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X-50 |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후 프랑스에서 개발된 50톤급 중전차 프로젝트.2. 개발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채택되어 생산이 시작된 ARL-44는 근본적으로 1930년대 설계인 르노 B1의 차체를 기반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부족한 전차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1945년에 프랑스군은 ARL-44의 한계와 앞으로 고조될 소련과의 냉전에 대비할 강력한 기갑 전력의 필요성을 느꼈다[1]. 당시 개발중이던 ARL-44를 향후 대체할 목적으로 신형 중전차 개발을 지시하였고, 이에 AMX에서 프로젝트명 NOM 141 중전차의 설계를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 침공으로 전차 개발에 공백이 생긴 탓에 당시 프랑스의 전차 설계기술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턱없이 뒤떨어지는 수준이었다. 빨리 준수한 성능의 전차를 개발하기 위해 고민하던 AMX는 티거, 판터, 티거 2 등 나치 독일의 대전기 전차들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 전차들의 설계를 참고한 결과 NOM 141 프로젝트는 겹치는 보기륜 같은 대전기 독일군 전차들의 특징이 진하게 묻어나오게 되었다.[2]
이 전차는 준수한 기동력을 갖춘 30톤대 중형전차로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현가장치부터 독일식 토션 바를 사용해서[3] 기본적인 틀을 짜게 되었다. 그 밖에도 독일 전차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티거 2의 영향을 크게 받은 정도가 아니라 일부 부품도 호환되었다. ARL 44처럼 90mm 장포신 주포를 탑재하여 중전차급 화력을 확보한 중형전차로서 당시의 세계적인 시류에 따라갈 수 있었으나, 30톤이라는 비현실적 중량에 맞추려다보니 전면 장갑이 30mm로 제한되는 등 무리수가 많았다. 과연 이런 설계로는 오래갈 수 없었으므로 곧 50톤급으로 체급도 올라갔고 개발명도 'AMX M4'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판터와 티거 2를 기반으로 시작된 50톤급 전차 개발 계획인 AMX M4는 본디 재래식 포탑에 90mm 주포를 탑재한 '중형전차'가 될 예정이었으나, 베이스가 된 독일 전차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비대화와 과적화의 늪으로 빠지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AMX M4의 설계안이 정해지지 않던 상황에서 1949년형 M4에 90mm SA46 전차포와 리볼버 탄창식 자동 장전 장치를 탑재한 요동 포탑을 장착하여 화력과 연사력이 대폭적으로 강화된 버전이 등장하였다. 이후 이 버전으로 전차 개발을 이어가는게 결정되었다. 요동포탑 장착형 프로토타입이 실제로 제작이 되었으며, 이후 AMX M4는 AMX-50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50톤급으로 무게가 늘어나고, 이후 중전차로 재분류된 시점에서도 당초 계획한 최고속도 65km/h의 중형전차급 기동력이 요구되었기에 강력한 엔진의 개발이 주요 과제가 되었다.
AMX-50이 개발되던 시기에 경쟁작으로 소뮤아 SM 중전차도[4] 개발되었다. 그러나 이쪽은 개발이 지연되고 1953년에 경쟁에서 패배하면서 프로젝트가 먼저 취소되었다.
3. 특징
AMX-50 프로젝트의 전차들은 FCM F1이나 2C 전차같은 초중전차들을 제외하면 공통적으로 기존의 프랑스 전차들보다 더 무거워졌다. 처음 만들어진 기본형 AMX-50도 ARL-44보다 수 톤 더 무겁다.포슈를 제외한 AMX-50 계열 전차들은 빠른 연사력을 위해 자동 장전 장치을 장착했다는 특징이 있다. 당시 AMX-13과 비슷한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를 도입했기 때문에 해당 자동 장전 장치에 최적화된 요동 포탑 설계도 도입하게 되었다.[5] 이 전차의 개발은 미국의 T57/T58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프랑스는 2차대전기의 빠른 항복으로 전차기술이 전간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에 가능한 빨리 미소영과 동등한 수준의 전차기술을 얻기 위해 겉으로 보기에는 우월한 미소영의 전차에 비교적 대등히 맞섰던 것으로 보였던 나치독일의 전차들을 바탕으로 신형 전차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AMX-50 전차의 차체와 서스펜션은 모두 나치 독일이 운용한 전차 중 티거와 판터에서 영향을 받았고, 무한궤도의 기동륜과 보기륜 배치와 같은 부분의 설계가 대전기 독일 전차의 모습과 매우 흡사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차체의 모습도 상당한 부분이 독일의 티거 2와 유사한 모습으로 설계 되었다.
