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還元不可能한 複雜性 / Irreducible Complexity진화생물학을 반대하는 지적설계에서 주장하는 개념. 진화생물학에서의 자연선택이 주장하는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메커니즘으론 설명할 수 없는 생명체의 복잡함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진화론으론 설명할 수 없으니 창조설이 옳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게 지적설계다.
생화학자이자 지적설계 지지자이며 '다윈의 블랙박스'의 저자이기도 한 마이클 비히(Michael Behe)가 처음 사용했다. 하지만 그 개념 자체는 이전부터 존재했다.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 대체로 비히가 사용한 용어에 기반하고 있다.
2. 설명
쉽게 단어를 풀어보자면 환원이란 '원래(혹은 이전단계)대로 돌리다, 돌려주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환원불가능이란 원래(근본)대로 되돌릴 수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일반인에게 '진화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의 조상은 원숭이'를 보자. 사람은 환원하면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는 그 전 단계 생물이 되는데... 여기서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으므로 충분히 환원이 가능하다.반면, 박테리아 등의 경우 마치 기계 모터와 흡사한 구조로 이루어진 편모를 가지고 움직이는데[1] 이 복잡하고 정밀한 구조를 가진 편모는 환원할 수 없으므로 이는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게 아니라 어떤 설계자가 박테리아에게 편모를 설계해준 것이란 말이 바로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다.
박테리아 편모를 더욱 세밀하게 예를 들면…
박테리아 편모엔 어쩌구저쩌구 단백질들이 이러쿵저러쿵하는데 하나라도 없으면 제 기능을 못한다.
->즉 이것들이 동시에 생기지 않는 한 편모의 기능을 못한다.
->기능하지 못하는 기관이 자연선택에 걸릴 확률은 낮다.
->그러므로 변이가 조금씩 쌓여서 이러한 기능을 가지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니까 진화론은 거짓.
…이라는 주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쥐덫의 비유도 자주 쓰이며 다른 주장으로 사람의 눈의 진화나 혈액응고 메커니즘의 복잡성이 있다. 혈액 응고의 경우 비전공자로써는 그냥 혈소판이 달라 붙으면 혈액 응고가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혈액 응고 기전은 깊게 파고들면 매우 복잡한 분야다. 의대생조차 생리학과 병리학에서 해당 파트 강연이 있을 경우, 상당한 센스가 없으면 그냥 틀리는 부분이다. 특히 파고 들수록 더욱 복잡해지는데, 이게 수학적인 복잡함이라기보단 그냥 중구난방의 수형도(…)와 비슷하다. 사실 혈구의 움직임은 비유하자면 전쟁과 비슷한데, 전쟁에서 병사 하나 하나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검증하는 것이 바로 혈액학(?)이다. 당연히 학부 수준을 넘으면 수학적 지식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다행히 이 부분은 최근 융합학문의 발달로 실질적인 검증은 통계학 쪽에서 상당히 커버쳐줘서(...) 혈액을 전공하는 사람은 검증보단 전체적인 모형을 예상하는 지휘관과 비슷해졌다.->즉 이것들이 동시에 생기지 않는 한 편모의 기능을 못한다.
->기능하지 못하는 기관이 자연선택에 걸릴 확률은 낮다.
->그러므로 변이가 조금씩 쌓여서 이러한 기능을 가지게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니까 진화론은 거짓.
그들의 주장을 좀 쉽게 표현하자면 "생물의 기관들은 말도 안 되게 복잡하기 때문에, 여기서 일부분만이라도 변형되거나 빠져버리면 기관이 제 역할을 못해서 생물이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서서히 진화했다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결국 지적설계를 믿는 자들의 속 뜻은 "이렇게 복잡한 것이 '저절로' 생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3. 진실은...
If it could be demonstrated that any complex organ existed, which could not possibly have been formed by numerous, successive, slight modifications, my theory would absolutely break down.
