 LG전자 〈LG 동글이〉 청소기
- 1997년 LG전자 〈LG 심포니 멀티넷〉 컴퓨터
- 1997년 〈LG 아트젯〉 프린터
- 1997년 토마토디앤씨 〈씨채널〉 안경점
- 1997년 웰코스 〈과일나라〉
- 1997년 LG그룹 〈LG그룹〉 기업광고
- 1997년 하이트진로 〈하이트〉 맥주
- 1997년 거평패션 〈렛세스〉 의류
- 1998년 LG텔레콤 〈LG 019 PCS〉 with 최지우
- 2001년 계몽사 기업광고
- 2001 ~ 2007년 엠케이트렌드 〈올드앤뉴〉 의류 with 김하늘
- 2002년 한라건설 〈한라밀라트Ⅲ〉, 〈비발디〉
- 2002년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신탁증권〉
- 2002년 GS홈쇼핑 〈LG이숍〉 with 김현주
- 2002년 JM글로벌 〈JM산소피아〉, 〈JM산소정수기〉 with 최지우
- 2002 ~ 2003년 LG카드 〈LG카드〉 with 이영애
- 2002 ~ 2004년 LG텔레콤 〈LG텔레콤〉, 〈뱅크온〉, 〈LG텔레콤 멤버십〉 with 손예진, 전지현 外 2
- 2002 ~ 2005년 한국네슬레 〈테이스터스 초이스〉
- 2003년 LG전자 〈휘센〉, 〈휘센 2in1〉
- 2003년 FnC코오롱 〈맨스타〉 남성정장
- 2004 ~ 2006년 (주)호텔롯데 〈롯데면세점〉 with 박진희, 이수경, 공현주 外
- 2004 ~ 2008년 경남기업 〈경남 아너스빌〉
- 2005년 한국코카콜라 〈이온에이드〉 음료
- 2008년 유경테크놀로지스 〈빌립 X5〉, 〈X70〉
- 2008년 신한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기업광고 with 유재석
- 2008 ~ 2009년 LG생활건강 〈더페이스샵〉
- 2009 ~ 2011년 패션그룹형지 〈아날도바시니〉
- 2011년 SK에너지 〈SK에너지〉 기업광고
6.8.2. 해외
- 2001년 LG생활건강 〈더블리치〉 샴푸 ※베트남
- 2004년 롯데제과 〈후라보노 껌〉 ※일본
- 2004년 SONY 〈소니 사이버샷〉 카메라 ※일본
- 2004년 오츠카제약〈오로라민C〉음료 with 우에토 아야
- 2004년 다이하츠공업 〈MIRA〉 자동차 ※일본
- 2004년 au KDDI 〈au GLOBAL PASSPORT〉 핸드폰,이동통신 ※일본
- 2004년 레이밴 〈레이밴〉 선글라스 ※한국, 일본
- 2004~2006년 롯데제과 〈아몬드 초콜릿〉 with 오구라 유코, 나카이 마사히로 ※일본
- 2005년 일본코카콜라 〈칠색아차〉음료 ※일본
- 2005년 PIZZA-LA 〈PIZZA-LA〉 프랜차이즈 피자점 ※일본
- 2005년 현대자동차 재팬 〈소나타〉 자동차 ※일본
- 2005년 롯데전자 〈호카론 오리지널 배용준 상품 캠페인〉 ※일본
- 2005년 둥썬(東森)홈쇼핑 〈둥썬 홈쇼핑〉 TV 홈쇼핑업체 ※중화민국
- 2006년 주식회사 세콤 〈세콤〉 경비업체 ※일본
- 2007 ~ 2008년 메가네탑 〈안경시장〉 안경점 ※일본
- 2009 ~ 2012년 한국관광공사 〈한국방문의 해〉 공익광고 ※일본 외 전세계 전역
- 2011년 훼미리마트 〈훼미리마트〉 편의점 ※일본
- 2012년 ~ 2013년 한국인삼공사 〈정관장〉 홍삼 ※일본
7. 수상 내역
<rowcolor=#FFFFFF> 수상 연도 | 시상식 | 수상 부문 | 작품 |
1995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신인상 | 젊은이의 양지 |
남자 포토제닉상 | |||
1996년 | 한국 모델센터 베스트 드레서 | 특별상 | |
KBS 연기대상 | 남자 우수 연기상 | 첫사랑 | |
남자 인기상 | |||
1997년 | 경향신문 독자가 뽑은 광고대상 | 특별상 | |
제33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남자 인기상 | 첫사랑 | |
2002년 | 제38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남자 인기상 | 겨울연가 |
KBS 연기대상 | 남자 최우수 연기상 | ||
남자 인기상 | |||
2003년 | 제24회 청룡영화상 | 신인남우상 |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
인기스타상 | |||
2004년 | 제40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 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 | |
한국언론인연합회 제4회 자랑스러운 한국인대상 | 대중예술 부문 | ||
제33회 일본 남자패션협회 올해의 베스트 드레스상 | 인터내셔널부문 | ||
2005년 | 문화관광부 |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영화 부문상 | |
2007년 | 제1회 일본 건강한 치아&식육(食育) 추진 위원회 | 건강한 치아&식육 대상 | |
MBC 연기대상 | 베스트 커플상 | 태왕사신기 | |
남자 인기상 | |||
대상 | |||
2008년 | 제2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 한류공로상 | |
문화체육관광부 | 화관문화훈장[49] | ||
2009년 | 제1회 대한민국 브랜드 이미지 어워드 | 방송인부문 | |
2010년 | 한국관광의 별 | 특별 부문 공로상 | |
2013년 | 한류 10주년 대상 | 드라마 대상 남자배우 부문 그랑프리 | |
대상 | |||
2023년 | KBS | KBS를 빛낸 50인 |
