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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6:53:57

경제적 개입주의

경제 개입주의에서 넘어옴
1. 개요2. 역사3. 관련 사상4. 오해5. 같이 보기

1. 개요

Economic interventionism

경제적 개입주의란 국가가 시장경제에 적극적으로[1] 개입하는 것을 옹호하는 이념을 의미한다. 국가 개입주의(state interventionism)라고도 한다.

현대의 경우 경제적 개입주의의 대표적인 이념으로는 케인스주의가 있다.

2. 역사

오늘날 경제적 개입주의하면 케인스주의가 유명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케인스주의 등장 이전에도 총론적 성격에서 경제적 개입주의는 제법 존재했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현대에 와선 범우파 진영에서 더 강조하고 있지만, 초기에는 오히려 범좌파 이념에 더 가까웠는데, 18세기 과거 유럽의 주류 보수 세력에서는 중상주의, 귀족보수주의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2], 시민 계급이 능력에 따라 누구든 사회적 지위와 부를 누릴 수 있는 자유주의능력주의 사상을 싫어했다.

이러한 경제적 개입주의는 근대주의를 받아들인 보수주의 19세기 초까지도 존재했다.
지금처럼 좌파가 경제적 개입주의를 지지하고, 우파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구도는 범좌파 진영에서 20세기 노동운동을 지지하며 빈부격차 해결을 위해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게 되며, 고전적 자유주의자나 보수자유주의자들이 보수 진영으로 이탈하여 지금같은 구도가 이루어지게 된 것에 가깝다. 특히 경제적 개입주의를 지지하는 대다수의 사회주의 운동이 온건한 형태로써 서구 특히 유럽권 정치에서 메인스트림으로 정착하면서, 경제적 자유주의는 20세기 이후 일반적으론 범우파 사상으로 자리잡고 경제적 개입주의는 범좌파 사상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3. 관련 사상

4. 오해

경제적 개입주의는 시장 등 경제 전반에 대한 정부의 개입으로 그 개입의 목적과 정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가령 한국의 군사정권 등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의 정책들을 보면 노동권익 향상, 경제적 평등 같은 목적으로 경제에 개입한 것이 아니라, 내셔널리즘과 경제 성장 그 자체에 목적을 둔 것이기 때문에 사회주의보단 경제적 개입주의나 중상주의라고 칭하는게 좀 더 맞다.[9] 그런데 소련, 중국[10], 북한 등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은 생산수단의 공용화를 빌미로 자본가들이 그랬듯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권익이나 경제적 평등을 도리어 탄압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개입주의 및 개발독재 정권[11]은 극좌로 분류되던 극우로 분류되던 경제적 자유주의랑은 사이가 멀다.[12] 때문에 경제적 자유주의나 특히 우파 자유지상주의의 경우 경제적 개입주의 전반을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하며 민주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현실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국가 전반이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들을 전부 똑같은 국가자본주의로 동일시하며 비판한다. 또한 특정 경제 주체가 불리할 때 개입을 주장하고 유리할 때 자유를 주장하는 건 그냥 자유주의도 개입주의도 아닌 기회주의에 가깝다.[13]

5. 같이 보기



[1] '적극적으로'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아닌 한 현실정치의 경제적 자유주의 역시 시장에 국가가 미치는 영향을 100% 배제하지는 않는다.[2] 이를 비판한 학자 중 한명이 애덤 스미스였다.[3] 잭슨민주당.[4] 현대 한국 기준으로 보면 농민을 대변하는 농본주의자가 경제적 자유주의를 옹호하는게 이상해보일수도 있으나, 이 당시 경제적 자유주의는 현대의 경제적 자유주의와 질적으로 달랐다. 서민층이 대다수였던 개척자들은 중앙은행에 많은 빚을 지고 개척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산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당시 이 중앙은행과 중앙정부는 동부의 상류 엘리트 층이 주도했기에, 그들은 빚을 가지고 개척자 농민들을 쥐어짜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런 개척 농민들의 지지를 받은 잭슨같은 이들은 중앙은행 해체 시켜버리자는 말까지 했던 것이다.[5] 사족으로 우파 중에서도 경제적 개입주의를 지지하는 경우는 있지만, 경제적 평등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와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들의 경우는 계급 분열을 막고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며, 중상주의나 귀족적 보수주의 등 일부는 아예 서민 나몰라라 하고 특권층 이익 챙겨주기 위한 개입이기 때문에 경제적 진보주의라고 볼 수 없다.[6]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는 제외[7] 민족사회주의가 아니다.[8] 실제로 칼 포퍼는 사회자유주의자, 자유사회주의자였으나 케인스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주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에 가담했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친하게 지냈다. 칼 포퍼의 사상은 사회자유주의 학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중도적인 것이였다.[9] 다만 고용안정성 등은 우익 사회주의로 분류될만한 건덕지가 있다.[10] 시장개방 이후로는 한국의 군사정권과 같은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11] 내지는 국가자본주의[12] 한국의 경우 개발독재 정권에 반발하던 노무현, 김대중 정부가 경제적 자유주의적 정책을 폈다는 분석도 있다.[13] 애덤 스미스 등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중상주의 비판에 주력했고, 밀턴 프리드먼 등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사기업들이 자유시장경제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왜곡하고 정부의 개입을 요청하는 등의 행태를 비판했다. 다만 경제적 자유주의에 비판적인 쪽은 표면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외치는 부류들도 결국 본인들이 불리할 시점에 개입주의를 요구하게 될거라며 경제적 자유주의 전반에 회의적인 시각을 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