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어 많은 횟수의, 연속적이며, 작은 수정을 거쳐서 형성될 수 없음이 입증된다면, 나의 이론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 종의 기원 6장 '이론의 난점(Difficulties Of The Theory)' 중에서.
찰스 다윈이 스스로 자신의 이론에 대해 제시했던 이 강력한 반례는, 지금까지 단 한 개도 실증되지 않았다.어떤 복잡한 기관이 있어 많은 횟수의, 연속적이며, 작은 수정을 거쳐서 형성될 수 없음이 입증된다면, 나의 이론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 종의 기원 6장 '이론의 난점(Difficulties Of The Theory)' 중에서.
우선 아래의 항목을 읽기 전에 불가지론과 논리적 오류/비형식적 오류의 <무지에 의거한 논증>을 참고하라. 사실 이건 진화의 연속성과도 관련 있는 부분으로, 이 부분에 대한 개념 파악이 확실하면 굳이 아래 내용을 읽지 않아도 이 가설이 틀렸음을 알 수가 있다.
그래도 조금 더 부가 설명을 덧붙이자면, 생물학자들은 지적설계를 믿는 자들이 '복잡해서 설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예를 전부 다 논파하였다. 아주 간단한 기관이 점점 발달해서 복잡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물의 기관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이란 개념은 리처드 도킨스를 포함한 진화생물학자들에게 까이고 또 까여서 가루가 돼버린 살릴 수 없는 죽은 이론이다. 물론 미래란 알 수 없으니 어느날 갑자기 진짜 환원불가능한 복잡한 기관이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거의 모든 지적설계설의 근거들 역시 다 죽은 이론이라는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은 굉장히 낮은 상태.이다. 그리고 설사 진화론으로 설명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지적설계의 산물인가 하는 점은 또다른 문제다. 진화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지적설계로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실례를 들자면, 진화론이 맨 처음 창시될 때부터 진화론을 반박할 근거랍시고 튀어나왔던 눈의 진화의 경우를 보자. 이것도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스스로 거론했던 것인데, 진화론 반대자들은 "(눈이 자연선택으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꺼이 인정하건대 대단히 터무니없어 보인다"[2]라고 쓴 부분만을 똑 떼어 인용하면서 그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반론은 외면하기가 십상이다. 플라나리아(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 세포)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눈(카메라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시각 기관)까지 이르는 수많은 변화 과정이 실제 동물의 예를 통해 증명된다. 아무리 간단하고 완전하지 못한 눈(예를 들면 겨우 어둡고 밝은 것만 구별할 정도라도)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3]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불완전한 눈을 가진 생물이라도 꾸준히 살아 남아서 더욱 복잡한 눈으로 진화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여기서 좀 더 웃기는 반론을 보면, 어떻게 세포가 빛에 민감해질 수가 있느냐, 아미노산이 단백질 하나 만들려면 정확한 배열 순서의 확률이 1/10의 34승이라든가, 가장 단순한 세포부터 어떻게 플라나리아 같은 고등의 생물이 만들어지느냐,[4] 이건 결국 자연선택에 무지한 채로 주장하는 게 아니냐 같은 주장을 하는데, 단지 얼핏 듣기에 그럴듯할 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엉터리 주장들이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지금 논하는 것이 환원불가능하냐 아니냐의 '가능성' 이지 '어떻게' 이뤄지는지의 과정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가능성을 무시하고 "가능한 방법을 말해라"라는 것이 억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어떻게'에 대해선 발산 진화하다가 자연환경에서 못 살아남는 놈은 죽고 살아남는 놈들은 해당인자를 물려준다고 해줄수는 있겠다. 상세한 반박은 진화론/비방에 대한 반박 문서를 참조할 것.
