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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3 08:45:44

개화당


개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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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당
고종
( ~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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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1897 ~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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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완 이도재 이준 이재극 정난교
※ * 온건개화파로 보는 시각도 있음.
조선의 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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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향3. 개화파와의 차이4. 한국 최초의 정당?

1. 개요

개화당()은 1874년 조직된 조선, 대한제국의 정당이였다. 이름 그대로 개화를 지지하던 세력이며, 영어로는 Enlightenment Party로도 번역된다. 주요 지도자로는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김옥균 등이 있다.

일부 한국 우익들은 개화파를 본인들의 사상적 조상이라 주장하며 민주계열/진보계열과 보수계열의 계보를 계몽주의/고전적 자유주의 성향인 개화당과 보수주의 성향의 수구당의 계보를 서재필의 제자 이승만이 유지를 이었고, 민족주의 성향의 위정척사파, 평등주의 성향의 동학농민운동/의병 등의 계보를 후대의 민주당계/진보계열이 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진보계열 지식인인 홍세화는 아예 흥선대원군의 후손이다.

개화세력의 계보가 보수계열로 이어지는 것이 생각보다 특이한 경우까진 아닌데, 당장 옆나라인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막부를 폐지하고 현대 일본 발전에 상당히 기여한 구 조슈 번, 구 사쓰마 번지역의 정치인들이 현재 일본 보수정당인 자유민주당 의 거물들이 되었고 아직까지도 일본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세하고 있다. 이의 예시로 야마구치현아베 신조총리대신이 있다.[1]

다만 이와 같은 분석은 근현대시기를 거세한 채 구한말과 현대시대 이후을 이어버린 분석인데, 이후 등장하는 여운형 등의 민주사회주의 세력과 이동휘 등의 고려공산당 세력 및 박열 등의 아나키즘 등 한국 진보세력의 근간과 한국 민주당의 근간이 되는 신익희와 사실상 한국 민주당의 중시조인 김대중 등의 인물, 본래 자유당의 소속이었으며 보수와 민주당계 모두에 영향을 준 김영삼 등에 대해 모두 '위정척사파 계보'라고 말해버리기에는 지나친 비약이며, 서재필-이승만과 달리 홍세화는 흥선대원군의 생물학적 후손일 뿐 그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오히려 광복 직후 시기엔 서재필의 경우 청년 김대중의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또한 위 분석에서는 위정척사파의 무엇을 민주 계열이 이었는가가 빠져있다. 민주/진보 계열은 유교 사상도, 신분제와 권위주의 유지나 통상수교거부, 외국 문화 배척[2], 근왕주의, 문화보수주의[3] 등을 한국 우익 계열보다도 주장한 적이 없으며, 일본에 대한 반감은 이승만 등 개화파 출신 독립운동가나 민족주의자들도 가지고 있었으며[4], 중국에 대한 수교 등 유화 정책은 노태우 등 군사정권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박정희의 경우 동학농민운동을 숭상하며 띄어주는 편이었다. 게다가 박정희, 박근혜 지지자들은 조선시대 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경칭하는 모습을 보인다.#

2. 성향

급진적 성향이 강했다. 기존 동양적인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보았고 서구의 사상을 동양 현실의 맞게 받아들이자는 일련의 보수적 운동들을 강하게 반대했으며 일본처럼 철저하게 환골탈태를 해서 서구 사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친청, 친러 성향이 강했던 수구당과 달리 친일본, 친미국 성향이 강했다.

또한 양반 중심이었던 수구당과 달리 당원 구성에 귀천과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5]

3. 개화파와의 차이

개화파는 개화를 지지하는 이들을 통칭한다면 개화당은 조정이나 중앙 정계의 조직적인 세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살짝 다른 개념이다. 실제로 각종 사전에서도 개별 문서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개화당은 주로 "급진개화파"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되려 온건개화파 중에서 친청 사대주의 성향을 보였던 이들은 수구당으로 몰렸다.[6] 물론 '친청 사대주의' 성향이 약한 온건개화파는 개화당으로 분류하기도 했다.[7]

4. 한국 최초의 정당?

일부 학자들은 개화당을 한반도 역사상 최초의 정당으로 보기도 한다. 사실 정당이라는 개념이 현대의 경우 정당법 등 체계적인 제도를 통해 정당이 생기는 것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본래 정당이라는 것은 영문 명칭 political party를 보아하듯 정치적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회의이나 사교 모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8]
[1] 다만 유신지사들이 권력을 잡으려고 내세웠던 명분은 도리어 위정척사파에 가까웠고 개화파는 초반부터 서구화를 주장했고, 이후의 일본제국은 사실상 위정척사파들이 내세우는 근왕주의 이상으로 보수화되었기에 같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2] 도리어 외국문화 배척과 통제는 박정희 정권 때 더 심했다.[3] 대표적으로 셧다운제는 이명박 정권에서 있었으며 보수 계열 교육감인 하윤수는 조선시대를 가지고 체벌 같은 문화를 옹호한 경력도 있다.#[4] 아예 이승만은 일본과의 수교를 거부했다.[5] 군인이나 승려, 상인 등 전통적인 유교중심적 사회에서 천대받았던 이들과도 적극적으로 연대했다.[6] 프랑스 혁명기 급진파인 산악파가 온건 리버럴 세력인 지롱드파를 보수주의 세력으로 매도한 것과 비슷하다.[7] 다만 수구파와 수구당은 사실상 동의어이다.[8]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정당으로 분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