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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17:06:57

1~2차 FX 사업

1. 사업의 근원2. 1차 FX 사업의 시작3. 복병 IMF4. 진행 5. 1차 FX 사업의 후보 기종6. 1차 평가7. 최종 2차 평가8. 이후의 여파9. 경쟁 업체들과 기체들의 후일담10. 2차 FX 사업11. 읽을 거리

1. 사업의 근원

FX 사업은 198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F-15C/D급의 중형 전투기를 요구했다. 이는 당시 도입한 F-4D의 대체재가 필요했고, 일본F-15J를 도입하였으며 북한 역시 MiG-29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일 밝혀진 바에 의하면 북한의 MiG-29는 주력이 되지 못할 정도로 소수였고 기름도 없어서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했지만 언젠가 도입이 예상되는 Su-27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차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F-15 도입은 KFP 사업에 의해서 사실상 1990년대로 미뤄지게 된다.

KFP 사업으로 F-16이 도입되면서 바로 중형 전투기 도입 사업이 공군 측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F-16 자체가 주력기로 운영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당시 공군의 의견이었고, 또한 1960년대부터 쓸 만큼 써 온 F-4의 대체도 2000년 초반에 마치는 것이 바람직했기 때문이다.

2. 1차 FX 사업의 시작

공군은 약 500여 기의 전투용 항공기 중 상당수가 노후화 되어 전투기공격기가 2009년부터 10년간 약 150기 가량 부족해지는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이로 인해 1993년 국방부에서는 중기 사업으로 120대의 중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발표했다.

당시 냉전이 끝나고 국방 예산 감축으로 인해 힘겨워하는 많은 군수업체들이 이 사업에 관심을 보였으며, 공군의 ROC를 맞추는 회사는 대부분 참여를 원했다. 미국맥도넬 더글라스F-15E를, 러시아수호이는 Su-30과 개발중인 Su-35를, 유럽EADS는 당시 개발 중인 유로파이터 타이푼를, 프랑스다소 역시 개발 중인 라팔을 제안할 목적이었다.

한국군이 다량의 중형 전투기를 도입할 것이라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엉뚱하게 불이 붙은 초기 격전지는 1996년 서울 에어쇼였다. 이 에어쇼는 한국이 최초로 개최한 국제 에어쇼[1]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사업 덕택에 1996년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와 러시아의 Su-30과 Su-37[2], 미군의 F-15C와 F-15E가 참가하였다. 또한 에어쇼가 끝나고 러시아의 두 기종은 후에 한국 공군에서 몇 차례 비행을 하고 가기도 했다. 2001년엔 라팔이 An-124를 타고 와서 다시 한번 에어쇼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러시아 수호이사 역시 Su-35를 가지고 왔는데 이 기종은 1996년 비행한 Su-37에서 TVC만 뗀 동일 기종이라 기종 넘버링에 약간의 논란이 있기도 했다. 참고로 항상 Su-37로 소개되던 Su-27M 711번기가 TVC를 떼고 Su-35로 소개된 것도 2001년 서울에어쇼가 유일했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도입 수량이라는 국방부의 커트도 있었고 당시 공군이 벌이던 사업이 워낙에 많다 보니 1996년에 120대에서 100대로 축소되었다.

3. 복병 IMF

1997년 외환 위기라는 경제 크리를 맞은 한국은 몸집 줄이기에 혈안이 되었고, 특히 돈 먹는 하마인 무기 도입 사업이 사실상 축소, 중단되었다. 특히 거의 국내 개발 없이 해외 도입을 해야하는 공군의 사업들은 대부분 연기/중지 크리를 맞았다. 하지만 공군은 E-X, KC-X 사업은 둘째치더라도 FX 사업은 포기하지 못하겠다며 대신 도입 수량을 60대로 줄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하나 터지게 되는데, KFP 사업이 거의 끝나 국내 라이센스 생산이 거의 없어지게 되자 당시 라이선스를 맡던 삼성항공이 KF-16의 추가 도입을 요구하게 되었고, 공군은 가뜩이나 예산 쪼개쓰는 상황에서 만약 이를 수락하게 되면 FX 사업은 여기서 더 줄어버린다는 위기 의식을 맞이해서 둘이 처절하게 싸운다.[3]

