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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2:56:20

오우삼

오우삼 감독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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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국제 영화제 명예 황금사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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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b><colcolor=#fff> 오우삼
吳宇森[1] | John Woo
파일:20171115_peo_john_woo_1402_izw_edited_0.jpg
출생 1946년 5월 1일 ([age(1946-05-01)]세)
중화민국 광둥성 광저우[2]
국적
[[틀:국기|]][[홍콩|]][[틀:국기|]]
직업 영화감독
활동 1968년 ~ 현재
가족 배우자 애니 우 (1976 결혼)
슬하 1남 2녀
종교 개신교(루터회)
대표작 영웅본색
첩혈쌍웅
종횡사해
첩혈가두
페이스 오프
미션 임파서블 2

1. 개요2. 활동
2.1. 초기이력2.2. 1970년대2.3. 1980년대~1990년대 초반2.4. 1990년대 중반~2000년대2.5. 2010년대 이후
3. 작품세계4. 영향
4.1. 오우삼에게 영향을 받은 것들4.2. 오우삼에게 영향을 끼친 것들
5. 감독 작품6. 수상경력7. 여담

[clearfix]

1. 개요

홍콩영화감독이다.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를 정점에 올린 명감독이며, 서극, 두기봉과 함께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기 시절을 상징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2. 활동

2.1. 초기이력

1946년 5월 1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출생했지만, 1949년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하고 집권하자 가족이 4살 때 홍콩으로 건너왔다. 대륙계 피난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어렸을 때 극빈층으로 살았으며,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일찍 작고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어린시절을 판자촌에서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 매니아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영화광이 되었고, 영화관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기독교계 미션스쿨에서 고교과정을 마치고, 영화계에 입문한다.

19세부터 단편 실험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9년 케세이 필름 스튜디오에 대본관리원으로 입사함으로써 영화계 커리어를 시작한다.

2.2. 1970년대

1971년 곧이어 홍콩 영화 황금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영화 스튜디오 ‘쇼 브라더스’로 옮기게 되었다. 쇼 브라더스에서 당시 최고의 무협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장철의 조감독으로 연출을 배우게 되었다.

1975년 <철한유정>이라는 영화로 감독 데뷔를 한다. 이 영화는 칼을 쓰는 무협이 아닌 권격의 무술영화였고, 특기할만한 점은 당시 무명배우였던 성룡이 스턴트 배우로 참여했다.

무술영화를 주로 만들던 골든하베스트는 이런 오우삼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해 영입했고, 이어 <제왕화>, <호협> 등의 여러 무술영화를 찍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홍콩은 허씨형제(허관영, 허관걸, 허관문)들이 개척한 코미디 영화도 흥행하기 시작했고, 오우삼도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서 1977년 허관영이 주연한 <발전한(發錢寒)>이라는 코미디 영화로 성공을 거두었다. 오우삼이 폭력적인 액션 영화뿐만 아니라 코미디 영화의 연출에도 의외의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하여 코미디과 무협 장르 양쪽을 모두 연출하여 개봉한다. 이 시기의 오우삼의 대표적인 코미디 작품은 석천[3]을 기용해 만든 <활계시대>로, 이 작품은 석천에게 ‘아시아 채플린’ 캐릭터를 주고, 채플린 영화들을 짬뽕한 반패러디 반오마주 영화였다.

이 당시 오우삼은 거의 매년 코미디 및 무협 작품을 연출하면서 세상에 내놓다가 1982년을 끝으로 메가폰을 내려놓고 3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이때 오우삼은 극심한 무기력증으로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영웅본색 팬들을 중심으로 이 시기[4]에 오우삼이 감독한 액션물의 흥행실패로 코미디를 찍으며 연명했다는 잘못된 설이 있는데, 오히려 오우삼의 코미디물은 성공작이 많았고 그와 함께 계속 액션물도 찍고 있었다. 오우삼이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홍콩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기도 한 다작[5] 및 1970년대 이소룡 영화를 시작으로 크게 번성했던 홍콩 영화가 1970년대 후반부터 침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시절 만든 영화들의 필름은 1990년대 중반 화재로 소실되어 영원히 못 보게 된 작품들도 여럿 있다. 화재 원인은 필름 보관 스튜디오 측 잘못으로 드러났다. 덕분에 첩혈가두 원판을 비롯한 여러 영화는 이 세상에 안타깝게도 유실되어 없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화재를 용케 피했는데 그 가운데에선 ‘철한유정’ 등 오우삼이 한국에서 홍콩느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덜 알려졌을때 비디오로 출시된 것도 있다.

