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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03:15

성남 본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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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시지역군(원도심)
성남 본시가지
城南 本市街地
<colbgcolor=#cb003c><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기초자치단체 성남시
별칭 성남원도심(城南原都心)
구성남(舊城南)[1]
수정중원 대생활권[2]
북부 지역중심[3]
하위 행정구역 중원구 성남동, 하대원동, 상대원동, 중앙동, 금광동, 은행동
수정구 수진동, 태평동, 신흥동, 단대동, 산성동, 양지동
면적 72.38㎢
인구[4] 수정구: 154,082명[5]
중원구: 186,209명[6]
본시가지 합계: 340,291명

1. 개요2. 명칭에 대해3. 역사4. 해당 지역5. 도시구조6. 주변 지역과의 관계7. 교통8. 정치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성남 본시가지(城南 本市街地), 성남원도심(城南原都心)은 성남시원도심수정구중원구를 뜻한다. 다만, 수정구 위례신도시에 포함된 창곡동, 복정동, 시흥동, 고등동중원구 여수동, 도촌동, 갈현동은 제외한다.

통칭은 구성남(舊城南). 2020 성남도시기본계획 상으로는 “수정중원 대생활권”이라고 불렸다[7].

성남의 원도심은 1970년대 건설된 도시로, 형성 시기가 다른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와 함께 성남 3대 생활권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부동산에서는 0기 신도시라고도 한다. 재개발 및 도시재생사업이 활발한 곳이다.

수정구와 중원구의 인구를 합하면 2023년 8월 기준 443,567명으로 목동신시가지아파트를 끼고 있는 서울특별시 양천구와 비슷하나, 474,510명에 달하는 분당구 인구보다는 적다. 수정구중원구의 인구가 분당구의 인구보다 적은 셈이다.

수정구와 중원구에 속하지만 본시가지에 속해있지 않고[8] 실질적으로는 분당·판교에 연담화된 생활권으로 분류되는 고등동, 시흥동, 여수도촌동복정동, 위례신도시 지역을 제외하고, 본시가지만 한정하면 격차는 340,291명으로 더 벌어진다. 사실상 성남시의 중심이 분당과 판교로 옮겨간 셈이다.

2. 명칭에 대해

성남시에서 사용하는 “성남”이라는 지명은 다음과 같은 용례로 사용된다.
  1. 모란역 일대: 행정구역상 성남동 소재. 가장 좁은 의미의 성남.
  2. “성남 본시가지”(원도심): 가장 대표적인 용례, 부동산 업계에서 사용하는 의미이다. 중생활권으로서의 “(구)성남”을 의미하며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에 대비하여 사용한다.
  3. 2에서 고등동, 시흥동, 여수동, 도촌동, 위례신도시를 포함한 지역: 행정구역상 수정구중원구로, “분당”에 대비하여 사용. 지역 구분을 “성남/분당”으로 표기하는 경우, 이때 “성남”이라는 단어가 3번 의미를 뜻한다. 그리고 3번 용례는 분당을 성남의 일부가 아닌, 독립된 행정구역에 준해 바라보는 시각이 가장 강하게 담긴 용례이다.
  4. 성남시 전체: 가장 넓은 의미의 “(대)성남”. 2035년 도시계획 기준 “성남 대생활권”이다.

2035년 성남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은 '성남 본시가지' 또는 ‘원도심’이다. 다만 '구성남(舊城南)' 혹은 옛 명칭인 “광주대단지”라는 말로 자주 불린다. 1980년대 이후 새로 조성된 신도시인 분당신도시판교신도시와 비교하며 수정구나 중원구를 낮게 보는 뉘앙스가 깔려 있어 지역주민들은 이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원도심"이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구시가지/구도심이라는 표현도 흔히 쓰인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행정구역상 수정구중원구 소속이지만 별개 택지지구로 지정된 다음의 법정동은 성남 본시가지(2번 용례)라고 하지 않는다. 즉, “서울 버스 9408은 성남 본시가지를 거친다”는 말은 거짓이다.

이 중 수정구 지역은 위례신도시를 제외하고는 구 광주군 대왕면으로서 강남구(일원, 수서)와 분당구 판교신도시 영역과 역사를 공유하며, 중원구 지역은 구 광주군 돌마면으로서 분당신도시와 역사를 공유한다. 즉 중부면 소속이던 본시가지와는 역사적 접점이 전혀 없다. 다만, 편의상 3의 용례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강경한 분당구 분리론자 사이에서는 “구성남” 혹은 “구시가지”라는 용어를 다른 이유로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분당이 “성남 신시가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남(원도심)은 구성남이 아니라 그냥 성남”이고, “분당은 별개의 기초지자체(가 되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본 문서는 '본시가지' 및 '원도심'을 주로 사용하며, 2번 용례를 기준으로 작성한다.