결국 최종 수락된 의견은 양측을 만족하게 되는데, 우선 공군은 FX를 60대에서 40대로 줄인다. 하지만 40대 이후 경제 상황을 봐서 20대를 추가 도입한다였고, 당시 IMF보다 더 나빠지진 않을 것이었기에 공군은 수락했다. KFP 사업도 20대를 추가 도입하지만, 예산은 '국내 항공산업 육성'이라는 취지로 국방비가 아닌 산업자원부에서 도입 비용 일부를 제공하는 것으로 사실상 끝낸다. 그리고 국내 항공산업 구조조정을 위해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 등 관련 기업체를 통폐합해 KAI를 설립했다.[4]

이로써 최종 정리가 되었고 1999년 공식적으로 사업을 공표하게 된다. 공군은 전투기 도입 수를 줄이는 대신 경합을 통해 F-15E급[5] 이상의 전투기 도입을 요구했다. 당시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은 보잉사의 F-15K, F/A-18E 슈퍼호넷[6] 그리고 다소사의 라팔 Mk.2, EADS사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수호이Su-35UB 슈퍼플랭커[7]였다.

4. 진행

록히드 마틴F-22 예비 제안서를 제출한 지 얼마 안 가서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 당시 F-22는 여전히 시험중이었던 데다 미국 정부가 수출 허가를 내지 않았다는 점, 기체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 더불어 당시 F-22 사업에 동참하던 보잉[8]이 '2010년까지는 해외 수출은 꿈도 못 꿈'이라며 인터뷰한 것이 언론에 타면서 정식 후보에 들지 못했다.

F/A-18E 슈퍼 호넷은 보잉이 F-15K 한 기종에 전념하는 것이 유리하다 판단했는지 역시 스스로 포기한다.

이로써 정식 후보로 F-15K, 라팔 트렌치2[9], 유로파이터, Su-35UB로 결정된다.

어쨌든 이미 전문가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업이 되어버렸고, 이 가운데 지만원은 '다른 거 필요 없고 이 돈으로 F-5 도입하자'라는 망언을 터뜨린다.[10]

그리고 2001년을 기점으로 FX 사업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IMF 이후 사실상 최초인 대형 무기 도입 사업이었던 데다 1996년 1회 서울 에어쇼부터 공격적인 홍보를 해왔던 다쏘사,[11]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영원한 꿈이었던 F-15 도입, PC통신 시절부터 비(非) 미국제 무기에 대한 환상을 품어왔던 일부 밀리터리 동호인, 마침 비슷한 시기에 터져나온 육군 코브라 공격 헬기 단종에 따른 부품 수급 논란,링크[12] 그리고 운동권 출신인 김대중 정권이 들어섰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국방정책도 달라질 것이라고 하는 진보 세력에 의해 이 사업은 국민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미 라팔과 F-15K에 대해서 공군과 국방부 내에서도 의견 차이가 극심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이때 '국방부 상부층에서 F-15K에 유리한 점수를 주라'고 했다고 발표한 사람이 사업 평가단원이던 조주형 현역 공군 대령이었다[13]. 다만 조주형 대령에 대한 논란도 많다. 이유는 후에 닷소사의 로비 문제가 있어 구속당하기 때문이다.

5. 1차 FX 사업의 후보 기종

각 후보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5.1. Su-35UB

Su-35UB[14][15]는 4기종 중 가장 큰 기체 크기 덕분에 넓은 작전 반경과 뛰어난 기동성, 강력한 폭장 능력[16]을 보유하고 있으며 타 기종보다 싼 기체와 유지비도 가장 저렴하다. 하지만 한국군은 미국의 무기체계를 사용했기에 부대 시설비가 많이 들어가는 점이 문제였고, 불곰사업을 통해 러시아 무기를 일부 도입한 한국군 입장에서도 장단점이 있지만 공군의 주력 전투기가 수량이 시작 당시의 120대가 아닌 40대라 수량이 적어 대당 유지 비용이 많아진 데다 후속 지원 체계도 못 미더운 러시아제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5.2. 유로파이터 타이푼

유로파이터의 경우에는 브로셔상으로는 뛰어난 폭장량과 강력한 공대공 능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그 당시 제안한 버젼이 트랜치 1인데 이 버젼은 기본적인 BVR 교전이나 비유도 폭탄밖에 운용하지 못한다. 도입 기종 중 가장 비쌌다(총 사업 제시 비용이 60억 유로). 또한 완성률이 가장 떨어지는 기체로서 공대공 공대지 능력을 모두 갖추고 한국에 도입된다면 (당시의 시점에서) 빨라야 2008년에야 도입될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안고 있었다. 후술할 후일담 참조.

