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Special Purpose Individual Weapon미 육군 특수목적용 개인 화기
1952년부터 1967년까지 미 육군에서 진행된 플레셰트 소총 및 탄약과 관련된 도입 사업이다. 미 육군 소속의 스프링필드 조병창과 나머지 3개 민간 업체에서 개발된 네가지 기종들이 경합을 벌였으나, 모두 채택되지 못하고 초기형 단계에서 그치고 말았다.
2. 역사
플레셰트 탄약의 모습[1] |
샐보 계획의 주요 입안자인 곰리(Ghomley) 준장, 숌버그(Schomberg) 소장, 허버트(Hurlbut) 대령
1952년 미국 ORO(작전연구소, Operations Research Office)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과 6.25 전쟁에 걸친 총 593개의 보고서를 통해 적 보병 1명을 제압하는 데 드는 평균 탄약 소모량은 약 10,000발인 데 반해 교전 거리는 300야드(약 270m) 내외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목표물을 향한 화력을 단시간 내에 극대화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 다탄두, 다총열 관련 연구 프로젝트인 샐보(Project SALVO)를 개시하였다.
먼저 올린-윈체스터 사에서 과거의 M14 선정에서 탈락한 T48에 5.56mm 구경의 T65 이중탄두 탄약에 맞추고 총열과 본체 내부의 차개 등을 두개로 늘린 개조형인 윈체스터 샐보 소총을 통한 실험이 이루어졌으며, 그 다음으로는 AAI(에어크래프트 아머먼트, Aircraft Armament Incorporated) 사가 새로 참여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플레셰트 탄약을 사용하는 소총을 개발하는 APHHW(범용 휴대화기, All-Purpose Hand-Held Weapon)로 이어졌다.
1963년을 기하여 보다 구체적인 요구 조건이 세워진 니블릭(Project NIBLICK) 사업이 진행됨에 따라 미 육군 스프링필드 조병창, 에어크래프트 아머먼트(AAI), 올린-윈체스터, 해링턴 & 리처드슨 사의 특수목적용 소총(SPIW) 명칭의 초기형들이 출품되었다.
또한 일반적인 탄두가 포함된 소구경 고속(Small-Caliber, High-Velocity) 탄약의 연구도 함께 진행되어 .223 레밍턴을 사용하는 아말라이트 사의 AR-15 추가가 고려되기도 했지만, 플레셰트 탄약 호환성이 전혀 없었기에 해당 사업에는 딱히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많은 예산과 시간을 들였음에도 그 결과물은 미 육군에서 바라던 조건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기에 1967년에 임시 방편으로 여겨졌던 M16A1의 제식화로 선회됨과 동시에 중단되었으며, 그대신 연장 목적의 1969년의 FRS(미래형 소총, Future Rifle System) 사업을 거쳐 1989년의 ACR(발전형 전투소총, Advanced Combat Rifle) 사업과 1993년의 OICW(목적군 보병용 전투용 소총, Objective Individual Combat Weapon) 사업으로까지 이어졌으나 이또한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을 맺고 말았다.
3. 조건
- 최대 장전 상태의 중량은 4.5kg 이하일 것
- 무의탁 자세에서도 반동 제어가 용이해야 함
- 보조 화력을 갖춘 전용 유탄발사기의 통합
위와 같은 요구 조건들은 오늘날에도 구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매우 난해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때에도 M1 개런드나 M14 등의 반동 제어가 힘든 구형 장총 형태의 디자인부터, 아직도 남아있는 플리셰트와 소구경의 약한 위력에 대한 불신[4] 등의 구시대적인 관념 때문에 높은 연사력이나 유탄발사기 등의 다른 화력으로 땜빵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장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1 개런드가 너무 마음에 들어 위력을 줄이기 싫다고 1959년에 M14를 채용한 것을 상기해 보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소구경고속탄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과 보병 전용의 휴대용 유탄발사기 개발이 추진되어 과도기형인 M79와 M16 계열의 부착을 위한 XM148 및 M203는 물론, 독일의 고저압 이론을 응용한 전용 40mm 탄약을 낳으면서 그 나름대로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4. 참여 기종
사진 | 명칭 | 회사 | 비고 |
SPIW | 스프링필드 조병창 | ||
SPIW | AAI | ||
SPIW | 올린-윈체스터 | 1차 심사 탈락 | |
SPIW | 해링턴 & 리처드슨 | 1차 심사 탈락 |
5. 여담
사실 이 시기에 M16 소총은 M14 소총에서 SPIW로 넘어가는 중간과정에 있는 땜빵 역할이었다.[5] 아직 SPIW가 안 나왔는데 베트남 전쟁은 시작되었고, M14는 베트남의 정글에 적합하지 않으니 마침 미국 공군에서 적당히 잘 써먹고 있는 데다 교전 거리가 짧은 베트남의 전장 환경에 잘 들어맞기까지 한 M16이 땜빵으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SPIW가 실용화되지 못하는 와중 M16이 삐걱이던 데뷔를 빠른 개량으로 극복한 후 극찬을 받으며 승리자로 남았고, 이후 시행된 FRS, ACR,[6][7], OICW, IC 사업마저 취소되어 결국 한때 '땜빵'이었던 M16의 위상은 확고하게 인증되었다.[8][9]덕분에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AR-15 계열 소총인 M4 카빈은 미군의 제식 소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H&K HK416 같이 세계 각국에서 AR-15를 기반으로 한 소총을 개발하고 있고, SR-25이나 HK417 같이 AR을 기반으로 한 지정사수소총도 제식 채용되고 있다. 또한 총 자체의 성능 개량과 더불어 피카티니 레일을 깔아 부착물의 확장성을 증대시키고 도트 사이트나 ACOG 등 광학 장비를 지급하여 교전 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NGSW에서 채택된 SIG XM7도 큰 틀에서는 AR-15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6. 관련 문서
[1] 왼쪽으로부터 비교 목적의 5.56×45mm NATO, 그 다음부터는 XM216, XM144, XM110, XM645, .300 Amron이다.[2] 참고로 엄청난 연사속도로 유명한 MG42가 분당 최대 1500발이다.[3] 분당 2000발 연사력은 H&K G11 소총이 3점사 연사력을 분당 2000발까지 끌어올려 달성할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반동은 꽤나 심한 편이었다. 사실 이런 설계는 발사 후 반동을 고려한다기보다는 반동에 총열 들리기도 전에 3발을 먼저 박는다는 발상으로 나온 것이다.[4] 당장 수뇌부에서 5.56×45mm를 쥐나 잡는 데 쓸 총알이라고 폄하했다.[5] 커티스 르메이가 공군기지 방어용으로 구매했던 것처럼 처음에는 M1 카빈을 대체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M16용 총검인 M7 총검이 M1 카빈의 총검과 매우 흡사하다.[6] AAI 사는 FRS, ACR 사업에도 참여하여 플레셰트 탄을 쓰는 소총을 제시했으나, 플레셰트 탄의 단점을 비롯한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탈락한다.[7] ACR 사업에 참여한 콜트에서 M16을 기반으로 한 소총을 제출했으나, 듀플렉스(이중탄자) 탄환의 치명적 단점들로 인해 묻힌다.[8] 그래서 과장을 보태 M1911이나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처럼 100년 넘게 쓸 것이라는 얘기와 M16이야말로 우주소총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9] 이렇게 난잡한 소총 개발 사업을 정리하는 데는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 포드사 사장직을 역임한 적이 있는 유능한 경영인 출신인 그의 눈에는 이 정도로 난잡하고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미군의 행태는 도저히 두눈 뜨고 봐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