[1] 한때 본명이 '배춘배'라는 루머가 퍼졌던 적이 있었는데, 배용준이 본명이 맞다.[훈음] 날랠 용 깊게 할 준[3] 태어난 곳은 중구지만 학창 시절은 강동구에서 보냈다.[4] 2005년에 자퇴했다. #[5] 공식적인 입장은 무종교이나, 친구인 박진영과 성경 공부 모임에 참가한 바는 있다. 다만, 이게 좀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자세한 건 후술된 내용 참조.[6] 자신이 설립했던 연예기획사 키이스트가 SM 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가 될 때 키이스트에서 나왔다.[7] 2017년 6월 19일 이후로 업데이트가 없다.[8] 이병헌, 장동건, 원빈 등 본인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한류 스타들이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것과 달리 배용준은 영화계에 먼저 발을 담근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광고모델로 시작해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영화의 주연을 꿰찬 정우성과 이정재같은 인기 청춘 스타도 아니었다.[9] 그럴만한게 영화속에서 배용준은 바지를 내린채 성기 털을 가위로 잘리는 등 굉장히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10] 실제로 배용준의 배우 커리어 최고의 히트작인 첫사랑에서 그가 분한 성찬우가 다니던 학교가 바로 성균관대학교이다.[11] 이 때문에 배용준이 겨울연가로 뜨기 전 한국에선 인기 없었다는 드립이 안티들에게서 나오기도 하는데, 아래 필모그래피의 출연작 시청률을 보면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얻은 폭발적인 인기와 대조되는 현상 때문에 한국에서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묻힌 것일 뿐이다.[12] 공항에 모인 엄청난 환영인파(3500여명)와 배용준의 인기를 2003년 당시 일본을 방문한 데이비드 베컴의 입국장면과 비교한 영상이 나온다{38초경}. 그리고 영상에서도 보이지만 당시 모인 팬들의 상당수가 40대에서 50대, 그리고 60대 할머님들도 간혹 보일 정도로 중장년 일본 여성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13] 배용준이 일본에서의 겨울연가 열풍 이후 두 번째로 입국한 영상이다. 최초 입국은 겨울연가가 NHK 지상파 방송을 시작한 2004년 4월이다. 당시에는 하네다 공항으로 입국했는데, 당시의 하네다 공항은 국제선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작아 방문객이 몰려들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했다. 그런데 하네다에 5,000명이 몰렸다. 하네다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배용준은 다음 입국 때는 나리타를 이용하라는 하네다 공항 측의 요청으로 2004년 11월 사진집 홍보 목적으로 방문한 이 때 나리타를 이용한 것.관련링크1관련링크2[14] 실제 2004년 4월의 하네다 입국 영상은 여기를 참고하자. 문서 본문의 나리타 입국 때와 비교하면 첫 입국 당시에 공항 질서가 훨씬 흐트러져 있음이 느껴질 것이다.[15] 2003년 NHK 위성채널을 통해 방영하다 매니아층 사이로 인기를 끌자 2004년 NHK 종합채널에서 재방영한 것.[16] 배사마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배'의 일본어식 표기인 ぺ가 침뱉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퉤님'. ペ가 아닌 ベ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메롱사마'가 된다. 배씨 지못미.[17] 의외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목처럼 첫사랑의 대상이 두 형제 모두 같았다.. 그러나 그 소녀가 형을 좋아해버려 자신은 몰래 마음을 접게 되면서 문제아로 변모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물론 자신 또한 형을 진심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형의 진솔한 마음을 드라마 완결때까지 적극 지지해준 장본인. 마음을 다잡게 만든 원인 또한 형과 그 첫사랑이었다. 어찌보면 드라마 타이틀은 메인 주연인 성찬혁, 이효경은 물론 서브 남주 성찬우나 여주 강석희에게도 꽤 멋들어지게 잘 맞는다.[18] 세 사람 모두 한국에서 연기력을 논할 때 첫손에 꼽히는 배우들이다.[19] 사실 배용준이 일본으로 진출하기 이전의 한류는 중화권이 주요 타겟이었고, 일본은 현지화 전략으로 진출한 보아나 그 이전에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정도가 단타성 히트를 친 정도였다. 즉, 오늘날 일본에서도 인정하는 지속적인 한류 열풍의 1세대 붐은 배용준의 겨울연가부터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당시 한국 언론의 보도도 가히 상상 그 이상이었다.[20] 다만 그래서인지 열풍 당시에도 연예인에게 과하게 높은 호칭이라며 욘사마를 '욘상'으로 바꾸자는 일부 의견도 있었으나, 인기가 워낙 폭발적이어서 걍 묻혔다. 물론 일본 연예인 중에서도 팬덤 내에선 해당 연예인을 사마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21]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대신조차 '상'으로 불린다.[22] 그래서 엄밀히는 '상'을 '씨'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운텐슈'상'(기사'님') 같은 명칭을 보면 알 수 있다.