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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23:17:29

IBM PC XT


IBM PC 제품 역사
PC XT jr AT PS/2

IBM PC XT (model 5160)

1. 개요2. 하드웨어3. 소프트웨어4. 한국에서의 IBM PC XT
4.1. 당시 한국에 보급된 주요 호환기종들

1. 개요

IBM PC 5150의 업그레이드 모델로 1983년 3월 8일에 출시. XT는 eXtended Technology의 약자로, IBM PC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에 해당한다. 기본 구조와 CPU는 IBM PC 5150 모델과 동일하지만, RAM을 늘리고 하드 디스크를 내장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본격적으로 IBM PC가 시중에 보급된 계기를 만들었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였다.

POST 메모리 검사 과정을 화면 상에 표현하기 시작한 첫 IBM PC 기종이기도 하다.

2. 하드웨어

하드웨어면에서는 전작 IBM PC 5150의 사양과 거의 유사하다.

3. 소프트웨어

4. 한국에서의 IBM PC XT

한국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첫 16비트 컴퓨터가 바로 이 IBM PC XT의 호환 기종이다. 1989년 문교부에서 교육용 PC를 지정하면서 학생용으로는 IBM PC XT 호환 기종을, 교사용으로는 IBM PC AT 호환 기종을 지정했기 때문. 이 사업 이전에도 IBM PC 호환 기종이 업무용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었고 세운상가의 업체들에서도 호환 기종을 생산하고 있었다. 기존의 8비트 PC를 제조하던 대기업에서도 삼성전자의 SPC-3000을 비롯한 호환 기종을 만들고 있었으나 가격 문제로 보급량은 미미했다. 이 교육용 PC 사업을 기점으로 한국의 개인용 컴퓨터 환경이 IBM PC 호환 기종으로 재편되었는데 이 컴퓨터가 1983년에 나온 것을 생각하면 본격적인 보급은 상당히 뒤늦었다. 이것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거의 3배로 급성장한 한편 기업체 보급용으로 세운상가조립 16비트 컴퓨터의 단가가 점점 내려가면서, 중산층 가정에서 자녀 교육용 16비트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게 된 시기가 이때였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매우 심해서, 바로 3~4년 전인 1985~6년께 정부의 각급학교 컴퓨터 보급 정책은 8비트 PC 에 마춰져 있었고, 1988년쯤에 와서 8비트와 16비트가 경쟁했다. 따라서 1989~91년 무렵[5]에 학생 신분이었던 사람들이 PC를 구입했다면 IBM PC XT 호환 기종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심지어 학교에는 교육용으로 IBM PC XT 호환 기종이 1993년 이후에도 계속 보급이 되었다. 제조사가 삼성/금성/대우전자[6]였고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1개를 내장했으며 모니터가 흑백이면 거의 맞을 것이다. 상세한 내용은 교육용 PC 사업 문서를 참조.

이 시기에 도입된 IBM PC XT 호환 기종은 대부분 인텔 8088계열 8~10MHz를 탑재하여 속도 향상을 꾀하였다. 일부러 좋은 부품을 탑재했다기 보다는 8088이 나온지가 오래되다 보니 그냥 10MHz짜리 고속 버전이 일반적으로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 그 때문에 일부 게임 소프트웨어는 지나치게 빠르게 동작하는 경우도 있어 CPU 속도를 터보 버튼이나 특정 단축키로 4.77/10MHz를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든 기종도 드물지 않았다. 일부는 NEC V20등의 호환칩도 사용했으며 속도가 8Mhz인 경우 십중팔구 이쪽이었다. 인텔 것에 비해 가격이 저렴했을 것으로 추정. AMD호환칩을 장착한 기종도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대기업 제품들을 중심으로 메인보드 설계를 메모리를 256~512KB에서 확장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든다던지 확장 슬롯을 4개 정도로 줄인다던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1개만 설치한다던지[7] 하는 비용 절감이 꽤나 성행했다. 좋게 보면 박리다매를 위한 방법이었지만 나쁘게 보면 호갱님 등쳐 먹기. 이 시기에 IBM PC 호환기종의 가격이 크게 내려간 것은 사실이나 중소기업 제품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IBM PC XT에 준하는 사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좋게 보기만은 어려웠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글 문제로 미국과 달리 서드 파티 제품인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가 주로 사용되었으며, 이를 개조한 한글 카드도 시중에 많이 나왔었다.

4.1. 당시 한국에 보급된 주요 호환기종들


이렇게 웬만큼 인지도있는 기업에서는 모조리 XT PC를 내놓아 당시 가정용 IBM-PC 호환기종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했으며, 교육용PC 사업이 시작된 이후에는 대부분 8088-I 10Mhz에다가 기본 512-640KB RAM을 달고 나왔고 키보드도 오리지널 IBM PC/XT의 레이아웃을 모방한 한글 86키 멤브레인 키보드가 주류. ISA슬롯은 4개 정도. 차별화된 부분이라면 단색 모니터의 색상(그레이/그린 등)과 기본 장착하고 나온 FDD의 수 정도였다. 번들로 제공한 교육용 소프트웨어 등은 저마다 달랐지만 어차피 그런 것을 돌리려고 사는 PC가 아니었기에 큰 의미는 없었다. 정작 수리 면에선 저마다 전용의 메인보드와 파워서플라이 등을 달고 나와 개인 수리가 쉽지 않았으며 심지어 일부 기종은 그래픽카드도 비표준 방식을 달고 나와 향후 확장성도 크게 제한되었다. 오히려 중소기업이나 세운상가 등에서 보급한 기종들이 표준 부품을 사용했기에 유지보수나 확장성 면에서 더 유리했다.
[1] 빌 게이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본인은 부인했다. 참고[2] Professional Graphics Controller. PGA라고도 한다. 1984년에 VGA에 필적하는 640*480*256 컬러/4096 팔레트를 사용할 수 있었던 굉장한 물건. CAD 등의 전문가용 머신에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가격이 너무 흉악해서 묻혔다. 이거 한 장 가격이 PC 한 대보다 더 비쌌다(...). 용도나 가격으로 보았을 때 요즘으로 치면 NVIDIA 쿼드로나 타이탄 시리즈 같은 특수 목적의 고가 비디오 카드라고 생각하면 비슷할 듯. 위키피디아 PGC 항목. 사진을 보면 요즘 나오는 그래픽 카드처럼 슬롯 2개를 차지하는 위엄을 보여준다.[3] 당시 이 회사에서 내놓은 10MB모델은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베이를 2개 차지하는 ST-412로 5MB모델인 ST-506도 있었다.ST-506의 경우 아예 인터페이스 이름으로도 쓰였다.[4] 원래는 DEC PDP-11용이다.[5] 1992년 이후에는 IBM PC AT 호환기종이나 386급 기종이 주류로 올라오기 시작했다.[6] 대우는 대우전자와 대우통신이 따로 사업을 진행했었다. 대우통신 쪽의 모델은 당시로서는 흔하지 않던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내장한 것이 특색.[7] 위 사양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오리지널 XT 사양은 메모리 640KB까지 확장 가능에 FDD 2개, 혹은 FDD 1개+HDD 1개, ISA 확장 슬롯은 8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