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무협소설 한백무림서의 등장인물. 허공은 도명이며, 무당파 도인이 되기 전 속명은 우도(宇道)이다. 무당파 최고수. 천하오대고수의 일원이며 명경의 사부. 원말 장삼풍 진인에게 무맥(武脈)을 이어받았다.2. 상세
설정상 대단하지만 정작 작중 묘사로는 미묘한 모습을 보여주는 한백무림서의 구파에서 팔황의 수좌들과도 비슷한 존재감을 지닌 구파 최고수 중 하나다.무공만이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다. 사패 시절의 준 마인급 망나니의 아들에, 태어나자마자 상단전이 강제로 뚫려서 귀신들려 죽을지도 몰랐던 명경을 올바른 사람으로 키워냈다. 명경도 아버지로 대한다.
같은 장삼풍의 제자인 허상과는 그럭저럭 사이가 좋지만 니트 허도진인과는 사이가 상당히 안 좋다. 허도 등 구파의 은거기인들은 굳이 세상사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는데, 허공은 힘이 주어졌으면 필요한 곳에 써야 한다고 믿으며 직접적으로 세상사에 나서는 스타일이다.
젊은 시절엔 소연신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구파의 정통 성골인 허공이라 방계인 소연신과는 은근히 알력이 있었던 듯. 지금은 둘 사이에 별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천잠비룡포에서도 소연신에게 대차게 까였다. 장삼풍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 허공과는 젊은 시절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 그래도 이제는 둘 다 늙어서 만나면 허허허 웃으면서 차를 한 잔 마실거라고 한백림이 말하였다.
3. 작중 행적
3.1. 무당마검
종군전 명경의 태극혜검을 보고선 살기가 짙다고 타박하며 첫등장. 그 사부의 그 제자인지라 명경이나 허공이나 그렇게 말이 많지는 않다. 젊은 시절 챠이와 교분을 나눈 적이 있는지, 명경에게 챠이와는 맞서지 말라는 충고를 건넸다.몽고에서 챠이가 명경을 살려보내는데, 이는 허공이 챠이의 '친구이자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몽고 원정에서 돌아온 명경이 금파검을 선보이자 감탄했고, 곽준이 만든 진무십이권을 보고 아까운 인재가 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후 명경과 함께 금파검을 가다듬고 진무십이권을 진무십삼권으로 개편한다.
장강의 교룡 승천 이후 중원 각지에 출몰하는 귀물이나 마물을 퇴치하기 위해 하산한다. 역병을 일으키는 귀물을 막는 등 부수적인 피해까지 계산하면 구한 사람들이 수천~수만은 된다고.
그러다가 성혈교의 승뢰와 붙었고, 승뢰를 박살냈지만 이후 성혈교의 이사도 삼사도 둘이 붙어서 실종.[1] 그 소식을 들은 명경은 분노해[2] 모용청과의 신혼집에서 뛰쳐나가 철기맹을 박살내고 다녔다.
부상을 회복하면서 명경의 금파검을 정리해서 십단금으로 새로 만들었고[3], 이것과 함께 "파문이 됐을지언정 넌 무당의 방벽이며 내 유일한 제자[4]."라는 요지의 편지를 진천을 통해 명경에게 보내면서 마검에서의 등장은 마무리된다.
3.2. 천잠비룡포
암제 승천 당시 작품 내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지만 당시에 허공도 있었다고 작가가 밝혔다.천리안의 소개로 등장. 암제승천 이후 천도가 어그러지고 온갖 귀물이 날뛰자 그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고 그를 위해 공야천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공야천성도 더 이상 구파와 얽히고 싶지 않았으나 허공의 행동이 협행이라 거절하지 못하고 협력하기로 했다. 그 답례로 옥황의 부름이 거세져 폭주하려던 도요화를 돕기로 한다.