5.3. F-15E

F-15E는 가장 많은 폭장량과 가장 빠른 속력과 가속력, 그리고 무엇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실전배치되었고 전쟁에도 수없이 참여, 뛰어난 성능을 입증하였기 때문에 신뢰성이 높았고 이는 반대로 구세대 전투기라는 오명을 안겨 주는 상황이었다. 사실 F-15A/B/C/D와 E형은 거의 다르다고 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두 기종 간 부품 호환율은 15%가 채 안 된다…) 여하튼 일반 대중에게 뒤에 붙은 알파벳은 그다지 별 차이가 없었다... 때문에 F-15K는 '102대 0의 전적을 자랑하는 검증된 전투기', '랜드 연구소가 보장하는 가장 낮은 손실율!!'이라는 홍보 문구를 가지고 있었다.

5.4. 라팔

라팔 역시 미카 같은 미사일과 OSF,[17] 스펙트라와 같은 최신 전자장비를 이용하여 뛰어난 공대공 능력을 선보였다. 또한 스텔스기까진 아니지만 낮은 RCS 값도 나름대로의 장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라팔은 '최신형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FX 사업 당시에도 실전 배치된 것은 공대공 전투가 가능한 공대공 버전[18]이었으며, 1999년 당시에는 비행시간 100시간에 엔진 오버홀[19]을 실시할 정도. 이는 신형 엔진을 개발 때나 하는 행위로서 현용기는 대부분 2000시간에 한 번 한다. 즉 100시간을 날면 엔진을 다 뜯어보는 막장 수명이었기에 완벽하게 엔진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엔진 뿐만 아니라 공대지 무장 소프트웨어 자체도 미완성 상태였다. 그리고 다소사는 광고에 힘을 썼는데 당시 라팔은 최신예 '스텔스 전폭기'(…) 심지어 '현실에 존재하는 SF 전투기'라는 홍보 문구[20]를 가지고 있었다.

6. 1차 평가

여하튼 이러한 논쟁으로 2001년 10월 선정은 결국 연기되었고 그 후로도 계속 미뤄진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모든 후보 기종들이 ROC를 만족시키자 이에 흡족해진 공군은 세부적인 1차 평가를 위해 8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평가를 시작하며 각종 데이터를 모아서 워게임을 돌리기 시작한다.

유로파이터의 경우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값비싼 가격과 인도 일정의 차질 때문에 탈락하게 된다. 그리스 등에서도 도입 의사를 밝혔고,[21] 유로파이터 사업에 참여한 국가들에 대량 판매가 가능했기에 EADS사의 수출 의지도 강한 편은 아니었다. 물론 그래도 팔면 좋기에 유로파이터에 파트너 국가로 참여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떡밥을 투척하긴 했지만 이것으로 비싼 기체 가격을 만회하기란 어려웠다.

Su-35UB의 경우에는 공군이 성능 면에서 상당히 점수를 많이 주었다고 한다. FX 사업 당시 상황에 대하여 자세히 쓰여져 있는 책인 안보총서 시리즈 《KODEF F-15K》에 따르면 초기 공군이 검증한 결과 Su-35UB가 성능 면에서 F-15에 이어 2위였다고 한다.[22] 또한 국회 청문회에서도 가격은 물론이고 유지비도 Su-35UB가 가장 저렴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수호이사는 당시 냉전이 끝난 후에 설계국에서 회사로 독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경쟁 회사에 비하면 전문성은 높았으나, 세일즈 능력이 사실상 전무했다고 한다. 당시 FX 사업에 파견을 나온 수호이사 직원들 중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어가 아니라 영어다. 덕분에 의사소통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웠고 항상 통역관(한국계 수호이사 직원...)을 대동해야 했다고 한다. 제안서 쓰는 것도 힘들어 해서 공군이 도와주기도 했다니 정상적인 세일즈는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 당시 상황을 봐도 신문, 각종 잡지 등에 광고를 내던 다른 회사들과 달리 수호이사는 별다른 광고를 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업에 그리 큰 의지가 없던 EADS조차 협력을 강조하면서 광고를 내놓는 판에 말이다. 결국 수호이사는 다른 회사들처럼 떡밥을 던지긴커녕 처음 제안한 대로 40대 값으로 60대를 준다는 가격 경쟁력밖에 없었고 무장 통합만 2005년까지 IAI(이스라엘 항공우주 산업)에 외주를 주어 어떻게 해결한다 뭐다 하며 우물쭈물 거리기만 하다가 탈락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대망의 두 라이벌 라팔F-15K.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남은 회사는 미국의 보잉과 프랑스의 다쏘였다. 그러나 양쪽 모두 똥줄이 타들어갔는데, 보잉은 JSF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었고, 다소는 어떠한 나라도 라팔 도입 의사를 밝히지 않아 자국 도입만으로 끝내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에어버스를 살려준 은인이 한국이었기 때문에[23] 만약 한국이 라팔을 도입한다면 이로 인해서 라팔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두 회사는 다른 두 회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떡밥을 던지기 시작한다. 다쏘가 스칼프 순항 미사일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하자 보잉도 이에 질세라 SLAM-ER 순항 미사일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미 공군이 국방 예산을 축소한 결과 F-15E의 개량 사업이 캔슬을 먹자 '안 살 거면 수출이라도 허가해'라는 압박과 한국 내의 반대 여론으로 F-15K의 레이더를 AN/APG-70이 아닌 AN/APG-63(v)1 레이더로 교체했다. 이에 분노한 다소사는 가장 최약체로 꼽히던 엔진 문제에 초강수를 두었다. 바로 M-88-3 엔진을 자사가 돈들여서 개발한 다음 장착해 주겠다며 그 기간 전에 인도되는 기체는 M-88-2를 장착해주겠다고 선언한다. 이 엔진은 지상서 9,700시간을 테스트에 사실상 2,800시간 동안 운용한 것과 같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24]

