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10이 역번호인 역 : 야쿠시도역(미야기), 히가시야마역(교토), 니혼바시역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letter-spacing: -0.75px"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
IS-I | IS-2 | IS-3 | IS-4 | |
IS-5 | IS-6 | IS-7 | T-10 (IS-8) | }}}}}}}}}}}} |
Т-10 |
1. 개요
냉전기에 소련군이 운용한 중전차이자 최후의 채택된 소련제 중전차.[1] 시기를 잘못 타고난 서방의 M103 전차, FV214 컨커러와 함께 묻혀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성능에 힘업어 금방 퇴역한 다른 냉전기 중전차들보다 오랫동안 현역 전력으로 사용되었다. Т-10은 Тяжёлый танк-10의 약어로 직역하면 중전차 10형이다.2. 제원
Т-10М (Объект 272) T-10M (오비옉트 272) | |||
{{{#!folding【펼치기 · 감추기】 | <colbgcolor=#006400> 개발 및 생산 | ||
개발기관 | VNII트란스마쉬[2] SKB-2 | ||
개발연도 | 1955~57년 | ||
생산기관 | ChTZ 키로프 공장 | ||
생산연도 | 1958~65년 | ||
생산량 | 1,139대[3] | ||
운용연도 | 1958~93년 | ||
운용국가 | 소련➡러시아[4] | ||
제원 | |||
전장 | 7.25m // 9.175m (차체/전체): T-10 7.25m // 10.56m (차체/전체): T-10M | ||
전폭 | 3.518m | ||
전고 | 2.460m (T-10) // 2.585m (T-10M) | ||
지상고 | 0.456m (T-10) // 0.460m (T-10M) | ||
중량 | 50t (T-10) // 51.5t (T-10M) | ||
탑승인원 | 4명 (전차장, 포수, 조종수, 탄약수) | ||
공격력 | |||
주무장 | 48구경장 122mm D-25T/D-25TA/D25TS (T-10/A/B, 30발) 52.4구경장 122mm M-62T2 전차포 (T-10M, 30발) | ||
조준장치 | T2S-29-14(주간조준경) ТPN-1-29-14(야간조준경) L-2(적외선 탐조등) | ||
부앙각 | −4 // +15° | ||
회전각 | 360° | ||
부무장 | 12.7mm DShKM 2정 (T-10/A/B, 1000발) 14.5mm KPVT 중기관총 2정 (T-10M, 744발) | ||
승무원 무장 | 7.62mm AK-47/AKM(1960년부터) 자동소총 23mm 슈파긴 신호권총 | ||
탄약 적재량 | 전차포탄 30발[5] -3BM11(APDS) 6발 -3BK9(HEAT) 9발 -OF-472(HE) 15발 기관총탄 744발 소총탄 600발 신호 권총탄 24발 F1 수류탄 20발 | ||
기동력 | |||
엔진 | ChTZ V-12-5 V형 12기통 액랭식 디젤 엔진 (T-10) ChTZ V-12-6B V형 12기통 액랭식 디젤 엔진 | ||
최고출력 // 회전 수 | 700hp (522kW) 750hp (552kW) // 2,100rpm | ||
출력비 | 19.3hp/t (14.2kW/t) | ||
현수장치 | 유압식 개별 토션 바 | ||
무한궤도 폭 // 매수 | 720mm // 각 88매 | ||
최고속력 | 50 // 40km/h (T-10M/T-10) 노상 기준 | ||
항속거리 | 350 // 200km (T-10M/T-10) 노상 기준 | ||
접지길이 // 접지압력 | 4.55m // 0.77kg/cm² | ||
초호능력 | 2.5m (T-10/A/B) 3m (T-10M) | ||
초월능력 | 0.9m | ||
등판능력 | 32° | ||
도하능력 | 1.5m[6] | ||
방어력 | |||
장갑형식 | 주조장갑 균질압연장갑 | ||
차체 | 전면 -상부 60mm / 78° 하부 120mm / 50° 측면 -상부경사 120mm / 47° -하부경사 80mm / 62° -측면수직 80mm / 10° 후면 -상부 50mm / 55° -하부 60mm / 20° 평면 -상부 20~40mm -하부바닥면 16mm | ||
포탑 | 전방 120~250mm[7] / 24° 측방 82~180mm / 45° 후방 122mm / 54° 상부 40~50mm | }}} |
3. 개발사
3.1. 배경
소련군은 2차대전이 진행중이던 1944년부터 신형 차세대 중전차를 개발할 계획이 있었는데, 방어력을 더 많이 확보하면서 동시에 뛰어난 기동성과 안정성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본 중전차 개발 계획은 1945년 2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오비옉트 257과 그 계열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8]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 기준으로 소련군이 채택한 중전차는 IS-2와 IS-3가 있었고, 1년후인 1946년에는 IS-4도 채택되었다. 그러나 IS-2는 이미 구식이었고, IS-3는 새로운 설계가 적용되어 IS-2보다 강한 방어력을 얻었지만 생산 과정에서 품질 불량 문제가 생겼고 전투 지속력이 부족했다. IS-4는 독일군의 8,8cm KwK 43을 거의 모든 부위가 완벽하게 막아내는 방어력을 갖췄으나 두꺼운 장갑때문에 지나치게 무거워지면서 실패한 전차로 판명되었고, 1950년대에 2선급 전선인 극동에 배치되어 IS-2보다도 빠르게 퇴역하게 된다.
