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차 플로레스 해전 스페인어: Batalla de Flores 영어: Battle of Flor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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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 | ||
| 1591년 8월 30일~9월 1일 | ||
| 장소 | ||
| 아소르스 제도 플로레스섬 앞바다 | ||
| 원인 | ||
| 스페인 대함대 재건을 막기 위한 잉글랜드 함대의 공세오 스페인 해군의 반격. | ||
| 교전 세력 | ||
| 지휘관 | ||
| 병력 | ||
| 전함 55척. | 전함 22척. | |
| 피해 | ||
| 전함 2척 침몰, 100명 전사 또는 익사. | 리벤지 호 포획, 250명 사살 또는 포로. | |
| 결과 | ||
| 스페인군의 승리. | ||
1. 개요
1585~1604년 영국-스페인 전쟁 시기인 1591년 8월 30일~9월 1일, 아소르스 제도의 플로레스 앞바다에서 잉글랜드 해군과 스페인 해군이 맞붙은 첫 번째 해전.2. 상세
스페인 대함대의 1차 잉글랜드 원정 이후, 잉글랜드 해군 장성 존 호킨스는 스페인 해군의 재건을 방해하기 위해 누에바에스파냐에서 스페인 본토로 향하는 보물의 공급을 봉쇄하고자 잉글랜드 함선들을 파견해 해로를 차단하자고 제안했다. 1591년 여름, 서퍽 백작 토머스 하워드와 리처드 그랜빌 경은 존 호킨스의 제안에 따라 스페인 해안을 순찰해 보물선들을 모조리 잡아내기로 했다. 한편, 스페인 측에서는 제2대 산타크루스 후작 알론도 데 바잔의 지휘 아래 함대 55척을 구축했으며, 마르틴 데 베르텐도나와 마르코스 데 아람부루가 그를 보좌했다.얼마 후, 산타크루스 후작은 잉글랜드 해군이 아소르스 제도 북부를 순찰하고 있다는 보고를 접수했다. 1591년 8월 말, 루이스 쿠티뉴의 지휘 아래 포르투갈 함선 8척이 증원되자, 산타크루스 후작은 잉글랜드 함대를 공격하기로 했다. 당시 서퍽 백작의 함대는 많은 선원이 열병에 시달리며 해안에서 쉬고 있었고, 많은 배가 수리받고 있었다. 산타크루스 후작은 정박해 있는 잉글랜드 함대를 기습 공격하려 했지만, 산초 파라도의 기함이 뱃머리를 잃어버리면서 공격이 지연되었다.
산타크루스 후작의 함선들이 플로레스와 코르보 섬을 가르는 해협을 따라 항해한 건 8월 30일 오후 5시가 되어서였다. 서퍽 백작은 적이 출현했다는 걸 알게 되자 바다로 퇴각했지만, 리처드 그랜빌은 싸우기로 결심하고 기함 리벤지 호를 몰아 동쪽에서 접근하던 스페인 함대를 향해 진군했다. 서퍽 백작의 기함인 디파이언스는 탈출하던 중 아람부루의 산 크리스토발 호의 맹렬한 포격을 받았고, 리벤지 호는 클라우디오 데 비아몬테 선장의 산 펠리페 호와 직접 교전했다. 비아몬테는 리벤지 호에 탑승했지만, 도중에 갈고리가 끊어지는 불운을 겪으면서 함께 탑승한 병력이 겨우 10여 명밖에 되지 않는 불운을 겪었다.
얼마 후 마르틴 데 베르텐도나의 산 베르나베 호도 리벤지 호에 탑승을 시도했고, 리벤지 호에 올라탔던 산 펠리페 선원 중 7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산 베르나베 호가 달라붙고, 스페인 보병들이 맹렬한 머스킷 사격을 가하자, 잉글랜드 포수들은 그들과 맞서 싸우느라 장거리포를 더 이상 쏘지 못했다. 황혼 무렵, 잉글랜드 함대 대부분이 전장에서 이탈하자, 산 크리스토발 호는 디파이언스 호 공략을 중단하고 리벤지 호로 달려들어 선미 캐슬 아래에 들이받은 후 선원들을 리벤지 호에 등선했다. 스페인 군인들은 주 돛대까지 쳐들어갔다가 선미 캐슬에서 쏟아진 머스킷 사격으로 격퇴되어 후퇴했다. 산 크리스토발 호의 선수는 충돌로 부서졌고, 다른 선박에 증원을 요청해야 했다.
이후 안토니오 만리케의 아순시온 호와 루이스 쿠티뉴의 플리부트 라 세레나가 동시에 공격하면서, 리벤지 호를 둘러싼 스페인 함대의 수가 척으로 불어났으며, 리벤지 호는 여전히 산 바르나베 호와 손상된 산 크리스토발 호에 붙잡혔다. 리처드 그랜빌은 장병들을 독려해 등선한 스페인군에 맞서 싸웠지만, 심각한 상처를 받은 데다 리벤지 호가 심하게 손상되고 돛대가 완전히 분리되고, 아군 250명이 사망하거나 싸울 수 없게 되자 항복했다. 그러나 밤사이에 만리케와 쿠티뉴의 배가 서로 충돌해 침몰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페인군은 홀로 자국 함대에 맞서 용감하게 항전한 리벤지 호 생존자들을 명예롭게 대했지만, 산타크루스 후작의 기함으로 옮겨진 그랜빌은 이틀 후에 전투 중 입은 부상이 악화하면서 사망했다. 스페인 보물 함대는 곧 산타크루스 후작과 만났고, 스페인 함대를 본국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주일간의 폭풍에 휩쓸리면서, 리벤지 호와 스페인 군함과 상성 15척이 침몰했다. 기록에 따르면, 리벤지 호는 테르세이라 섬 근처에서 스페인인 70명과 잉글랜드인 포로로 구성된 선원과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1971년, 영국 탐험가 시드니 윙골은 리벤지 호 난파선을 탐사하기 위해 아소르스 제도로 국제 탐험대를 조직했지만,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1] 찰스 딕슨, <리벤지 호의 마지막 전투>, 193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