그리고 대망의 2002년 3월 말에 1단계 평가를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결과는 라팔과 F-15의 공동 승리!! 정확하게는 라팔F-15K의 평가 점수가 오차범위인 3% 이내였기 때문에 2단계 평가 사업으로 진행하게 된 것이다.[25]

두 기종의 장단점이 극명하게 갈리면서(외형도 정말 안 닮았다….) 공군 내에서도 많은 찬반 논쟁이 있었고, 당시 인터넷 초창기였던 당시 초창기 인터넷 밀리터리 동호인들에겐 매우 뛰어난 떡밥이었다. 당시 디펜스 코리아, 이성찬의 무기체계, 마이티코리아, 비밀 등의 사이트에서는 FX 사업을 가지고 거의 대부분 싸움이 벌어졌으니 말 다했다. 초창기 밀리터리 사이트 거의 모든 곳에서 싸움이 벌어진 만큼 이후 한국군의 무기 도입 사업에서도 인터넷 사이트들의 키보드 배틀은 끊임없이 벌어졌고 때로는 이러한 논쟁이 무기 도입 사업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7. 최종 2차 평가

2단계 평가는 싱겁게 F-15K의 승리로 끝났다.

2단계 평가 사업은 한미관계나 기존 한국군 무기와의 호환성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F-15K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는 분야였기 때문에 사실상 F-15K가 선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혹자는 '같은 NATO 가입국인 프랑스가 왜 미국 무기와의 호환성 문제가 제기 되느냐'라고 말하지만, 당시(FX 기종 선정 시점) 프랑스는 냉전 말기부터 상당 기간 NATO 연합지휘체제에서 떨어져 나와 있다가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을뿐더러, 많은 무기를 자체 개발해 사용하고 있던 관계로 F-15K와 비교하면 다소 처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라팔도 다수의 미제 무장을 쓸 수 있었다. AIM-9X와 같이 사업 진행 당시에야 겨우 개발 완료 및 초도 배치가 진행 중이던 최신 무장이야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그 이전 버전의 AIM-9들은 쓸 수 있었고, GBU-12, GBU-24 등의 미제 유도폭탄도 실제로 프랑스 공군이 사용 중이었기에 이미 통합되어 있었다. 기관포탄의 경우 AH-64 아파치호크 훈련기가 사용하는 30x113mm탄을 사용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대함미사일 두 가지 항목에서 한국이 이미 다량을 보유하고 있는 미제 무장인 암람(AMRAAM)과 하푼(Harpoon)이 통합되어 있지 않았다. 다쏘는 그 대신 자국산 신형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인 미카(MICA)와 포클랜드 전쟁을 통해 잘 알려진 대함미사일 엑조세(Exocet) 패키지를 제안했는데 비록 무기간의 성능 차이는 둘째 치고, 만약 라팔을 도입하게 된다면 그 많은 무기들을 추가 도입할 예산이 더 필요하다는 점은 어느 정도 라팔 측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26] 비록 미국이 라팔에 자국의 무기 사용을 허가하게 된다면 문제는 해결되겠지만 FX 사업 당시 그런 말을 했다간 F-15K가 불리해질 것이 뻔한 상황이었기에 미국은 '타국 전투기 도입 시엔 미제 무장을 사용하게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27] 실제로 FX 사업 기간 중 미국의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인 암람의 제작사 레이시온과 다쏘항공 사이에 라팔에 암람 운용 능력을 부여하는 데에 관한 논의가 있었고 양해각서(MOU) 체결까지 진행되었으나 이후 더 진행되지 못하고 중지된다.