2.3.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이렇게 무기력증에 빠진 1980년대 초반 오우삼은 대만 이민도 심각히 고려하지만, 1985년 코미디극 <쌍척노호>를 감독하면서 전기를 맡는다. 이때 배우로 출연했던 서극을 알게되면서, 이때부터 서극이 프로듀서를 맡고 오우삼의 감독을 맡는 황금 콤비가 형성된다.

1983년 이래로 침체였던 오우삼이 명감독의 반열에 든 것은 본인이 감독을 맡고 서극이 프로듀서를 맡은 1986년영웅본색. 이 작품이 홍콩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흥행과 반향을 일으킨 히트작이 되어 오우삼을 일약 액션장르의 흥행 감독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후 첩혈쌍웅을 연출하며 홍콩 느와르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영웅본색, 영웅본색 2, 첩혈쌍웅, 의담군영[6] 세 편을 본인이 감독하고 서극이 프로듀서를 맡아 만들면서 모두 흥행 성공시키고, ‘오-서’ 콤비는 홍콩 영화계의 명콤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흥행 성공을 하는 와중에서 서극과 사이가 점점 나빠졌다. 서극은 프로듀서였으면서도 원래도 유능한 영화감독이었기에, 마치 자신이 감독이나 된 것처럼 오우삼의 연출에 매우 간섭을 했는데[7] 이는 자존심이 강하던 오우삼과 충돌을 빚었다. 이런 충돌은 <첩혈쌍웅>에서 정점에 이르러, 이 작품을 끝으로 이 둘은 결별한다. <첩혈쌍웅>은 평가와 흥행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서극과 함께 준비중이던 영웅본색 마지막편인 <영웅본색 3>은 오우삼과 서극이 따로따로 만들게 되는데[8] 오우삼은 자신이 직접 쓴 영웅본색 3편 시나리오를 손봐 <첩혈가두>를 만들고 서극은 다른 시나리오 작가를 기용하여 <영웅본색 3>를 제작한다.

특히 오우삼은 홍콩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서극의 방해 때문에 자금을 받을 수 없어서 자기의 집까지 저당잡혀 당시 큰 스케일의 대작인 ‘첩혈가두’를 만들었다가 대실패를 하여 때문에 빈털털이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빚을 지게 된다. 이 때문에 둘의 사이는 더욱 더 나빠졌다. 이 당시 홍콩 언론에서는 한신소하 때문에 출세했지만 소하 때문에 처형당했다는 고사인 "성야소하 패야소하"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해 오우삼이 흥한것도 서극, 망한것도 서극 때문이라고 보도할 정도이다.

절치부심해서 감독한 다음 작품이 장국영, 종초홍, 주윤발을 기용해 만든 가벼운 코미디 활극인 <종횡사해>(1991)였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홍콩영화의 인기가 시들었을 때 개봉해서 대박났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전성기의 오우삼식 코미디와 액션을 살짝 섞은 작품으로 홍콩 내에서 3300만 홍콩위안의 흥행성적을 올린 작품이다.(이에 비교되는 영웅본색이 3400만 위안, 영웅본색2가 2200만 위안이다.) 1980년대 초반에 오우삼의 전매특허 중 하나였던 코미디 감각이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로인해 오우삼은 재기하게 된다.[9]

