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틀:국기| ]][[틀:국기| ]]대일본제국의 중앙성청 |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f2023><tablebgcolor=#fff,#1f2023> | 철도성 [ruby(鐵道省, ruby=てつどうしょう)] Ministry of Railways |
<colbgcolor=#000><colcolor=#fff> 설립 | 1920년 5월 15일 |
폐지 | 1943년 11월 1일 |
대신 | 모토다 하지메 (초대) 핫타 요시아키 (말대) |
전신 | 철도원(내각소속부국) |
후신 | 국토교통성 철도국[1], JR그룹[2] |
소재지 | 도쿄부 도쿄시 고지마치구 마루노우치 1정목 6-5[3] (東京府東京市麴町區丸の內一丁目6番5號) |
업종명 | 철도, 운송업[4] |
내부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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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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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fix]
1. 개요
일본 제국의 철도 행정 및 업무를 소관한 관청. 현재로 치면 국토교통성 철도국, JR그룹의 전신에 해당된다, 1920년부터 1943년까지 존재했다. 본 문서에서는 편의상 철도성 외에도 그 이전에 일본의 철도 관리, 행정을 담담하던 제국철도청(帝國鐵道廳), 철도원(鐵道院) 등을 모두 서술한다.2. 연혁
1870년 8월 13일, 민부·대장성(民部 · 大藏省)[5]에 철도괘(鐵道掛)를 설치했고, 민부·대장성이 폐지되어 대장성이 분리된 이후 1877년에는 공부성 철도국으로 개편되었고, 1885년 내각제가 출범하면서 공부성이 폐지되자 철도국은 내각 직속이 되었다. 1890년에는 내무성의 외국(外局)인 철도청으로 개조(改組)되었으나 1892년에는 체신성 철도청이 되었으며 이듬해 내부부국화되어 체신성 철도국이 되었다. 게다가 현업부문이 1897년에 체신성 철도작업국으로 분리되어 철도국은 감독행정만을 맡게 되었다.잇달은 철도행정의 소관변경, 감독조직과 현업조직의 분리에 따른 혼란은 철도국유화 문제를 계기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1908년 12월 5일, 철도국과 철도청을 통합한 철도원을 만들고 다시 내각의 직속기관으로 만들었다.
이후 교통 운수 시책의 확충을 내건 입헌정우회의 하라 내각에 의해 1920년 철도사업의 권한강화와 독립을 목표로 내각 직속 철도원을 철도성으로 승격되었고, 1920년 5월 15일 『철도성 관제(鐵道省官制)』[6](다이쇼 9년 5월 15일 칙령 144호)에 따라 7내부부국[7]에 내각철도원 시절 철도관리국을 개편한 철도국, 교습소, 개량·건설사무소, 철도병원을 둔 형태로 철도성이 정식으로 설치되었으며, 초대 철도대신으로 모토다 하지메[8]가 임명되었다.
설립 초기에는 정우회에 의한 철도성 간부의 대량 경질 등, 정당 내각[9]과의 사이에서 철도 부설 이권과 관련된 혼란으로 사회의 강한 비판을 받았으나, 일본의 국내 경제가 발전하면서 교통 수요가 증대해, 결과적으로 쇼와 시대 초기에 걸쳐 국철·사철을 포함한 육상 교통 근대화 추진의 모태가 되었다.
1921년에는 구미(歐美) 등 타 제국주의 열강에 비해 낙후된 면이 지적되던 전철화를 추진하기 위해 외국(外局)으로 전기국(電氣局)[10]을, 1930년 4월 18일 국제적 여객의 수요를 환기하고자 칙령 제83호 국제관광국 관제(勅令83號國際觀光局官制)에 근거하여 국제관광국(國際觀光局)을 외국(外局)으로 설치했다. 이 밖에 1928년에는 체신성에서 취급하던 자동차 등 다른 육상 운수 부문도 관할하게 되었다. 다만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이하 '만철')의 철도 사업에 관한 감독권은 1929년에 식민지 업무를 관할하는 척무성으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만주사변 등으로 점차 전시색이 강해지면서, 철도성의 조직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35년에는 전국의 운수위원회(運輸委員會)가 군부가 참여한 철도국 별 『교통협의회(交通協議會)』로 개편되면서 각 지방의 육상 수송 통제 조직으로 바뀌었다. 1938년에는 만주국 철도총국, 조선총독부 철도국과 관련 철도 회사 및 선박 회사와 함께 『내선만지 화물 연락 운송 규정』을 제정하여 한반도 및 대륙과의 수송 체제 강화를 도모하였다. 또한 1941년에는 전시체제 강화에 따라 수요품국을 설치하였다.