당시 발전하는 대전차고폭탄의 위협을 인지한 프랑스군은 중장갑을 유지하면서도 최소시속 65km로 달릴 수 있는 중형전차급 기동력을 요구하였다. 이 성능에 달성하기 위해 개발자들이 1,200마력급 고출력 엔진을 탐색하던 중, 1000마력까지는 낼 수 있다고 판단한 사우러 사의 국산 디젤 엔진과 마이바흐 HL295 가솔린 엔진이 후보로 선정되어 테스트에 사용되었지만 결과적으로 둘다 요구 성능 달성에 실패하여 최고속도도 요구사항에 미치지 못한 도로 51km/h 야지 20km/h에서 그쳤다.
HL295 엔진은 2차 대전기 시절부터 나치 독일에서 개발되어왔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진 마이바흐 HL234 엔진을 프랑스 측에서 가져다가 배기량을 키우고 마저 개발을 진행하여 완성한 것이다. 변속기또한 판터의 ZF 변속기에서 영향을 받았다. HL234 엔진은 원래 나치 독일 최후의 전차 프로젝트인 E 시리즈의 E-50과 E-75같은 전차에 쓰일 예정이었던 물건인 만큼, AMX-50은 어떻게 보면 E 시리즈의 기술적인 후계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4. 형식
4.1. AMX-50
100mm 주포를 탑재한 AMX-50의 첫 차량 |
대중에게 공개되는 AMX-50 |
초기형 AMX-50은 총 2대가 제작되었는데, 1대는 기존 90mm형 AMX M4 시제차를 기반으로 개량되었고 나머지 1대는 첫 시제차 제작으로부터 약 1년 지나서 공장에서 신규 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M4 개조 차량과 신규 생산 차량(T.O.A 100 포탑)의 포탑 모양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덤으로 M4 기반의 개조 차량에는 궤도에 리턴롤러(지지륜)가 없지만 새로 만든 차량에는 리턴롤러들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M4 개조분 AMX 50 차량(T.O 90/930 포탑)은[7] 당초 90mm 포를 달고 있었지만 머지 않아서 새로 제작한 시제차와 동일한 100mm SA47 전차포로 업건되었다.
1952년부터 1953년 사이에 주행 시험을 거친 결과 초기형부터 요구된 기동력에 달성하지 못하고 도로 최고속도 51km/h, 야지 최고속도 20km/h를 기록하였다. 120mm 포 장착이 결정된 이후 공식적인 분류도 중전차로 변경되었다.
120mm 업그레이드를 거친 시점에서는 이미 티거 1의 중량은 한참 넘겼는데 정작 방어력은 판터랑 비슷한 수준이었으니, 이제 강력한 120mm 주포의 화력만이 이 전차의 주안점이 되었다.
하지만 120mm 주포와 더 무거워진 포탑을 올리자 차량의 무게중심이 불안해졌고 과중량 문제를 겪게 되었다. 결국 기존 AMX-50 차체에 대형 포탑과 120mm를 그대로 올리기에는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후 120mm 주포와 대형 포탑을 장착하기 위해 차체를 크게 수정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이어졌다.
