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없어진 자동차 브랜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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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dson Motor Car Company 허드슨 모터 카 컴퍼니 | |
정식 명칭 | Hudson Motor Car Company |
한국어 명칭 | 허드슨 모터 카 컴퍼니 |
설립일 | 1909년 5월 25일 |
설립자 | 로이 D. 채핀[1] |
본사 소재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
해체일 | 1954년 7월 4일[2] |
후신 | AMC |
업종 | 자동차 생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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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허드슨 모터 카 컴퍼니는 1909년 설립되어 1954년 내시-켈비네이터 사와 합병해 AMC로 개편되었다. 허드슨이라는 이름은 회사 설립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한 백화점 기업가 조셉 L. 허드슨의 성씨를 따 온 것이다.2. 상세
허드슨 호넷 등으로 유명한 자동차 회사로, 1909년에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설립, 첫 차종인 허드슨 모델 20을 판매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 전 미국에서 주요 자동차 메이커 중 하나로 성장했다.첫 차인 허드슨 모델 20은 4천 대 이상을 판매하며 당대 미국 자동차 판매량 11위를 차지했으며, 1929년에는 총 30만대의 차를 생산함으로서 포드 모터 컴퍼니, 쉐보레에 이은 미국 자동차 기업 중 3위를 달성했다. 기술적으로도 자동차 계기판의 각종 경고등을 업계 최초로 장착하는 등 각종 신기술에도 신경을 썼고, 1919년부터 직렬 6기통 엔진을 주력 엔진으로 도입했다. 여기에 미국 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이 늘어나자 경쟁사들과 함께 여성 자동차 디자이너들을 고용하기 시작, 미국 자동차업계 최초의 여성 자동차 디자이너 중 하나인 엘리자베스 앤 대처(Elizabeth Ann Thatcher)를 배출하여 1939년식부터 1941년식까지의 허드슨 차량의 디자인을 맡긴 적도 있다.
허드슨에서는 전쟁 후에도 1948년식 모델을 통해 "스텝다운"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저중심 유니 바디[3]의 신차를 출시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자사의 직렬 6기통 엔진도 당대 동일 엔진구조상 최고 배기량인 5.0L까지 확장한 것은 물론, 1951년식부터 보통 카뷰레터보다 연료를 고르게 배분하는 "트윈 H" 카뷰레터를 옵션으로 제공하며 6기통 엔진임에도 당대 경쟁사들의 8기통 엔진과 동등한 성능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기술력을 조합한 고성능 모델 호넷은 8기통 경쟁차들과 동등한 파워에 보다 우월한 코너링 성능을 갖췄고, 덕분에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미국 나스카 대회를 석권하며 연속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업계와 자동차 고객들이 8기통에 열광할 때 직렬 6기통 엔진을 고집한 점,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인한 유니 바디의 불리점,[4] 소형 라인업 제트의 흥행 실패[5]로 허드슨은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결국 허드슨은 같은 처지에 있었던 내시와 합병하여 AMC를 창설했고, 허드슨 브랜드도 1957년식을 마지막으로 폐지했다. 단, 당시 허드슨과 합병 파트너 내시는 기술력 및 혁신성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만큼 허드슨이 쌓아 온 내실이 AMC의 신차개발 노하우에 보탬이 되었으며, 1958년 전후 불황 속에도 AMC가 성장할 수 있는 믿거름이 되었다.
3. 생산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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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차 | 코모도어 · 호넷 · 페이스메이커 | |
픽업트럭 | 테라플레인 |
- 허드슨 그레이터 에잇
- 허드슨 페이스메이커
- 허드슨 메트로폴리탄[6]
- 허드슨 제트
- 허드슨 이탈리아
- 허드슨 코모도어
- 허드슨 호넷
- 허드슨 와스프
- 허드슨 램블러
- 허드슨 테라플레인
[1] 이후 아들인 로이 D. 채핀 주니어가 허드슨의 후신인 AMC의 회장 자리에 오른다.[2] 내시-켈비네이터와 합병.[3] 허드슨에서는 "모노빌트(Monobuilt)"로 마케팅. 당대 자동차 업계에서는 바디 온 프레임 구조가 주류였는데, 동 시기 허드슨의 차량은 저중심 유니 바디 덕분에 공기저항을 낮추면서 승차감, 승차 용이성, 코너링, 뒤틀림 강성도 항상시킬 수 있었다.[4] 분리된 차대 위에 껍데기를 올리는 바디 온 프레임 구조 때문에 경쟁사들은 매년 진행하는 리스타일링을 용이하게 할 수 있었지만, 유니 바디는 차대와 껍데기가 통짜로 결합되는 구조상의 특성 때문에 1950년대 당시에는 리스타일링이 가능한 범위가 아주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경쟁사들과의 회사 규모도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체급이 작았던 허드슨에서는 리스타일링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5] 피아트의 중상급 라인업 1400을 벤치마킹하여 미국 시장에 맞는 컴팩트카로 개발했으나 사내 인사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개발과정이 꼬였고, 개발 결과물도 당대 미국차로서는 모노코크 바디 + 트윈 H 카뷰레터 옵션 등의 덕으로 완성도가 높았지만 소형차로서 가격이 포드, 쉐보레, 플리머스의 기본형 풀사이즈 차량과 맞먹어 어필에 실패했다.[6] 내쉬 메트로폴리탄의 뱃지 엔지니어링 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