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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3-08 13:17:10

양심적 병역거부

良心的兵役拒否 Conscientious Objection(CO)

1. 정의2. 양심적 병역거부의 종류3. 역사4. 논란5.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6. 북한의 양심적 병역 거부7. 해외의 양심적 병역 거부 현황8. 병역거부자
8.1. 한국8.2. 일본8.3. 미국8.4. 영국
9.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난민
9.1. 난민으로 받아준 나라들9.2. 난민 신청 가이드라인9.3. 관련 사이트
10. 관련 문서

1. 정의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군 복무[1]를 거부하는 행위. 영문 용어인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의 번역어이다.[2]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대한민국 헌법 제19조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에 입대하는 것에 대하여, 또는 병역의 의무 전반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하는 행위를 이른다.

2. 양심적 병역거부의 종류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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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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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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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북한의 양심적 병역 거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 자체가 발을 붙일 수 없는 토양 탓인지 신앙에 따른 병역거부 사례가 발생한 경우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그 외 병역 거부자들에 대해서는 형법으로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을 적용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폐쇄성 탓에 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한국전쟁 직전에는 징집된 재림교회 교인들이 집총을 거부하자 귀가조치 시킨 바가 있다고 한다. 전쟁 발발 후 이들 중 일부는 재징집되었는데, 결국 비전투 병과에 복무시켰다고 한다.# 사실 당시에는 남북 할 것 없이 군사주의적 성향도 약했고 통제도 잘 안 되고 해서 오히려 현대보다 병역거부에 더 관대했던 시대였다.

7. 해외의 양심적 병역 거부 현황

현재 징집 거부에 따른 처벌 기록이 확인되는 국가는 터키[6] 등 8개국, 미확인된 국가는 북한, 이집트, 수단 등 이다.

그런데 한국같이 징병을 엄격하게 적용해 20대 남성 대부분을 입영시키는 나라는 드물다. 터키는 대학생에게 복무기간을 줄여 주고, 해외에 나가서 3년 이상 생활하거나 돈을 내면 병역을 면제해준다.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체감으로 다가오는 징병제의 임팩트는 한국과 다르다.[7] 터키가 인구의 평균연령이 매우 젊으면서 고학력인구가 적어 이런 혜택을 더 잘 준다. 최근까지 고위공직자 병역면제 관련 사안에 자주 등장하는, 유학가서 버티다 고령으로 면제받는 테크트리는, 과거 해외유학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라 해당자가 적어서 그렇지 유학생 중에서는 상당히 흔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나치 독일에서도 있었던 일로, 당시 병역거부자들은 '국방력 파괴(Wehrkraftzersetzung)'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갔었다. 나치 독일에서 병역거부는 최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으며 1만 명 이상의 병역거부자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이 중 상당수가 사망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중 31개국은 민간대체복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대규모 감군[8]이 시행되면서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년월의 군복무를 거부할 경우 1년 2개월 동안의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독일은 1949년부터 헌법에 병역거부권이 명시되었으며 1960년부터 대체복무법이 시행되었다.[9] 핀란드에서는 6개월의 군복무를 거부할 경우 2배인 1년 동안 대체복무를 해야 한다.

이러한 징병제 국가들에서 징병을 경험한 사람들은 병역거부자들의 문제를 "나와 상관없는 문제"로 취급한다. 이는 비단 국가 전반의 지배적인 분위기뿐만 아니라, 그만큼 국가에서 충분한 대우와 보상을 해주기 때문이다. 허울뿐인 군 가산점 제도 같은 것 말고, 실제로 병역을 이행하는 인원들에게는 급여뿐만 아니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제도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어있다. 해외 징병제 국가 출신 예비역에게 한국에선 병역거부자들은 무조건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경악한다.

