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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0 15:46:34

제4차 국민투표

1975년 국민투표에서 넘어옴
파일:대한민국 투표 도장 문양(흰색 테두리).svg 대한민국의 주요 선거·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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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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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국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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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대통령 재신임 여부
투표율 79.8%
개표
찬성
반대
73.1% 25.6%
결과
대통령 재신임

1. 개요2. 배경3. 결과

1. 개요

1975년 2월 12일 치러진 대한민국의 국민투표로 13,413,325명의 유권자가 참여했으며 79.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2. 배경

1972년 10월 유신으로 권력이 대폭 강화되어 장기집권이 보장된 박정희는 야당들과 재야인사, 학생들의 극렬한 반대로 긴급조치를 연달아 선포하는 등 정국이 어수선하여 국민에 자신과 유신체제에 대한 신임을 물었다.

1975년 1월 22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발표했다.
이번 국민 투표는 비단 현행 헌법에 대한 찬반 투표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로 간주하겠다. 만일 국민이 현행헌법의 철폐를 원한다면 대통령에 대한 불신임으로 간주하고 즉각 대통령 직에서 물러날 것이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200310270500001_1.jpg
국민투표에 참여하는 박정희와 그의 딸 박근혜.


대한뉴스 <대통령 특별 담화 -국민투표 실시에 즈음하여-> 보도.

박정희는 특별담화를 통해 국민투표를 제안하였고, 자신에 대한 신임 여부로 간주하겠다며 결과가 유신철폐로 기울인다면 불신임으로 받아들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신민당 등의 야당과 재야세력들은 국민투표 반대를 주장했으나 그 효과는 미미했고, 국민들은 투표에 참여했다.

3. 결과

제4차 국민투표 (1975년 2월 12일)
시도명 투표인수 투표수 유효투표수 무효
투표수
기권수 투표율
(%)
찬성율
(%)
찬성 반대
합계 16,788,839 13,404,245 9,800,201 3,370,085 13,170,286 233,959 3,384,594 79.8 73.1
서울 3,491,541 2,102,851 1,220,557 849,644 2,070,201 32,650 1,388,690 60.2 58.0
부산 1,161,018 812,290 504,657 292,814 797,471 14,819 348,728 70.0 62.1
경기 1,892,305 1,603,494 1,162,887 414,009 1,576,896 26,598 288,811 84.7 72.5
강원 859,667 788,395 652,595 122,681 775,276 13,119 71,272 91.7 82.8
충북 728,690 657,201 525,766 119,412 645,178 12,023 71,489 90.2 80.0
충남 1,429,743 1,216,480 909,891 280,194 1,190,085 26,395 213,263 85.1 74.8
전북 1,180,103 1,017,173 736,040 261,598 997,638 19,535 162,930 86.2 72.4
전남 1,928,767 1,638,816 1,250,716 356,330 1,607,046 31,770 289,951 85.0 76.3
경북 2,321,415 2,029,807 1,629,468 367,942 1,997,410 32,397 291,608 87.4 80.3
경남 1,601,801 1,362,513 1,057,413 283,732 1,341,145 21,368 239,288 85.1 77.6
제주 193,789 175,225 150,211 21,729 171,940 3,285 18,564 90.4 85.7
서울부산은 각각 58%와 62%라는 낮은 득표율을 기록하긴 하였지만 73.1%라는 높은 찬성표로 현행 체제(유신헌법)가 그대로 유지되었고, 국민들이 박정희 정부를 다시 한 번 신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당시 육영수 피살 사건이 발생한지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았고, 베트남 전쟁의 종전 및 월남의 공산화가 가시화 된 때인데다가 1차 오일쇼크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면서 여러모로 박정희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90% 이상의 찬성율을 보인 유신헌법 찬반 투표보다는 정부 지지율이 약 15% 이상이 떨어져 유신 체제에 대한 비판여론도 꾸준히 나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곧 긴급조치 남발, 2차 오일쇼크로 인한 10대 총선에서 박정희가 참패하고 9대 대통령 취임직후 유신헌법이 불안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을 암시한 비상 경고등이 되었다. 결국 이 투표로부터 4년 후 유신헌법은 부마사태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고, 그로부터 며칠 후 비참한 말로를 겪고 대통령 박정희가 서거하면서 불행하게 막을 내렸다.
1975년 국민투표
찬성 73.1%
반대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