1992년 자신의 폭력미학을 총 집결한 <첩혈속집>을 감독하는데, 이 영화는 흥행(1900만 위안)은 이전의 흥행작들과 대비해서는 큰 성공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여러 국가들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았고, 오우삼이 할리우드에 영입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4.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이 당시 오우삼을 비롯한 홍콩 영화인들이 대거 해외로 건너갔고, 1997년 이후 중국 반환 이후 공산당의 문화 탄압을 걱정해서 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우삼의 경우는 홍콩 귀속과는 별로 상관이 없고 오히려 홍콩영화계에서 돈줄을 잡고 있던 서극과의 불화가 큰 원인이었다. 대륙계 자금으로 제작된 <적벽대전>에서 보이듯이 오히려 오우삼은 중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으며, 자신의 영화에 대륙의 자본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0년대 만든 영화들이 광동어가 아니라 모두 대륙관객을 겨냥한 표준 중국어 영화임을 봐도 알 수 있다.

첩혈속집 이후로 1992년 할리우드의 오퍼를 받자 오우삼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헐리우드 메인스트림에 진출한 첫 동양인 감독으로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1993년 장 클로드 반담을 주인공으로 한 하드 타겟을 감독했다.[10] 이 작품은 반담이 주연에서 보듯 B급 액션이지만, 오우삼 특유의 폭력성으로 돋보였고, 오우삼은 이 작품의 성공으로 안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원래 감독판은 워낙 폭력적이어서 R등급도 못받았는데, 영화사 편집판이 겨우 맞출 수 있었다.

1995년 브로큰 애로우로 할리우드의 A급 흥행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996년 홍콩 느와르 스타일의 페이스 오프를 맡았다. 페이스 오프는 마이클 더글라스가 제작을 맡았고, 원래 SF로 기획되었으나, 오우삼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추기 위해 여러차례 대본 수정을 요구했고, SF가 아닌 현대물로 바뀌어 관철시켰다.[11] 이 영화는 흥행 성공을 했다.

2000년에는 톰 크루즈가 주연한 미션 임파서블 2로 해당 년도 최고의 수익을 기록하는 등,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2002년에는 자신이 주로 해왔던 액션 장르가 아닌 전쟁 드라마에 도전한 윈드토커를 냈으나 흥행에 실패한다. 이 영화는 일부 밀덕후에게 영웅본색을 찍냐면서 욕을 먹었다. 밀덕식의 고증도 산으로 갔을 뿐만 아니라, 연출이나 구성, 전개, 고증 등의 요소는 병맛의 극치를 달린다. 흥행도 시원하게 말아먹어서 1억 1500만 불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전세계에서 7762만 8265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쳤다. 영화의 흥행수익은 극장과 반씩 나누어 가져야 하니 이 정도면 7~8000만 불은 손해 본 셈이다.

윈드토커에서 실패한 오우삼은 2004년 벤 애플렉을 기용하여 페이첵을 내어 놓는다. 페이책은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었으나,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2.5. 2010년대 이후

오우삼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할리우드를 떠나 중국으로 되돌아 와서 작품활동을 모색한다. 할리우드 시절 영화사로부터 상당한 간섭을 받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한 것으로 봐서는 할리우드에서의 작품활동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2008년적벽대전을 내놓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는 1편 157만, 2편은 260만[12]으로 성공한다. 상하편 모두 8000만불의 제작비로 2억 4천만불을 벌어들였으니 흥행 성공작이다.[13]

하지만, 이후 감독한 작품들은 영 좋지가 않다. 건강도 매우 좋지않아 2012년 인후암으로 판정받아 미국에서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어떻게 치료한 모양이지만 이후 찍힌 사진을 봐도 항암치료의 부작용인지 전후로 확연한 노화가 눈에 띤다.

2010년에 내놓은 <검우강호>는 양자경, 정우성이 주연을 맡은 무협영화의 탈을 쓴 느와르물. 배경은 명나라지만 은행강도라든가 성형수술로 신분세탁하는 내용이 나올 정도로 왠지 개연성은 무시한 느낌이다.[14] 다만 각종 암기가 난무하는 액션은 볼만하고 뒷세계 느와르물로서의 재미는 충실하게 있다.