한국과 함께 전세계에서 가장 징병제를 강하게 행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에 한해서 완전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한다.[10] 남성도 종교적 이유로 징집되지 않을 수 있다. 2013년 기준 전체 징병대상자 중 26%가 군대에 가지 않았는데, 이 중 절반인 13.5%는 종교적 이유였다. 또한 침공이나 팔레스타인 관련 전투를 거부하는 '선택적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과거 중동전쟁 때는 일부 거부자들이 수감되기도 했으나 상당한 병역거부운동이 일어난 이후 처벌을 받지 않고 다른 임무에 종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세계적으로 징병제는 오히려 권리의 확대를 가져 왔다. 이것은 국가주의의 확산과 국민국가 성립에 중요한 요소인데, 대부분의 국가들은 징병을 시행한 일종의 대가로서 민주주의의 바깥에 있던 노동자, 청년 등 피지배계층에게 어쩔 수 없이 참정권 확대나 의회 구성 등 보다 나은 조건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11] 1차 세계대전은 소위 말하는 의회 민주주의의 확대를 가져왔고, 2차 세계대전은 전체주의와 압제로부터의 해방 및 식민지 해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서구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권이란 전쟁 동원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 그리고 국가와의 협상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제도화되면서 '권리'와 '의무'의 평화로운 교환처럼 포장되었지만, 그 바탕에는 시민들을 군대에 끌고 가려는 국가의 탄압과, 이에 대한 시민들의 치열한 저항이 깔려있던 것이다[12]. 그런데 한국에서는 시민들의 의견 같은 것은 애초에 없던 상태에서 거의 건국 직후부터 징병제가 도입되는 바람에, 징병제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생겼다[13]. 그러나 이와 별개로 그 악명높은 군사독재 시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DoDEA처럼 교육청을 국방부에 편입시키고자 하거나, 국방부와 교육부를 합쳐 국방교육부를 설립한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제출되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14].

사실 한국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 군대를 '안 가는 것'보다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컸다. 국민개병제의 원형이라 불리는 프랑스프랑스 혁명기에 30만명의 징병령이 내려진 후, 광범위한 농민들의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방데 전쟁 참조). 특히나 개인의 자유를 숭상하는 영국1차 세계대전이 될 때까지 징병제의 도입을 미뤘고 전쟁이 끝나자 바로 폐지되었다.[15] 일본도 메이지 유신 후 징병제가 시행되었으나, 몇몇 지방에서는 반발로 병무청이 불타기도 했고, 징병 대상에 포함된 젊은이들이 당시 신 개척지였던 홋카이도로 도망가는 바람에[16] 지방 모병관들이 곤란한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신이 살던 집 옆에 개집같은 움막을 하나 짓고, 그 집을 면사무소에 등기 등록하여 자신을 호주로 등록시킨 뒤, "내가 이 집 장손이다. 그러므로 나는 군대에 못 간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사례도 있었다.

8. 병역거부자

8.1. 한국

8.2. 일본

8.3. 미국

8.4. 영국

9.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난민

9.1. 난민으로 받아준 나라들

독일,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에서 한국인 병역거부자들을 난민으로 받아주었다. 이들 국가는 일정한 난민 심사를 거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경우를 받아준다.

한국에서 유명한 사례는 캐나다에서 병역거부 난민으로 인정되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된 김경환#, 호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5개월만에 난민 인정을 받은 김인수# 프랑스 정부에 망명이 인정된 이예다#가 있다. 기사에 따르면 세 사람 모두 망명 신청 때 각국의 정부는 병역을 수행 중인 한국 장병들의 생활 수준뿐만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탄압에 대해서도 크게 놀랐으며 이는 망명을 받아들인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에 성공한 사례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 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국제법에 의해 난민들의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보호되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밝히지 않는 이상 이를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성소수자 병역거부자들의 경우, 국내와의 인연을 끊고 새 삶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난민으로 정착한 뒤 아예 이름을 바꾸고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사례는 공식적으로 현지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다.

미국에선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캐나다로 3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 징병회피자(Draft dodger)들이 이주했다. 이 사람들은 캐나다에 모여서 징병제 반대를 위한 회의와 운동을 전개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들을 모두 사면했다.

의외로 한국에도 병역거부로 인한 난민 신청자가 있다. 수단 공화국에서 전쟁 반대 활동을 하던 목사가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가 퇴짜를 맞자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 2심을 연거푸 이긴 사례가 있다. 이 소송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 난민 신청은 자국의 병역제도를 훼손하는 사례에 해당되므로 심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법원이 병역거부 행위가 정치적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때는 '박해'의 원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난민 신청의 사유로 삼았다고 하여 심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9.2. 난민 신청 가이드라인