4.2. AMX-50 Surblindé(쉬흐블랭데)
AMX 50 120(Surblindé) |
차체는 소련의 IS-3와 T-10 중전차와 유사한 쐐기형 전면 경사 장갑을 채택한 AMX 65t 설계안을 기반으로 수정되었다. 이에 따라 AMX 65t 기반 중장갑 차체에 기존 AMX-50에 탑재되었던 120mm SA46 주포와 커진 포탑을 탑재한 AMX 50 Surblindé[9] 형식이 탄생하여 시제 전차가 제작되었다. 차체마저 이전보다 더 무거워진 결과 차량의 총 중량이 약 70톤 정도로 늘어났다. 120mm 주포용 포탑은 첫번째 프로토타입에 장착되었던 T.O.A 120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차량 전고를 낮추기 위해 높이가 줄어들었으며 해치에 외부 기관총이 달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험 결과 포탑에 의한 무게중심 문제가 여전했고, 엔진이 과부하되는 문제가 재발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4.3. AMX-50 Surbaissé(쉬흐베세)
AMX 50 120(Surbaissé) |
프랑스 중전차 AMX-50 Surbaissé 제원 | |
전장 | 7.35 m (차체), 9.50 m (전체) |
전폭 | 3.40 m |
전고 | 3.35 m |
장갑 | 80 ~ 120 mm |
주무장 | 120mm SA46 |
부무장 | 7.5 mm 기관총×2 |
승무원 | 4명 (조종수, 탄약수, 전차장, 포수)[10] |
엔진 | 마이바흐 HL 295 V12 (850PS)[11] |
중량 | 59.2 t |
출력비 | 15.0 hp/t |
항속거리 | 250 km |
최고속도 | 65 km/h(목표, 도로) 51 km/h(실제, 도로) 20 km/h(실제, 야지) |
중량과 무게중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차체를 낮추고 장갑을 줄여서 경량화를 진행한 버전. 명칭은 AMX-50 Surbaissé다.[12] 1954년부터 Surblindé와 별도로 설계되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차체 측면과 후면 장갑이 얇아졌고 무게중심의 위치를 낮추기 위해서 차체 모양이 이전보다 낮은 형상으로 재설계되었다.참조
포탑은 Surblindé 버전까지 쓰인 T.O.A 120을 기반으로 장갑 두께를 조금 줄여서 경량하고 후방 버슬 길이를 늘린 T.O.B 120으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장갑과 높이를 줄인 대가로 차량 전체 중량이 Surblindé 버전의 70톤에서 57.8톤 정도까지로 줄어들었다. 차체 전면 장갑의 경우 이전과 달리 곡면형 주조장갑으로 바뀌었지만 Surblindé 버전처럼 쐐기형 형상으로 설계되었다.
주포도 약간 수정되어 미국의 M103 전차와 동규격의 탄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탄약 적재량은 총 46발이며 그 중 27발이 포탑에 적재되며 기존 120mm 장착형 AMX 50처럼 자동 장전 장치는 6연발 단일 리볼버 탄창을 사용한다.
시제차에 부무장으로는 7.5mm 레이벨 기관총 2정이 공축과 대공 무장으로 장착되었고, 20mm 대공 기관포도 계획에 있었다.[13] 또한 개발 당시에는 주포탄을 아끼면서 경장갑 표적을 효과적으로 격파시키기 위해 공축 기관총도 20mm 기관포로 교체할 계획이 있었다.[14]
많은 설계 개선을 거쳤음에도 결과적으로 엔진과 기동력 문제로 개발이 종료되었다. 현재 1대의 차량이 프랑스 소뮤아 기갑 박물관 실내 전시장 내에서 ARL 44와 나란히 전시되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차량은 별도의 개조를 거쳐 대공 기관총으로 12.7mm 중기관총이 장착되었다.
4.4. AMX-50 Foch (포슈)
AMX-50 Foch |
포슈 자주포의 중량은 AMX-50 surbaissé와 비슷했으나, 포탑이 없어진 덕분에 AMX-50 surblindé 수준의 두꺼운 전면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16] 포슈는 아군 전차들을 지원하는 원활한 장거리 사격을 수행하기 위해 차체 상부에 일치식 거리 측정기를 장착했으며, SA46 주포 장전에는 자동 장전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탄약수 두명을 탑승시켰다. 또한 탄약수 탑승구획 위에는 레이벨 기관총을 사용한 가능한 기관총탑이 장착되어 있었고, 이는 탄약수 한명이 차체 내부에서 조작했다. 전반적인 외형은 2차 대전기 독일의 야크트판터와 동시기에 프랑스에서 개발된 로렌 CA 돌격포와 흡사하다.
개발 당시에는 -6도~+70도 범위로 가동하는 2연장 기관포로 무장한 밀폐형 회전식 기관포탑을[17] 차체 후면에 설치할 계획도 있었으나 시제차에서는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회전 포탑에 120mm 전차포를 장착하는데 성공한 AMX-50 전차가 개발되자 화력은 동일하면서도 무포탑 전차라는 한계를 가진 포슈는 금방 불필요해져서 개발이 중단되었다.
한때는 화력 문제를 극복하려고 포슈의 주포를 120mm에서 155mm[18]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검토되었으나, AMX 50 프로젝트 자체가 폐기되면서 페이퍼 플랜에서 그쳤다. 개발 당시 있었던 여러 기술적인 문제로 1955년까지 시제차 5대가 제작에 들어갔지만 단 1대만이 완성되었다.