2014년 제작한 <태평륜>은 송혜교가 주연으로 로맨스 재난 영화라고 한다. 태평륜 침몰 사고[15]를 배경으로 한다. 2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가 2014년 12월 개봉. 만약 흥행했다면 위기의 송혜교 측에서 반전을 잡아 홍보를 많이 했겠지만 개봉했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는 것을 보면⋯. 아니나 다를까 흥행은 망했다.

2017년 내놓은 <맨헌트(2017년 영화)>[16]하지원을 캐스팅 해서 만든 영화이지만 이것도 망했다.

2010년대 만든 작품들은 모조리 연출에 감이 떨어져 있는데, 폭력에 엄격한 중국 심의기준을 맞추려다가 영화가 산으로 갔는지, 아니면 암투병 때문에 기력이 쇠해 연출 감각이 안나오는지 어쨌든 2010년대 내놓은 작품들은 한국 배우들을 꼭 끼워넣지만 1980년대의 작품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2010년대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에 굉장히 비판적인 견해를 내비쳤으나(아래참조), 최근 기사로는 본인이 스탠 리의 원작에 바탕한 마블 슈퍼히어로물을 감독한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현재 아무런 소식이 없다.

2023년 12월에 조엘 킨나만 주연의 <사일런트 나이트>를 개봉했다. 이미 2022년 5월 17일 촬영을 모두 마쳤고 페이첵 이후 장장 20년만에 할리우드에서 제작 영화가 되었고 참고로 이 영화는 대사가 단 한마디도 없다… 2024년 7월 국내 개봉했다.

첩혈쌍웅 리메이크작인 영화 킬러가 2024년에 개봉했고 오마르 시이수현 역할를 맡았고 그외에 나탈리 엠마뉴엘이 출연했다. 원래 제작 초반에 루피타 뇽오가 출연하고 주윤발이 연기한 캐릭터를 연기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하차했다.

3. 작품세계

상당히 잔혹한 묘사의 무협 영화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장철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하며 영화 연출을 익힌 탓인지 오우삼의 홍콩 느와르 영화들도 상당히 잔혹한 묘사의 연출이 많았다. 이 때문에 그의 영화의 폭력성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에 잠깐 들린 적이 있는데, 그에게 그의 영화는 너무 폭력적이라고 은근히 까는 한국 기자에게 "내 영화는 폭력을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오우삼 영화의 폭력성을 감안하면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 같이 들리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실제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폭력을 쓴 사람들은 거의 참혹한 결말을 맞는다. <영웅본색>에서 마크는 의형인 송자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만의 조직을 몰살했지만 결국 그 자신도 폐인이 되고, <첩혈쌍웅>의 주인공 소장은 살인 청부업자 일을 그만두고 새 삶을 살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죽는다. <첩혈가두>의 아B는 폭행당한 친구의 원수를 갚으려다 사람을 죽였고, 결국 두 친구를 모두 잃게 된다.[17] 그 의도가 좋았던 나쁘던 간에 그의 영화에서 폭력을 쓰는 인물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오우삼 자신은 폭력을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지만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애초에 총 맞는다고 그냥 구멍만 뻥 뚫리는 게 아닌 이상 사방으로 피가 튀고 줄줄 새는 그의 표현 방식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18]

그의 영화에서는 그만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영상적 표현들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쌍권총[19]을 들고 쏘는 것이라든지[20], 그렇게 쏘는 권총은 탄은 무한탄창이라는 것이다.[21] 총기류가 등장할 때는 반드시 주인공의 손에 들려있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 외에는 결정적 순간에서의 슬로우 모션,[22] 그리고 날리는 비둘기 등이 그렇다. 특히나 비둘기는 그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해서 비둘기들이 푸드득거리며 날아가는 장면만 나와도 오우삼 영화인줄을 알아본다고 할 정도. 그러나 홍콩 느와르 시절에는 많이 날리지 않아서 첩혈쌍웅이 유일한 비둘기 출연작이다.