해당 서술은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의 기사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국제적으로 난민 신청은 "인종적, 종교적, 정치적 박해 또는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국에 보호를 요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난민을 신청하기 전에 과연 자신이 현재 견지하고 있는 입장이 조건에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경우, 한국에서 병역을 거부하면 징역형을 비롯한 자유형에 처해지고, 취업 및 사회활동에서 차별을 겪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국제적 난민의 기준에 부합한다.[21][22]
무엇보다도 본인이 가고자 하는 국가를 확실히 결정해야 한다. 막연하게 한국을 떠난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이런 점에서는 난민 인정율을 따지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국내의 난민 인정자로 가장 유명한 이예다의 경우는 프랑스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 받아 난민을 인정 받았지만 2018년 현재 프랑스의 난민 인정률은 14.5%로 매우 낮은 편이다. 2016년 이후로 난민유입에 소극적이라고 비판 받고 있는 독일의 경우도 난민 인정률이 25.1%이며 곧 유럽연합을 탈퇴할 예정인 영국 조차도 난민 인정률이 29.6%다.#

게다가 유럽의 경우 더블린 조약이라는 것이 있어, 망명객이 유럽에 입국할 시,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난민을 신청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인이 어떠한 나라에 난민을 신청할지 결정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 캐나다의 경우는 난민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인도적 체류허가' 자격을 부여하여 국가에서 보호해 주기도 한다.[23][24]

가장 중요한건 본인이 생각할 떄 본인과 잘 맞을 국가가 어디인지, 본인의 사상이나 신념을 받아 줄 만한 국가가 어디일지, 본인과 문화적으로 거부감 없이 잘 맞을 국가가 어디인지 잘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1. 기본적인 서류
필수: 여권, 입영통지서 또는 병적증명서
전세계의 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동, 북아프리카의 난민들의 경우,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본인이 받고 있는 박해를 증명하는 서류 등의 제출이 기본적으로 불가능 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난민신청 시 필수적으로 서류를 제출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증언과 난민청의 문답으로 난민인정을 결정하게된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신분을 증명할수 있는 여권과, 본인이 병역대상자에 해당되는것을 증명하는 입영통지서나 병적증명서등을 지참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리고 증빙 서류 번역 후 공증은 필수다. 해당 국가에서 한국어 자료를 일일히 번역하기도 어렵거니와, 번역상 실수가 벌어지는 일도 꽤 많기 때문에(그리고 자신들의 실수를 책임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에), 본인을 증명할 서류를 번역해 가는 것이 좋다.

2. 해당국가의 인터뷰에 대한 대비
난민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인터뷰다. 난민심사의 결과는 모두 이 인터뷰에서의 답변을 기초로 결정되기 때문에 본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로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에는 인터뷰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심사관들은 병역기피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질문을 한다. 아래는 스위스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청문회에서 자주 나왔던 질문들이다. 출처는 영문 위키백과 난민 심사관들 역시 이와 유사한 질문을 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 어떻게 병역을 거부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까?
-왜 당신의 양심과 병역을 병행하지 못하십니까?
-무엇이 당신의 병역을 방해합니까?
-당신은 싸우거나, 무력을 쓰는 것을 두려워합니까?
-당신은 군대를 폐지하고자 합니까?
-"군대는 우리를 지키려고 있는거지,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신이 공격당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다른 사람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면 어떤 기분이 듭니까?
-정확히 무엇이 폭력입니까?
-무력을 쓸 바에야 차라리 피해를 감수하시겠습니까?
-당신의 신념은 무엇입니까?
-당신 자신을 평화주의자라고 보십니까?
-무엇이 당신의 생각과 감정이 옳다고 확신하게 만들었습니까?
-당신이 그토록 양심적이라면, 왜 감옥에 가지 않으셨습니까?
-건강 문제로 병역을 피할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당신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생각이십니까? 혹시, 그 평화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입니까?
-당신의 자녀들이 공격당할 때 누가 보호해줍니까?
-당신은 가족의 도덕적 가치를 따릅니까?
-어떤 책을 읽으십니까?
-당신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당신은 리더, 추종자, 외톨이 중 어디에 속하십니까?

