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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 | 해체된 사단 |
제65보병사단 {{{#000080 第六五步兵師團}}} {{{#000080 The 65th Infantry Division}}} | ||||||
겨레의 빛 최강 밀물 | ||||||
창설일 | 1974년 10월 1일(제65훈련단) 1982년 8월 16일(제65보병사단) | |||||
해체일 | 2017년 11월 30일 | |||||
상징명칭 | 밀물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6군단 | |||||
규모 | 사단 | |||||
역할 | 평시 예비군 교육관리 | |||||
초대 사단장 | 예) 준장 000(0사 00기) | |||||
해체 전 사단장 | 예) 준장 최경관(학군 22기) | |||||
위치 | 경기도 양주시 회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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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양주시를 근거지로 했던 제6군단 소속 동원보병사단. FEBA 브라보 라인을 담당하는 6군단 마지막 방어선을 맡은 사단이었으며 별칭은 밀물부대. 1974년 10월 1일 창설되었으며, 2017년 11월 30일 해체되었다.2. 연혁
대한민국 육군의 보병 사단. 1974년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제65훈련단으로 창설되어 1982년에 보병 사단으로 승격 후 1984년에 경기도 양주시로 부대를 이전했다,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제6군단의 기동군단 개편에 따라 제1군단에 예속되었으나,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2000년에 다시 환원되었다. 이후 2017년 11월 30일 해체 되었다.해체 이후 사단 주둔지에는 제8기동사단 예하 50, 95포병대대 2개와 군수지원대대, 보충중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주둔지 명칭은 천보대로 개칭되었다.
심볼은 커다란 5각형의 6자로 65사단의 부대번호를 형상화하였다.[1]
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
3.2. 제183보병연대 적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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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대 · 연대 | 해체된 독립연대 · 해체된 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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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185보병연대 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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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제186보병연대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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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사항으로 막사 바로 옆에 밀물 수영장이 있었다. 규모도 꽤 커서 여름철이면 다른 부대에서 전투 수영을 즐기러 오기도 하였다.
3.5. 포병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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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대 · 연대 | 해체된 독립연대 · 해체된 연대 |
- 연대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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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7포병대대
- 제358포병대대
- 제932포병대대
4. 과거부대
5. 출신인물
5.1. 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