1942년에는 정부의 행정 간소화 방침에 기초한 관청 기구 정비를 앞두고 대규모 조직 통합을 실시했다. 본성 기구를 총무·요원·감리·업무·시설·자재의 6국 체제로 축소한 것 외에 지방 조직에 대해서도 대폭 변경했다. 3월 14일에는 칙령 제158호(昭和17年3月14日勅令第158号) 철도기술연구소 관제(鐵道技術硏究所官制)에 의해 철도기술연구소[11]가 설립되었다.
이후 1943년 11월 1일 전시 체제에 따른 중앙성청 통폐합의 일환으로, 체신성과 합병하여 운수통신성으로 개편되었다.
3. 역대 대신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철도대신 (1920~1943) | ||||
초대 모토다 하지메 | 2대 오키 엔키치 | 3대 야마노우치 카즈지 | 4대 코마츠 켄지로 | ||
5대 센고쿠 미츠기 | 6대 이노우에 타다시로 | 7대 오가와 헤이키치 | 8대 에기 타스쿠 | ||
8대 에기 타스쿠 | 9대 하라 슈지로 | 10대 도코나미 다케지로 | 11대 미츠치 추조 | ||
12대 우치다 노부야 | 13대 마에다 요네조 | 14대 고도 타쿠오 | 15대 나카지마 치쿠헤이 | 16대 마에다 요네조 | |
17대 나가이 류타로 | 18대 나가타 히데지로 | 19대 마츠노 츠루헤이 | 20대 무라타 쇼조 | 21대 오가와 고타로 | |
22대 무라타 쇼조 | 23대 데라시마 겐 | 24대 핫타 요시아키 | |||
폐지 | }}}}}}}}} |
[1] 운수통신성 철도총국 → 운수성 철도총국 → 운수성 철도감독국을 거쳐 2001년 지금의 조직으로 재편되었다.[2] 이쪽은 운수통신성 철도총국 → 운수성 철도총국 → 일본국유철도(JNR)을 거쳐 1987년 국철을 민영화하면서 지금의 JR그룹이 되었다.[3] 現 도쿄도 치요다구 마루노우치 1정목 6-5(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一丁目6番5号), 이후 운수통신성 철도총국 - 운수성 철도총국 - 일본국유철도 본청사를 거쳐 도쿄철도관리국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국철 민영화로 JR그룹이 발족할때 JR 동일본이 한동안 이곳에 본사를 두기도 했다. 해당 빌딩은 1997년 JR 동일본이 요요기로 이전하면서 부지가 매각되어 철거되었으며 현재는 마루노우치 오아조 빌딩이 들어서 있다.[4] 1928년, 체신성에서 자동차 등 육상 운수 업무 일부를 이관받았다.[5] 이 당시에 민부성과 대장성을 합병하여 직책을 같이 썼다.[6] 현대 일본의 ~~성 설치법에 해당하는 법령으로, 한국의 ○○부 직제와 비슷하다.[7] 대신관방, 감독국, 운수국, 건설국, 공무국, 공작국, 경리국[8] 마쓰노 요리히사 중의원 의원의 외증조부이다.[9] 당시 하라 내각은 일본에서 의원내각제가 제대로 기능한 첫 정당 내각으로, 이전까지의 내각은 번벌 원로(元老) 세력의 입김이 막강한 번벌 내각이었다.[10] 체신성 전기국과는 이름만 같고 서로 다르다.[11] 現 JR 총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