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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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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
2.1. 올챙이 시절이 수치스럽다2.2. 자수성가형 인물의 노력/능력 신봉2.3. 고통의 시점 차이2.4. 경험에 따르는 가치관/사고관 변화2.5. 권력 욕망
3. 관련 표현4. 여담

1. 개요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Toutes les grandes personnes ont d’abord été des enfants. (Mais peu d’entre elles s’en souviennent.).”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대한민국속담으로서 자신도 모르거나 못 가진 혹은 불우했던 시절이 있으나 그때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때의 자신과 유사한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경우를 뜻한다.

2. 원인

2.1. 올챙이 시절이 수치스럽다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서는 어려웠던 자신의 옛 시절을 흑역사로 수치스러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를 잊기 위해서 어렸을 적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철저히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일종의 동족혐오로도 볼 수 있다.

마음의 상처, 복고, 좋았던 옛날 편향, 향수 등등 관련 글 1, 2

2.2. 자수성가형 인물의 노력/능력 신봉

반대로 밑바닥에서부터 성공한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형 인물들은 소위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인물들이 상당수인데, 이들 인물은 자신의 의지 또는 능력을 기반으로 성공했다는 믿음이 지나쳐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즉, 자기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했는데 남들이 그러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부족하거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1] 그러나 겉보기에 비슷해 보여도 각자의 어려움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문제를 빚는다. 온도로 따지면 체감온도를 생각하면 된다.

2.3. 고통의 시점 차이

위의 이유들은 '실제론 알고 있으나 자신의 과거를 달리 해석하는' 예이지만, 이건 정말로 문자 그대로 까먹은 것이다.

아무리 같은 고통을 겪었다 해도 그 고통이 현재진행형인 것과 과거의 일인 것은 차이가 크다. 지나간 고통은 어쨌거나 지금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추억 보정이 될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의 고통은 그럴 수가 없다. 대체로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의 경험은 희미해지기 때문에 공감을 못 하는 일도 많다. 실제로 막 그 처지에서 벗어난 때는 올챙이 적을 기억하고 있다가[3]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잊어버리는 이들도 많다.

2.4. 경험에 따르는 가치관/사고관 변화

기득권을 얻으면서 사고 자체가 '개구리'라는 기득권자의 사고로 바뀌어 올챙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갑과 을 문제에서도 자신들이 약자(올챙이)일 땐 평등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이 강자(개구리)의 위치를 잡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면을 몰수하고 타인을 찍어 누르곤 한다. 특히 기존 강자를 악으로서 여겨 악으로써 처단하다 보면 그대로 닮기 쉽다. 또한 그게 아니어도 위 #자수성가형 인물의 노력/능력 신봉, 아래 #관련 표현 가운데 학습된 무기력 등 개구리가 되기까지의 기간에 입은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일 수도 있는데, 어떤 이들은 이미 그들을 이해하기에 잔소리를 하는 거라며 약자나 역지사지하라고 주장한다. 곧, 올챙이가 개구리의 올챙이 시절 고통을 모른다는 식이며 이미 고생한 사람은 계속 고생하라는 거냐는 식인 셈이다. 위 빵 절도범 판결로 따지면 판사는 남의 배고픈 고통을 알고 있지만 절도범은 그 고통을 모른다는 식이 된다. 이는 보상심리와도 유관하다.[4] 위 개구리의 고통, 아래 속담 '감탄고토'처럼 올챙이가 개구리에게 들러붙기도 한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혼란스럽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 혼란이 점점 더한 건 과거 사악한 집단으로 여겼던 자본가나 기득권층이 직접 만나보면 상당히 젠틀하고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때다.

화가 나서 미치겠다. 문제는 지금 그들이 창업자나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아니라 2세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꼬인 게 없는 자들이다. 그래서 착하다.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다. 예전엔 못 가지고 무식한 사람들이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는 것.

빈부의 격차가 인격이나 인성마저도 그렇게 비틀고 있다.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봐야 할지 참 답답하다. 『말』을 보면 운동권 내부에도 참 비리와 문제가 많은 것 같고……참으로 진실이 뭔지 혼란스럽다.
영화감독 박찬욱, 2003년 2월 월간 말과의 인터뷰 중에서 진보 진영에 대한 쓴소리를 해달라는 기자의 물음에 길게 침묵하다 꺼낸 말.
15살의 우리 딸이 짧게 줄인 교복 치마 하나를 가방에 넣어서 다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딸한테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운운하며 소리치다 결국 짧은 치마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 묵묵히 성난 엄마의 처분을 따랐던 딸이 치마를 도로 가져가 밤새 꿰매 다시 입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그 딸이 20살 때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하는 말이 기막혔다.

요즘 애들 교복 치마가 너무 짧아. 교복은 안 줄여 입어야 예쁜데.