역대 제65보병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前 사단장 | ||||
00대 | 박청욱 | 예) 소장 | 학군6기[4] | 前 제20기계화보병사단장, 학생중앙군사학교장, 육군본부지휘통신참모부장, 제5기갑여단장 | |
00대 | 강우근 | 예) 준장 | 통역 15기 | 前 주한 미8군 한국군지원단장 | |
00대 | 박원용 | 예) 준장 | 육사 18기 | 前 제1포병여단장 | |
18대 | 류수희 | 예) 준장 | |||
19대 | 우종문 | 예) 준장 | 3사 8기 | 前 제11공수특전여단장 | [5] |
20대 | 반삼길 | 예) 준장 | 육사 32기 | 前 사단장 | |
21대 | 김주명 | 예) 준장 | 육사 34기 | 前 제1기갑여단장, 前 사단장 | |
22대 | 허일회 | 예) 준장 | 학군 17기 | 前 수도포병여단장 | |
23대 | 손기화 | 예) 준장 | 육사 36기 | 前 사단장 | |
24대 | 조남인 | 예) 준장 | 前 사단장 | ||
00대 | 김병태 | 예) 준장 | 육사 40기 | 前 사단장 | |
00대 | 최경관 | 예) 준장 | 학군 22기[6] | 前 제2포병여단장 |
5.2. 장교/부사관
5.3. 병
- 곽정욱(배우) - 2015년 군번이며, 65사단 186연대 전투지원중대에 배치되었다.[7]
- 강성호(프로게이머) - 2007년 군번이며, 당시 김주명 사단장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전역하기 전에 간부 지원 권유까지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6. 편제
상비사단의 1/10수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약 1,100~1,200명 사이의 병사/간부로 이루어져 있다.실제로는 동원사단이라는 이유와, 실제로도 큰 이슈가 없었기에 신교대, 부사관학교, 학군교에서 임관하거나 자대배치를 받게 되었을 때 부대에 대해 아는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신교대 간부들 역시 대부분 제65보병사단의 존재나 위치에 대해서 거의 모르기 때문에, 자대에 배치되기 직전까지는 본 사단에 대해서 어떠한 정보도 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8]
특히, 부대 위치가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하고 있고, 허허벌판에 부대만 있었기 때문에 외출 외박 등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을 가려면 덕정이나, 의정부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부대 위치에 대해 불만이 많았으나, 2009년 부터 양주시 고읍동이 신도시로 개발이 완공되면서부터 근무하기 가장 좋은 곳, 서울과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땡보보직, 땡보부대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평시에는 6군단 예하 모든 훈련에 동참해야 하고, 중대장 급 이상 대대전술훈련 평가 등 각종 훈련이 일년 내내 빼곡했으며, 동원창고에 동원물자를 연 2회 점검하는 등 적은 인원으로 일해야 하다 보니, 간부의 경우에는 1인 2역을 하는 인원이 많았고 병사들의 경우에는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되다보니 힘들게 근무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남양주에 위치한 군단예하 제73보병사단과 동원사단 형제부대로, 부대교류가 많았으며, 65사단 인원들이 가장 부러워 했던 부분이 신막사를 사용하고 있었고, 65사단의 경우에는 80년대 완공한 구막사를 사용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73사단은 존속했고, 65사단은 폐지되었다.
연천에 독립중대로 전차중대(소령편제)가 있었는데 거긴 한 생활관에 40여명씩 자는 70년대 생활관에서 생활하며 지냈다.
전차중대는 소령1명(중대장), 소대장(중소위 3명), 부사관(40명), 병사(약 80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부사관 사이의 악폐습이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 직전까지 있었던 곳이였고, 독립중대이기 때문에 선배부사관이 무서워서 보고하지 못하며 악폐습을 이어오던 곳이였다.
- 사령부 편제
- 사단장(준장), 전속부관(중위), 운전병(1명), 근무병(1명)
- 작전부사단장(고참대령), 근무병(1명)
- 교육부사단장(고참대령), 근무병(1명)
- 참모장(대령/대령진), 근무병(1명)
- 인사참모(고참 중령), 보임장교(대위), 인사행정장교(중위),
- 복지담당관(중, 상사), 사제안전장교(대위) 병사(2~3명)
