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요 선거·투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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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 | 제6차 1987년 10월 27일 | 시행 불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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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6월 15일 제3차 개헌으로 부통령직 폐지 ** 2014년 7월 24일 헌법재판소가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내용 중 일부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나 이후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 1월 1일자로 효력을 상실하여 시행 불가능 | }}}}}}}}} |
대한민국 재보궐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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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1990년중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다. 2000년 2월 이전까지는 재보궐선거의 일정이 정례화 되지 않아 지역마다 선거일이 모두 달랐다.[1]2. 4월 3일
1990년 4월 재보궐선거/국회의원 선거 결과 | ||||
[[민주자유당|]] | 무소속 | |||
1석 | 1석 | |||
제13대 국회의원 |
1990년 4월 재보궐선거 지역구 | |
국회의원 | |
대구직할시 서구 갑 정호용 (무소속) | 12.12 군사반란 주동 혐의로 의원직 사직 |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 김완태 (민주자유당) | 1990년 1월 사망 |
2.1. 지역별 선거 결과
2.1.1. 대구직할시 서구 갑
서구 갑 내당1동, 내당2동, 내당3동, 내당4동, 비산4동, 평리2동, 평리4동, 평리5동, 상이동, 중리동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문희갑(文熹甲) | 41,970 | 1위 |
[[민주자유당|]] | 51.55% | 당선 | |
2 | 김현근(金顯根) | 5,199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50% | 낙선 | |
3 | 백승홍(白承弘) | 34,242 | 2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42.50% | 낙선 | |
| | - | 사퇴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 ||
계 | 선거인 수 | 132,364 | 투표율 63.95% |
투표 수 | 84,644 | ||
무효표 수 | 3,233 |
현역 국회의원이던 정호용은 3당 합당 과정에서 김영삼과 김종필의 요구에 따라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부탁에 의하여 사퇴하고, 이 과정에서 노태우에게 보궐선거 공천을 약속받는다.[7]
그러나 민주자유당은 정호용이 아닌 문희갑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공천하고, 정호용은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 무소속 출마엔 부인의 권유가 있었다고.
선거전은 팽팽한 접전으로 흘러갔으며, 당시 민주자유당은 3당 합당 이후 치러지는 첫 선거라 현역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동책을 맡도록 하고 안기부 등을 통하여 정호용을 미행까지 하며 압박했으며##,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정호용의 부인이 자살 기도까지 하자# 결국 정호용은 후보등록까지 마감했음에도 끝내 사퇴하고 만다.
그렇지만 정호용의 사퇴 이후 정호용의 지지층이 모두 문희갑 후보에게 간 것은 아니었다. 무소속[8] 백승홍 후보는 당초 정호용과 문희갑 후보의 경쟁으로 인한 어부지리 효과를 노리다 정호용의 사퇴에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호용 지지층을 흡수하려고 시도했고#, 결국 선거 결과 문희갑 후보는 텃밭인 대구에서 출마하였음에도[9] 51.5%의 득표율로 겨우 과반을 넘겼으며 당시 백승홍 후보는 42.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비록 낙선했지만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이강철이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44.1%의 득표율을 기록하기 이전까지 대구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정호용의 사퇴로 인하여 남은 선거자금이 후일 문희갑의 대구광역시장 임기 말에 발생한 비자금 파동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2.1.2.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
진천군·음성군 진천군 일원, 음성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민태구(閔泰求) | 31,178 | 2위 |
[[민주자유당|]] | 45.44% | 낙선 | |
2 | 허탁(許沰) | 37,441 | 1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54.56% | 당선 | |
계 | 선거인 수 | 89,987 | 투표율 78.2% |
투표 수 | 70,356 | ||
무효표 수 | 1,737 |
무소속 허탁 후보가 농촌지역에 여당의 텃밭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당선되었다. 이후 허탁 의원은 그 해 6월에 창당한 민주당에 합류한다.
3. 11월 9일
1990년 11월 재보궐선거/국회의원 선거 결과 |
[[평화민주당|]] |
1석 |
제13대 국회의원 |
1990년 11월 재보궐선거 지역구 | |
국회의원 | |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서경원(평화민주당) | 국가보안법 위반·비자금 수수 관련 혐의로 의원직 상실 |
- 당선자
-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이수인(평화민주당)
3.1. 지역별 선거 결과
3.1.1.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함평군·영광군 함평군 일원, 영광군 일원 | |||
기호 | 이름 | 득표수 | 순위 |
정당 | 득표율 | 비고 | |
1 | 조기상(曺淇相) | 16,412 | 2위 |
[[민주자유당|]] | 22.41% | 낙선 | |
2 | 이수인(李壽仁) | 55,787 | 1위 |
[[평화민주당|]] | 75.38% | 당선 | |
| | - | 사퇴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 | ||
4 | 노금노(魯金盧) | 1,609 | 3위 |
[[무소속(정치)| 무소속 ]] | 2.19% | 낙선 | |
계 | 선거인 수 | 104,352 | 투표율 73.80% |
투표 수 | 77,013 | ||
무효표 수 | 1,019 |
이수인 후보가 외지(경상북도) 출신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총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여유롭게 당선되었다. 지역구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외지인을 공천한 데에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서라는 당총재 DJ의 의중에 따른 것이었다. 당 안팎에서 반발이 상당했다고 한다. 이는 김대중 자서전에도 언급된다.
[1] 그래서 위키백과나 나무위키 문서에 기재되지 않은 2000년 이전 재보선 결과도 상당하다. 지역별로 날짜가 전부 달라 목록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전의 지역별 재보선 결과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중앙선관위 자료를 참고하길 바람. #[2] 당시에는 정식 창당 이전이었으므로 무소속으로 출마.[3] 부산광역시장, 경상남도지사, 전라남도지사, 제주도지사 재보궐선거.[4] 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5] 서울특별시장, 부산광역시장 재보궐선거.[6]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7] 이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당시에는 속칭 맹형규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시행되기 이전이라 본인이 재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해도 본인이 재출마하는 것이 가능했다.[8] 이후 민주당에 합류.[9] 다만 지금과는 달리 당시의 서구는 젊은 층들의 비중이 높았고 야권 지지층도 적지 않았던 곳이다. 13대 총선에서는 정호용이 과반으로 승리하였지만 12대 총선에서는 중구·서구 선거구에서 신한민주당의 유성환 후보가 1위로 당선되는데 크게 기여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