5. 최후
AMX-50은 AMX M4 시절까지 포함해서 약 13년에 이르는 기나긴 개발기간 동안 지속적인 설계 변경 및 성능 증가 요구를 받으면서 완성되지 못하고 있었고, 이렇게 개발에서 애를 먹던 와중에 시간은 계속 흘러 1950년대 후반이 되었다.본격적인 냉전이 시작한지 시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 예상되는 전쟁 양상은 2차대전 시절과는 매우 달라지게 되었다. 신형 성형작약탄과 대전차 미사일같은 효과적인 대전차 병기들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장갑 설계 방식으로는 방호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되어 중전차 전력이 몰락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영국에서 105mm 로열 오드넌스 L7 전차포를 완성하고 신형 대전차 포탄이[19] 개발되면서 관통력과 화력의 조화를 이루어냈기에, 더 무겁고 큰 오래된 120mm 포를 탑재해야 할 당위성도 희박해져 갔다. 더구나 AMX-50에 적용된 겹치는 보기륜이나 HL234 기반 엔진 같은 나치 독일 전차에서 답습한 기술적인 특징들 또한 정비성을 악화시키는 문제를 일으키는 등 시대에 뒤떨어진 단점이 되고 말았다.
만약에 원래 계획한 기동성을 달성했더라면 중전차임에도 사정이 조금 나았겠지만, 당시 기술력으로는 50톤을 초과하는 중전차를 30톤대 중형전차급으로 달릴 수 있게 해주면서 신뢰성이 보장된 고출력 엔진을 만들기 힘들었던 것도 개발에 실패한 요인이 되었다. AMX 50의 엔진에 요구된 1200마력은 당시 프랑스에서 접근할 수 있는 그 어떤 차량용 엔진으로도 달성 자체를 못하면서 전차의 기동력도 목표에 미달했다.[20]
한편 100mm 포를 단 AMX 50 초기형 개발 당시부터 과중량으로 인해 운용이 힘들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오자 AMX-50의 과중량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일한 포탑과 동급의 무장을 갖춘 중형전차 로렌 40t이 개발되었다. AMX 50의 중량을 줄일 수 있다고 보았고 시제전차도 생산되었지만, 양산되지 않았다.
이미 1950년대 초중반부터 프랑스는 미국으로부터 M47 패튼들을 도입하기 시작하여 자국산 전차 프로젝트는 빛을 잃어갔고,[21] 결국 중전차가 몰락하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1957년부터 유럽 표준 전차 프로젝트라는 30톤급 차기 전차 공동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1958년에 샤를 드골 대통령이 가망없는 모든 병기의 개발 취소 지시를 내리면서 AMX-50 프로젝트의 개발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이후 유럽 전차 프로젝트는 60년대 초에 독일과 프랑스측의 견해 차이로 파토났지만, 두 나라의 독자적인 전차 개발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측은 AMX-30를 개발하였다.[22] AMX-30은 기동성을 중시하여 장갑을 줄인 30톤대 중형전차 급으로 설계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이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은 에밀 전차를 개발했다. 에밀전차의 최종 결과물은 Kranvagn (크란방)이며, AMX-50처럼 요동포탑과 자동 장전 장치를 채택한 중전차로 개발되었다. 그러나 포탑의 문제로 결국 차체만 2대 만들어진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중단되었고, 이후 Strv 103이 개발되었다.