- 정보참모(고참중령), 정보보좌관(대위/소령진), 보안장교(중위), 사이버담당장교(중위), 병사(2명)
- 작전참모(중령), 작전보좌관(소령), 작전장교(대위/소령진), 교육보좌관(소령), 교육장교(대위), 교육관리장교(중위),
- 교육훈련담당관(상사), 교육병(1명), 작전병(2명)
- 군수참모(중령), 군수보좌관(소령), 군수장교(대위), 보급장교(대위), 수송장교(대위), 동원담당관(7급), 물자담당관(7급), 병사(1~2명)
- 부관참모(대위/소령진), 행정장교(중위), 부관담당(상사), 우편물담당병사(1명), 부관병(2명)
- 재정참모(대위/소령), 재정장교(중위), 복지담당장교(중위), 병사(2명)
- 감찰참모(소령), 감찰담당관(상사), 감찰병(1명)
- 직할대 편제
- 본부근무대장(대위/소령진/소령), 행정보급관(상사), 보급 관(중사/상사), 경비소대장(중사/상사), 경비소대병사(10명), 병사(10명)
- 보수근무대대장(대위/소령진/소령), 주임원사(원사), 2/4종담당(중사), 1/3종담당(중사,상사), 행정관(중사/상사), 병사 30명
- 수색대대장(소령), 주임원사(원사), 작전장교(대위), 정보장교(중위), 수색소대장(중/소위 2명), 병사 30명
- 화학지원대장(대위/소령진/소령), 정작과장(중위/대위), 주임원사(상사), 교육장교(중위) 화학지원소대장(중사), 교육담당관(중사), 부사관 3명, 병사 20명
- 공병대대장(소령), 주임원사(상사/원사), 교육장교(대위), 시설장교(대위), 정작과장(대위), 장교(중위 2명), 부사관(4명) 7급군무원(2명), 병사 40명
- 군사경찰 대장(소령), 수사과장(원사), 수사관(상사), 방범담당관(중사), 교도관(하사), 병사(10명)
- 정비대대장(소령), 주임원사(상사/원사), 수송중대장(중위), 운영중대장(중위/대위), 7급군무원(2명), 부사관 20명, 병사 60명
- 연대편제
- 연대장(대령진/대령), 운전병1명, 근무병1명
- 작전과장(소령), 작전장교(대위), 교육장교(대위), 정보장교(중위), 교육지원관(중사/하사), 병사 4명
- 군수과장(소령), 군수지원관(중사), 병사 2명
- 인사과장(대위), 사제담당관(원사/상사), 병사 2명
- 주임원사(원사), 근무병 1명
- 수색중대장(중위), 통신중대장(중위), 화기중대장(대위), 개 중대별 병사 10~20명
- 1, 2, 3대대장(2명 신입/중고, 1명고참, 중령/소령), 작전장교(대위) 행정보급관(상사), 각 대대별 4개 중대장(대위 2명, 중위 2명), 부사관 6명씩(포반장, 군기강담당관), 병사 50명~60명
6.1. 근무 환경
사단이 존재하던 당시는 물론이고 해체 이후에도 동원사단 답게 대다수의 군필자들 조차도 모르는 존재감 없는 극마이너한 부대로, 전역하고 사회에 나오면 같은 대대, 연대는 커녕 같은 사단 출신 조차도 찾기 힘들 정도다. 동원사단 특성상 병력이 적기 때문에 일부 부대의 경우 1개 생활관에 모두 모여서 대대장 훈시를 들을 수 있고, 병력이 적기 때문에 뽑히기도 매우 힘든 부대다.[9] 그야말로 평범하고 무난한 동원사단의 전형적인 모습으로서 주기적으로 동원훈련을 나가는 것을 제외하면 일과는 다른 보병사단과 거의 차이가 없어서 대체적으로 매우 무난한 일정과 무난한 훈련, 무난한 생활 등. 군 생활을 큰 굴곡없이 무난하게 할 수 있는 부대라고 평가받았다. 면회장 근처 풀밭에 포토존용 M113 한대가 놓여 있었다.동원사단으로 자체적인 신병교육대가 없기 때문에 주로 같은 제6군단[10] 소속의 제28보병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11], 제5보병사단 신병교육대나 그 외 육군훈련소에서 병력이 주로 배치되었다. 그러나 간혹 제3보병사단, 제8기동사단이나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17보병사단, (구)제20기계화보병사단, 제25보병사단, (구)제26기계화보병사단, 제55보병사단 같은 생뚱맞은 곳에서 병력이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각지의 신병교육대에서 배치받기 때문에 자대에 도착하면 각자의 신병교육대 간 부심 및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이다. (물론 심심해서 장난삼아 하는 거지만.)
동원사단의 특성상 병력대비 간부의 수가 매우 많은 편이다. 183, 185, 186 각 보병연대 기준으로 대대의 경우 5개의 중대로 이루어져서 중대마다 병사 10명 전후에 부사관 한 명(부소대장 보직), 위관급(중대장 보직) 한 명꼴이었다. 그 위관급도 대위(진)인 중위 혹은 대위이다. 심지어 연대직할은 대대에 비해 인원수도 적고 보직도 세분화 되어있어 지원중대, 수색중대, 수송중대 같은 경우는 병사 5명에 부사관 한명, 위관급 한명꼴이었고, 통신중대, 본부중대 같은 경우는 병사 2명에 부사관 한명 혹은 위관급 한명꼴이었다. 의무중대 같은 경우 군의관이 1명 배정되어 있긴 했으나 서류상으로 배정되어 있을 뿐이지 사단 의무대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사실상 간부는 0명이었다.
