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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03 21:22:23

황현필/비판 및 논란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황현필
1. 개요2. "6.25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 발언
2.1. 반박 및 비판2.2. 나무위키 보지 말라는 추가 게시글2.3. 황현필 옹호자들에 대한 비판2.4. 반응
3. 윤석열 탄핵 반대 세력 친일매국 지칭 논란4. 조선구마사 과잉반응 논란5. 모두공 2023년 강의 미촬영, 미통보 논란6. 역바연 회원 대응, 소통 논란과 역바연 신문 운영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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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사 강사 출신 유튜버 황현필의 비판 및 논란을 정리한 문서.

2. "6.25는 미국이 일으킨 전쟁" 발언

"여러분, 한국 전쟁 6·25는요, 미국이 연출, 각본, 시나리오를 다 짰던 전쟁입니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이에요. 그래서 역사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 당시에는요, 그냥 미군 애들이 비행기 타고 가다가 피난 행렬 있으면 "야 포 얼마나 잘 떨어지나 볼까?" 하고 뚝뚝 떨어트렸어요."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국 내에서는 어떤 시나리오가 써져 있었냐면,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남한이 일방적으로 밀린다, 일방적으로 밀리면, 실은 다 밀리면 제주도에서부터 출발해가지고 인천상륙작전을 하겠다라는 게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준비가 돼 있었고 어저께 그 극비문서가 공개되기도 했죠."
"현대사 공부하는 가장 큰 목적과 의의는 뭐다? 성숙한 반미의식을 키우는 거라고 이야기했죠?"
2009년, 한국사 강의를 통해 "6.25 전쟁미국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발언을 한 것이 2020년에 발굴되어 11년만에 논란이 조명되었다.

황현필을 저격하는 역TV영상이 먼저 올라왔고, 그것이 나중에 기사화가 되었다.

2.1. 반박 및 비판

위 발언은 한국전쟁사를 크게 왜곡한 발언이며, 한국전쟁 당시 미국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묘사하기 위해 날조된 근거 없는 루머에 불과하다. 의외로 이 발언들은 발언 당시에는 큰 이슈로 떠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역TV에서 '응답하라 황현필'이라는 영상을 올리면서 문제 제기가 되기 시작했다. [1]

해당 발언들은 국가보훈처가 황현필에게 '이달의 독립운동가' 강연을 위탁하고 이를 국가보훈처 SNS에 업로드하며 재조명되었다. 이 사태에 대해 조선일보에서는 6.25 왜곡 선동을 자행한 역사 강사가 국가보훈처의 강연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는 당일 네이버 뉴스 정치 세션 댓글 수 1위를 달성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네이버가 포털 사이트 1위인 만큼 베스트 댓글과 댓글수 비판이 거세지자 보훈처에서도 사실관계 확인 후 자문단 활동 배제를 포함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황현필 자신도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자랑스러운 내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당당히 밝히겠습니다."# 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는데 그 영상에서 자신은 역TV의 구독자였고 팬이었으며 역TV '장의사'를 자신의 후계자로까지 생각했다는 황당한 발언을 하여 역TV의 분노를 샀다. 역TV는 라이브 방송에서 그 발언을 말하며 "황현필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분명하다"라며 누가 누굴 평가하냐고 비난했다. 실제 많은 비난을 받자 황현필은 이후 2020년 10월 17일, 영상을 업로드 하면서 앞으로는 확증 편향된 강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사과를 했고 앞선 해명영상과 커뮤니티글을 모두 삭제하였다.

