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F90에 등장하는 지온 공국의 마지막 잔당 세력에 대한 내용은 올즈모빌(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Oldsmobile 올즈모빌 | |
<colbgcolor=#BFC1C2> 정식 명칭 | Oldsmobile Division of General Motors |
한국어 명칭 | 제너럴 모터스 올즈모빌 사업부 |
설립일 | 1897년 8월 21일 |
해산일 | 2004년 4월 29일 |
설립자 | 랜섬 올즈 |
본사 소재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시간 주 랜싱 |
업종 | 자동차 제조업 |
소유 | 제너럴 모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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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머니에 맞는 로켓이 있습니다 ("There's a Rocket to Fit Your Pocket"). 1950년대 당시 슬로건.[1] |
무언가를 시작해 보십시오. (Start Something). 1999년~2001년 슬로건. |
GM이 보증합니다. (Backed by GM). 2002년~폐기 직전 슬로건. |
2. 역사
올즈모빌의 상세 역사플라이셔 스튜디오가 제작한 1932년 올즈모빌 단편 애니메이션 광고
창립 이후 수년간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동차 브랜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당시 자동차 시장이 작아서 한해 생산대수가 천단위를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은 염두에 두자. 여담으로 창업자 랜섬 올즈는 창업 7년만인 1904년에 대주주들과의 갈등으로 자신이 만든 회사를 떠나게 되는데, 다음 해(1905)에 자신의 이름 '랜섬 E. 올즈'의 이니셜을 딴 'REO Motor Car Company'를 설립했다.[3] REO는 1907년에 매출 기준 미국 4위를 하는 둥 비교적 선방하는 듯 했으나 이때가 최대 전성기였고, 이후 포드(1903년 창립), 제너럴 모터스(1908년 창립) 등과의 경쟁에 밀려 도태되어 트럭 등의 상용차 제조에 집중하다가 여러 차례 파산과 화이트 모터 컴퍼니(1957년 인수), 다이아몬드 T 트럭(1967년 합병) 등과의 인수합병을 반복하며 결국 1975년 문을 닫았다.[4]
한편 올즈모빌은 1908년 GM 산하로 인수되었고, 이후 GM 산하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완전 자동변속기 하이드라매틱을 포함한 당시 GM의 신기술들이 가장 먼저 적용되는 브랜드로 자리잡으면서 올즈모빌은 혁신적인 이미지를 얻었고, 이후 1950~70년대에 88, 98, 토로나도, 442 등의 다양한 명차들을 쏟아내며 젊은 고객들로부터 적잖은 인기를 누렸다.
1952년 올즈모빌의 광고[5] |
1989년 광고 | 1999년 알레로 광고[6] |
하지만 이 시기에는 낮은 가격에 장비가 많은 일본차들이 올즈모빌의 자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는데[7], 올즈모빌은 한동안 중·대형 승용차 계열에만 중점이 놓여 있었고, 미니밴과 SUV를 비롯한 RV 열풍으로 승용차 수요층이 RV로 이동하자 판매 실적이 점점 나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올즈모빌은 한동안 엔트리급 라인업[8]이 부실했으며, 그나마 뒤늦게 RV 시장에 뛰어들면서 판매하는 차들도 2륜구동의 부재 등으로 경쟁력이 약했고, 거기에 새 수요층들의 유입량이 줄면서 중장년 고정 수요층의 비중이 높아지자 전체적인 판매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올즈모빌이 많이 죽어가던 1990년대에 올즈모빌 오로라를 통해 렉서스/아큐라/인피니티 등의 일본 고급차와 다투는 젊은 유럽풍 고급차[9]로서의 이미지 쇄신을 꾀했다가 새로 생긴 고객층에 비해 기존 고객층의 상실이 너무 커져 실패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올즈모빌의 이미지까지 부정하는 자기부정 마케팅 캐치프레이즈였던 1988년의 "아버지의 올즈모빌이 아닙니다(This is not your father's Oldsmobile)"는 기존의 고정 고객층들만 몰아낸 대실패로 평가받았고[10], 여기에 위 광고를 포함한 멜 블랭크[11], 링고 스타 및 심지어는 어니스트 헤밍웨이[12]까지 꺼내드는 광고 전략을 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마지막 올즈모빌 차량이 생산된 순간(2004. 4. 29.) |