때문에 악폐습은 타 사단에 비해 눈에 띄지는 않았던 편[12]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하지만 전형적인 동원사단 답게 위관, 영관급 장교들이 꽤 많다보니 그런 듯하다. 게다가 같은 6군단 예하 사단인 28사단 530GP 사건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악폐습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편이었다. 때문에 이등병이나 일병때는 생활하기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라는 말이 사단 내에서 주로 주장되기도 했다. 그래도 눈에 띄지 않게 크고 작은 흉흉한 사고는 꾸준히 발생하기는 했다. 오히려 대형 사고라고 볼만한 여지가 있는 일도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사단이라는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그래도 후술할 내용이지만 자살률이 가장 낮은 사단 중에 하나였으며 실제로도 부대 창설 이후 자살자가 처음 나온게 1977년 이래 26년이 지난 2003년이었으며, 해체 전까지 65사단의 유일한 자살자였다고 하니 상당히 관리가 잘된 부대였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1년의 대략적인 훈련 및 일과표는 1-5월까지 대침투, 전면전 등의 기본적인 훈련 및 사격과 병기본을 실시하고, 6-9월달까지 동원훈련 준비 및 동원훈련, 동원훈련 정리를 실시하고, 7-12월달까지는 유격, 혹한기 및 100km 행군, 하반기 병기본과 사격, 대침투, 전면전 훈련을 하는 식으로 돌아갔다. 그다지 힘들지 않은 무난한 일정이지만 그래도 6군단 예하의 모든 훈련에 참여해야 하고 일과는 일과대로 매일 짜여져 있던 터라 생각처럼 편하지는 않다.
부대 규모에 비하면 영내시설은 당시 기준으로 제법 좋은 편이었다. 면회 장소를 겸하는 복지회관은 위병소를 넘어 바로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2층 구조로 1층에는 고기를 파는 식당과 노래방, 카페가 자리 잡고 있으며 2층에는 면회객들이 머무를 수 있는 객실과 연회장이 있다. 대체로 냉면 정도를 제외하면 고깃집 음식의 질과 맛은 괜찮은 편이었다고 평가되었으며, 1층 카운터에서 치킨이나 피자 등을 주문할 수 있는데 면회가 끝나면 그걸 가지고 생활관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끔 훈련준비나 정비기간 같은 시기에 마음씨 좋은 중대장들이 고생한다고 피자 사주기도 해서 병사들이 포식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0년대에 복무했던 이들은 면회시설은 육군에서 5위안에 든다는 간부들의 출처 불명의 주장을 듣는 경우도 잦았고, 어디까지나 병사들의 소속감 증대를 위해 어느 정도 과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각 연대 건물에 딸려있는 병사식당의 밥이 당시 기준으로는 제법 퀄리티가 좋았기 때문에 사령부나 군단 내 우수 식당으로 표창장을 많이 받았다는 자랑 역시 자주 등장했다. 각 직할대/연대가 2~300명 정도 인원을 유지했었는데 식당마다 취사병이 7~8명 정도로 배치되었고, 그 중 대다수가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조리 전공 내지 조리 관련 직업을 가진 인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실제로 상술했듯 간부의 수가 다른 사단에 비해 상당히 많고, 연대장과 대대장을 비롯한 장교들이 본부에 있는 간부식당으로 가지 않고 연대 병사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밥 퀄리티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보이며, 사단에 파견을 나온 타 부대 인원들도 식사 질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부대에서 기독교, 천주교, 불교 3대 종교 행사장이 그렇게 멀지 않으며, 성당은 아예 부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외 여름에 부대 단결활동 등으로 개방되는 전투 수영장[13]이 존재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각 연대 및 직할대의 기본 복지시설 (노래방, 사이버 지식 정보방, 체력 단련장 등)도 어느정도는 갖춰져 있었다. 막사 시설은 1980년대 초반에 완공되어 중급 수준이지만. 2013년 경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로 막사 자체 방한성을 다소 높였고, 생활관을 증축하고 화장실과 샤워시설을 새로 공사하여 어느정도 쓸만하게 개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컨테이너 생활관에서 비참하게 먹고자는 직할 부대가 몇몇 있기는 했었고, 신막사를 짓는다는 말만 들려오다가 사단이 없어지만서 이들은 2017년 사단이 해체될 때까지 이러한 비참한 생활여건을 견뎌내야 했다.