오우삼 영화에서 비둘기가 등장하는 것은 오우삼이 기독교[23] 신자여서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비둘기는 성령의 상징이다. 실제로 오우삼은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루터교 학교를 나왔고, 한때 루터교 목사가 될 생각을 갖기도 했다. 또한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피가 낭자한 느와르 영화에서 상당한 대비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첩혈속집에서는 이게 신생아로 변형된다. 천진난만한 신생아들 사이에서 범죄조직과 경찰의 총격전은 총격전와중의 날라가는 비둘기와 마찬가지 역할을 한다.

느와르 영화에서는 뛰어나지만, 전쟁물은 호불호가 갈린다. 윈드토커와 같은 전쟁물은 평가도 낮았고, 흥행도 신통치 않았다. 적벽대전삼국지덕후들의 성향과는 안맞아서 이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지만, 대중적인 흥행은 괜찮았다.

오우삼의 아버지는 유교를 연구하는 선비여서 그의 영향을 받아서 자연인 오우삼은 논리적이고 조용한 사람이다. 본인이 제작하는 영화에도 제법 심도 있는 동양사상을 담아내기도 했다. 상당히 많은 동양철학 메타포가 담긴 검우강호가 대표적인 사례.

DC, 마블 코믹스 영화에 대해서는 혹평을 했다. 페이스 오프 감독시절 SF적인 요소를 걸러낸 것에서 보듯이 컴퓨터 그래픽이 들어가는 장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요즘 할리우드의 영화는 가면 갈수록 보기 싫어진다. 특히 만화를 각색해서 만든 영화들은 전혀 나를 감동시키지 않는다.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헐리우드의 차이니스 극장 앞에 아시아인 최초로 손도장을 남긴 인물이다.[24]

4. 영향

4.1. 오우삼에게 영향을 받은 것들

그의 영화는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영화팬들, 영화관계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4.2. 오우삼에게 영향을 끼친 것들

5. 감독 작품


오우삼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펼치기 · 접기 ]
||<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width=33.3%> 철한유정
(1974) ||<width=33.3%> 여자태권군영회
(1975) ||<width=33.3%> 제녀화
(1976) ||
성룡의 소림용호문
(1976)
발전한
(1977)
합라야귀인
(1978)
합라야귀인대살성여소매두
(1978)
호협
(1979)
전작괴
(1980)
마등천사
(1981)
활계시대
(1981)
팔채임아진
(1982)
소장
(1984)
양집노호
(1985)
영웅본색
(1986)
영웅무루
(1986)
영웅본색 2
(1987)
첩혈쌍웅
(1989)
흑전사
(1989)
첩혈가두
(1990)
종횡사해
(1991)
첩혈속집
(1992)
하드 타겟
(1993)
브로큰 애로우
(1996)
페이스 오프
(1997)
미션 임파서블 2
(2000)
윈드토커
(2002)
페이첵
(2003)
적벽대전 1부 - 거대한 전쟁의 시작
(2008)
적벽대전 2부 - 최후의 결전
(2009)
검우강호
(2010)
태평륜
(2014)
태평륜 피안
(2015)
태평륜 완결편
(2017)
맨헌트
(2017)
사일런트 나이트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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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제목 역할 영제
감독 제작 각본
1974 철한유정
鐵漢柔情
O O The Young Dragons
1975 여자태권군영회[28]
女子跆拳群英會
O O The Dragon Tamers
1976 제녀화
帝女花
O O Princess Chang Ping
1976 성룡의 소림용호문[29]
少林門
O O The Hand of Death
1977 발전한
發錢寒
O O Money Crazy
1978 합라야귀인[30]
Hello! 夜歸人
O O Hello, Late Homecomers
1978 대살성여소매두[31]
大煞星與小妹頭
O Follow the Star
1979 호협
豪俠
O O Last Hurrah For Chivalry
1980 전작괴
錢作怪
O O From Riches to Rags
1981 마등천사
摩登天師
O O To Hell with the Devil
1981 활계시대
滑稽時代
O O 'Laughing Times
1982 팔채임아진
八彩林亞珍
O Plain Jane To The Rescue
1984 소장
笑長
O O O The Time You Need A Friend
1985 양집노호
兩集老虎
O O Run, Tiger, Run
1986 영웅본색
英雄本色
O O O A Better Tomorrow
1986 영웅무루[32][33]
英雄無淚
O O O Heroes Shed No Tears
1987 영웅본색 2[34]
英雄本色 II
O O A Better Tomorrow II
1989 첩혈쌍웅[35]
喋血雙雄 II
O O The Killer
1989 흑전사[36]
義膽群英
O Just Heroes
1990 첩혈가두
喋血街頭
O O O Bullet In The Head
1991 종횡사해
縱橫四海
O O Once a Thief
1992 첩혈속집[37]
辣手神探
O O Hard Boiled
1993 하드 타겟
Hard Target
O
1996 브로큰 애로우
Broken Arrow
O
1997 페이스 오프
Face/Off
O
2000 미션 임파서블 2
Mission: Impossible 2
O
2002 윈드토커
Windtalkers
O O
2003 페이첵
Paycheck
O O
2008
2009
적벽대전
赤壁
O O O Red Cliff
2010 검우강호
劍雨江湖
O O Reign of Assassins
2014 태평륜
太平輪
O O The Crossing
2015 태평륜 피안
太平輪 彼岸
O O The Crossing 2
2017 맨헌트
Manhunt
O
2024 사일런트 나이트
Silent Night
O
2024 킬러[38]
The Killer
O