도요화를 보며 명경이 떠올랐는지 마음이 흔들린 듯. 도요화를 안정시키려면 태극도해에 무극진기까지 전수해야 하고, 이는 사문과 본인의 밑천을 까버리는 거라 의협문이 절대로 무당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단운룡과 만나고 운룡이 예의를 차리면서도 버릇없이(?) 구는걸 보았지만, 공야천성이 단운룡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 스승이 소연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수긍(...)해버렸다. 소연신도 장삼풍 진인보다 높은 배분[5]인 마두에게 "이만 죽어라"라며 목을 베었다고. 그리고 단운룡은 무극진기의 심득 일부를 본의 아니게 얻는다.
본래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주시자라는 사람들이 있고,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술법가들다. 하지만 허공은 주시자의 역할을 자처하며 밖으로 나왔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 허도진인 - 니트 기질이 풍부해서 산에 틀어박혔다.
- 화산의 옥허진인과 옥함진인 - 허공을 보자마자 하산 안 한다고 말했다. 천리안은 이를 두고 옥허와 옥함진인은 섬서 화산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수습하느라 여유가 없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 화안리 - 소득 없음. 대표 고수가 협행에 관심이 없는 숭무련이나 천룡회 출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데다가, 화안리 자체가 애초에 팔황과 사패의 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니 더 그렇다.
- 소림사 - 천리안 능력자가 사라져서 도움을 주기 곤란한 상황.
그래서 구파와 관계가 좋을 수 없는 입정의협살문의 생존자인 공야천성에게까지 찾아온 것이다. 공야천성도 가는 곳마다 거절당해서 낙담했을텐데도 꿋꿋이 포기하지 않고 협을 이야기하는 허공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 큰 제자가 백두산에서 구르고있는 동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가며 묵묵히 정파 무인의 협을 실천한 대인배. 그 단운룡도 그가 협객 중의 협객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명성답게 복수에만 몰두해있던 도요화로 하여금 협객으로 탈바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후에는 꾸준히 주시자 일을 한 모양. 천잠비룡포 마지막 화에서는 무당파를 대표해 소연신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여기서 오랜만에 제자 명경을 만난다.
4. 여담
- 한백무림서 시점에는 무신(武神)이라 불리며, 강호의 모든 사람들이 진인이 아니라 노사라고 할 정도로 추앙받는다. 진천 왈, "남들이
나를 제껴두고무신이라 하는데도 내가 가만 있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월현이 주인공인 환신전(가제)에서 활약할 것이라고 한다.
- 승뢰가 주인공인 금마륜전(가제)에서도 허도와 함께 젊은 시절 모습이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 구파의 원로들이 본산이 불탈 때 정도에나 내려오고 그 외에는 속세에 관심을 끊고 등선, 해탈하려고 한다는 설정이 밝혀지며 고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나 아미의 원로 혜선, 혜인이 천잠비룡포에서 저 말에 걸맞은 행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제자 관리 및 협행 모든 면에서 반대로 허공이 엄청나게 추앙받고 있다.[6]
4.1. 허공 거품설
염라마신에게는 상성상 이기기 어렵고 한 배분 아래인 진천에게는 반말을 듣는다. 무당마검에선 제대로 된 전투 한번 없었다. 거기다 장삼풍 진인의 무맥(武脈)을 이었고 사패와 동년배인데도이렇게 깎아내리려면 깎아내릴 수 있는 요소가 많아 무협 갤러리 등지에서 거품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젊은 때는
천잠비룡포 15권 분량에서 단운룡은 허공이 강하기는 하지만 천하제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자신은 아직 젊으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야천성도 말끝마다 무신이니 천하제일고수니 따박따박 붙여가며 비꼰다.[10]
하지만 한백림이 질답란에서 이야기했듯, 허공은 사패에게 이길 가능성이 있는 수준이다. 승률이 높지는 않지만, 한백무림서 세계관에서는 기량차이가 아무리 나더라도 상대방을 해할수 있는 공격력이 있다면 어떤 승부라도 변수가 있다. 물론 확률상의 이야기고 기본적으로 사패와 기량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
천잠 14~15권, 단운룡의 스카우터에 따르자면 당대의 위타천을 '천하를 노릴만 하다'라고 평가하고, 허공을 보고는 '넘지 못할 산은 아냐'라며 소연신이나 철위강 처럼 그저 멀기만 한 경지가 아니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위타천<허공<사패 이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단운룡의 스카우터 특성상 확신할 수는 없다.
