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에서는 산악지대에서 좁은 길로만 통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숙한 보병들이 제대로 엄호하지 않은 결과 독일제 37mm PaK 36 대전차포에 줄줄이 격파되는 참상을 기록했고, 이 결과에 실망하여 소련은 전차군단을 해체한 뒤 단위부대를 2~4개의 전차대대로 편성한 전차여단을 개편, 임무를 보병엄호로 바꾸었는데, 장갑방어력이 약한 BT 전차에게 보병엄호임무를 수행하라는 것은 앞서 스페인 내전시에서 참혹하게 겪은 것처럼 그야말로 나가서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일단 장갑이 빈약한 문제점이 있지만, 그 당시 다른 전차들도 장갑이 빈약하기는 매한가지라서 원래 목적인 쾌속진격용으로 사용하면 큰 문제 없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소련은 어느 열강보다 앞선 1932년에 전차군단(2~3개의 전차여단, 기계화 보병여단, 포병여단이 근간)을 창설했으며, 이런 것들이 상승효과를 불러왔고, 치로같이 대전차전을 생각하지 않은 전차를 생산하던 일본에게 치명타였다.[1] 1938년에 일어난 장고봉 전투에서는 각 1개씩의 전차여단과 기계화여단을, 다음해인 1939년에 일어난 할힌골 전투에서는 5개 전차여단을 투입하여 일본군에게 일격을 가했다. 허나 물량에서 일본군 전체 전차수를 능가했음에도 일본군 전차포 및 대전차포 사격에 상당한 수가 파괴되긴 했다.
독소전 개전 직전의 소련이 보유한 전차의 실질적인 주력이었다. 독일측 자료에 의하면 독소전이 시작될 때 소련군은 T-26 전차 11,000대, BT 전차 8,000대를 주축으로 한 75개 여단과 2개 사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다고 할 정도니 그 엄청난 숫자를 짐작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기습당했다는 불리함, 소련의 잘못된 지휘체계 및 무전기조차 없는 차체의 자잘한 문제 등으로 초전에 대부분 박살나버리자 소련군은 남은 BT를 죄다 극동으로 보내버렸다.
T-34의 시제기로서 방어력을 향상하고 화력을 강화한 BT-9(A-20)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 외에도 장갑증설형인 E형[2]과 같은 발전형이 만들어졌지만, T-34를 생산하는 것이 더 값싸고 빠르며 성능도 나은 것으로 판단되자[3] 더 이상의 개발 계획이 중단되었고, 원판들의 생산도 1940년부터 중단하였다.
물론 T-60 따위나 만들어야 할 수준으로 전황이 심각했기 때문에 생산은 중지되었어도 전선에선 계속 사용되었다.
1945년에는 일본 관동군을 소탕하는 작전인 만주 작전에서 BT 전차로 편성된 1개 부대가 수훈을 거둬 훈장을 받았다.
[1] 사실 일본이 패한 이유는 양측 전차의 성능차 문제도 있겠으나 일본의 전술적인 삽질문제도 어느정도 있었다.[2] 소련 전차들은 장갑 증설시 E를 붙인다.[3]T-34는 중형전차라 45mm 45도=90mm 중장갑+전방위 경사장갑 효과를 받아 웬만한 대전초 독일 대전차포는 죄다 튕기고 다녔고, 3인치(76.2mm) 주포에서 나오는 대보병 화력은 적절함 그 자체였으며, 대전차 능력도 대전 초반까지의 소련 입장에서는 그럭저럭 쓸만한 수준은 되는, 요약하자면 경량화된 클리멘트 보로실로프 중전차 같은 느낌이었다. 거기다 BT로부터 물려받은 큰 휠 덕분에 기동성도 적절했다. 기동성 외에는 T-34한테 죄다 밀리는 45mm 경전차인 BT로는 비벼볼 수조차 없는 레벨이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