역TV는 한국 전쟁 관련된 황현필의 역사 왜곡에 분노하여, 본인의 별명이 왜 장의사인지 알려주겠다고 하였으며 역TV가 재반박 영상을 올렸다.# 이를 11년만에 발굴한 역TV도 황현필이 2010년대부터는 그런 강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현필은 과거처럼 대놓고 하지 않을뿐 은근슬쩍 아직도 남침유도설을 껴놓고 있었고 역TV는 이를 비판했다. 실제로 황현필은 2020년 시점 해명 영상에서도 남침유도설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망발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 남침유도설은 학계의 정설은커녕 구 소련의 기밀문서 공개로 부정되고 폐기된 설이다. 한국전쟁이 김일성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서 일어났다는 건 노태우 정부 때 소련과 수교를 하면서 소련이 당시 민자당 대표였던 김영삼을 통해서 전달하였던 기밀문서를 통해 모두 드러났다. 즉 북한의 배후였던 소련이 직접 증명해줬고 이로써 남침유도설은 학계에서 사장되었다. 이후 윤석열 탄핵 정국의 와중 전한길이 탄핵 반대측 연사로 활동하자 황현필이 그에게 토론을 하자며 맞붙으려 했는데, 이 역시 역TV가 황현필이 그간 언급한 역사 왜곡 발언들을 모아서 신랄하게 깠다.

그런데도 황현필은 한국전쟁을 미국이 일으켰다는 허무맹랑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하고, 심지어 피난행렬에 폭탄이 얼마나 잘 떨어지나 보려고 폭격을 했다는 근거없는 비난까지 한 것이다. 황현필은 '포'라고 언급하여'폭격'과 '포격'의 개념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폭격은 크게 항공기로 폭탄이나 미사일, 로켓 등을 투하/발사하는 것을 의미하고 포격은 야포나 함포로 포탄을 사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포가 얼마나 잘 떨어지나 보려고 폭격을 했다는 말은 그 문장 자체로도 성립이 불가능한 말이다. 항공기가 폭탄이 잘 떨어지나 보려고 했다 하면 모를까 포(?)의 탄착군을 확인하려고 폭격을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격의 탄착군을 관측할 수 있는 정찰기나 전선통제기에는 폭탄 무장이 없다.
덧붙여 '포격은 야포나 함포로 포탄을 사격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니 항공기에서 '포'를 쐈다는 건 1950년부터 건쉽을 운용한 대황미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라는 지적은 대중적으로는 포격과 폭격을 엄격하게 구별해서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생각하면 비판받을 만한 핵심이 아니긴 하다. 다만 바로 그러한 생각으로 위안부 지원 시민단체가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하여 부름으로서(실제로는 그 둘은 일제에 강제 동원되었다는 점만 공통점으로 공유할 뿐 엄연히 다르다) 결국 훗날 일본 극우 세력에 한국이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는 명분을 제공한 사례가 있음을 생각하면 아예 지적을 안 하고 넘기기는 힘들다.[블로그 자료] 애치슨 라인 / 남침유도설은 왜 개뻥인가? joheim 2020. 10. 5. 16:19.

2.2. 나무위키 보지 말라는 추가 게시글

파일:황현필_애치슨선언.jpg
황현필은 자신이 직접 말한 기밀문서에 대해 제시하지 못했고 그런게 애당초 없기 때문에 2020년 10월 17일 영상을 업로드 하면서 앞으로는 확증 편향된 강의를 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말을 했다. 또한 황현필은 자신의 해명영상과 관련 커뮤니티 글을 모두 삭제하였다. 스스로 왜곡된 역사를 강의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23년 1월 12일, 유튜브 커뮤니티에 멤버십 회원들만 볼 수 있게 글을 작성하여 애치슨선언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을 물으며 나무위키를 보지 말라고 주장하며 본인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전에 본인이 저술한 황현필 한국사 일력에도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역바연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황현필의 한국사 일력 1월 12일, 애치슨라인이 발표됐습니다.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황현필은 미국은 남한이 일부러 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제주도만 남기고 다 밀리면 그때부터 인천 상륙 작전을 실행한다는 기밀문서가 있다고 왜곡 영상에서 주장했으나 역TV에서 요구한 이 문서에 대해 끝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전쟁이 시작되고 급하게 스미스 대대와 사실상 알보병 부대인 24사단을 투입했으나 급하게 투입된 미군은 탱크 한대 없는 부대였고 인민군에게 24사단장 딘 소장이 포로가 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황현필이 주장한 극비문서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역사관을 가지는 것에 대해 황현필에게 어떠한 책임을 지라고 할 수는 없다. 황현필이 한 역사왜곡이 범죄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당초 이 논란이 그나마 사그라든 것은 황현필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 확증편향된 강의를 조심하겠다고 했으며 관련 영상과 글을 다 지워 추가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잘못을 인정한 척하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