한편 오비옉트 257의 설계는 55톤이라는 중량의 한계와 그로 인한 무리한 경사장갑 설계로 인해 승무원 거주성과 토션바 서스펜션을 포기했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55톤 내에서 방어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를 했음에도 오비옉트 257은 대전 말기에 나온 야크트티거의 12.8cm 주포를 완벽히 막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결국 개발이 취소되었다. 소련 군부는 다가올 냉전기에 걸맞은 신형 중전차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면서 신형 중전차 프로젝트의 중량 제한을 60톤으로 완화하며 더 강화된 중전차 요구사항을 작성하였고, 곧이어 1945년 9월부터 오비옉트 257을 바탕으로 더 개선된 오비옉트 260의 개발이 시작되었다.
3.2. 오비옉트 260
1945년부터 IS-2와 IS-3를 미래에 대체할 새로운 중전차들의 개발이 결정되면서 여러 중전차 설계안들이 제출되었다. 그 중 가장 유력했던 것은 키로프 공장에서 설계된 오비옉트 260이었고, 오비옉트 260은 개발이 승인되어 1945년 9월부터 개발이 진행됐다.오비옉트 260은 IS-3에도 적용된 경사장갑 설계를 채택하였으며, 영거리에서 전측면이 독일제 88mm PaK 43 포는 물론 128mm PaK 44도 완벽히 막아내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고, 차체 전면은 자신의 130mm 주포 조차 완전히 방어해내는 방어력을 갖췄다. 여기에 1050마력 디젤 엔진을 적용하여 도로에서의 최고속력이 60km/h까지 달하는 기동성을 보여줬다. 오비옉트 260은 우수한 성능을 보이며 개발중부터 IS-7이라는 명칭도 얻고[9] 채택이 고려되는 단계까지 왔지만, T-54 중형전차의 우선 양산 계획을 잡은 GABTU의 결정과 결정적으로 중량이 무려 68톤으로 IS-4보다도 무거웠다는 문제가 걸리면서 최종적으로 채택이 거부되었다.
3.3. 오비옉트 730 (IS-5)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letter-spacing: -0.75px" {{{#!wiki style="word-break: keep-all" | ||||
IS-I | IS-2 | IS-3 | IS-4 | |
IS-5 | IS-6 | IS-7 | T-10 (IS-8) | }}}}}}}}}}}} |
1949년 9월에 등장한 오비옉트 730의 프로토타입 |
IS-5의 차체는 IS-4의 차체 설계를 기반으로 설계되었지만[11], 무게 제한을 지키기 위해 전체적으로 장갑 두께를 줄여서 경량화를 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몇년 전에 등장한 IS-7과 IS-3에서 영향을 받은 쐐기형 전면 경사장갑과 차체 측면의 경사장갑 설계도 적용되었다. 1949년 4월에는 차체 위에 새로 설계한 포탑을 올린 목업이 완성되어 문서들과 함께 모스크바에 위치한 군 수뇌부로 보내졌다. 수뇌부는 몇가지 개선점을 제시하면서 개발을 승인하였다.
1949년 여름에는 테스트용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기로 했지만 일정이 밀렸고, 개발자들은 급한대로 남아도는 IS-4를 2대 가져와 포탑을 제거하는 등의 경량화 작업으로 무게를 50t까지 줄여서 임시 주행 테스트뮬을 제작하여 주행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후 오비옉트 730의 다른 부품들과 기자재들이 완성되자 남아있는 IS-7에 장착하여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1949년 7월 30일에 비로소 IS-5 실차의 차체가 제작되었고, 곧이어 8월 9일에 2호차 차체가 첼랴빈스크에 도착했다. 이 차체들은 다른 부품들의 개발이 어느정도 끝난 1949년 9월에 조립되기 시작했고, IS-4에 적용된 구형 엔진과 변속기를 장착한채 공장에서 주행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러나 주행도중 변속기가 말썽을 일으키면서 주행 테스트가 실패했고, 최종적으로 IS-4부터 사용한 6단 변속기를 새로 개발한 8단 변속기로 교체하기로 결정되었다.