게다가 당시 조주형 대령이 밝힌 바에 따르면 F-15K를 살 경우 레이더의 표적 식별 기능인 NCTR, 당시 개발 중이던 AIM-9X, SLAM-ER 등을 함께 판다는 미 의회의 승낙을 받아냈다고 한다(저런 고성능의 무기는 당시까지는 한국에 제공하기를 거부한 상태였다). 전투기의 성능은 어떤 무장을 하느냐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을 볼 때, 이것도 F-15K를 도입하는 데 대단한 장점 중 하나였다.[28]

그리고 2002년 4월 중순, 대한민국 국방부는 최종으로 F-15K 40대 도입을 확정지었다.

8. 이후의 여파

이 사업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무기 도입 사건은 단순히 국방부만의 문제가 아닌 국민적인 관심 분야로 진입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대규모 무기 사업은 앞으로도 경쟁입찰 방식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범국민적 관심으로 인해 선정 과정에서 전문성이 떨어질 수는 있어도 이로 인한 입찰사 간의 경쟁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냈고, 좀 더 좋은 조건으로 무기 도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여파를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사업 이후 각 항공기들과 관련 당사자들의 향방은 아래 항목 참고.

9. 경쟁 업체들과 기체들의 후일담


한국-프랑스 4.5세대 전투기, 첫 연합 공중훈련
세월이 흘러 2023년 7월 25일, 한국-프랑스 연합 공군 훈련에서 FX사업에서 채용된 F-15K 전투기와 사업에서 떨어진 라팔 전투기가 같이 하늘을 날며 훈련을 하게 되었다.

10. 2차 FX 사업

1차 FX 사업으로 한국은 40대의 F-15K를 구매하였고, 2008년 8월 2차 FX 사업으로 21대의 F-15K를 더 발주하였다. 2012년까지 21대의 F-15K를 인도받을 예정이며 따라서 추락한 1대를 제외하면 모두 60대의 F-15K를 보유하게 된다.#

2차 FX 사업은 환율과 소량 발주로 인해 1차 FX 사업 당시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하게 되었다.[41] 2차분에서는 야시 장비가 교체되었는데, 1차에서는 타이거아이가 도입되었는데 2차 FX에서는 스나이퍼XR이 도입되었다. 그 외 특이점은 1차 때는 호환이 가능한 GE사의 F110-GE-129 계열 엔진을 채택했는데 2차 FX에는 원래 미국 F-15에서 사용하는 PW사의 F100-PW-229 계열로 다시 교체 도입했다. 이는 KF-16의 엔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KF-16의 엔진은 F100-PW-229(당시 삼성항공이 조립했다.) F-15K는 F100-PW-229 EEP(직도입) 이다. 원래 GE엔진과 PW엔진이 미 공군의 F-15와 F-16에 호환이 가능하다고는 하나 동일한 기종에 대해서 엔진회사까지 바꾸면서 도입하는 경우는 좀 이례적인 상황.

표면적인 이유로는 2차 F-15K 엔진 선정에 있어 GE, P&W 양대 업체들의 경쟁을 유도, 가격 인하, 절충 교역 면에서 향후 3차 FX에서도 많은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명분.

하지만, 실질적인 이유로는 당시 KF-16의 가동률에 적신호가 생겼기 때문. 폭우 피해로 인해서 공군에서 보유 중인 KF-16 엔진 부품 재고들이 못쓰게 되었고, 예비 엔진들도 바닥이 난 상황. 이 때문에 긴급히 예산을 투입했지만 턱없이 부족하였고, 그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2차 FX에서 F-15K 엔진을 F100-PW-229EEP로 선정하면 KF-16과 호환되는 만큼 이때 확보되는 예비 엔진, 부품들로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는 점에서 채택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논란이 많았던 만큼 표면적으로 가격 인하, 절충 교역에서 많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실리적인 목적의 경쟁 입찰을 통한 엔진 선정으로 미화된 부분이 없진 않다 1차 FX 당시에도 KF-16과 호환 가능한 P&W 엔진이 아닌 GE 엔진으로 선정된데 언론에서 적지 않게 이의를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이래나 저래나 잡음과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것이 공군 전력화 사업의 현주소-

