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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9 02:21:02

가쓰시카 호쿠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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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시카 호쿠사이
[ruby(葛飾北斎, ruby=かつしかほくさい)] | Katsushika Hokusai
||
파일:葛飾北斎.jpg
자화상
본명 <colbgcolor=#ffffff,#191919>미상
예명 가쓰시카 호쿠사이
출생 1760년 10월 31일

[[에도 막부|]][[틀:국기|]][[틀:국기|
속령
일본
]] (現 도쿄도)
사망 1849년 5월 10일경 (향년 88세)

[[에도 막부|]][[틀:국기|]][[틀:국기|
속령
일본
]]
가족 가쓰시카 오이(葛飾応為)를 비롯한 여러 명
대표작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
〈문어와 해녀(蛸と海女)〉
파일:카나가와의_파도.jpg
후지산 36경[1] 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1. 개요2. 작품 특징3. 개인사4. 기타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는 일본 에도 시대 말기의 우키요에 화가이다.

그의 이름은 필명으로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도슈사이 샤라쿠, 우타가와 히로시게와 함께 우키요에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2. 작품 특징

호쿠사이를 비롯한 우키요에 사조는 세계미술사적으로도 의의가 크며, 자포네스크의 하나로 서양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판화 양식의 우키요에로 유명하지만, 사실 직접 그린 그림도 우키요에 못지 않게 유명하다. 전통적인 우키요에 기법을 넘어 서양화 등 여러가지 다른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적용시켰으며 이 때문에 스승에게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파문으로 스승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게 되면서 호쿠사이의 작품 세계를 더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 모든 삼라만상을 그리겠다고 공언했으며 실제로 가쓰시카가 그린 작품은 가부키 배우 위주로 그렸던 도슈사이 샤라쿠와 비교해 보면 정말로 풍경, 인물, 풍속, 사물을 넘나들며 소재가 다채롭고 수가 많다. 그 중에 한국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대표작 부악 36경(冨嶽三十六景) 중 하나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그림 자체도 매우 유명하지만 클로드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미술 교과서의 단골 손님. 이어령 교수는 그의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이 작품을 예로 들어 몰아치는 거친 파도와 정지된 파도의 포말을 비유해 시간을 축소한 일본인의 정서를 논하기도 했다. 사실 이 작품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동양 미술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개인사

본명은 미상이나 후보로는 성은 카와무라(川村), 나카지마(中島), 후지와라(藤原)가, 이름은 테즈조(鉄蔵), 토키타로(時次郎), 토키지로(時次郎 혹은 時二郎) 이이츠(為一) 정도가 있다. 주로 지지를 받는 설은 나카지마 테즈조, 후지와라 이이츠, 카와무라 토키타로 정도인 듯하다. 사실 이 시기 일본인의 본명을 정확히 알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르는데 특히 큰 문제가 성과 이름 모두가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성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증손자가 말한 카와무라가에서 태어났으나 나카지마가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름의 경우 아명(일본식으로는 유명幼名)이 토키타로[2], 커서는 테즈조를 칭했다는 설이 많은 지지를 받는다.

정체되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는지 를 30번 이상 바꾸었으며, 88세에 바꾼 최후의 호는 画狂老人卍.[3] 93번이나 이사를 다녔으며 어떤날은 하루에 3번씩이나 이사를 다닌 일화 또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다다미 120장 크기의 달마도를 그렸다든지, 쌀알에다 두 마리의 참새를 그린 믿기 어려운 일화도 유명하다. 그 덕분인지 생전에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낸 엄청난 다작가이기도 하다.

호쿠사이는 향년 88세로 오늘날로 따져도 매우 오래 살았다. 또한 노년에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활발히 임했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부악 36경'과 '부악 100경' 모두 70세 이후에 한 작품활동이다. 자신의 그림첩 「부악백경(富嶽百景)」의 마지막 후기를 보면 그가 추구한 그림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잘 느낄 수 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 나이 여섯부터 사물의 꼴을 본떠 그리는 재주가 있어 반백 이후 이런저런 그림을 수없이 그렸건만 일흔 전에 그린 바 실로 변현한 것이 없고 일흔셋 간신히 온갖 짐승의 뼈대와 초목이 나고 자람을 이해할 수 있었으매 고로 여든여섯이면 더욱 솜씨가 늘고 아흔이면 또한 그 깊은 뜻을 깨달아 백에는 그야말로 신통해질 뿐 아니라 백 수십에는 한 점 한 획이 살아나리니 바라건대 장수의 신이여 내 예언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지켜보시라.
그림에 환장한 일흔여섯 늙은이 만지(卍) 씀.
가쓰시카 호쿠사이 그림 및 지음, 김동근 엮음, 『호쿠사이 부악백경 - 후지산이 있는 백 가지 풍경』, 인천, 소와다리, 2018, p.172-173.

4. 기타

5. 관련 문서


[1] 후지산을 주제로 후지산이 보이는 각 고장의 풍경을 그린 연작. 부악(冨嶽)은 후지산을 뜻한다.[2] 다만 타로는 장남에게 붙이는 이름인데 정말로 양자로 보내졌다면 장남은 양자로 보내지 않기에 둘째라는 뜻인 지로가 들어간 토키지로가 아니었겠느냐는 설도 존재[3] 卍자는 불교에서 기쁨,종교에 대한 환희를 나타내는 단어이다.[4] 이름은 정확하지 않고 여러 설이 있다.[5] 원작은 만화 《백일홍》으로 국내 미정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