1950년 3월에는 변속기를 비롯한 개선사항들이 적용된 3대의 프로토타입이 추가로 생산되어 4월에 쿠빈카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그리고 동년 여름에 더 많은 테스트들을 통과한 이후 7월부터 10대가 생산되어 소련군에 배치됐다. 이 선행양산형 차량들은 1950년 동안 테스트를 거치면서 일부 차량의 서스펜션에서 결함이 발생한걸 제외하면 모두 합격했으며, 이전의 중전차들보다 우수한 신뢰성과 개량에 용이한 확장성을 보였다.
그러나 1950년 말에 IS-5의 채택은 거부당했다. 이는 소련 철도부에 의해 새로운 조건들이 요구되었기 때문이고, 이 요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설계를 사실상 갈아엎는 오버홀이 필요했다. 결국에는 차체와 포탑을 몇년에 걸쳐 개량하면서 변경을 가하다 보니 사실상 갈아엎어지듯 큰 변화가 생겼고, 차체와 포탑에 여러 변경점이 생긴 개량형은 여전히 오비옉트 730이라는 프로젝트 명을 유지했지만 1953년에 IS-8이라는 새로운 제식명을 받았다.
엔진으로는 프로토타입부터 700마력을 내는 V-12-5가 탑재되었다.[12] 프로토타입 IS-5의 경우 비슷한 엔진이 적용된 IS-4처럼 냉각장치는 5호 전차 판터에 적용된 독일제 냉각장치의 영향을 받아서 설계된 물건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엔진룸의 라디에이터 배치가 IS-4처럼 2차 대전기 독일군 전차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양산형 T-10에 와서는 엔진룸의 라디에이터 모양이 다르게 바뀌었다. 프로토타입부터 초기 양산형까지는 주포로 IS-2, IS-3, IS-4같은 기존 소련 중전차의 주무장으로 사용되어왔던 122mm 구경 D-25T 전차포가 사용되었다.
4. 형식
4.1. T-10 (前 IS-8)
1953년 11월 28일에 나온 결의안 No.2860-1516에 따라 T-10으로 제식 채용된 오비옉트 730 (前 IS-8). 1953년 12월 15일에 채택되었다. |
개발 당시부터 흙먼지가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새로운 알루미늄제 궤도 커버와 사이드 스커트[15], 펜더 부품이 소련 중전차 최초로 적용되었다. 이 부품은 이후 IS-2와 IS-3, IS-4에도 현대화 개량을 통해 추가되었다. 참고
4.2. T-10A
오비옉트 731(또는 오비옉트 730A) |
T-10A의 장전 과정 |
4.3. T-10B
오비옉트 733(또는 오비옉트 730B) |
지휘차량 버전으로 T-10BK도 있다. 통신 라디오와 발전기가 추가되면서 포탄 적재량이 30발에서 22발로 줄어들었다.
4.4. T-10M
키로프 공장의 오비옉트 272 |
ChTZ의 오비옉트 734 |
동시에 1957년 12월 3일 ChTZ에서 오비옉트 734A의 최초 프로토타입이 제작됐는데, 오비옉트 734는 ChTZ에서 남아돌던 구형 T-10에 T-10M급으로 개선을 가한 형태로 그 해 9월 6일 소련 각료평의회 No.1083-488에 따라 T-10M으로 명명되어 1958~59년 동안 230대가 ChTZ에서 양산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1960년에 원래 T-10M인 오비옉트 272의 양산으로 넘어가며 제작이 종료되었다. 오비옉트 272는 ChTZ에서 1958~62년 동안 304대, 키로프 공장에서 1958~65년 동안 555대가 양산됐고, 덤으로 지휘차량 T-10MK(오비옉트 272K)는[17] 1959~64년 동안 키로프 공장에서 100대가 양산됐다.
이렇게 문서마다 집계가 다르지만 러시아측 서적에 따르면 1,139대가 ChTZ와 키로프 공장에서 1958~65년 사이에 생산됐다. 이는 T-10M(Object 272/734)과 지휘형 T-10MK(Object 272K)을 포함한 수치다. 1958~62년 동안 오비옉트 734 230대와 오비옉트 272 304대가 ChTZ에서 생산됐으며, 1958~65년 동안 오비옉트 272 555대와 T-10MK 100대가 키로프 공장에서 생산됐다. (출처: Техника и вооружение 2012 11 p.54)
T-10M은 서로 다른 회사에서 만든 두가지 버전의 차량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다른 두 차량(272, 734)끼리 공유하지 않는 부품은 서로 호환이 불가능하다. 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시피 두 차량은 포탑과 포방패의 형상, 포탑 전면의 관측장비 위치부터 다르며 내부적으로도 사용된 부품들이 상당히 다르다.