결과적으로는 한 기종에서 기체 결함이 발생했을 때 원인이 밝혀지기 전엔 다른 기종들까지 가동을 못 하는 사태를 종종 피했다는 점에서[42] 여러 종류의 엔진을 도입한 건 나름 장점이 되기도 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

11. 읽을 거리



[1] 에어쇼는 그저 비행기들이 묘기 부리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래도 국제적으로는 대부분의 항공기 거래가 체결되기도 하기 때문에 항공산업에 중요 행사이다. 특히 <96 서울에어쇼>는 다분히 FX 사업을 염두에 두고 공군이 전적으로 지원하여 개최된 행사이기도 하다.[2] 흔히들 이 에어쇼 때문에 혼동하지만 수호이사가 제안한 기종은 Su-35다. 다만 서울 에어쇼에선 TVC와 카나드를 장착한 Su-37을 홍보했는데 이때 쇼크로 당시 여러 잡지에서는 Su-37을 무적의 전투기로 소개하곤 했다. 지금이야 TVC가 새로울 것도 없지만 막상 서방에서 TVC 즉 추력 편향 노즐을 장착한 전투기는 F-22가 최초이며 이 전투기는 2001년부터 배치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 1996년에는 당연히 최신예 F-22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지금처럼 스텔스 전투기에 대한 이미지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TVC에 페이즈드 어레이 레이더를 탑재한 Su-37이 당시 밀리터리 동호인들에게 무적의 전투기로 받아들여지고 라팔이 거의 우주 전투기 취급을 받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3] 당시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에서 이 의견으로 거의 하루종일 싸웠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4] 이때, 항공기 부품 수출과 군용기 정비사업, KAL 자체 정비 소요를 가지고 있던 대한항공은 자생하기로 하고 통폐합을 거부했는데, 정부의 페널티를 받아 10년간 국내 방위산업 참여가 금지되었다.[5] 라팔을 위해 제한 ROC에 최고 속도를 1.8로 낮춘 것을 제외하곤 완전히 F-15E랑 다를 바 없었다.[6] 당시 보잉의 말로는 한국 정부가 F-15 이상 기종을 원했기 때문에 선택의 폭을 넓히는 의미에서 포함시켰다고 한다. 퍽이나...[7] 정확하게 말하면 러시아군의 Su-35처럼 4.5세대 전투기가 아니라 다른 기종들과 비슷한 4세대 기종이었는데, 이는 당시 제안 기종이 Su-35BM이 아니라 Su-35UB로서 사실상 인도의 Su-30MKI를 좀 개량한 2인승 버전이었다. 물론 그 수준도 상당했지만...[8] F-22나 F-35나 록히드 마틴이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계약자일 뿐이지 다만 기술 권한과 해외 판권은 주계약자가 갖는다... 여담으로 F-22의 주익은 보잉에서 납품한다.[9] 사실 당시는 아직 트렌치2도 없었을 시기다. 다만 단계별로 트렌치1급, 2008년까지 트렌치2급, 2009년까지 트렌치3과 비스무리한 걸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자세한 건 아래 서술.[10] 사실 지만원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을 1960년대 당시에는 진보적 공군 군인들과 학자들이 F-4 팬텀 II 같은 뚱뚱하고 미사일을 쏘는 녀석보단 MiG-21 같은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이론은 베트남전에서 미그기에 시달린 미국에서는 꽤나 선풍적이었다. F-16도 이 이론을 따라서 개발되었다. 문제는 30년이 넘게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이 이론을 들고 나왔다는 것. 그 직후에 지만원과 밀리터리 매니아 간의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긴 했지만 (당연히) 지만원 떡실신. 사실 F-16도 시간이 흐르면서 BVR 성능을 보유할 정도니 당시 지만원의 말은 시대의 변화를 모르고 하던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당시 비밀에선 저런 놈을 방출시킨 국방부 인사부서에게 상을 내려야한다고 조롱할 정도였다.[11] 각종 신문이나 잡지에 전면 광고를 때리는 한편(다른 기종들은 F-15말고는 제대로 된 홍보도 없었다. 그리고 F-15도 악명 높은 굴림체로 신문에 광고를 싣는 등 그다지 성의가 없었다. 반대로 라팔은 에어쇼나 간담회 등 항공 관련 행사만 있으면 브로셔 등등 홍보 물품을 말 그대로 뿌려댔다. 당시 돈 2만 5천 원짜리(짜장면이 3천 원이던 시절이었다.) 