보통 한 연대에는 막사건물에 두개 대대와 연대본부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2층에는 병사들이 거주하며 1층에는 무려 세개의 대대장실과 한개의 연대장실이 공존하여 병사들에게는 끔찍한 거주환경이라고 회자된다.
2010년대 초까지 사이버 지식 정보방의 경우 PC의 사양이 펜티엄 4급으로 매우 낮고 노후화로 인하여 고장이 잦아서 이용하기가 대단히 힘들었지만, 2012년에 샌디브릿지 사양을 가진 PC가 보급되어 사이버 지식 정보방 이용이 상당히 편해졌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14] 다만 사이버 지식 정보방 내 컴퓨터 보급이 충분하지 않은 곳이 많았으며[15], 인터넷 망 개선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인터넷 속도는 2010년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저속을 자랑했으며, 유튜브, 페이스북 등의 외국계 사이트는 물론 네이버까지 접속이 불가능한 날이 부지기수였다. 일부 예하 연대는 2015년 말경부터 컴퓨터 교체사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복지시설에 대해 빠르게 개선이 되어야 했지만 사단 해체가 논의되면서 필수적인 생활시설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개선사업이 중단되었기에 해체 이전까지 많은 부대의 병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교통에 있어서는 여건이 아주 좋은 축에 속했었다. 부대 바로 앞에 양주신도시가 조성중이었기에 교통편을 통한 부대 접근성이 좋아서 서울 버스 108 한번에 의정부 시내로 나갈수도 있었다는 점이 큰 강점으로 꼽혔었다. 그리고 버스에 오래 앉아있어야 한다는 것만 감안한다면 휴가때는 한번에 서울로 나가는것도 가능하긴 했다. 다만 당시 기준, 사단의 위수지역에는 서울을 비롯한 의정부 이남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외박시 버스를 타고 한번에 서울로 점프하려다가 걸리면 큰 곤경에 쳐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하기는 했다.
6.2. 사단가
백두산 굽이쳐서 뻗어내린 곳
자랑스런 대한의 피끓는 우리
조국의 부름 받아 총칼을 들고
이 국토 지키고자 여기 모였다
아- 아- 영광스런 대한의 용사
겨레의 빛이 되리 육십오사단
태평양 거센 파도 부딪는 곳에
수려한 한반도의 대장부로다
역사의 소명 따라 목숨을 걸고
나라의 번영 위해 떨쳐 나섰다
아- 아- 영광스런 조국의 용사
겨레의 빛이 되리 육십오사단
자랑스런 대한의 피끓는 우리
조국의 부름 받아 총칼을 들고
이 국토 지키고자 여기 모였다
아- 아- 영광스런 대한의 용사
겨레의 빛이 되리 육십오사단
태평양 거센 파도 부딪는 곳에
수려한 한반도의 대장부로다
역사의 소명 따라 목숨을 걸고
나라의 번영 위해 떨쳐 나섰다
아- 아- 영광스런 조국의 용사
겨레의 빛이 되리 육십오사단
사단가는 2절로 되어 있었다.
7. 사건사고
- 2008년 7월 23일, K5 권총 도난사건이 발생했었다. 직할부대 정보통신대대에서 000대위가 선배에 운영과장에게 앙심을 품고, K5권총을 숨겼으나, 일이 커지자 권총을 부대앞 도로에 버리고, 허위신고를 하기 이르렀다.
수사의 혼선을 주기위해 글자체까지 달리하며 제보를 하는 등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며 사단의 가장 아름답던 개나리들을 다 베어버리게 되었으며, 사격장을 다 파헤치게 하는 등 우여곡절끝에 김00 상병을 심문하였으나, 해당 병사는 본인이 억울하다며 정보통신대대 2층 계단에서 떨어져 자살 쇼를 하는 등 창설이래 가장 큰 사고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당시 조사하던 3지구수사대, 6군단 헌병대, 65사단 헌병대에서는 48시간 이상 잠을 재우지 않으며 돌아가며 심문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백하게 되었고, 그 자백을 통해 분해된 총기를 부대 앞 도로에서 찾을 수 있었다.