또한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전에는 생물들의 화석이 극히 드물다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서서히 진행되는' 진화론에 위배된다 등등... 여러가지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이나 확실한 답을 얻기 힘든 질문들을 근거로 내놓는데, 전형적인 무지에 의거한 논증인 것이다. 쉽게 말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서, 그게 환원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진화론의 메카인 갈라파고스 제도만 해도 생성시기가 불과 300만 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기간에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는 다양한 생물군이 다채롭게 진화할 수 있었다. 그러니 기본단위가 억 년 단위로 흐르는 지질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 기준에서 억 년 단위의 시간이 잘 가늠되지 않는데 화석들만 보고 여기서 어떻게 여기로 진화할 수 있느냐라는 식으로 나오는 이야기들...거기서 거기로 진화하는 데 수천만~수억 년의 시간이 걸렸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눈 같이 복잡한 형태라고 하더라도, 간단한 세포들의 뭉치가 오랜 세월동안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변화한다면 그와 같은 형태를 이룰 수 있다는 것 역시 증명되었다. 자세한 것은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등의 책을 참고할 것. 도킨스는 이 부분을 설명하면서, '창조설자들은 산의 한쪽에 있는 깎아지를 듯한 절벽만 보고 이 산을 절대 오를 수 없다고만 여기지만, 그 산 뒤엔 비록 가파르지만 조금씩 걸어가면 오를 수 있는 경사가 있음을 모르고 있다'라고 표현하였다. 진화론을 설명하는 저서 중 하나의 제목을 '불가능한 산 오르기'로 짓기도 했다.
비히가 예로 들었던 쥐덫에 관한 반박. 결과물(복잡한 덫)에서 부품(스프링, 나사 등)만 하나씩 빼는 게 아니라 목적을 위해 가장 기초적인 형태에서부터 하나씩 추가하거나 변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가진 가장 대표적인 존재는 의외로 창조설에 있다. 바로 창조주, 그 자체. 즉 창조설(또는 지적 설계론)이 말하는 창조주(또는 지적 설계자)는 당연히 환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나게 복잡한 지적 존재일 것이고, 창조설의 논리를 일관한다면 그 설계자는 우연에 의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주(또는 지적 설계자)에 의해 설계된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주의 창조주(또는 지적 설계자의 설계자)는 또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그 설계자의 설계자는 또 누구인가?.. 이처럼 창조설(또는 지적 설계론)에 의하면 설계자의 설계자.. 설계자의 설계자의 설계자.. 이렇게 끝없이 갈 수밖에 없게 된다. 리처드 도킨스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을 상대할 때,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논의 자체가 결국엔 제 발등 찍는 논의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바로 이 예시를 들었다. 역시 상세한 내용은 진화론/비방에 대한 반박으로.
이에 대해 지적설계 신봉자들이 '설계자는 원래 존재한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면 볼츠만 두뇌나 물리법칙을 무시한 초자연적인 무에서의 생명 생성 현상 같은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지 않냐고 하면 된다. 지적설계 신봉자들이 우연이나 열역학 제1법칙을 들먹이며 후자를 반박하려 들면 '그 복잡하다는' 지적설계자의 '초자연적이고 우연한' 존재 그 자체와 그의 '열역학을 무시하는' 생명체 창조'와 이 주장 중 전자의 확률이 왜 더 높은지 설명해 보라고 하자. 지적 설계자가 원래 존재했고, 그 설계자가 우주/생명을 창조했다고 할 거면 차라리 우주/생명이 원래 존재한다는 논리가 더 간결하지 않느냐는 반박도 가능하다. 여기서 이들 지적설계 신봉자들이 '인격신에 대한 것들만 물리법칙을 어길 수 있다'는 식의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은 수정란이 분열한 결과물이라는 점도 지적설계의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쉽게 말해, 수정란은 인간에 비하면 아주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포 하나가 그 엄청나게 복잡한 내장구조와 온갖 시스템을 가진 인간으로 분열해 나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적설계자의 개입이 있었다는 말인가? 이것도 지적설계자의 개입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는 돌산에서 돌이 하나 굴러떨어진 것도 신의 의도라는 식의 전형적인 Ad Hoc에 해당된다. 