2.3. 황현필 옹호자들에 대한 비판

황현필을 옹호하는 측은 이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을 망각하고 있다. 황현필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역TV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미국의 대응이 한국전쟁에 영향을 준 사실이나 책임론 그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미국이 일부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엄연히 사실이 아닌 부분을 사실이라 가르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인데 미국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인가 하는 말이 되지 않는 반론을 펴고 있다. 즉 황현필의 발언이 남침유도설을 주장한 게 아니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본인이 남침유도설에 경도되어 있었다 말했고 그렇게 확증, 편향적인 강의를 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며 아직도 남침유도설이 학계의 정설이라는 말을 하는데 황현필이 가르친것이 남침유도설을 사실로 왜곡해 교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에 미국의 책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미국이 일부러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각본과 시나리오를 짰다는 거짓을 사실인 것처럼 남침유도설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 바로 역사왜곡이며 문제다.

더더욱 큰 문제는 당시의 역사왜곡 강의가 이제 수능을 보는 고3 수험생들을 위한 강의였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대한민국의 대응이 잘못되어 전쟁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남침유도설이라는 것은 일부러 전쟁이 나도록 '유도'했다는 명백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영향이라는 건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줄 수 있지만 유도는 의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남침유도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며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가르치는 것은 심각한 역사왜곡이다.

바로 앞 해명 영상에서 2020년에도 남침유도설은 학계의 정설이라고 말했던 망언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군다나 애치슨라인이 한국전쟁에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공산권 기밀문서 공개로 1948년부터 이미 남침계획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지금 6.25는 미국이 일으켰고 모든 각본과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하며 아직도 남침유도설이 학계의 정설이라 말한 부분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다.

또한 황현필은 브루스 커밍스 등을 비롯한 학계 일각에서 미국의 영향을 지목하고 있음을 들어 한계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학설은 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소련 측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이미 논파된지 오래이다.

한국 내에서 미국의 남침유도설의 선구자로 여겨지는 브루스 커밍스조차도 구소련 측 기밀문서가 공개된 이후에는,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정보에 기반하고 있었고, 역사적 실재와 달랐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발발의 주된 행위자는 김일성과 마오쩌둥, 스탈린이었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데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치밀한 사전 계획을 공유하고 있었다"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당시 미국의 일련의 행동들이 김일성이 남침을 1950년 6월 25일에 개시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는 근거는 될지 몰라도, 그것은 그냥 미국의 의도하지 않은 '삽질'이 겹친 것이지 미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김일성이 남침을 마음먹도록 유도할 의도를 가지고 계획했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황현필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도 전쟁 발발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여전히 논의할만한 주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소련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의 동북아 전략 역시 한반도의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영향을 미쳤으며 전쟁의 원인을 '단 한사람의 의지'에 국한시키는 건 오히려 협소한 생각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그러한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황현필은 당시 미국의 전략이 김일성이 남침을 개시할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황현필은 한국전쟁이 처음부터 미국이 연출, 각본, 시나리오를 다 짜서 일으킨 전쟁이라고, 다시 말해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미국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당시 미국의 전략이 전쟁 발발에 영향을 주었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이다.

만약에 황현필식 논리대로라면, 일본의 진주만 공습도 미국이 유도했다는 논리가 되는데, 이는 오늘날 일본 제국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의 극우파들조차도 개소리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소리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실상 어지간한 일본의 극우들조차 진주만 공습은 군부가 일으킨 대형 실책이자 치명적인 자충수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미국의 진주만 공습 유도 음모론은 심지어 일본에서조차도 먹히지 않는 것이다.

