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0:43:16

한영우

파일:75112a33-dc48-499a-a44e-96550dcedba6.jpg

韓永愚
1938년 7월 12일 ~ 2023년 2월 15일 (향년 84세)

1. 개요2. 생애3. 저서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역사학자. 본관은 청주(淸州)[1].

2. 생애

1938년 7월 12일 충청남도 서산군(현 서산시) 해미면에서 아버지 한희동(韓禧東, 1911. 6. 22 ~ 1943. 5. 1)과 어머니 풍천 임씨(豊川 任氏, 1909. 6. 23 ~ 1987. 12. 24)[2]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2대조 한효순(韓孝純, 1543. 7. 11 ~ 1621. 11. 15)은 광해군좌의정을 지냈으나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데에 가담한 죄로 인조반정 직후 관직이 추탈되었다. 이 때문에 그 후손들은 충청도 서산군으로 낙향해 은거하면서 살았고, 10대조 한정일(韓挺一, 1610. 1. 6 ~ 1653. 5. 22)이 참봉을 지내고 7대조 한종태(韓宗泰, 1681 ~ ?. 6. 15)가 1723년(경종 3) 식년 생원시에 3등 32위로 입격한 뒤로는 관직에 진출하거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한영우는 어려서 서당 훈장이었던 큰할아버지 한태원(韓台源, 1870. 10. 12 ~ 1950. 6. 10) 밑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조부 한국원(韓國源, 1884. 3. 16 ~ 1946. 9. 2) 아래에서 농사일을 배우며 성장했다. 이후 온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7년 서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여 1962년 졸업했다. 1967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학위[3], 1981년 동 대학원에서 국사학 박사 학위[4]를 취득했다. 조선시대 연구와 근대사 연구에 업적을 남긴 학자로 평가 받고 있다.

1967년 12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2008년까지는 문화재청 사적사료연구위원장 겸 사적분과위원을 겸임하였다. 말년에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 이화여자대학교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이화학술원장 등으로 재직하였다.

2023년 2월 15일 오전 숙환으로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4세#

3. 저서

4. 여담


[1] 문정공파(文靖公派)-판관공계(判官公系) 30세 ○우(愚) ○澤(택) ○錫(석)항렬.[2] 임항준(任恒準)의 딸이다.[3] 석사 학위 논문 : 朝鮮初期의 功臣田(조선초기의 공신전).[4] 박사 학위 논문 : 朝鮮前期 史學의 硏究(조선전기 사학의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