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Paul Schrader 폴 슈레이더 | |
본명 | 폴 조셉 슈레이더 Paul Joseph Schrader |
출생 | 1946년 7월 22일 ([age(1946-07-22)]세) |
미국 미시간 주 그랜드 래피즈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캘빈 칼리지 학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석사 미국영화연구소 콘서바토리 (AFI) 석사 |
가족 | 배우자 메리 베스 허트 형 레너드 슈레이더 |
신체 | 173cm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
데뷔 | 1974년 영화 '야쿠자' 각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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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 평론가 출신 각본가, 영화 감독.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의 각본가로 유명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브라이언 드 팔마 등의 유명감독들[1]을 배출한 미국 영화 학교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생애
상당히 특이한 경력으로 영화계에 입성한 사람이다. 지독하게 엄격한 칼뱅파 개혁교회 집안 출신으로 열일곱 살 때까지 영화 한 편 보지 못한 채 자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UCLA에서 평론가 폴린 카엘을 스승 삼아 평론을 시작했고, 명문 영화학교인AFI를 거쳐 영화 감독이 되었다고. 이 폴린 카엘이라는 인물이 박학다식하면서도 독설로 유명한 평론가였는데[2], 제자인 슈레이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평론가로 유명하며, 미국 영화 평론/ 연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6살에 <영화의 초월적 스타일: 오즈, 브레송, 드레이어>라는 뛰어난 영화연구서를 펴내, 미국 현지에서는 오즈 야스지로, 로베르 브레송,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소개한 평론가로 유명하다. 종종 비판을 받긴 했지만, 그 감식안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기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3번째로 쓴 시나리오 <야쿠자>가 워너 브라더스에 35만 달러라는 고가로 팔려나가 시드니 폴락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의 각본을 맡으면서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후 1978년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의 타락한 노동조합을 다룬 <블루 컬러>라는 범죄 코미디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자신만의 좀 더 과격한 버전으로 택시 드라이버를 재해석한 <하드코어>, 리처드 기어가 남창으로 등장한 <아메리칸 지골로>, 표범인간들이 등장하는 에로틱 호러 <캣 피플> 같은 영화들을 통해 느리고 집요한 심리 연출 솜씨를 높이 평가 받았으며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다.
일본의 탐미주의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정신세계를 탐구한 1985년작 전기영화 미시마 - 그의 인생은 슈레이더의 왕성한 지적 탐구욕과 실험정신이 극에 달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라이트 오브 데이>, <베니스의 열정>, <라이트 슬리퍼> 같은 작품 목록을 이어오다 1998년작 <어플릭션>에서 또 한번 대대적인 비평적 찬사를 얻었다.
다만 1990년대 이후부터는 영화 감독일이 잘 안 풀렸지만, 2017년에 감독, 각본을 맡은 퍼스트 리폼드로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3. 작품 특징
지독할 정도로 결벽증적인 종교적인 윤리관과 반대로 죄악과 쾌락으로 넘쳐나는 세속 간의 갈등이 주요 테마이며, 과격하고 기괴한 표현을 쓰는 경향이 있다. 전반적으로 영화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꾸준하게 탐구하는 탓에 몇몇 영화를 제외하면 흥행은 잘 안 되었지만, 평단에서는 높은 지지를 받는 감독이다.4. 작품 목록
4.1. 장편 서사 영화
<rowcolor=#fff> 년도 | 제목 | 연출 | 각본 | 제작 | 비고 |
1974 | 야쿠자[3] | O | 시드니 폴락 감독작 | ||
1976 | 택시 드라이버 | O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작 | ||
1976 | 강박관념 | O |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작 | ||
1977 | 롤링 썬더 | O | 존 플린 감독작 | ||
1978 | 블루 칼라 | O | O | 감독 데뷔작 | |
1979 | 하드코어[4] | O | O | ||
1979 | 올드 보이프렌즈 | O | O | ||
1980 | 아메리칸 지골로 | O | O | 리처드 기어 주연 | |
1980 | 분노의 주먹 | O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작 | ||
1982 | 캣 피플 | O | O | 동명의 42년작 영화의 리메이크 | |
1985 | 미시마 - 그의 인생 | O | O | 미시마 유키오 전기영화 | |
1986 | 모스키토 코스트 | O | 피터 위어 감독작 | ||
1987 | 라이트 오브 데이[5] | O | O | 마이클 J. 폭스 주연 | |
1980 |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 O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작 | ||
1988 | 패티 허스트 | O | |||
1990 | 베니스의 열정 | O | |||
1992 | 라이트 슬리퍼 | O | O | ||
1994 | 마녀 사냥 | O | TV 영화 | ||
1996 | 시티 홀 | O | 해롤드 벡커 감독작 | ||
