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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당/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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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월

2. 2월

2.1. 통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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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월

4. 4월 총선

5.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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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월

7. 7월

8. 10월

9. 12월

10. 총평

지난해 말부터 화제가 되었던 개혁신당은 제3지대의 대표주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창당하였으며, 이후 한국의희망, 새로운선택, 원칙과 상식, 새로운미래와 합당해 보수정당, 민주당계 정당, 진보정당 출신들이 한 자리에 모인 빅 텐트 원내정당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통합 과정에서 불거진 이준석·이낙연 간 갈등, 류호정, 배복주 등의 영입으로 인한 탈당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합당 11일 만에 새로운미래가 독자 노선을 택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비례대표 명부를 놓고 양향자계가 반발하는 등 계파 싸움이 여전히 일기도 했다.

22대 총선 결과 이준석은 4수 끝에 화성시 을에서 당선에 성공하였고, 천하람, 이주영이 비례대표로 당선되며 자력생존에 성공하였다. 비록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과 대립 중인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과의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총선 이후 실시된 첫 전당대회에서는 원칙과 상식 출신의 전성균과 이준석계, 보수정당 출신 인사 4명이 출마하였고, 온라인 당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70%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 결과 허은아가 당원 투표, 여론조사, 대학생/언론인 평가단에서 1위를 차지하며 최고위원 몫을 가진 이기인, 전성균, 조대원을 통해 2대 지도부를 형성하였다.

비상계엄 정국에서는 이준석을 제외한 의원 전원이 계엄 해제 요청 표결에 찬성하였고, 이후 대통령 탄핵 소추에 전원이 찬성한 것은 물론 대통령 탄핵 촉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12월 17일, 허은아 대표가 김철근 사무총장 등 이준석의 측근들을 전격 경질해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며, 이준석 의원까지 개입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창당 초기의 지지율과 비교하면 총선 이후의 지지율이 다른 군소정당들처럼 한 자릿수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무엇보다도 제3지대 특성상 이준석 개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자체적인 조직력 확보와 당 내 계파 화합 등이 향후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허은아 대표의 당권 남용으로 내홍이 진행되고 있는 탓에, 지도부의 대응과 상황에 따라 2025년에 결론을 낼 가능성이 높다.

또 이준석 본인이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대선 출마를 시사하였으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에 따라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조기에 치러질 경우, 독자적인 지역 기반 구축과 조직력 확장 등이 당의 향후 과제가 될 것이다.


[1] 합당 발표일 저녁 이준석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이면 합의가 있으나, 대외 공개는 하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2] 다만 이준석 대표가 요구한 것은 별도의 당원자격심사를 거치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미래측에 배복주에 대한 의견입장을 내달라는 것에 가까웠다.[3] 전 울주군의원(#)[4] 화성시 을은 민주당 텃밭 지역으로 첫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영운 후보가 46.2%,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23.1%로 2배 차이를 보였다. 총선 직전까지 이준석이 이긴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준석은 차이를 좁혀가며 드라마틱한 당선을 이루어냈다.[5] 정치인이 5·18 민주묘지 내 안장된 모든 열사 묘를 참배한 일은 이 날이 최초이다.[6] 한 비석당 2번의 절을 올리는데, 세 인사가 합해 2000배 이상의 절을 올렸다. 여담으로 이준석은 며칠 전 어린이 돕기 3천배 정진법회에 참석해 3시간동안 큰절을 올렸였다.# 이 때문에 몇 번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7] 5·18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주로 5180원 혹은 5만 1800원 등의 후원금이 이어졌다.[8] 참고로 22대 국회 개원하고서 한 달 동안 대표발의한 법안이 없었던 정당은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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