[23] '유느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유재석이 한국 연예계에서 가진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바다 건너 일본에서 이 정도 위상에 오른 배용준은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MC와 배우의 특성상 완전히 같진 않고, 오히려 한국으로 치면 80~90년대 인기를 끈 홍콩스타들 입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24] 역사적인 정치인, 기업인이 창작물에서 재연되는데 한국의 배우 중 거의 최초라고 볼 수 있다.[25]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 어디에도 속하지않은 독립노조다.[26] 정확히 말하면, 서구권에서는 배우들의 노동조합 설립과 가입을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사실상 배우협회의 역할을 노조가 대신하고있는 실정이다.[27] 보통 머플러 두르는 법과 다르게 배배 꼬아서 거의 목에 묶다시피하는 스타일이다. 이것도 욘사마가 유행시켰다. 여담으로 일본의 모 통신판매회사에서 갈색 웨이브 헤어 가발, 뿔테안경(아이러니하게도 뿔테안경을 쓴 남자는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에서도 미남으로 간주되지 않았었다. 이걸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이 바꿔버린셈이다), 목도리를 한데 모아서 욘사마 3종 세트로 팔기도 하였다. 캐치프레이즈는 '내 남편도 욘사마로.'[28] 이 당시의 배용준은 일본 주부들에게는 거의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못 만나는 애인내지는 남친'의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오죽하면 첫 방일 때도 오랜만에 만나 흥분되고 열정적으로 환영해 줄만 하건만, 폐를 끼치면 안된다며 거리를 두고 볼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29] 물론 배용준 역시 자신을 강준상과 같은 이미지에 맞추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30] 이게 파격적이었던 이유는 일본내에서도 '사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연예인이 극소수였던데다 외국 연예인에게도 붙여지지 않던 칭호였는데 배용준에게 붙여진 것이다. 게다가 일본 문화를 아는 이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존경받는 인물에게만 붙여지는 극존칭이므로 함부로 불리지 않는 호칭이다.[31] 그렇다고 이종석같은 미인형 미남과는 다르다.[32] 저 유명한 일본 방문 역시 화보 발매 기념으로 간 것이다.[33] 동갑인 유재석, 이정재가 방위판정을 받았고, 개그맨 이윤석은 면제다. 70년생 박명수도 시력때문에 면제. 배용준 연배(70년대 초반생)는 베이비붐 세대 끝자락이라 현역병 충원에 큰 문제가 없었다.[34]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재벌2세로 태어난 영화감독 지망생 하석주, 첫사랑에서는 서민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 법대생 성찬우 역을 각각 맡았다.[35]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독자사유로, 첫사랑에서는 생계곤란 사유로 면제받았다.[36]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같은 대학 경영학과에서 만난 베스트 프렌드 박인범(이종원 분), 첫사랑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우애가 깊은 형 성찬혁(최수종 분).[37]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임차희(하희라 분)를 대학 친구 박인범의 연인으로(하지만 극중 배용준은 하희라를 이종원의 사촌 여동생으로 알고 있었다.) 상대하게 되고, 첫사랑에서는 최수종과 우애 깊은 형제지간으로 등장한다.[38] 1938년 출생~2010년 사망. '100만번 산 고양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39] 국내에 여러권 번역 출판되었다.[40] 최고 시청률 기준.[41] 당시 라이벌로 여겨졌던 장동건 주연의 사랑과의 맞대결로 관심을 모았으나, 시청률 면에서는 압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에서는 다소 아쉬운 평을 받았다.[42] 초반부 최고 시청률이며 중반부부터 동시간대에 방송된 김수현 작가의 청춘의 덫에 밀려 10% 초반대까지 낮아졌다.[43] 일드 리메이크.[44] 조해인 작가가 1993년에 지은 동명의 청소년 소설이 원작이며, 본격적인 데뷔 전인 1994년에 단역으로 출연하였으나,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 과정에서 선정성을 이유로 반려되자 영화사 측이 심의를 거부하면서 미개봉 상태로 남다가 1997년에야 개봉하였고, 이때는 젊은이의 양지와 첫사랑으로 이미 스타가 되어서인지 단역이던 배용준을 주연으로 둔갑시켜 홍보하였다.[45] [46] 일본에 약 66억원에 수출하여 손익분기를 넘었고 이후 약 230억원의 흥행수입을 올렸다.[47]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고 잘 있었고 뻘짓하다 잡혀간 건 임해군이다. 어떤 의미로는 디스?[48] 국내 정발이 나오기 이전엔 이유종이 발음상 맞다고 하는 유저들이 있었지만 정발판으로 나오게 된 리메이크작 극 2은 이루전으로 나온다.[49] 배우로써 최초로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