1997 | 터치 | O | O | ||
1997 | 어플릭션 | O | O | ||
1999 | 포에버 마인 | O | O | ||
1999 | 비상 근무 | O |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작 | ||
2002 | 오토 포커스 | O | |||
2005 | 도미니언: 프리퀄 투 더 엑소시스트 | O | 엑소시스트의 프리퀄. | ||
2007 | 워커 | O | O | ||
2008 | 애덤 레져렉티드 | O | |||
2013 | 트러블메이커 | O | |||
2014 | 다잉 오브 라이트 | O | O | ||
2015 | 제수위트 | O | |||
2016 | 먹거나 먹히거나 | O | |||
2017 | 퍼스트 리폼드 | O | O | ||
2017 | 다크 | O | O | ||
2021 | 카드 카운터 | O | O | 제78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 |
2022 | 마스터 가드너 | O | O |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비경쟁 부문 | |
2024 | 오, 캐나다 | O | O | 제7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
4.2. 다큐멘터리 영화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연출 | 출연 | 제작 | |||
1990 | 프레스턴 스터제스 | O | |||
1995 | Untitled: New Blue | O | 단편 | ||
2011 | 디즈 어메이징 샤도우 | O | |||
2013 | Venice 70: Future Reloaded | O | |||
2018 | 왓 쉬 세드: 아트 오브 폴린 카엘 | O |
4.3. 단편 영화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연출 | 각본 | 제작 | |||
1985 | Bob Dylan: Tight Connection to My Heart - Has Anybody Seen My Love | O |
5. 기타
- 형 레너드 슈레이더도 각본가 겸 감독이었는데, 일본 여성과 결혼해 일본을 자주 방문했으며, 남자는 괴로워, 야쿠자, 태양을 훔친 사나이 같은 일본 영화 각본을 쓰기도 했다. 와패니즈 성향이 있던 형제라서 함께 미시마 유키오 전기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2006년에 동생보다 먼저 병으로 타계했다.
- 이 형제가 시드니 폴락의 야쿠자 각본을 쓸 당시의 일화가 상당히 유명하다. 아직 무명이던 시절 레너드 슈레이더는 일본에 시간 강사로 갔다.[6] 하지만 당시 전공투 운동으로 대학이 휴교하는 바람에 술집에서 죽치다가 야쿠자랑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때 타카쿠라 켄의 임협물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레너드는 비자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와서 동생에게 경험담을 들려 주면서 각본을 쓰자고 설득했고 결국 둘은 야쿠자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 과정이 엄청난 기행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각본 마무리 단계에서는 "죄악감이 부족하다!"며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탕진을 해서 빈털터리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형제가 완성한 "브루스 리와 사무라이, 야쿠자물이 섞인 영화 각본"이 팔려서 영화 야쿠자로 각색되었다. (출처: 피터 비스킨드의 Easy Riders, Raging Bulls)
- 제 37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 기가 세고 괴팍한 성격이다. 데뷔작인 블루 칼라에서 하비 카이텔과 리처드 프라이어, 야펫 코토랑 서로 자주 싸워서[7] 감독을 그만두려고 했다.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당시 하비 와인스틴을 옹호했던 적도 있으며, 카드 카운터 촬영 도중 코로나19에 감염된 보조 배우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자 그깟 코로나 때문에 촬영을 미뤄야 하냐는 발언을 해서 비판을 받았다. 이외 기행으로도 유명한데, 촬영 도중 노출을 거부하는 여자 배우를 격려하기 위해 자신이 벗었다는 황당한 성희롱 에피소드가 있으며, 에세머 경력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활발히 하는 편인데, 거기서도 물의를 일으킬 글을 올리다 보니[8] 미국에서는 페인낭 꼰대 이미지가 강하다. 영미권에서 씨네필 꼰대하면 자주 소환되는 인물이다. 동료 감독들이나 영화에도 신랄하게 까는 발언을 하다보니 [9] 중후기부터 힘들게 영화를 만드는 것과 겹쳐서 생각보다 인망이 없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종종 나온다.
6. 외부 링크
[1] 이 5명은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사이이다. 5명이서 같이 찍힌 사진도 종종 찾아볼 수 있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할 때도 이들이 시상자로 나왔을 정도.[2]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도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비평가였다. 시민 케인의 명성은 감독 오슨 웰스가 아닌 각본가 허먼 J. 맨키비츠에게 공이 있다고 주장하는 <허먼 J. 맨키비츠>라는 두꺼운 책을 저술한 바 있다.[3] 국내 제목은 암흑가의 결투.[4] 국내에는 vhs를 통해 금지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5] 국내에는 사랑의 락밴드라는 제목으로 수입.[6] 슈레이더 집안이 워낙 엄격해서 도피성에 가까웠다고 한다.[7] 특히 프라이어랑 갈등이 심했는데, 프라이어가 총을 들고 윽박지를 정도였다고 한다.[8] 당장 코로나19 발언도 페이스북에서 했다.[9] 사실 영미권 비평계는 한국보다 겉치례적인 성향이 적고 정면 대결식으로 신랄하게 까는 경향이 있다. 슈레이더는 심지어 독설로 유명한 폴린 카엘을 스승을 뒀다보니 이런 까 성향이 강한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