개량점으로는 주포가 122mm M-62T2로 변경되면서 기존 D-25T 계열보다 포신 구경장이 증대했고, 포구제퇴기가 포반동을 70%까지 억제가 가능한 다공식 포구제퇴기로 변경됐다. 포탄도 신형 포탄을 사용하여 관통력이 이전보다 증가했으며 약실 입구에는 T-10A부터 탑재된 반자동장전장치가 위치했다. 장전 보조 메커니즘은 2S1 그보즈디카 자주포의 장전장치와 구조가 유사하다.[18] 부무장 기관총도 DShK에서 14.5mm KPVT로 교체되었고, 총탄 적재량이 1000발에서 744발로 줄었다.
또한 이전보다 좀 더 향상된 PUST-2S 리벤 스테빌라이저가 장착되었다.[19] 더불어 1967년에 3BM11 분리철갑탄과 3BK9 대전차고폭탄이 지급되면서 기존 대보병지원 전선돌파 임무와 동시에 대전차전 수행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장전수를 제외한 승무원 전원에게 야간용 열상 조준경이 추가되었다. 포수조준경으로는 주간조준경 TSh-29-14 우다르(3.1/8배율)와 야간조준경 TPN-1-29-14 루나(5.5배율), 그리고 야간전용 L-2 루나 적외선탐조등을 갖췄다. 매연으로 연막을 발생시키는 기능도 추가되었다.
방어력의 경우 전면부 장갑이 기존 200mm에서 230~250mm로 강화된 신형 포탑을 제외한 차체는 이전과 거의 그대로였다. 개발 당시의 요구사항을 따라 핵폭발 방호 장비와 NBC 방호장치가 추가되면서 포탑 상면의 벤틸레이터(환기장치)가 제거됐고[20] 차체의 펜더 위에 수납함 2개가 추가되었다.
여러 개량이 적용되면서 무게도 50톤에서 51.5톤으로 늘어났지만 엔진이 기존 T-10 계열에 사용된 700hp를 내던 V-12-5 액랭식 디젤 엔진에서 더 강력한 V-12-6B 액랭식 디젤 엔진으로 교체되어 출력이 750hp로 50hp가 증가했고 최고속도도 42km/h에서 50km/h로 증가했다. 또한 1963년부터는 OPVT(잠수도하장비)가 추가되어 장착 시 최대 5m 깊이의 강을 심수도하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용으로 T-10M 포탑 후방에 9K11 말륫카 대전차미사일을 장착한 오비옉트 272M이 존재했었는데, 당시에는 전차에 미사일을 달고서 운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여 시험에만 그쳤다. 또 현대화 계획 때는 심지어는 23mm 구경 개틀링을 장착해서 세계 최초의 능동방어를 실현하기도 했다. 물론, 요즘 방식처럼 요격 목표를 정교하게 격추하는게 아니라 그냥 미사일이 발사된 쪽으로 무식하게 탄환을 뿌려서, 사수를 움츠러들게 해 시선유도를 방해하는 식이었다. 미사일을 맞춰서 하드킬을 하는게 어쩌다 운 좋게 일어나는게 된 신박한 능동방어장치다.
5. 파생형
자세한 내용은 T-10/파생형 문서 참고하십시오.6. 실전
6.1. 프라하의 봄
바르샤바 조약군의 다뉴브 작전 당시 프라하 거리에서 촬영된 소련 육군 산하 독립중전차대대 소속 T-10M, 1968년 8월 21일 |
7. 말로
T-10M은 조향성을 제외한 나머지 기동성이나 화력면에서 중형전차인 T-54나 T-55보다도 확실히 뛰어난 성능을 내던 전차였다. 그러나 대전차화기의 발달과 중형전차가 중전차의 임무를 동시에 수행이 가능한 주력 전차 개념이 확립되면서 점차 중전차의 몰락이 가속화되었다. 덤으로 당시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가 열렬한 미사일 지지자라서 미사일 기술에 치중해서 미사일과 우주사업이 크게 발전된 면도 있었지만, 반대로 재래식 전력에는 회의적이어서 중전차보다는 MBT로 완성되어가던 중형전차[21]에 몰두했고 여기에 키로프 공장 전차설계주임 조제프 코틴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22]까지 덧붙여져서 정치적으로도 T-10M의 추가적인 양산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그래도 1950년대까지는 중전차임에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데다 중형전차급 주행 성능을 낼 수 있었고, 소련제 전차 중에서는 상당히 여유있는 차체와 포탑 용적 덕분에 추가 개량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23]
하지만 기본적으로 50톤이 넘어가는 체급이라 당대 소련군의 중형전차/MBT보다 무거웠고, 중형전차보다 생산과 운용에 돈이 더 들어가는 중전차라는 한계 때문에 발전하는 시대에 따라가지는 못했다. 1961년에 등장한 중형전차 T-62와의 시험에서 방어력은 두 전차가 거의 동등하나, 활강포라는 특성과 기존 전차포 대비 늘어난 약실 압력, 신형 포탄의 도입으로 화력과 대전차 능력은 115mm 2A20으로 무장한 T-62가 더 우세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입지가 흔들렸다[24].