3.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광주대단지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성남의 본시가지는 분당신도시를 비롯한 신도시 지역들보다 이른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된 지역이다. 당시엔 성남시가 아닌 경기도 광주군[9] 성남출장소 소속으로, 광주대단지(廣州大團地)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흔히 성남 구시가지를 난개발된 지역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오히려 광주대단지는 바둑판식으로 지어져 당대 기준으로 계획도시에 가까운 도시였다.[10]

광주대단지는 본래 정부와 서울시가 서울시 내 판자촌 등 무허가 건축물을 철거하고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고자 개발하였다. 하지만 주먹구구식 계획으로 개발되는 바람에 막상 광주대단지 주민들은 맨땅에 선만 그어놓은 땅에 버려진 셈이 되었다. 집도 없고 도로도 없고 상하수도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 곳에 주민들이 입주한 셈이다. 그리고 사업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주 대상 철거민들 중 많은 수는 광주대단지로 이주할 수가 없어 입주권을 서울시내 일반 서민들에게 전매했고, 그 결과 멀쩡히 살던 서울시 서민들이 황야에 버려진 모양새가 되었다.

그리고 주민들이 경기도청으로부터 원래 공시한 가격의 최대 8배까지 뻥튀기된 토지대금 청구서를 받자 광주대단지 사건을 일으켜 당시 서울특별시장양택식 시장에게 항의하게 된다. 이를 받아들인 양택식 서울시장은 광주대단지(성남출장소)를 성남시로 승격시킬 것과 주민의 요구를 전부 수용할 것을 약속하며 사건은 주민들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당시 권위주의적이었던 박정희 정부 하에서 이 사건은 폭동으로 매도되어 왔으나, 최근 사건 참여자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현 수정구, 중원구 지역에서 서울로 가는 교통편이 대거 정비되었고,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울 지하철 8호선헌릉로, 송파대로이다. 특히 8호선은 건설 목적 자체가 광주대단지사건에 대한 서울시의 성남시를 위한 보상이므로, 수익자 부담 원칙의 예외로 완전히 서울 주도로 건설되었다.[11] 그래서 시계외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광역철도나 일반철도가 아닌 도시철도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4. 해당 지역

5. 도시구조

구시가지의 상징과도 같은 지옥의 경사로. 비슷한 카카오맵 로드뷰 위키백과에는 성남시의 미친 경사라고 나와있다. 약간의 상 왜곡[13]이 있긴 하지만 성남시민 입장에서는 오히려 체감경사를 잘 표현해준 사진이다.

파일:external/photo-media.daum-img.net/20120312134526035.jpg

딱 봐도 절대 낮고 완만한 언덕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사진은 영화 인셉션이 나왔을 무렵 인셉션 실사판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닌 적이 있다. 혹자는 네모바지 스폰지밥에 등장하는 '메롱시티' 실사판이라고 한다. 사진 속 언덕은 수정구 태평동 탄리로131번길 & 탄리로132번길. 참고로 저 언덕과 같은 라인에 마을버스가 운행되는데 겨울에는 미친 경사로 인해서 버스 운행노선을 바꾼다. 버스회사도 꺼리는 노선 운행. 초행길 외지인이 저 언덕으로 버스 타고 올라가면 진짜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무섭다. 실제로 언덕이 너무 심해 차를 끌고 올라갔다가 못 내려오는 사람도 있다. 물론 평상시에도 저러는데 눈오고 빙판길 생기는 겨울은 그야말로 헬게이트. 그럴 경우 그나마 경사가 덜한 곳으로 우회해서 다니는 주민들도 이따금씩 보인다.

성남 본시가지는 1960~70년대 광주대단지 조성 당시 산을 깎아내는 평탄화 작업 없이 나무만 벤 채 그대로 마구잡이식으로 집들을 건설한 지역이기 때문에 주거환경이 나쁘다. 이 당시에는 쌀자급이 목표였던 시대이고 녹화사업이 오래전의 일이 아니었으며, 또한 국유지가 대부분인지라 땅값이 쌌기 때문에 평지가 많은 분당은 냅두고 산투성이인 구성남이 먼저 개발된것이었다. 그래서 지도만 보면 의외로 도로망이 깔끔하지만, 고개가 많은 험난한 지형에 마구잡이식으로 건축된 주택들이 많다. 성남시에서 평지란 과거 지형상 계곡과 골짜기였던 곳. 오죽했으면 겨울에 폭설이 내리면 몇몇 지역에 밧줄이 설치된다. 그리고 그 지역들은 이 밧줄을 쓰지 않으면 올라갈 수 없다.[14] 이런 겨울에는 민원도 끝없이 들어와서 공무원들을 괴롭힌다.[15] 게다가 서울공항 때문에 일부 지역에는 고도제한까지 걸려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고도제한 완화 특혜 논란 속에 서울시 송파구에 지어진 잠실 롯데월드타워 때문에 이 지역 역시 그에 상응하는 고도제한 완화를 요구하였고, 이에 성남 전지역은 30층 이상으로 건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또한, 급격한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 위주의 생활공간이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재개발 건설사와 지방자치단체의 비리를 다룬 영화 아수라에 나오는 가공의 도시 안남시의 '남' 이 성남에서 딴 글자일 정도로 성남시내 대부분 주거공간이 현재 재개발 과정에 놓여있다. 실제 성남시 인구의 약 40%라고 할 수 있는 본시가지의 절반 이상 가구(5만 가구)가 재개발 진행과정 중에 있다. 이에 언론에서는 성남원(구)도심 전체가 "공사판"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지만, 일단은 평지 지역 부터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주로 산성대로 주변이 타겟이다.