미래의 날개 라팔이라는 화보집도 그냥 공짜로 나눠줬다. 홍보비로만 라팔 한 대 값을 썼다는 농담마저 나올 정도로... 심지어 도전 지구탐험대라는 프로그램에서 일개 연예인에게 라팔을 탑승시켜주는 이벤트까지 벌였다.[12] 당시 괜히 국민들 사이에서 F-15 단종설이 잘 먹혔던 게 아니다. 본격적 사업 개시 직전에 코브라 헬기 단종에 따른 부품 강매 논란이 대서 특필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국민들 뇌리에 단종에 대한 우려가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 문제를 상세히 보도한 것까지 낚시질의 사전 작업이었다면... 후덜덜[13] 조주형 대령과 관련된 내용은 너무 길어질 수 있어 별도의 문서가 필요할 수 있다.[14] UB라는 접미어의 키릴 원문은 УБ로 учебно-боевой의 준말이다. 이 말을 번역기 넣고 돌리면 Combat training 즉 훈련기이다. 상식적으로 훈련기가 F-X 사업의 후보 기종이 될 수는 없으나.... 반박 하자면 UB는 조종사 부조종사 콕핏이 동일하다는 것이고 베네수엘라 공군에 수출된 Su-30MK도 두 조종사 콕핏이 동일하다 말만 훈련기이지 전폭기 일수 있다.[15] 참고로 전투 폭격기형을 의미하는 접미어는 ИБ로 истребителей-бомбардировщиков, 번역어 Fighter-Bomber인데 이 접미어가 붙은 기체는 Su-34의 시제기 Su-27IB이다.[16] 플랭커 시리즈의 특징은 외부 연료탱크 대신 내부에 거대한 연료탱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타 기종처럼 전투중량, 즉 내부연료를 반을 채운 상태에서 평가하면 추중비와 폭장량이 폭삭 낮아보이는 단점이 있다. 흔히 알려져있는 최대 8톤의 폭장량은 다른 기종으로 치자면 컨포멀 연료탱크 3개와 8톤의 무기를 한꺼번에 싣는다는 이야기와 같다. 그리고 Su-30시리즈 이후에는 외부 연료탱크 옵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 그래도 장대한 항속거리가 더 늘어난다. 다만 내부 연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연료탱크를 안 달고 다니는 것뿐.[17] 당시 다소의 한국 지사장인 블랑빌레는 이것의 탐지 거리가 180km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흠좀무.[18] 여담이지만 FX 사업이 끝난 2007년에 라팔이 실전에 참가했지만, 레이저 유도 폭탄을 미라지 2000의 도움을 받아서 투하했다. 그때까지도 공대지 공격 기능이 완전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인데...[19] Overhaul, 모든 부품을 분해해서 모두 청소, 정비를 하는 전면 수리로, 창정비의 진수다. 간단히 말해서 다 뜯어서 일일이 검사한다는 이야기다.[20]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다. 당시 홍보 문구는 버추얼, 리얼리티...[21] 이런저런 이유로 그리스의 유로파이터 도입은 무산되었지만, 유로파이터 개발 당시에는 개발 사업에 참가하지 않은 국가들 중에서는 아주 유력한 도입 예정국이었다.[22] 이는 당연한 것이 공군이 요구한 ROC는 F-15E 이상급이다. F-15E보다 대형인 Su-35UB가 이를 만족하지 못하면 말이 안 되는 상황.[23] 1970년대 유럽을 제외하고 아무도 구입하지 않던 에어버스의 A300대한항공이 도입했고, 이로 인해서 에어버스의 이미지가 제고되어 오늘날 보잉과 1등을 다투는 최다 여객기 제조사가 되었다.[24] 근데 이건 립서비스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엔진은 결국 2010년이 넘어서야 개발된다... 물론 FX 사업에 선정되어 개발비가 넉넉해졌으면 좀 더 빨리 개발되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이고 넉넉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그래봤자 다소가 약속한 건 2008년쯤이다.[25] 여기서 라팔이 1위, F-15K가 2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한 국회의원이 공군참모총장에게 질의한 자료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누가 앞섰는지는 제조사 쪽에서 기밀 보호를 요청해서 공개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26] 당시 엑조세는 한국군이 운용 중이었지만 공대함 버전이 아닌 함대함 버전이었다.[27] 하지만 이 사업 직후 호주 육군의 타이거 공격헬기에 대해서 헬파이어 사용을 허가했다. 물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다음에.