釁 피바를 흔 | |||||||
부수 및 나머지 획수 | <colbgcolor=#fff,#1f2023> 酉, 19획 | 총 획수 | <colbgcolor=#fff,#1f2023> 26획 | ||||
미배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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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음독 | キン | ||||||
일본어 훈독 | きざ-し, きず, すきま, ちぬ-る, ぬ-る | ||||||
衅 | |||||||
표준 중국어 | xìn | ||||||
* 연한 빨간색으로 표기된 신자체는 본래 한자가 비상용한자임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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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釁은 '피바를 흔'이다. '피칠(漆)할 흔'[1]이라고도 한다.2. 상세
한자문화권의 언어별 발음 | ||
한국어 | 훈 | <colbgcolor=#fff,#1f2023>피바르다 |
음 | 흔 | |
중국어 | 표준어 | xìn |
광동어 | jan3, jan6 | |
객가어 | ||
민북어 | ||
민동어 | ||
민남어 | hiêng3 / hiang3 | |
오어 | ||
일본어 | 음독 | キン |
훈독 | きざ-し, きず, すきま, ちぬ-る, ぬ-る | |
베트남어 | hấn, hắn |
⿳⿱⿴𦥑同冖酉分 식으로 조합된 글자이다. 의미상 '피'와 연관되나 血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약자이자 중국 간체자인 衅에는 血이 들어간다.
갑골문을 보면 爨(부뚜막 찬) 자와 제기의 형상인 豆 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후에 豆자는 단순화 과정에서 分자가 되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 글자를 釁을 爨 자를 뜻으로 삼고 分 자를 음으로 삼는 형성자라고 보았으나, 갑골문이나 일부 금문에서 명확하게 제기의 모습(豆)이 확인 되므로 이는 오류이다. 일반적으로 이 글자는 오사(五祀)중 하나로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인 제조(祭竈)의례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2]
유니코드에는 U+91C1에 배당되어 있으며, 창힐수입법으로는 竹月一金竹(HBMCH)으로 입력한다.
벽자 중 하나이지만 '흔'이라고 읽는 글자도 한국에 몇 안 되기 때문에 '흔'으로 변환하면 2페이지 첫째줄로 금방 찾을 수 있다.
3. 용례
사전에는 '피를 바르다'라고 풀이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제물의 피를 제기에 발라 공양지내는 혈제(血祭)를 뜻한다. 제물로 바치는 희생[3]의 피를 제기에 바르는 것을 흔(釁)한다고 한다. 북에 바르면 흔고(釁鼓), 종에 바르면 흔종(釁鐘) 등으로 사용된다.[4]또한, 부정한 것에 흔례를 지내서 상서롭게 한다는 점에서 허물, 죄를 뜻하기도 하며[5] 갑골에 흔(釁)하고 점을 치는 것에서 '징조'(兆)나 '틈'이란 뜻이 파생되었으며(흔극 釁隙) 여기서 갈등이나 분쟁, 불화의 뜻이 파생되어 틈이 생기다, 다투다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3.1. 단어
- 계흔지심(啓釁之心)
- 구흔(搆釁)
- 도흔(挑釁): '도발'(挑發)을 의미한다. 중국어로는 이 의미로 挑衅(tiǎoxìn)이라는 말을 꽤 쓰는 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서문에도 이 표현이 들어간다.[원문]
- 변흔(邊釁)
- 병흔(兵釁)
- 사흔(事釁)
- 사흔(伺釁)
- 생흔(生釁)
- 시흔(猜釁)
- 야흔(惹釁)
- 영흔(嬰釁)
- 인흔(人釁)
- 적흔(積釁)
- 집흔(執釁)
- 행흔(幸釁)
- 흉흔(凶釁)
- 흔극(釁隙)
- 흔단(釁端): '사달'을 뜻한다. 사서에서 종종 나오는 표현이다. 금토패문과 그에 대한 이순신의 답문에도 이 단어가 꽤 자주 나온다. 제3차 요동정벌 관련 조선왕조실록의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변방의 흔단이 자주 일어나는데..."(王氏怠政而亡, 李氏新興, 數生邊釁)#에서처럼 원문은 釁만 쓰였는데 번역을 '흔단'이라고 한 것도 몇 개 있다. 비교적 근대 용례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의 "일부러 흔단을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곱게 오지 않는 말을 곱게 받을 리가 만무하다."가 있다.
- 흔루(釁累)
- 흔얼(釁孽)
3.2. 지명
- 신흔국(臣釁國)#: 삼한시대 마한에 딸려 있던 50여 소국 중 하나. 대전 또는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상고음에 따라 추정했을 때 백제 진현현(眞峴縣), 오늘날 진잠동(鎭岑縣)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 있다. 때문에 대전광역시/역사에서도 언급된다.
3.3. 사건
- 이회지흔(尼懷之釁): 조선시대, 서인(西人)의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제자 윤증(尹拯)의 사이가 불화한 사건. 송시열은 회덕(懷德)에 살았고 윤증은 이성(尼城)에 살았으므로 이르던 말이다.
4. 유의자
釁에 '틈'이라는 훈도 있다.
5. 모양이 비슷한 한자
[1] 피칠갑 (-漆甲) 온몸에 피를 칠한 것처럼 피가 많이 묻어 있는 것[2] 설문해자 등. 참고로 원래 제조는 여름에 지내는 의식이었으나 현대에는 음력 12월 23일에 지낸다.[3] 여기서 희생이란 제사를 위해 사냥한 제물을 말한다. 여기서 남을 위한 제물이 된다는 뜻인 "희생하다"라는 단어가 나왔다.[4] 예기 악기편에 등장하는 차갑흔(車甲釁), 춘추좌씨전 초 공왕의 대화에서 나오는 흔고(釁鼓), 맹자 양혜왕편의 제선왕과 맹자의 문답에서 소로 흔종하는 것을 폐하고 양으로 대신한 이야기가 나온다.[5] 춘추좌씨전 노장공 14년, 人無釁焉妖不自作釁罪也[원문] "中国人民和中国人民解放军战胜了帝国主义、霸权主义的侵略、破坏和武装挑衅"(중국 인민과 중국인민해방군은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의 침략 · 파괴 · 무력 도발에 맞서 싸워 승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