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초대 | ||
후경 | |||
추존 | |||
대승상 · 원제 | |||
추존 존령 | |||
사도부군 · 진징부군 | |||
{{{-2 남조 황제 · 반란 지도자 |
<colbgcolor=#466991><colcolor=#ece5b6> 후한 추존 고관 후주 | 侯周 | |
시호 | 대승상(大丞相) |
생몰 | ? ~ ? |
성 | 후(侯) |
휘 | 주(周) / 을우주(乙羽周) |
부친 | 후씨(侯氏) |
[clearfix]
1. 개요
이름은 주(周) 또는 을우주(乙羽周)로 갈족 출신으로 전해진다. 남북조시대 양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후한을 건국해 황제를 칭한 후경의 조부로, 원제로 추존된 후표의 아버지다. 손자 후경이 황제로 즉위하자 후주는 대승상으로 추존되었다.2. 추숭
왕위: 천자가 되셨으니 마땅히 칠묘를 세워야 합니다. 후경: 칠묘가 무엇이냐? 왕위: 천자가 제사를 지내는 칠대 조상의 사당을 말합니다. 위패를 만들어야 되니 원컨대 감히 칠대 선조님들의 휘(諱)를 여쭙겠습니다. 후경: 할아버지 이전 조상들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못 봤다. 오래전에 삭주 땅에서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은 후표(侯票)인데 그 먼 삭주 땅에서 어떻게 이 먼 건강까지 와서 밥을 먹는단 말이냐? |
551년, 후경의 난이 발발하자 후경은 소동을 폐위하고 한제(漢帝)를 자칭한 후 좌복야 왕위가 칠묘(七廟)[1]를 세울것을 건의했으나 예의법도를 전혀 모르는 무부에 불과했던 후경은 아버지 후표를 제외한 조상의 이름을 몰랐기에 이에 모든 신하들은 후경을 한심하게 여겨 몰래 웃음을 참지 못했고 남은 위패에 아무렇게나 기재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후경의 부하중 조부의 이름을 아는자가 나타나 그 이름을 기재했다. 이후 후주는 시호 대승상(大丞相)으로, 그의 아들인 후표도 원황제(元皇帝)로 추존되었다.
[1] 당시 양의 칠묘는 태중부군(太中府君) 소예(蕭裔), 회음부군(淮陰府君) 소정(蕭整), 제음부군(濟陰府君) 소할, 중종사사부군(中從事史府君) 소부자, 특진부군(特進府君) 소도사, 태조(太祖) 문황제(文皇帝) 소순지, 덕황후(德皇后) 치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