[28] 일례로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이 2011년에 도입을 결정한 F-15SA는 F-15K보다 훨씬 뒤에 개발되어 전자장비는 K형보다 우수하지만, 미국 정부의 방침에 의해 스탠드 오프 공대지 무장의 통합이 제외되는 바람에 사실상 반쪽 전투기가 되어 버렸다.[29] 소위 금강, 백두 정찰기, 그리고 린다 김의 아이로 불리우는 호커 800XP에 대한 대체 목적이다.[30] 스위스, 브라질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의 평가. 하지만 가격 문제로 인해 그리펜에게 패했다...[31] 실제 기체 완성도는 언제나 라팔이 더 앞서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유로파이터가 금방 따라잡고 추월할거라는 의견이 국내나 외국이나 대세여서, 유로파이터가 그렇게 죽쑤고 라팔은 그렇게 치고 나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32] 전체적인 밸런스로 따지면 F-15 최신형과 비교해도 아래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33] 기체부터 무장류까지 완전 프랑스산으로 구입과 운영이 가능한데서 나오는 수출시 제제와 통제가 현저히 적고, FX사업 당시와 달리 완전히 훌륭하게 갖춰진 각종 장비들과 소프트웨어적인 완성도, 나아가 FCAS로 부터의 기술적 수혜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KF-21보다 우월한 부분이 있다.[34] 특히나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 장비의 소프트웨어적인 완성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오랜 시간 운용하고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온 것이 큰 강점. 이 때문에, 유로파이터 최신형이 기체와 레이더의 하드웨어 스펙은 좀 더 우수함에도, 전세계 밀리터리 사이트에서는 유로파이터가 현재 실제 공대공 전투에서 더 우위일 가능성은 낮게 본다. 물론 시간이 지나 유로파이터의 AESA 레이더의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올라가면 유로파이터가 약간 앞설 것으로 예상한다.[35] 그 사이에 대규모 폭격이 필요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공대지 무장이 느려졌다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36] 실제로 그때 당시 다쏘가 제안했던 기술 이전 조건은 대단히 파격적이었고, 심지어 한국쪽에서는 저 기술들을 우리 수준에 받아서 제대로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반응이었다고. 그 정도로 다쏘는 라팔의 판매에 적극적이었다. 물론 라팔이 잘 팔리기 시작한 이후로 다쏘의 기술 이전 제안은 훨씬 보수적으로 바뀌게 된다.[37] 로스오보론엑스포르트는 2000년 설립되었다. 회사 설립 이후 첫 대서방 세일즈로는 첫 경험일 테지만, 한국의 FX사업 후 이 회사가 설립된 건 아니다. 수호이 전투기 역시 서방 국가보다는 중동, 중남미, 아시아 지역에서 잘 팔렸다.[38] Su-35UB 역시 한국군에 팔기 위한 마케팅 네이밍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Su-35BM은 단좌형으로 복좌형 Su-35UB와는 관련이 없으며, Su-35UB와 동일한 사양인 Su-30SM은 러시아에 잘만 납품되고 있고 현재 로스오보론엑스포르트 역시 Su-35의 복좌형으로 Su-30을 제시하고 있다[39] 이집트 공군과 인도네시아 공군은 Su-35 도입을 포기하였으며, 중국 공군은 여전히 플랭커 계열을 선호하지만 Su-33 기반 함재기를 운용하는 중국 해군의 경우 자체 개발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알제리 공군은 Su-34 도입에 여전히 긍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란 공군은 Su-35를 도입하였다.[40] 인도네시아는 해경 해상초계기 사업 때는 납품을 몇 년이나 미루었으면서 지체상금을 안 내고 버텼다. 18년 1월 2일 일부를 KAI에 납부했다.[41] 대당 1억 1천500만 불로 알려짐, 1차 FX 사업 당시에는 대당 1억 500만 불로 구입했다.[42] 일례로 서해 KF-16D 추락사고 당시 F-15K 중 PW 엔진을 채택한 2차 FX사업 도입분은 KF-16들과 함께 일시적으로 가동 정지에 들어갔지만, GE 엔진을 쓴 나머지 F-15K는 멀쩡히 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