이어서 복합장갑의 적용으로 30톤 중후반의 무게와 작은 체급에도 중전차를 압도하는 정면 방어력까지 갖춘 주력전차 T-64가 등장했고, T-64A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신뢰성을 제외한 모든 성능면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또한 흐루쇼프의 결정으로 1965년 ChTZ에서 마지막 생산분을 끝으로 T-10M의 양산은 완전히 중지됐고, 1966년에 T-10은 단종되었다. 한편, T-10의 후속작으로 개발되던 차기 중전차 프로젝트들도 있었지만 모두 채택되지 못했고, 결국 T-10이 단종될때는 이들도 완전히 개발이 중단되었기에 T-10이 소련군이 채택하고 운용한 최후의 중전차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T-10을 곧바로 퇴역하지 않았고, 전선 돌파 및 대보병 지원을 위해 독립중전차대대에 배치하였다. 1967년에는 대전차전을 염두에 둔 신형 포탄(APDS, HEAT)이 도입되었다. 1968년엔 프라하의 봄 진압에 투입되고 1970년대 후반까지는 현역으로 있었다. 1972년에는 일부 T-10M[25]을 퇴역하고서 나머지 T-10들에 대해서도 근대화 개수가 진행되었고, 1985년에는 독소전쟁 배경의 전쟁 영화에도 출연했다.
이집트가 소련에서 수입한 T-10을 중동전쟁에 투입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이는 IS-3에 대한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T-10은 소련 해체까지 소련 외부로 대량 판매된 적이 없다.
이렇게 남은 T-10M들은 소련군이 해체되고도 러시아군에 형식상 현역 장비로 인수됐다가 2년 정도 지나서 러시아 국방장관 명령 593호에 따라 1993년 12월 26일, 40년만에 정식으로 군에서 퇴역할 수 있었다. 나름 존재감 없이 일찍이 도태된 서방의 M103 전차이나 FV214 컨커러에 비하면 근 40년간을 소련군과 함께 동고동락해 나은 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음은 현재 보존된 차량들의 목록이다.
8. 사용 국가
8.1. 소련
원조 사용국.8.2. 러시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군이 인수하였고 문서상 1993년에 퇴역했다.9. 미디어
본국 소련에서조차 T-10의 대해서 알려진 게 없었기 때문에 매체에서 모습을 보이는데 매우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밀덕들 사이에서도 IS-3와 흡사한 차체 때문에 IS-3와 혼동되기도 했지만 그나마 1985년작 소련 전쟁영화에 출연했으며, 2000년대 넘어서 게임 월드 오브 탱크와 워 썬더에 등장해 인지도가 높아졌다.9.1. 영화/드라마
9.1.1. Батальоны просят огня
Батальоны просят огня[28]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1985년작 소련 영화 Батальоны просят огня 2부 초반에 소련군 전차로 등장한다. 기동하는 것과 망치질하는것 말고는 딱히 주목할만한 건 없다.
9.2. 게임
9.2.1. 도미네이션즈
원자력 시대의 첫 번째 중전차로 등장한다.
9.2.2. 워 썬더
T-10M |
다만 주포의 성능이 출중해서 마우스
현재는 타기 어려운 편이다. 계속된 패치로 고관통 대전차고폭탄이나 분리철갑탄을 사용하는 전차들이 다수 추가되어 예전처럼 장갑을 믿고 플레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련 특유의 비좁은 모듈배치 덕분에 일단 관통되면 한방에 죽는 경우가 많아서 체감 생존성은 경전차만도 못하다. 심지어 BR을 조금만 올라가면 날탄이나 미사일까지 날아다니기 때문에 무조건 사려야 한다. 냉전기 전차랍시고 분리철갑탄과 대전차고폭탄을 받았지만, 관통력은 동랭크 중형전차와 비슷한 수준이고 장전속도는 2배 이상 느리기 때문에 화력도 평균 이하다. 기동력도 특출나지 않아서 애매한 포지션이다.
이후 2.0 업데이트로 T-10A가 추가되었다. 배틀패스 시즌 1 보상전차다. BR은 7.7로 T-10M보다 낮지만 몸을 사려야 하는것은 여전하다. T-10M에 있던 대전차고폭탄과 분리철갑탄을 빼앗기고 작약탄을 쓰게 되었다. 대신 프리미엄 전차 판정이고 수리비가 리얼리스틱 기준 약 1000실버로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타기에는 나쁘지 않다.패치 1.69로 파생형 Object 268도 자주포 트리 5랭크로 등장했다.