6. 수상경력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7년 제 6회 홍콩금상장영화제 작품상 영웅본색
1990년 제 9회 홍콩금상장영화제 감독상 첩혈쌍웅
1991년 제 10회 홍콩금상장영화제 편집상 첩혈가두
1993년 제 12회 홍콩금상장영화제 편집상 첩혈속집
1998년 제 23회 새턴상 최우수 감독상 페이스 오프
2010년 제 4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2009년 최고 흥행한 아시아 영화감독상 -

7. 여담


[1] 표준 중국어로는 우위썬(Wú Yǔsēn),광동어로는 응위쌈(Ng4 Jyu5 sam1)이라고 발음한다.[2]중국 광둥성 광저우시.[3] <취권>에서 사범으로 유명한 배우이다. 한국에서는 영웅본색 2의 용사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4]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5] 오우삼도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까지 매년 2편씩 감독했다.[6] 이수현, 강대위 주연, 주성치 조연의 의담군영은 흥행에 실패했다. 이 영화는 홍콩 영화 감독 조합이 오우삼의 스승인 장철을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 만들려던 영화이다. 오우삼이 60%, 장철의 또다른 제자인 오마[41]가 40%를 감독하고, 장철과 서극이 프로듀서를 맡았는데, 여러 감독이 맡아서 그런지 영화가 산으로 갔다. 좋게 봐야 영웅본색 아류작이다.[7] 서극은 당시에 감독으로서도 커리어가 아주 좋았다.[8] 두 편 모두 베트남 전쟁이 배경[9] 종횡사해 홍보차 한국에 내한하기도 했다.[10] 샘 레이미가 프로듀서로 참여하였다.[11] 다만 감옥신 같은 것을 보면 원래 대본의 SF적 요소가 남아 있다.[12] 특히 한국에서는 중국판 150분보다 16분 가량 잘린 134분 정도였다.[13] 보통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제작비의 2배다.[14] 남주가 일반인 속에 숨어 살려고 수술을 한건데 그렇게 바꾼 얼굴이 무려 정우성이라는 심각한(...) 개연성 오류가 있다.[15] 1949년 1월 27일 중국에서 발생한 해난 사고이다. 여객선 태평륜이 상하이에서 지룽 시를 향해 야간 항해 중 침몰했는데 태평륜에 타고 있던 1000명이 사망했다. 국공내전 여파로 중국 내부에서 제대로 구조 대응도 하지 않아서 오스트레일리아 군함이 도와 34명을 구조했으며, 생존자는 겨우 50명이었다.[16]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17] 다만 <첩혈속집>의 잠입경관으로 킬러노릇을 하는 아랑은 살아남는다. 이것도 오우삼이 죽는 결말로 하려다가 마지막에 살아남는 것으로 바꾼 듯.[18] 재미있는 점은 오우삼처럼 강한 폭력성의 느와르 영화를 내놓는 박훈정 감독도 평화주의자이며, 피를 싫어한다고 밝혔다. 정작 그런 감독들이 다른 감독들보다 더 폭력적이고 잔인하게 찍는다는 점은 아이러니...[19] 주로 베레타[20] 적벽대전에선 쌍검으로 나온다.