한국인들은 평화에 대한 개념을 대부분 "북한이 없어지는 것이 평화"라고 학습받고 성장하는데, 국제적으로 평화라는 개념은 "전쟁과 무력 사용을 중지하는 것"에 더 부합한다. 남한이건 북한이건 일단 싸우지 않는것이 국제적인 기준의 평화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일반적인 한국의 보편 관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평화학 관련 논문이나 텍스트들을 어느정도 공부해 두는것이 좋다. # # # # # #

3. 처벌조항
본인이 한국에서 병역을 거부할 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처벌조항도 준비하여 번역/공증받는것이 좋다. 주로 병역법 제 88조(입영의 기피), 병역법 제 94조(국외여행 허가의무 위반)를 해당 난민 심사관에게 제출함으로서 한국의 병역거부자가 처벌받는다는 근거를 입증 할 수 있다. 병역법 제 70조(국외여행 허가에 대한 조항)와 여권법 시행령 6조(25세 이상의 미필자에 대한 여권발급 제한 조항)을 지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만일 본인이 성소수자에 해당한다면 군형법 제 92조 6(추행)을 번역/공증 받아서 지참해야 한다.참조

4. 그 외의 언론 보도자료
인터넷상에 많이 나와 있는,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에 관한 내용이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나 전쟁없는 세상같은 사회단체의 성명서, 보도자료, 자료집등을 함께 지참하고 가면 한국의 상황에 관해 설명이 쉬울 수 있다.
출국하기 전에, 최대한 목적지의 NGO를 찾아보자. 병역거부자의 경우는 해당 국가의 평화운동가들이 모여있는 단체나 반군사주의 단체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다행히도, 이 세상에는 전세계적인 반군사주의/평화운동 네트워크가 있다. War resisters' international이라는 단체가 그것인데, 20세기 초반에 창립되어 현재에 이르는 오랜 전통을 가진 국제단체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목적지에 어떤 단체들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먼저 메일을 보내고 연락을 취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난민 심사 과정에는 인터뷰가 반드시 있다. 이 때 자신의 상황과 본국의 정치적 상황이 어떠한지, 본인에 대한 박해가 어떠한 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한국어를 할줄아는 통역가를 불러주지만, 그 통역자가 얼마나 통역을 잘할지는 미지수이다. 변호사나 NGO는 이러한 부분을 지적해 불공정한 심사과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외에도 금전적인 여유가 있을 경우에는 해당 국가의 변호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것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게다가 평화주의나 병역거부에 관심이 없는 변호사가 걸리면 돈과 시간을 동시에 날릴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 현지의 NGO와 협업하는 것이 좋다. 사회단체들은 사회운동 특성상 해당 운동을 잘 알고 있는 법률가들과 잘 연결되어 있으므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난민 심사에서 탈락했을 경우, 불복하고 항소할 때에도 이러한 단체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아예 난민 신청이 완전 거절되었을 때에도, 임시 거처를 찾거나 어떻게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단체들도 있고, 미등록 이주민이나 퇴거 위기 난민을 돕는 단체들까지 있다. # #
유럽에서 난민 신청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유럽 어느 국가에서 신청하든 본인이 처음 도착한 국가로 송환된다. 또한, 난민 신청은 도착하자마자 하는 것이 좋다. 난민 신청을 하려는 국가에 도착 후 한참 지나서 난민을 신청하면 난민 심사관이 '체류기간을 늘리려는 꼼수'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렇게 절박했으면 도착하자마자 할 것이지 왜 한참이 지나서야 난민신청을 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전세계 난민 신청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으로, 자신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이 난민인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도 쉽게 통과될것이라고 생각하고 난민 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으나, 난민 신청이 통과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난민 신청이 거절된 한국의 병역거부자[25][26] 2019년 현재, 반난민 정서와 테러등의 이유로 유럽국가들이 난민을 받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난민법을 계속 개정하고 있으며 유럽의 난민 인정률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난민 사태에서 가장 통과률이 높다고 했던 시리아 난민 조차 심사에서 쉽게 통과되지 않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호주나 덴마크 등[27] 심사를 빠르게 진행하는 국가가 아닌 이상 난민 심사 결과까지 평균적으로 1~2년정도 소요되고, 최악의 경우 5~6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난민 심사 중에 해당 국가를 잠시 떠났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캐나다의 경우는 잠시 출국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영국의 경우 불가능하다. 난민 불인정으로 강제출국,[28] 재심재판을 진행중인 경우도 난민 인정자 이상으로 있을수 있다는 것을 염두 해두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병역법으로 인해 한국에는 돌아오기 힘들어진다는 것[29] 으로 자신의 가족들과, 지인, 그리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30]

보다 구체적인 난민 신청 과정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해당 가이드라인의 출처인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에서 난민 신청에 관련된 상담을 받아주고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의 경우는 해당 단체를 참고하자.