물론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과 같은 민간인 살상행위를 저질렀음은 역사적 사실이다. 또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 당시 항공기의 폭격에 관한 증언이 있으며, 폭격을 가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아 논쟁거리로 남아있음 또한 사실이다. 황현필의 주장대로 사건을 저지른 미군이 진지하지 않은 의도에서 폭격을 가했을 가능성이 존재하기는 할 것이다. 문제는 그 이유를 제시해 줄 자료가 없으니, 이에 대해서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여러 주장이나 상상이 난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미군이 한국전쟁에서 민간인 살상행위나 그 밖의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의미하지, 미국이 한국전쟁이 일어나도록 유도했거나 미국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뜻은 될 수 없다. 둘은 전혀 다른 얘기다.

2.4. 반응

3. 윤석열 탄핵 반대 세력 친일매국 지칭 논란

윤석열 탄핵 반대 세력을 친일매국이라고 지칭해서 친일몰이를 한다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됐다. 펨코는 이재명 셰셰 짤을 올리고 얘들은 무슨 세력이냐고 비판했다. 이외 국힘갤 일베 엠팍 등 편집지침에서 관련 내용이 3곳 이상에서 인터넷 인기글로 선정되면서 조건을 충족하게 되었다.

집회 발언에 국민의힘은 오늘(15일) 광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찬성 집회 연사로 나선 한국사강사 황현필 씨는 2009년~이하 6.25 전쟁 논란에서 인용되어 있는 황현필의 과거 발언 성명문을 발표했다.

4. 조선구마사 과잉반응 논란

황현필 한국사 강사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SBS 드라마 미쳤나?’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우리 역사를 깔아뭉개는 수준이 아니고 중국 역사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작가”라고 했다.

이병태 교수는 무슨 콤플레스가 이리 심한가? 픽션 드라마가 다큐멘터리도 아니고”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무섭게 흥분한 민중들을 활용한 정치가 (중국) 모택동의 문화혁명이고 (북한) 김일성의 인민재판”이라며 “군중심리로 작가들의 상상력을 억압하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이 인정하는 ‘하나의 역사’만 말하고 가르치고, 그래서 세뇌된 반일, 반중 테러리스트들이나 길러내자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인터넷이 인민재판 시 휘둘렀던 우중의 낫과 몽둥이가 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한국 픽션 드라마를 증거로 동북공정의 근거로 삼을 만큼 어리석은 나라인가? 이걸 근거로 동북공정을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에게 좋은 일 아닌가? 얼마나 근거가 없으면 그러냐고 웃어주면 될 수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과잉반응이야말로 이미 동북공정이 성공하고 있다는 방증인지 모른다. 종족주의적 어리석은 애국심들이 넘쳐난다”고 아쉬워했다. 이 교수는 앞서 “세종대왕이 중국 만두를 먹었다고 난리라는데”라며 “세종은 대표적인 중화사상을 신봉한 친중(親中) 군주였다"는 글에 이어 이 글을 올렸다.

이 교수의 글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황현필 한국사 강사 등이 '조선구마사'에 불편해 하며 드라마와 작가를 공개저격한 것과 달리 과잉반응을 경계했다. #