국방부 조사본부 편제 하에 있는 과학수사연구소가 거짓말탐지 검사, 지문 및 유전자 감정 등의 기술을 입체적으로 동원한 결과, 범인은 해당 부대 대위로 밝혀졌다. 범인으로 밝혀진 대위는 대대장의 K5 권총을 훔친 뒤 수사망이 자신을 향해 좁혀 오자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허위 제보를 했으나 결국 체포되었다. 범인은 제보 문서에 자신의 지문을 남기지 않은 것은 물론 글자체까지 달리했으나 유전자과 감식관이 종이의 접혀진 부분에 묻은 땀에서 DNA를 추출하는 바람에 틀통났다고 전해진다.# 당시로서 최신예 기술을 대거 동원하여 벌어진 수사였고, 수사 과정과 결과 모두 성공적이었기에 군이 도입한 성공적인 과학수사 사례로 회자되기도 한다.
8. 여담
- 동원사단이지만 꽤나 눈에 띄는 비범한 기록들을 세우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임기 중인 2002년에 동원사단 최초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가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인 2007년에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가 있다.
- 2010년에 호국 훈련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1999년에 전군 최초로 쌍용훈련[16]을 실시하였다. 2015년 쌍용훈련은 동원훈련과 같이 실시되어 평범한 동원훈련인줄 알고 널널하게 참가했던 예비군들은 입소시작부터 완전군장(!)[17]을 지고 행군[18](!)을 해 숙영지까지 걸어가 3박 4일동안 야외숙영(!)을 했다. 중간에 작계지까지 화포 장비 다 지고 걸어갔다가 걸어오는건 덤(...). 식사도 절반 이상이 전투식량으로 배식되었고, 쌍용훈련이 아니라 쌍욕이 나오는 훈련이라는 증언이 심심찮다. 참고로 이때 훈련을 참관한 사람들이 3군사령관, 6군단장, 65사단장. 여담이지만 포병연대에서 예비역과 함께 실사격훈련을 진행했는데 당시 현역병 중 실사격을 해본 인원은 각 대대(100여명)에 3~4명뿐이었다.(한대대만 제외하고) 덕분에 예비역들이 직접 실사훈련을 진행하며 현역병을 가르쳐주는 일반 동원훈련때와는 다른 모습이 보여졌다.
- 자살률이 가장 낮은 사단 중에 하나이기도 했는데, 부대 창설 이후 자살자가 처음 나온게 1977년 이래 26년이 지난 2003년이었으며 해체 전까지 65사단의 유일한 자살자였다고 하니 사실상 부대 내에서 자살 사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사건 사고가 아에 없는 부대는 아니었다. 2013년 초 한 연대 이등병이 화장실에서 자살시도를 했지만 줄이 끊어지며 자살 실패에 그쳐 비극적인 일이 생길 뻔했다. 이후 2014년 후반 한 연대에서 탈영사건이 있어 전 병력 대기상태에 들어간적 있었으며, 때문에 그날 비 내리는 야간에 대규모 수색이 이루어졌고 결국 부대 치장창고 옆 숨어 있던 것을 발견하여 종료된 적이 있다. 2014년에도 직할대에서 악폐습으로 인한 한번의 탈영사건이(2명) 발생했다.[19] 다만 사단 규모가 상비 연대규모이고 상기 발생한 일 이후에는 크게 터진 일들이 없는 데다가 후속조치를 매우 철저하게 하여 이후 큰 문제가 보고되지는 않았다. 2016년에는 포병연대 연대본부 병사 한 명이 자살 소동을 벌여 그린캠프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를 감안해도 같은 제6군단 소속의 형제 사단중에 하나이자 사건사고로 악명높은 제28보병사단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기록이 아닐 수 없다.
- 2010~2011 포병한정 일부 포병대대 안에는 폐기물 컴퓨터 4대를 가지고 개인정비 시간에 스타크래프트를 할 수 있게 해놨었다. 이후 헬스장 증축으로 없어졌다. (불법카지노라고 불렸었다.) 1년에 동원훈련을 2번에서 많으면 3번까지 했었다. 2010년에 유격복귀훈련을 100km 행군으로 했다.
- 동원사단에는 군종 신부를 파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깨진 첫번째 동원사단이기도 했다.