[1] 진천의 말에 의하면 답지 않게 큰 손해를 좀 본 모양.[2] 북풍단의 일원이었던 고혁과 오칠, 맹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영향도 있었다. 특히 명경은 고혁의 죽음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3] 명경의 십단금은 8초에 머무른 상태였고, 본인이 감각적으로 펼쳐낼 수는 있지만 구결로 정리해내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악도군과 모용청에게 시범으로 가르쳤다. 허공진인에게도 선보였었는데, 최종 2초를 덧붙이고 전체를 구결로 정리해준 것. 덕분에 비급으로 전승될 수 있게 되었다.[4] 천잠비룡포에서 도요화가 허공진인에게 무공을 사사하게 되긴 했지만 정식으로 사제의 연을 맺은건 아니다. 딱히 도요화가 무당에 입문한것도 아니고 시간상도요화를 가르친 것이 편지를 남기기보다 이전으로 추정된다. 챠이 또한 허공을 가리켜 스승이라 지칭한 적이 있다.[5] 소연신이 허공진인과 배분이 비슷하다. 즉 소연신은 자기보다 두 배분이나 높은 마두들 모가지를 썰고 다닌 것.[6] 혜선, 혜인은 대무후회전 챕터에서 자파의 장문인과 많은 제자들이 죽을 때도 코빼기도 비추지 않았으며 이후 단운룡 챕터에서 혜선만 의정이라는 기재를 지키기 위해 그제야 출도를 했다. 그마저도 오기륭이 제대로 나서지 않았으면 의정을 놓칠 뻔 했으며, 자파의 제자들이 다 죽어가는 것은 사실상 방관한 와중에 흑림의 기재는 망설이다가 결국 살려놓는 저열한 이중잣대를 보이기도. 오기륭에게 지적을 당하고도 말만 현학적으로 하지 결국 싸울 일 없다고 못박은 건 덤. 그마저도 혜선은 의정을 혜인에게 인계했는데, 혜인은 자기 수련만 몰두하다가 의정을 빼앗겼다.(...) 혜인이 의정을 인계받으면서 의현을 맡은 혜선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하며 마음을 놓지 말라고 했던 말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헛웃음만 나올 지경.[7] 사패 시절의 위타천. 그 시절의 소연신도 전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대였다.[8] 작가는 이를 두고 작가도 사패의 대표 예시로 소연신을, 구파의 대표 예시로 허공진인을 들며 설명했다. 소연신을 비롯한 사패는 활동 당시 팔황과 격렬하게 싸우며 구파 이상의 활약을 했던 반면, 구파는 사패의 그늘에 가려져 이래저래 치이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사패 입장에서 보면 직접 전력으로 치열하게 싸운 팔황 측 인물들을 더 높이 쳐줄 수밖에 없다고. 바꿔서 구파 입장에서는 '허공진인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니!' 라고 놀랄 것이라고 한다. 즉 이는 사패가 '허공' 하나만 꼭 집어서 낮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구파' 전체를 낮게 평가한다고 보는 것이 맞다.[9] 소연신이 허공을 깐 적도 있고, 허공과 관계가 묘사된 사패가 소연신 뿐이다. 사실 소연신의 현역 때 허공은 소연신에게 한참 못 미쳤다. 소연신이 신마맹에 단독으로 쳐들어가 염라마신을 죽이고 온 것이 30대 전후로 추정된다.[10] 이건 공야천성과 허공사이에 무언가 있던가, 아니면 살문과 무당파 사이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을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