9.3. 관련 사이트

각국의 난민 담당 사이트
시민단체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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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에 의한 징병과 선택에 의한 모병 전체.[2] 용어 '양심'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양심적 병역거부/논란 문서에서 자세히 다룬다.[3] 한국도 1950년대까지는 재림교회 교인들이 입영 후 집총거부를 행사했고, 당시 국방부는 이들을 위생병(현재의 의무병)이나 기타 비전투병과에 배치함으로서 배려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 오히려 당시의 방침이 더 융통성 있었는데, 박정희 정부 들어서 군사국가화가 진행되면서 막장이 된다.[4] 이 사례는 21세기에 들어와 핵소 고지라는 영화로 다루어졌으며, 양심적 집총거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5] 출처: <<Elon Musk: Tesla, SpaceX, and the Quest for a Fantastic Future>>[6] 터키의 경우 국방세(한화로 환산하면 800만원 정도 된다.)를 내면 병역 대상에서 제외됨에도 불구하고 병역기피자가 있다. 가난한데 군복무는 하기 싫은 사람들이다.[7] 한국에도 과거에 단기학보병이라고 해서 대학생 우대가 있었다가 군사정권 때 없어졌다. 그 흔적으로, 한국은 지금도 대학생에게 예비군훈련 혜택을 준다.[8] 과거에는 2,000만 명의 인구로 2년 2개월의 군복무를 통해 60만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90년대 후반부터 감군을 시작해 40만 명, 현재는 30만 명 수준까지 줄어들었다.[9] 다만 원래 동원이 많지 않았으며 2011년 7월에는 아예 폐지하였다.[10] 사실 원래 여성은 양심적 사유 말고도 온갖 예외규정이 있어서 작정하면 피할 수 있다고는 한다.[11] 이를 앤서니 기든스는 "지배의 변증법"(dialectics of control)이라 부르는데, 지속적인 자원 동원을 위해서 자원 제공자의 최소한의 동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의 일정한 양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12] 참고문헌 임재성 저,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13] 한국인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 "남자는 군대 다녀와야 철든다." 같은 발언들은 군대를 교육기관처럼 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독재정권 하에서 시위는 무수히 일어났으나, 징병제를 겨냥한 시위는 없었다.[14] 미국의 DoDEA는 직역하면 '국방부 교육처'이며, 기능은 교육부와 똑같다.[15] 다만 1차대전 당시 원래 징병제를 시행 중이던 프랑스는 전쟁에서 밀리자 대상을 45세까지 확대하고 예외도 거의 두지 않는 등 징병을 심하게 강행했다. 이 때문에 대학생들까지 끌려가 전후에는 학자들이 부족해지는 등 폐해가 많았다.[16] 당시 홋카이도는 미개척지가 많아서, 홋카이도 주민은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징병 대상에서 제외되었다.[17] “나는 소수자다” 병역거부자 “국가의 부속품 아니다” 주간경향 #[18] 관심 끌려고 병역거부? 감옥을 누가 좋아한다고… 양심적 병역거부로 입감한 유윤종씨#[19] 상술되어있듯 그들의 죽음을 개죽음에 비유했는데, 강의석 본인의 의도와 100% 일치하는진 모르겠으나, 굳이 옹호하자면 개죽음 발언은 긴장, 대립 관계 속에서 양쪽 권력자들이 민중을 억압하고 이득을 챙기는 사이,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그저 난 애국자라는 사회분위기에 세뇌되어 소모품식으로 죽어가는 일반사병들의 죽음이 허무하다는거다. 물론 말 자체가 앞뒤 보충문구 없는 오해받기 딱 좋은 발언이긴 했고, 조심히 발언해도 모자랄 주제에 대해 굳이 그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대놓고 쓴 시점에서 애초에 좋은식으로 해석될수도 없었지만.[20] 애초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자 중 특히 대체복무를 주장하는 자들을 병역기피자에 분류시킨다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군대에서 복무를 하는 것만 문제가 되지, 군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수행하는 복무는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군복무는 병역의무에 포함되는 것 중에 하나이므로 이들과 서로 다르다. 게다가 이들은 기초군사훈련 때문에 병역특례를 거부하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 아나키스트 같은 경우 국가의 간섭 자체를 권위주의로 보고 신념에 따라 거부할 수도 있지만.[21] 그러나 단순 병역기피로는 해당 국가에서 난민 신청이 기각될 우려가 있다. 난민 심사를 받을 때 단순히 군복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말만 해서는 "그러면 군 복무 환경이 좋아지면 군대 갈거냐"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이런 경우 난민 신청이 기각될 위험이 높아진다. 