6. 미디어
6.1. 게임
6.1.1. 월드 오브 탱크
6.1.2. 워 썬더
6.1.3. 아머드 워페어
3티어 MBT로 추가될 예정이다.#7. 모형화
7.1. 프라모델
1/35 스케일로 쉬흐베세 형식을 AMX-50B 라는 이름으로 발매했다.8. 둘러보기
기갑차량 둘러보기 | ||
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소련군이 2차 세계 대전 승전 퍼레이드에서 세상에 선보인 IS-3 중전차의 위협적이고 쐐기형 경사장갑이 적용된 충격적인 모습도 한 몫했다. 참고로 IS-3은 미국과 영국 국방부도 자극받아 M103 전차와 FV214 컨커러와 같은 대항용 중전차의 개발을 서두르게 만들었다.[2] 1945년에 나온 도면 중에서 대전기 독일 전차들같은 보기륜 대신에 코일 스프링을 사용한 영국의 홀스트만 현가장치와 닮은 외장형 보기식 현가장치를 탑재할 계획의 설계안도 있었다. [3] ARL 44는 근본적으로 B1 전차를 기반으로 차체가 만들어지면서 현가 장치의 설계가 굉장히 구식이었다는 문제가 있었다.[4] AMX 50 100mm 장착형과 동일한 포로 무장했고, 새로 제작된 AMX 50 초기 시제차와 동일한 포탑을 사용한다.[5] 자동 재장전 시스템을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은 총 5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6] ARL-44에도 사용된 SA45의 자동 장전 장치 장착 사양.[7] 바티뇰-샤티옹 25t, 로렌 40t와도 동일 포탑 설계를 공유한다.[8]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도 각각 M103 전차와 FV214 컨커러를 개발한 것과 비슷하게 프랑스에서도 소련의 IS-3 중전차에 대항하려고 120mm 구경의 주포를 탑재한 중전차를 개발하는게 결정된 것이 AMX-50의 두번째 무장 변경의 이유라는 말이 있다.[9] Surblindé는 '두꺼워진'이라는 의미다. 발음은 쉬흐블랭데/syʀblɛ̃de/.[10] 자동 장전 장치를 사용했음에도 장전 보조를 위한 탄약수가 탑승했다.[11] 엔진 수명 문제로 디튠되었는데, 판터처럼 RPM을 제한해서 출력을 제한했다. 제한을 해제하면 900~1000마력씩 내는 가솔린 엔진이다. 실제로 목표한 출력은 1200마력.[12] Surbaissé는 '낮아진'이라는 의미가 있다. 발음은 쉬흐배세/syʀbεese/.[13] 대공용 20mm는 해치와 합쳐진 SAMM 포탑 구조로 설계되었다.[14] 이는 AMX 50 취소 이후 개발된 AMX-30(1971년형~)에서 실현되었다.[15] 해당 포탑은 측면에 스테레오식 거리 측정기가 달려있고, 장갑이 기존의 AMX-50 계열에 쓰였던 요동포탑보다 전반적으로 강화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대신에 구조상 요동포탑에 편하게 적용할 수 있는 리볼버식 자동 장전 장치는 포기하면서 수동장전 방식을 채택했다. 참고로 월드 오브 탱크에 나오는 9티어와 10티어 AMX M4 차량들에 탑재된 포탑이 바로 이것이다.[16] 전면 장갑은 55도 경사의 180mm 균질압연강판이다.[17] 항공 표적 뿐만 아니라 측후면의 지상 표적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여 무포탑 전차의 약점을 극복할 목적도 있었다.[18] 어떤 자료들에 따르면 계획된 155mm 주포는 미국제 제품으로,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개발되었던 T58 중전차에 계획되었던 물건의 파생형이라고 한다.[19] 105mm용 신형 APDS와 HEAT. 전자는 영국에서, 후자는 프랑스에서 개발했다.[20] 그러나 목표 달성에 실패한걸 감안해도 AMX 50 시제차 정도의 기동력이면 소련의 T-10M과 더불어 당대 중전차 치고는 우수한 축에 속했다. 원래 목표했던 수준의 기동력은 한참 뒤에 개발된 3세대 전차에 와서야 안정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대 기술 수준에서는 애초에 요구된 성능이 무리였던 것도 없지는 않다.[21] M47 패튼의 가성비와 신뢰성이 더 좋았기 때문에 당시 프랑스에서 개발되었던 로렌 40t 중형전차 프로젝트도 M47 패튼에 밀려 개발이 중단되었다.[22] 독일측은 동시기에 레오파르트 1을 개발했다.[23] 9티어가 고증에 맞는 버전이며, 10티어는 9티어 차량과 동일하나 6클립 자동 장전 장치가 달렸다. 오래전에는 10티어 차량이 155mm를 장착한 계획안이었는데 현재는 155mm 버전이 특별 전차로 전환되었다. 블리츠는 아직 155mm 버전이 정규트리이며, 개량형 엔진 가속기를 장착할 수 있어 수틀리면 적을 냅다 들이받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 57톤이나 되기 때문에 E 50M(62톤)이나 E 100(150톤) 같은 언터쳐블들만 빼면(...) 충각뎀으로 폭딜을 박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