9.2.3. 월드 오브 탱크
T-10 (구 IS-8) (Object 730) | IS-5 (Object 730) |
또한, 클랜전 보상 전차로 위 T-10이 제식 채용되기 이전 IS-5가 등장한다. 성능은 스톡 T-10과 다를게 없지만 공방에서 운용하는 유저의 실력대를 생각하면 상대하는 입장에서 영 껄끄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블리츠에선 클랜 보급품 10단계를 찍어야 구매가 가능하여 이 전차를 본다면 그 사람은 쌉고인물 클랜원이라 봐도 무방하다. 같은 국가 10티어 화력형 구축전차로 Object 268이 존재한다. 높은 위장률과 152mm의 한방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전차였으나... 갖은 너프를 얻어맞고 상기 원본 중전차를 능가하는 소련의 갓구축이 되어 돌아왔다. 월드 오브 탱크/소련 테크 트리/구축전차 참조.
10. 모형
10.1. 프라모델
흔히들 2010년대에야 모형화된 전차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타미야 모형과 러시아의 프라모델 업체 '나비가똘'에서 수십년 전에 T-10을 발매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둘 다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일 뿐더러, 발매 시기도 시기라 품질도 매우 떨어진다. 타미야의 경우 T-10 ISIII이란 명칭으로 T-10A를 발매했는데, 발매 시대가 냉전이고 소련이 T-10을 기밀로 부치던 상황이라 서방 군부조차 T-10의 데이터를 거의 몰랐다 해도, 수많은 오류로 점철되어 지금 기준으론 수집 목적이 아닌 한 구매할 이유는 전혀 없는 구세대의 유물. 그래도 아직은 일본 중고 모형점에서 간간히 악성 재고로나마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골동품답게 웃돈을 붙여 판다.2015년 하반기에 같은 중국 모형사 멩과 트럼페터에서 T-10M이 1:35 스케일로 발매됐다. 또한 트럼페터는 T-10과 T-10A도 덤으로 발매했다. 업체에 따라 크기나 형체에 조금씩 차이가 존재하는데, 트럼페터가 멩보다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큰 편이라고 한다. 트럼페터가 오버스케일인지 멩이 언더스케일인지는 정확하게는 알 수 없고. 정확도나 디테일 면에서는 트럼페터가 좋은 편이고, 품질이나 조립성 면에서는 멩이 좋은 편이라고 하니 자기 입맛에 맞춰 사자. 여담으로 가성비 면에서는 트럼페터가 1만원 이상 더 저렴한 편이다.
위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T-55같은 여타 소련 주력전차들과는 달리 T-10의 자료가 덕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장 두 회사가 참조한 도면 역시 다르다고 할 정도니 할 말이 없다. 해외 모델 포럼에서는 두 키트의 차이가 나는 이유가 베이스로 한 T-10M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실제로 T-10M의 경우 키로프 공장에서 개발된 오비옉트 272와 ChTZ에서 개발된 오비옉트 734라는 두가지 형태로 같은 시기에 병행생산이 진행됐는데, 일설에서는 둘 다 호환되는 부품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많이 다른 편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월탱에서 등장하는 전차들로 재미를 본 트럼페터가 오비옉트 268의 키트를 공개했다! 오비옉트 268은 T-10의 차대를 기반으로 제작된 고정형 자주포로 전투실 형상과 경사장갑을 보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 MENG Model
T-10M으로 최대한 많은 가동성을 추구하는 멩답게 궤도와 서스펜션 모두 가동식이다. 궤도 조립성이나 내구도는 괜찮은 편이나, 연결가동식 궤도를 하나하나 조립하는건 좀 번거로운 일이기는 하다. 그래도 초기 멩 모델의 가동식 궤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된 편이기 때문에 품질에 있어서 큰 지장은 없다. 전차장 큐폴라도 회전될 수 있으며 주포 부앙각도 조정가능하지만, 주포 연결부의 폴리캡이 좀 헐거워서 그런지 힘을 못받는 편이라, 결국 포신 각도를 적정 부앙각에 맞추도록 접착하게 되므로 좀 아쉬운점.
그 외는 meng model 답게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가격은 6만원 후반 대로 트럼페터에 비해 1만원 정도가 비싼편이다. 트럼페터 제에 비했을때, 가동식 서스펜션 의 장점이 있으므로, 어느쪽을 구입할지는 취사 선택에 달려 있겠다.
T-10 | T-10M |
T-10A |
멩에 비하면 품질은 약간 떨어지지만 정확도는 더 높다고 한다. 게다가 무한궤도가 멩처럼 전부 연결식이지만 조립하기에는 더 간단한 편이다.[31] 이로써 극초기형 T-10과 T-10A, T-10M까지 구현이 가능해졌다.