어디까지나 난민 신청도 본인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어도 군대에 가지 않을 것이며, 이 세상 어디에서도 강압적인 군사 집단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라고 스스로 생각해 왔는지를 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평화운동/병역거부운동에서 "병역 거부"와 "병역 기피"는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보고, 인간이 자신의 자아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식이든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행동은 모두 병역 거부에 해당한다고 보지만, 각 나라의 국내 정치 문제도 있고 해서 굉장히 심도있는 심사를 위해 심층면접을 실시한다.[22] 물론 국제 평화운동에서는 병역 거부와 병역 기피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지만(자신의 자아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신념의 행동이므로), 몇 가지 어른의 사정으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병역 거부자와 병역 기피자를 상당히 깐깐하게 구분한다.[23] 하지만 캐나다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캐나다 정부는 한국을 DCO(Designated Country of Origin)#로 지목하여, 여간해서는 난민이 발생하지 않는 안정된 국가로 지정하였기 때문에, 난민으로 판정을 잘 안해주는 나라로 분류해 놓았다. 시리아 내전 이후 캐나다가 전반적으로 난민을 많이 받는 추세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난민 판정의 문턱이 높다.[24] 특히 현재의 진보적인 트뤼도 정부 이전 정권의 대법관이 병역거부 난민 문제를 아주 보수적으로 판결해 놓고 갔기 때문에 이라크 전쟁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병역을 거부하고 캐나다로 망명한 미군들 조차도 아직 난민 판정이 안 나고 있는 상태다. 베트남전을 잊었는가 캐나다여[25] 군 의문사 피해자 가족으로 군대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을 계기로 망명신청을 했다고 한다.[26] 2013~2014년 당시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 문제가 유럽으로 확산되기 이전이었고,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 이전이었기 때문에 난민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오래걸렸으며 더블린 조약 위반도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7] 문제는 덴마크도 징병제가 시행중인 국가라서 다소 불확실하다. 현재까지 병역 거부를 이유로 덴마크에 난민을 신청한 한국인은 공식 집계상으로는없고, 문제는 덴마크는 직항편이 없어서 EU에서 환승할 경우 더블린 조약 위반이 된다.[28] 강제 송환되는 경우는 드물다. 유엔 규약상 수감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 대한 본국 송환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29] 정확히 말하면 들어올 수는 있는데, 병역법 94조의 국외여행 허가의무 위반에 따라서 귀국하게 되면 검거 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병역을 기피할 목적이었는지 아닌지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한국 국적으로 포기한 사람에게 병역법을 적용 할 수 있는지에 관한 해석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30] 국가마다 차이가 있긴 한데, 난민지위로 별 사고없이 성실하게 생활하면 일정기간 후 대개 귀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으로 입국하게 될 경우 위에서 언급한대로 병역법 위반으로 입국 금지 될 가능성이 높다. 설사 무사히 입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40살까지 경제 활동이 불가능해진다. 재외 동포 자격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 # 한국은 병역을 마치지 않은 성인 남성의 국적 포기가 불가능 하며, 그러므로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한다 해도 한국 국적이 살아있다. 추노 물론 대부분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들은 아예 안 돌아올 결심을 하고 떠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31] 2016년까지는 유럽에서 난민 인정률이 가장 높았던 나라였지만 2017년에는 작년에 비해 난민 인정률이 절반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강한 국민적 여론을 통해 징병제를 폐지한 국가로써, 징병거부권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32] 난민신청자에 대한 결정이 가장 빠른 국가중 하나다. 세계적으로 난민신청 기간은 3-5년정도로 매우 길게 소요되지만, 호주의 경우는 무려 5개월도 되지 않아 난민으로 인정받은 병역거부 한국인이 있다.#[33] 다만 호주의 난민 캠프는 끔찍하기로 악명이 높다. 현지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본인도 난민 캠프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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