게다가 올즈모빌이란 브랜드 자체도 스포티한 폰티악과 고급스러운 뷰익 등의 여러 브랜드로 가득한 GM 속에서 애매한 포지셔닝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서 1980년대부터 전문가들이 브랜드 폐기를 주장하고 있었고, 1984년부터 로저 스미스 당시 GM 회장의 주도하에 구조조정을 한 결과로 간부급 임원의 비중이 더 늘어나서 수익구조와 배분이 되려 악화되었다. 모회사인 GM도 1980년대 내내 1984년의 조직개편, 배지 엔지니어링 라인업의 남발같은 그룹 단위의 실책을 저지르면서 올즈모빌의 브랜드 파워와 미래를 대처할 밑천들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 위의 실책들과 이로 인한 실적부진 심화가 겹치는 바람에 결국 2001년에 브랜드 폐지를 선언, 2004년에 브랜드 자체를 폐기하고 올즈모빌 홈페이지를 간략한 브랜드 소개와 아직 남아 있는 차주들의 애프터서비스 연결 방법을 알려 주는 소규모 정보 페이지로 간소화시켰다. 이때 마지막으로 생산, 출고된 차량은 올즈모빌 알레로였고, 생산 시점으로부터 78일분의 재고 차량이 잔존했었다고 한다.
올즈모빌은 항상 고성능의 고급스러운 차량들을 만들어 왔고 역사가 오래 된 만큼 신뢰성이 높았기 때문에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의전용 차량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 前 대통령 재임 시절 관용차로 델타 88 로얄 컨버터블 모델이 사용되었는데 대부분 국가행사나 군 관련 행사에서 사열용 차량으로 사용되었다.
3. 생산한 차종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fff><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BFC1C2> 분류 | 단종 차량 | |
준중형차 | 커틀러스 · 스타파이어 · 오메가 · 피렌자 · 커틀러스 칼레 · 아치바 · 알레로 | ||
중형차 | 커틀러스 · 커틀러스 수프림 · 커틀러스 시에라 · 인트리그 · 비스타 크루저 | ||
준대형차 | 오로라 | ||
대형차 | 66/68 · 76/78 · 88 · 98 · 투어링 세단 · 스타파이어 · 토로나도 · 커스텀 크루저 · 제트스타 | ||
머슬카 | 442 | ||
SUV | 브라바다 | ||
MPV | 실루엣 |
- 66/68
- 76/78
- 88
- 98
- 442
- F-85
- 브라바다
- 비스타 크루저
- 스타파이어
- 실루엣
- 아치바
- 알레로
- 오로라
- 오메가
- 인트리그
- 제트스타
- 커스텀 크루저
- 커틀러스
- 커틀러스 수프림
- 커틀러스 시에라
- 커틀러스 칼레
- 토로나도
- 피렌자
(참고 자료)
4. 기타
Ransom Olds, the father of the Oldsmobile, could not produce his “horseless carriages” fast enough. In 1901 he had an idea to speed up the manufacturing process — instead of building one car at a time, he created the assembly line. The acceleration in production was unheard-of — from an output of 425 automobiles in 1901 to an impressive 2,500 cars the following year. ② While other competitors were in awe of this incredible volume, Henry Ford dared to ask, “Can we do even better?” He was, in fact, able to improve upon Olds's clever idea by introducing conveyor belts to the assembly line. As a result, Ford's production went through the roof. Instead of taking a day and a half to manufacture a Model T, as in the past, he was now able to spit them out at a rate of one car every ninety minutes. The moral of the story is that good progress is often the herald of great progress.