[21] 의외로 영웅본색에서는 무한탄창 같이 쌍권총을 막 갈겨대지만 총알 수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총을 버리고 미리 숨겨둔 다른 총을 꺼내 쏘거나 장전을 하는 장면도 분명 제대로 있다. 문제는 후속작이 진행될수록 무한탄창이 된다는 점⋯.[22] 헐리우드의 폭력미학의 거장인 "샘 페킨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23] 루터교회[24] 이병헌, 안성기는 아시아 배우로 한정해서 최초이다.[25] 미국을 배경으로 타겟을 제거하는 오프닝 장면 한정.[26] 단, 종파는 마틴 스콜세지가톨릭이고 오우삼은 개신교 하위종파인 루터교 신자로 꽤 차이가 있다.[27] 영웅본색에서 주인공이 출소한 후 취직하러 찾아간 곳이 택시 회사다.[28] 한국에서 올로케된 영화. 홍콩배우 전준, 황가달, 그리고 한국배우 김창숙, 우연정, 이대엽 등이 출연한다.[29]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 80년대에 MBC로 더빙 방영했으며 한국 배우 조춘도 악역 부하 3인조 중 하나로 출연한다. 감독 스스로도 조연으로 출연을 한다.[30] 옴니버스 영화[31] 세경문화영상에서 비디오로 냈는데 표지 어디를 봐도 감독에 대한 홍보 문구가 없다. 떡하니 오우삼 감독이라는 것만 나와있다.[32] 원래 촬영은 1983년에 다 했으나 추후의 사정과 영웅본색의 성공으로 개봉한 작품. 한국에서는 1984년에 '구사일생'이란 이름의 반공영화로 개봉했다. 하지만 1989년 서진통상 및 1992년 영성비디오에서 낸 비디오 제목은 그대로 '영웅무루'. 원표가 주연인 영화 <파우>에서 숙부로 나오고 여러 조연 지존무상에서 유덕화 손등을 칼로 찍던 악역으로 많이 나온 배우 고웅이 주연이며 영환도사 임정영이 악역으로 나오고 이혜숙의 이름도 오프닝 크레딧에 올라와 있다.[33] 파일:external/oldcine.co.kr/oldcine_435.jpg[34] 영웅본색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팬들의 호응도 상, 어쩔 수 없이 주윤발을 쌍둥이 동생 설정으로 부활.[35] 오우삼 스타일의 완성작이다.[36] 한국에서는 1990년 개봉했다. 장철 감독을 제작자로 앉혀놓고 그 밑에서 영화를 찍고 기술을 배운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장철을 도와주고자 만든 작품이다. 주성치가 진지하게 나오며, 오우삼과 천녀유혼의 연적하로 유명한 오마가 공동으로 감독을 맡았는데, 오마 역시 장철의 조감독 출신이었다.[37] 원제는 날수신탐(辣手神探)인데 한국 수입사가 멋대로 첩혈쌍웅의 속편인 양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흥행은 별로였지만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다.[38] 첩혈쌍웅 리메이크.[39] 영웅본색, 영웅본색 2, 첩혈쌍웅, 첩혈속집, 종횡사해[40] 두 영상의 좋아요:싫어요 비율만 봐도 반응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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