5. 모두공 2023년 강의 미촬영, 미통보 논란

○ 2023 강의는 왜 안찍으시는 거예요?? 선생님 2023강의만 기다렸는데 .. 그래서 모두공패스 끊은거고요 ㅠㅠ 책도 새로 살 생각이고 그랬는데 앞으로도 안 찍으시는 건가요? 그리고 이번 시험 해설강의도 없고 유튜브만 올리시고 무슨 일 있으신가요.. 2022강의는 2번씩 들어서 새출발하고 싶었는데요 다른곳 패스 또 끊게 생겼네요
○ 올 해는 어떻게 진행되는건지 모두공에서 아예 나가시는건지 어떠한 상황에 계신지를 공지라도 해주셔야 수험생 입장에서도 나름대로의 계획을 짜고 루트를 잡아 나가야하는 상황인데 유튜브는 계속 올라오지만 카페에서 어떠한 공지도 없고 조교님께서도 2023강의의 글에 대한 답도 전혀 안하시고.. 최대한 빨리 입장을 얘기해주시는게 저를 포함한 수험생분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할 지 선택 할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2022년 6월, 황현필 한국사 네이버 카페 홈페이지에 2023년 강의는 없는 것이냐는 질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황현필이 2022년 강의 촬영이 없을 것이라 고지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황현필 강의만을 생각하고 모두공 패스를 끊은 회원들이 많았다. '해설 강의도 없는데 바쁜 것이냐' , '유튜브만 올리시고 속상하다.' , '2023년 계획이 무너졌다.' 와 같은 회원들의 하소연 글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 모두공 고객센터에 문의를 해봤다는 한 수험생은 '담당부서와의 논의를 통해 기존강좌 제공으로 신규강좌를 미업로드 예정이며, 모두공과의 계약해지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황현필 선생님이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전에도 이런식의 소통이 문제였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링크(현재 사라짐)] 이전에도 학생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듯하다.

이 문제로 카페에 지속적으로 논란이 있자, 황현필은 2022년 7월 11일, '고민을 하다가 부득이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고 직접 공지했다. 회원들은 순순히 받아들였고, 논란은 여기서 종결되었다.

6. 역바연 회원 대응, 소통 논란과 역바연 신문 운영 중단

2022년 6월, 황현필이 역바연 신문 홈페이지를 개소하고 태백광노들을 대상으로 시민기자를 모집했는데 모집 과정에서 시민기자에 지원한 한 회원이 기사 제보 등에 대해 역바연측의 피드백이 원활하지 않고 역바연에서 약속한 내용들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소통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역바연에서는 일방적으로 회원의 글을 삭제해버렸다. 이에 해당 회원은 본인이 글을 지우지 않았다며 글을 재작성했고, 역바연 편집인이 문제를 제기한 회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소통 및 회원 대응, 홈페이지 관리 미흡 문제 등이 불거졌다.

황현필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다가 2022년 10월 3일,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유료 멤버십 회원들만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영상에서 역바연 신문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서야 감회를 밝혔다. 시민기자로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신문을 비난하면서 직원들이 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갑작스레 역바연 신문 운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황현필은 운영 중단을 결정함으로써 손해가 수 천만 원 발생했다고 언급했는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론적으로는 소통으로 불거진 이 사건으로 신문 운영이 중단되고 수 천만 원의 피해까지 볼정도로 큰 사건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 개월이 지나도록 황현필은 역바연 신문 홈페이지나 유튜브 커뮤니티 등 어떤 공식적인 경로로도 역바연 신문 운영 중단에 대해 공지하지 않았다. 비멤버십 구독자들은 물론 유료 멤버십 회원중에서도 스트리밍 영상을 보지 못한 회원들은 신문사 운영 중단에 대해 알지 못했으니 다소 무책임한 행동이었다. 특히, 황현필 한국사 유튜브 정기 유료 구독을 통해 역사바로잡기연구소 회원을 모집하고 그들에게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활용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역바연이, 이를 자세하게 회원 전체에게 고지하지 않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지 않은 것.

실제로 역바연 신문은 9월 이후 기사가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고, 대부분의 게시판이 통폐합되었으며, 2023년 1월에는 신문이라는 이름을 지워버리고 역사바로잡기연구소 홈페이지로 용도를 변경해버렸다. 실질적으로 신문사 홈페이지 개소가 8월 15일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개소 한 달만에 신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두 달도 안되어 폐간이 된 셈. 해당 사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1] 군튜버 캡틴 김상호가 시청자 중 한 명으로 황현필의 역사 왜곡 관련 영상에 직접 댓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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