* in awe of: ~에 깊은 감명을 받은 ** herald: 선구자
올즈모빌의 창립자인, 랜섬 올즈는 “말 없는 마차”를 충분히 빨리 생산할 수 없었다. 1901년에, 그는 생산 과정의 속도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가졌다 ― 한 번에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드는 대신에, 조립 라인을 고안했다. 생산의 가속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 1901년 425대의 자동차 생산량에서 이듬해 인상적인 2,500대의 자동차로. 다른 경쟁사들이 이 놀라운 분량에 깊은 감명을 받는 동안, 헨리 포드는 감히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사실, 컨베이어 벨트를 조립 라인에 도입함으로써 올즈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포드 사의 생산은 최고조에 달했다. 과거처럼, 모델 T를 제작하는 데 1.5일이 걸리는 대신에, 그는 90분마다 한 대씩의 속도로 차를 뱉어낼(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좋은 진보는 종종 위대한 진보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지문 내용 中
* in awe of: ~에 깊은 감명을 받은 ** herald: 선구자
올즈모빌의 창립자인, 랜섬 올즈는 “말 없는 마차”를 충분히 빨리 생산할 수 없었다. 1901년에, 그는 생산 과정의 속도를 높이는 아이디어를 가졌다 ― 한 번에 한 대의 자동차를 만드는 대신에, 조립 라인을 고안했다. 생산의 가속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다 ― 1901년 425대의 자동차 생산량에서 이듬해 인상적인 2,500대의 자동차로. 다른 경쟁사들이 이 놀라운 분량에 깊은 감명을 받는 동안, 헨리 포드는 감히 “우리가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사실, 컨베이어 벨트를 조립 라인에 도입함으로써 올즈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포드 사의 생산은 최고조에 달했다. 과거처럼, 모델 T를 제작하는 데 1.5일이 걸리는 대신에, 그는 90분마다 한 대씩의 속도로 차를 뱉어낼(생산할)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좋은 진보는 종종 위대한 진보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지문 내용 中
- 2021년 6월 모의고사 고2 영어 영역 39번에 창업주 랜섬 올즈가 언급되었다.
[1] 올즈모빌 88 및 98, 그리고 주력 파워트레인이었던 로켓 V8 엔진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 카피이다.[2] 회사 자체는 1908년 GM에 인수되었다. 단, GM 산하 각 브랜드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디비전"의 형태로 거의 독립된 회사처럼 활동한 것 또한 사실이다.[3] 이 회사에서 만든 트럭 차종 중 하나인 'REO Speedwagon'이 동명의 락 밴드 이름의 모티브가 되었고, 나중에 아라키 히로히코라는 일본의 만화가가 해당 밴드에서 이름을 따 로버트 E.O. 스피드왜건이란 캐릭터를 만들어낸다.[4] 1975년에 REO가 청산절차를 밟고 사라진 뒤, REO의 상표권은 당시 REO가 소속된 상용차 회사였던 화이트 모터 컴퍼니를 인수한 볼보에 소속되어 있다. REO가 생산한 마지막 연식의 차종인 1974년식 다이아몬드 REO 레이더가 R. E. 올즈 박물관에 다른 올즈모빌 차종들과 함께 보존되어 있으며# 현재는 REO의 철강 부문이 누코 코퍼레이션(Nucor Corporation)으로 존속하고 있다.[5] 자사의 자동차 위로 당시 올즈모빌의 상징이었던 로켓이 날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6] 이전에 올라와 있던 광고는, 게리 뉴먼의 곡인 Cars와 1998년에 나온 GAP의 광고를 모티브로 한 듯 하다. 해당 광고[7] 미국차들이 두 차례의 석유파동에 성급히 대응하거나 무리수적인 원가절감으로 품질/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한 사이, 이미 소형차급에 특화된데다가 원가절감을 하면서도 품질을 유지하는 방향을 지향한 일본차들이 품질에서 우위를 가져간 것은 물론 환율까지 일본차에 유리해져서 1980년대 내내 품질, 가격, 가성비로 미국차들을 이길 수 있었다.[8] 1970~80년대에도 오메가, 피렌자, 스타파이어, 커틀라스 칼레 등이 준중형, 소형 라인업으로 있었지만 쉐보레, 폰티악에서 파는 타 차종의 뱃지 엔지니어링 버전이었다. 커틀라스와 88, 98같은 기존 모델들도 1980년대부터 기존의 플랫폼 공용화보다는 외장 부속까지 거의 전부 공용하는 뱃지 엔지니어링 모델들로 세대교체되었다.[9] 당시 올즈모빌은 새턴과 함께 "수입차 대항마" 브랜드로 승격되어 있었다.[10] 결국 이듬해 나온 광고부터는, "새로운 세대의 올즈모빌입니다.(The new generations of Oldsmobile)"로 수정했지만, 해당 광고음악에서 이 슬로건이 가사로 등장하긴 했다.[11] 해당 광고가 그의 유작이었다.[12] 올즈모빌 브라바다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