10.2. 페이퍼 크래프트
러시아 서버에서 2016년 만우절 특집으로 월(月) 탱워즈에서 나왔던 IS-8 BALL 의 도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링크11. 둘러보기
<colbgcolor=#006400> 소련의 중전차 | |
전간기 | T-35, KV-1, KV-2 |
대전기 | KV-85, IS-1, IS-2, IS-4A, IS-3 |
냉전기 | T-10, IS-7B |
※ IS-4의 경우 프로토타입으로 존재하였으나, 종전 후 양산 ※ IS-7의 경우, 종전후 수대의 프로토타입만 제작되고 중량 문제로 불채택. 허나 분명히 정식으로 제식명칭을 받은 차량임.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ffffff,#ff5500><tablealign=center><tablebgcolor=#ffffff,#ff5500> |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fff> 차급 | 생산 차량 | 단종 차량 |
<colbgcolor=#FF3300> 전차 | - | T-28 · KV-1 · IS-2 · IS-3 · T-10 · PT-76 · T-80 · 오비옉트 279 | |
자주포 | - | ISU-152 · ISU-122 · 2A3 콘덴사토르-2P · 2B1 오카 |
냉전기의 기갑차량 둘러보기 | |
국공내전 | 국부군 | 홍군 |
한국전 | 유엔군 | 공산군 |
베트남전 | 미군 및 다국적군 | 월맹 |
냉전기 전체 | 체코슬로바키아 | 유고슬라비아 | 소련 | 미국 | 스웨덴 | 동독 | 폴란드 | 이라크 | 대한민국 |
※ 기갑차량 둘러보기: 대전기(1914~1945), 냉전기(1945~1991), 현대전(1991~) |
[1] T-10 채택 이후에도 오비옉트 277과 오비옉트 279, 오비옉트 770같은 후속 중전차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들은 모두 소련군에 의해 채택되지 못하고 기술실증용 프로토타입 차량 정도에서 그쳤다.[2] 키로프 공장과 ChTZ, 옴스크트란스마쉬 등 여러 전차 설계국 합작으로 1948년에 설립된 100번 실험공장을 전신으로 1992년까지 VNII-100, 100번 연구소 등으로 불리다가, 1993년 VNII트란스마쉬로 사명 변경 및 우랄바곤자보드 계열사로 편입됐다.[3] T-10M 및 T-10MK를 포함한 수치로 T-10M은 1958~65년 동안 총 1,039대, 지휘형 T-10MK는 1959~64년 동안 총 100대가 생산되었다. 나머지 계열들도 포함시키면 1,539대까지 불어난다. (Техника и вооружение 2012 11 p.54)[4] 소련 해체 후에도 러시아에서 문서상으로 운용하다가 1993년 말 공식으로 전량 퇴역했다.[5] APDS와 HEAT 포탄이 추가된 1967년 기준 탄약고 비율이다. 총 30발이 분리장약식 포탄으로 적재되어 주포 약실에 반자동장전장치가 설치되었었다. (출처: Техника и вооружение 2008 09 p.49)[6] 1963년부터 OPVT(잠수도하장비)가 추가됐으며, 장착 후 5m 깊이까지 잠수 도하가 가능하다.[7] T-10은 전방 203mm, T-10M은 230~250mm.[8] 이후 개발된 오비옉트 260보다 먼저 IS-7이라는 명칭이 쓰이기도 했다.[9] 사실 오비옉트 260의 직전 프로젝트인 오비옉트 257부터 IS-7이라는 명칭이 쓰이기는 했다.[10] 이미 IS-1에 100mm S-34를 단 오비옉트 248, IS-6(오비옉트 252) 개발 단계에서 함께 만들어진 오비옉트 253, 그리고 1946년에 개발이 시작한 오비옉트 705A 중전차에 IS-5라는 명칭이 쓰이기도 했다. 이 중에서 오비옉트 253은 조제프 코틴이 개발을 주도한 물건이긴 하지만 저 세개의 프로젝트 모두 오비옉트 730과는 무관하다.[11] 특히 서스펜션 설계는 거의 똑같다.[12] IS-4에 먼저 적용된 V-12의 개량형이며, 출력이 약간 디튠되었지만 기술적인 신뢰성은 더 늘어났다. IS-4M에 적용된 구형 V-12 엔진의 개량 버전인 V-12M의 개발에도 V-12-5 개발에서 생긴 노하우들이 적용되었다.[13] IS-8이 속한 스탈린 전차 시리즈는 이름부터 스탈린의 이름을 따왔고 IS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니셜이다.