- 전체적인 기준에서 사건사고도 거의 없는 수준의 부대였고, 동원사단 중에서 꽤나 많은 업적을 쌓아서 여러모로 해체되기에 아까운 부대였으나 차기동원사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업적에 비하면 국방부에서의 입지가 좁은 것이 비운의 동원사단이라고 할 만하다. 대신 형제 사단인 제73보병사단은 최초의 차기 동원사단으로 살아남았다.
- 티빙 드라마 방과 후 전쟁활동에서 이 부대의 마크가 '제16사단'이라는 가상의 부대 마크로 사용되었다. 색상이 있는 부대기는 기존 65사단의 마크를 색상 반전하였으며, 전투복에 부착하는 부대 마크는 변형없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1] 묘하게 지금은 사라진 68사단 마크와 비슷하다.[2] M48 전차를 운용했으며 사단에서 관리하는 동원장과 함께 연천에 있었다. 다만 연천 내부의 위치는 달랐으며, 전차중대보다 동원장이 더 북쪽에 있었다.[3] 상사 혹은 원사가 관리관으로 1명, 관리병이 1~2명 존재했다.[4] 전남대학교[5] 2008년경 암으로 사망[6] 원광대학교[7] 처음에는 기독교 군종병이었으나 이후 사단장 당번병으로 보직 변경되었다고 전해진다.[8] 심지어 '(구)306보충대대' 사람들 조차도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자대 발표때 제65보병사단이 나오면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306보충대와 제26기계화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병사포함 간부조차 아무도 모른다던 그 사단) 특히 이 느낌은 겨울에 배치받았을 때 안개 낀 위병소의 모습을 병력수송 버스 창문 너머로 봤을 때 실감하게 된다.[9] 상비사단의 1/10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분, 소대는 없고 중대가 최하위 편제이며 보병연대의 경우 중대당 10명 남짓. 대대는 4-50명. 연대별 막사로 나눠서 생활한다.[10] 2022년 11월 30일에 폐지되었다.[11] 2016년 12월 1일자로 제26기계화보병사단은 제7기동군단으로 예속을 바꾸고, 2018년 11월 30일 제8기동사단에 통합되면서 해체되었다.[12] 다만 소속부대 별로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2010년대 중반은 병영에 구타 가혹행위가 팽배하던 시절이었고, 해체 전까지도 연대, 대대마다 악폐습의 수준이 구타를 가하는 곳과 거의 없는 곳까지 다양하게 존재했다. 때문에 동시기 다른 사단에 비해 적은 편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어도 '없는 편'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예를 들어 2006년 수색대대에서는 줄빠따 사건으로 가해자들이 군단헌병대에서 재판까지 받은 사례도 존재한다.[13] 정확히는 수영장이라기보다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막고 수영 목적으로 개방한 것이다. 물이 받아진지 얼마 안된 개방 초에는 그럭저럭 괜찮게 수영 할 수 있었지만 며칠만 있어도 수질을 장담할 수 없었다. 장마때는 산에서 흙탕물이 내려와서 수영장이 흙으로 가득 차서 관리 부대가 난리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국방일보에서도 몇차례 다뤄졌을 만큼 일종의 사단 명물로 손꼽히기도 했다.[14] 그런데 당시 모든 PC를 교체한것이 아니기때문에 펜티엄4급의 PC와 같이 공존하였으며, 몇몇 연대에서는 한개 대대당 배정된 컴퓨터 중 일명 슈퍼컴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15] 때문에 많은 예하 부대가 일과 후 자유롭게 사지방을 이용하지 못하고 계급을 막론하고 일주일에 2-3회 정도 순서를 기다려 1시간 반씩 사용하도록 규칙을 정한 곳들이 많았다.[16] 해당 연도 1999년에는 동원훈련과 쌍용훈련 모두 정상적으로 이행되었다. 1999년 6월에는 동원훈련을, 99년 9월에는 쌍용훈련을 각각 실시하였다.[17] 그냥 군장이 아니다. 각자 받은 보직별로 중화기까지 들고 갔다.[18] 숙영지까지 약 2-3km 정도의 거리. 거기서 작계지까지 또 3-5km...[19] 인천에 있는 자택으로 갔는데 부모님이 오히려 부대에 신고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