개구리가 되어 올챙이 시절은 까맣게 잊은 이들의 어처구니없는 대화를 들으면서 도리어 나는 과거를 반성했다. 그러게 왜 그깟 치마 길이로 아이들을 가늠하려 했을까. 그냥 놔뒀어도 아이들은 잘 자라서 인간의 도리를 하고 사는데.
동화작가 김해원, 2019년 경향신문 기고 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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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권력 욕망

인간은 이기적 욕망에 싸여있다.
리바이어던, 토마스 홉스
'개구리'라는 기득권이 없으며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면서 올챙이 시절부터 기득권자의 사고를 가지고 질투하거나 기득권을 갈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또 다른 이유로 올챙이가 개구리에게 들러붙어 개구리를 부려먹기도 한다.

강약약강 문서에서도 나와 있지만, 사회적 약자였을 땐 착해 보였는데 권력을 조금조차 쥐고 나니 악한 본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잖이 있는데, 경우별로 딱 이곳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기존 개구리를 절대악으로 여기면서 정작 자신은 개구리가 된 뒤에도 계속 절대선으로 여기는 모순도 있다. 이러는 사람들은 당연하다시피 스스로를 악으로 여기지 않고 상술된 가치관/사고관 변화를 부정하며, 오히려 새로운 올챙이도 강자나 절대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곧, 자신만 절대선으로, 자신의 위아래는 개구리든 올챙이든 절대악으로 여기는 것이며, 약약과 약강이 내면에 공존하는데 전자가 하극상을 통해 후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온갖 가게에서 진상을 부리는 손놈이나 후임 직원들에게 갑질을 시전하는 성질더러운 무능력한 상사 등 원인도 이런 우월의식 등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한데, 해당 문서 내용처럼 사람들이 '평등'과 '존중하기'를 과연 좋아하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을 나누어 스트레스 등을 풀면서 이런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지만,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만국공통인 것이 씁쓸할 따름이다.

3. 관련 표현

4. 여담

올챙이 때 몹시 어려웠던 개구리들은 어떻게 해야 올챙이들이 부서지는지 잘 알고 있으니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자수성가 했으나 올챙이 시절을 수치스러워해 다른 올챙이들을 괴롭힐 때는 그 괴롭힘의 강도가 높다.

이 말은 비유적 표현이고, 개구리는 뇌가 발달하지 않아 기억 자체가 거의 없다. 많고 많은 동물 중에 굳이 개구리에 비유한 것은 변태 과정을 거쳐 어릴 때와 클 때 모양이 크게 달라지는 것들 중 유명한 동물이 개구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단, 별별 형태의 양서류가 다 서식하는 열대지방에는 올챙이 시절 자체가 아예 없는 개구리도 있다.

이 말은 개인이 아닌 국가나 기업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어렸을 적 자기 일을 못 기억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 면에서 비판할 수 있겠지만, 국가나 기업의 '어린 시절'이란 대개 개인의 범주를 집단의 범주로 넘는 데다가 그 집단은 조상이나 선구자 등 개개인과 다른 인간으로 넘어가버리며, 타인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궤에서 비판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개개인의 기억 말고 지속적인 역사 학습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이와 관련한 어구로는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가 있다.

[1] 의지를 강조하는 이와 능력을 강조하는 이의 태도가 약간 다를 수 있다. 전자의 경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라는 취지에서 더 독하게 몰아붙일 가능성이 있고, 후자의 경우는 자기가 보기에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차갑게 대할 수 있다.[2] 이와 비슷하게 '' 문서의 '관성의 법칙' 내용처럼 노동 소득이 자본 소득보다 천대되는데도 자기가 경험해서 안다면서 자본 소득은 허황된 꿈이고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살면서 노동해서 벌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며 남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그러지도 못한다는 식으로 하향비교를 하기도 한다.[3] 초1때 유치원생 시절을 잘 떠올리는 것과 중1때 초등학생 시절을 잘 떠올리는 것, 고1때 중학생 시절을 잘 떠올리는 것, 대1때 고등학생(특히 고3) 시절을 잘 떠올리는 것, 제대 후 군대 시절을 잘 떠올리는 것 등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흐르면 희미해지거나 어렴풋해진다.[4] 서양의 최고 철학자인 플라톤의 대표적 저서 국가론에서도 돈이 많은 걸 장점으로 꼽았는데, 돈이 많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말고 하기 싫은 걸 안 해도 되는 걸 꼽았다. 그리고 이 하기 싫은 것은 돈이 없어서 자신의 신념이나 도덕 관념을 저버리는, 소위 말해 비인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하는데, 결국 고대인인 플라톤도 악이나 범죄가 어느 정도 경제적 궁핍함에서 기인한다고 알고 있던 셈이다.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라 아시아의 정치인이자 중국 최고의 명재상이던 관이오도 "일단 백성이 배부르고 곳간이 가득 차야 그 다음 예절이나 부끄러움 같은 걸 생각하게 된다."라며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지금 너만 힘든 줄 아냐?' 같은 말,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의 원흉이기도 한 셈이다.[5] 이뿐만 아니라 학생 시절의 학생다움 미명 아래에서 두발규제와 교복 강제 착용, 화장 제한 등의 규제를 경험한 이들이 어른이 된 뒤에 요즘 학생들 머리 색깔이 너무 튀고, 교복도 제대로 안 입고, 화장 진하게 하고 다닌다며 학생으로서 버르장머리 없다고 지껄이는 사람이 지금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