[14] 코틴은 새로운 서기장으로 등극한 니키타 흐루쇼프의 이니셜을 따 NKh-1(흐루쇼프 전차 1형) 또는 NKh-10(흐루쇼프 전차 10형)으로 개명하자는 방안도 내놓았다고 한다.[15] 다만 센추리온 전차처럼 차체 측면 대부분을 덮어서 보호하는 장갑이 아니라, 흙먼지가 튀는걸 막는 목적의 부품이라서 리턴 롤러와 궤도 상단부만 가렸다.[16] 장전수가 탄두와 장약을 트레이에 올리면 기계로 가동되는 래머 막대가 이를 포미에 밀어넣는 보조 방식으로 완전 자동 장전 장치는 아니다.[17] T-10BK와 마찬가지로 추가 통신장비 탑재로 탄약 적재량이 22발로 줄었다.[18] 먼저 트레이에 장전수가 탄두를 올리고 트레이를 안쪽으로 밀어넣으면 스위치가 작동하면서 기계로 작동하는 래머가 자동으로 탄두를 포미에 밀어넣게 된다. 그 다음에 장전수가 장약을 트레이에 올려놓은 다음에 안전버튼을 누르면 래머가 장약을 포미에 밀어넣으면서 발사 준비가 끝나는 동시에 자동으로 트레이가 장전 이전의 원위치로 돌아온다. 이 장전 보조 장치를 사용하면 완전 수동장전으로는 분당 2~3발 발사 가능한 것을 이론상 분당 3~4발까지 발사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원래 번거로운 장전과정을 해결하기 위해 T-10M의 새로운 현대화 계획때 조상 IS-2때 시도했던 것처럼 포탄을 일체형으로 하는 시도가 있었으며, 결과는 어느정도 성공적이었으나, T-10M의 현대화 개량 계획이 취소되면서 없어져 버렸다.[19] 50년대 중반은 소련군에 스테빌라이저가 대거 도입되던 시기로 T-10과 함께 소련군의 양대 전차인 T-54는 55년형 개량부터 2축 스테빌라이저가 장착된 D-10T2S를 장비하여 양산되고 있었다. 53년형 T-54A의 1축 스테빌라이저 D-10TG보다 훨신 발전한 형태였다.[20] 동시대에 나온 중형전차 T-55 역시 NBC 방호장치가 존재하며, 포탑 벤틸레이터의 유무만으로도 T-54나 59식 전차와 구분이 가능하다.[21] 이 시기에는 흐루쇼프가 좋아하는 중형전차와 미사일 양쪽을 믹스한 미사일 전차의 개발도 많이 진행됐다.[22] 2차대전 당시부터 스탈린 생전 코틴 기사의 정치적 후원자는 흐루쇼프의 정적 라브렌티 베리야였다.[23] T-10은 중전차로 개발되었지만 중량 제한을 지키느라 장갑 두께를 대폭 늘리지 못해서 방어력은 전작 IS-4와 IS-7보다 낮을 수 밖에 없었고 IS-3보다 좀 더 개선된 수준에서 그쳤다. 하지만 50톤대로 설정된 비교적 가벼워진 중량과 터보차징된 신형 엔진의 사용으로 중전차치고는 괜찮은 기동성을 가질 수 있었다. T-10B까지는 동시기 소련 중형전차인 T-54/55에 비해 살짝 굼떴지만 엔진이 개량된 T-10M부터는 T-54/55와 동급 혹은 약간 더 좋은 주행성능을 낼 수 있게 되었다.[24] 다만 T-62는 30톤대 후반이라는 극도로 제한된 중량 내에서 공수주 카탈로그 성능을 50톤짜리 중전차와 동등하게 맞추려다 보니 내부 용적을 지나치게 희생하여 전투효율은 T-10보다 훨씬 떨어졌다. 적어도 중량제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T-10은 내부용적이 널럴하게 설계되어 부피가 더 큰 포를 탑재했음에도 탑승한 승무원들의 피로도는 훨씬 낮았다.[25] 사실상 양산되지 못하고 남아돌았던 200대 남짓한 T-10 차체를 T-10M급으로 개량하여 만든 오비옉트 734[26] 2대가 전시되어 있다.[27] 해당 문서의 최상단 이미지이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에 속한다.[28] 링크된 유튜브 영상의 1:04:50부터 등장한다.[29] 주로 시가전을 비롯한 근거리 교전에서 고관통 APCBC 포탄으로 포방패를 공략당해 격파되는 경우다. 가끔씩 운빨로 포방패에 트랩샷이 발생해 조종수 해치를 뚫고 들어가 격파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러기 전에 본인이 먼저 격파된다.[30] 9.12 패치로 IS-8에서 T-10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31] 멩은 궤도 사이에 핀을 양쪽으로 껴줘야 하지만 트럼페터는 작은 돌기에 끼우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