아래 사진은 재개발된 본시가지 전경.
파일:external/www.newsspace.co.kr/b12f6d82aecddea76ff4bda181473ace130755.jpg

수정구의 구의 이름은 진동과 복[16]에서 한글자씩 따왔고 중원구의 구의 이름은 동(현 앙동)과 상대동에서 한글자씩 따왔다.[17]

6. 주변 지역과의 관계

7. 교통

앞서 언급된 광주대단지 사건에 대한 보상으로 지어진 서울 지하철 8호선이 성남 본시가지를 관통한다. 8호선은 사실상 성남 원도심의, 원도심에 의한, 원도심을 위한 노선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분당구보다 수정, 중원구를 많이 지난다. 반면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분당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분당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본시가지에서의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성남을 거쳐가는 또다른 노선인 신분당선은 본시가지를 단 1mm도 지나치지 않으며 다만 금토동, 상적동에서 수정구 영역을 일부 스칠 뿐이다.

서울특별시 면허의 버스와 서울교통공사 직영 지하철 구간이 시가지 곳곳을 다니며, 이 덕분에 성남은 기후동행카드 미참여 지자체지만 본시가지의 주민들은 간접적이나마 기후동행카드의 수혜를 받을 수 있다.
파일:성남시 CI_White.svg 성남 본시가지의 철도역
철도명 역명
파일:Seoulmetro8_icon.svg 서울 지하철 8호선 [A] 산성역 - 남한산성입구역 - 단대오거리역 - 신흥역 - 수진역 - 모란역
파일:SBLine_icon.svg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A] 가천대역, 태평역, 모란역[21]

시내버스의 경우 성남시 버스 목록광주시 버스 목록 참조.

8. 정치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표인 이재명의 정치적 고향이며[22], 제20대 대통령 선거 때 이재명 득표율이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역대 성남시장은 모두 본시가지에서 나왔으며, 아직도 분당신도시 출신은 없다. 다만 임태희 現 경기도교육감이 지금의 분당신도시 지역인 판교 출신이었다.

9. 관련 문서



[1] 성남(분당, 판교 포함) 및 주변 지역에서 부르는 통상명칭.[2] 2020 성남기본도시계획 상 명칭.[3] 2035 성남기본도시계획 상 명칭.[4] 2023년 8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5] 신흥동, 태평동, 수진동, 단대동, 산성동, 양지동[6] 성남동, 중앙동, 금광동, 은행동, 상대원동, 하대원동[7] 다만 수정중원 대생활권은 위례신도시 지역을 포함한다.[8] 수정구+중원구=본시가지가 아니다![9] 오늘날 광주시의 전신으로, 현재의 광주시+성남시+하남시를 관할했고, 60년대 이전에는 지금의 강남구, 송파구, 강동구까지 전부 광주 땅이었다.[10] 성남 본시가지는 험준한 지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바둑판 모양으로 구획되었다. 이것도 난개발이라는 오해에 한몫했다.[11] 실제로는 성남 구간에 대해 전액 국비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사업은 서울시에서 주도했다.[12] 성남시청여수동에 소재하는데 원도심 지역에 속하지 않는다.[13] 내리막에서 아래를 향해 사진을 찍으면 반대편 오르막의 경사도가 실제보다 훨씬 크게 보인다.[14] 특히 폭설이 많았던 2009년 겨울에는 도로가 얼어붙은 탓에 설종합시장 주유소 사거리, 상대원 고개 등의 구역에 밧줄이 설치되어 주민들이 밧줄을 잡고 경사를 오른 적도 있었다.[15] 분당을 제외한 성남 대부분이 언덕 지형인데다 차량밀도가 굉장히 높고 주차시설은 열악한 상황이라 저절로 주차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출퇴근 시간에는 서울을 왕래하는 차량행렬이 엄청나기 때문에(경충대로, 성남이천로 등) 수시로 곡예운전과 전투운전을 해야만 한다.[16] 복정동은 엄밀히 본시가지 소속은 아니다.[17] 분당구는 분당동에서만 이름을 따왔는데 당시 분당시범단지서현동에 속해있으나 행정동은 분당동이었기 때문이다. 분당구 행정동 거의 대부분이 분당동에서 분동해 나갔다.[18] 성남 단일학군에서 분당신도시 학군을 분리해달라는 요구(즉 분당교육지원청 신설 요구)였는데, 이를 거절한 대신 1/2구역으로 나누어 일단락되었다. 성남시에서 편찬한 지역사에도 수록된 사건.[A] 복정역은 수정구 복정동의 이름을 땄으나, 서울특별시 송파구 장지동에 위치한다.[A] [21] 야탑역부터는 분당신도시에 있다.[22] 초등학교 졸업 후 소년공 생활을 여기에서 했으며, 이 곳을 거점으로 시민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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