즉, 오컴의 면도날로 걸러질 수 있는 주장이다. 배아의 발달 과정은 생리학에 의해 설명되는데 주류 과학계는 이 과정이 유물론을 부정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중우주 역시 이들을 저격하는 이론 중 하나다. 다중우주에 따르면 우주가 무한개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확률이라도 확률을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그러니까 프레드 호일의 잘못된 비유인 '고물 야적장' 비유도 무한 다중우주에 따르면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3.1. 마이클 비히와 편모
위에 나온 편모의 경우는 지적설계의 실질적인 창시자인 마이클 비히가 자주 쓰는 예시인데 이 역시 가장 처절하게 반박당한 것 중 하나다.편모와 동일한 구조를 가졌지만 운동 단백질이 없는 박테리아의 경우 이 기관을 운동기관이 아닌 주사바늘과 같은 주입기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진화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기관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주장은 바로 반박된다. 즉, 약간만 더 자료를 수집했다면 애초에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런 유사과학을 주장하는 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틀렸다는 증거를 봐도 무시하고 믿고 싶은 것을
2005년에 키츠밀러 대 도버 재판[5]에서 비히가 나와 위 비유를 또 한 적이 있다. 이미 그걸 예측하고 있던 변호인 측에서 편모의 진화를 연구한 논문과 서적들을 비히 앞에 쌓아올리며 "연구 결과가 이렇게 많은데 하나는 읽어보고 그런 말 하는 건가?" 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결정적으로 비히가 인용했던 논문의 저자가 직접 나와서 "내 논문은 그런 뜻이 아니다. 편모는 진화론적으로 설명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지적설계를 과학시간에 가르치는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쯤 되면 비히가 불쌍할 지경. 연합뉴스, <美법원 "지적설계론 교육은 위헌">
아래 영상은 해당 사건을 다룬 다큐다.
아이러니한 게, 이 재판의 담당한 연방지방법원 판사인 존 존스 3세는 조지 W. 부시가 임명하였으며 보수-공화당 성향의 개신교도였다. 청소년 시절에 다닌 학교도 개신교 계열 사립학교였으며 진화론을 공부하지 못했다고 한다. 재판 당시 과학 전문가들이 증언하면서 '고래는 본래 포유류이나 바다로 돌아간 종류'라고 설명하자 존스 판사는 반농담으로 "왜 나한테는 그걸 안 가르쳐 줬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즉, 이런 보수 성향의 판사조차 지적설계는 명백한 종교 교리이며 과학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존스 판사는 판결문에서 이 지적 설계를 가르치는 교육 정책에 대해서 breathtaking inanity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직역하면 '숨막힐 정도의 어리석음'이란 뜻.
4. 관련 문서
[1]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동일한 내용이 나온다.[2] 원문: To suppose that the eye with all its inimitable contrivances for adjusting the focus to different distances, for admitting different amounts of light, and for the correction of spherical and chromatic aberration, could have been formed by natural selection, seems, I freely confess, absurd in the highest degree.[3] 이 '완전하지 못한 눈'은 안경이나 렌즈를 낀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재현시킬 수 있다. 안경을 벗거나 렌즈를 빼면 된다. 물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눈(근시, 원시, 난시)이라도 시각장애인의 눈 보다는 압도적으로 낫다.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실명 장애인보다는 최소한의 사물은 파악이 되는 저시력 장애인의 삶의 질이 훨씬 높다.[4] 리처드 도킨스는 텔레비전 토론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아줌마에게, "하지만 부인, 부인도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10개월밖에 안 걸려서요."라고 반박했다.[5] 지역 교육위원회가 고등학교에서 지적설계도 진화론과 같이 가르치자는 식의 방침을 정하자, 학부모가 반발하여 이뤄진 재판. 결국 지적설계가 과학이 아닌 창조설에서 명칭만 바꾼 종교라는 판결이 나와서 교육위원회 쪽이 패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