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10181f>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선정지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분야 | 문화 예술 |
주최 시기 | 격년 9월 |
창설 | 1995년([age(1995-09-20)]주년) |
행사 내용 | 작품 전시, 국제학술회의 |
대표이사 | 박양우[1] |
개최 장소 | 광주광역시 북구 비엔날레로 111 (용봉동)(1995~)[2]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 38 (광산동)(2016~2018)[3] [예정] 광주광역시 북구 487-7 (매곡동) (2027~)[4] |
(재)광주비엔날레 홈페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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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전경 |
2. 특징
주최측은 광주비엔날레 재단이다. 광주시에서 '예향 광주',[6] '문화수도 광주'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위해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광주 비엔날레 개최로 인해 광주는 문화도시 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을 받았다. 국내 미술 관련 비엔날레 중에는 부산비엔날레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함께 가장 인지도 높은 비엔날레이다. 세계구급으로 따지면 이 둘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다.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하지만 정작 국내 미술애호가들도 겉으로 보기엔 부산비엔날레나 미디어시티서울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아서 이를 실질적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 최초로 생긴 비엔날레인만큼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데, 2014년 세계적 권위의 인터넷 미술매체 아트넷(Artnet)이 선정한 ‘세계 20대 비엔날레'에서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미국 뉴욕의 휘트니 비엔날레, 유럽의 순회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와 함께 세계 5대 비엔날레에 이름을 올렸다. 그 이후에도 5위권 안에 머물며 명성을 이어나가고있다. 아시아 최대규모이다. 1990년대만 해도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휘트니 비엔날레 정도가 유명 비엔날레의 전부였다. 일본도 비엔날레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2001년 시작됐다.본래 1995년에 개최되면서 홀수 해 가을에 개최하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2002년 월드컵 개최 시기에 맞춰 월드컵 관광 수요를 맞추기 위해 3회 비엔날레를 2000년 봄에 개최, 2002년 4회 비엔날레를 개최하여 현재의 짝수 해에 개최가 고정되기 시작했다. 5회 비엔날레부터는 다시 가을에 개최되는 것으로 변경, 지금과 같은 개최형식이 결정되었다. 개최장소는 용봉동 소재 비엔날레 전시관을 포함한 중외공원 일대가 주요 장소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광주 지역 여러곳에 전시공간을 두기도 한다.
이렇게 광주 비엔날레가 일찍이 세계 미술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백남준의 선견지명이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미술계 물에서 놀면서 일찍이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자리를 굳혔던 백남준은 베니스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 등 세계 유명 비엔날레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광주 비엔날레 운영에 조언을 많이 해주었다고 한다.[7] 그리고 아직 비디오아트나 미디어아트 개념이 없던 시절에 광주비엔날레에 '인포아트'라는 제목으로 자기 제자나 외국 동료작가를 데려와 선보이기도 했다.
2.1. 역대 비엔날레
회차 | 주제 | 개최기간 | 참여국가 및 작가인원 |
1회 | 경계를 넘어 (Beyond the Borders) | 1995.09.20.~1995.11.20. | 49개국 87작가 |
2회 | 지구의 여백 | 1997.09.01~1997.11.27 | 35개국 78작가 |
3회 | 人+間 (Man+Space) | 2000.03.29~2000.06.07 | 37개국 90작가 |
4회 | 멈춤,Pause,止 | 2002.03.29~2002.06.29 | 29개국 93작가 |
5회 | 먼지한톨 물한방울 | 2004.09.10~2004.11.13 | 39개국 84작가 |
6회 | 열풍변주곡 (Fever Variations) | 2006.09.08~2006.11.11 | 32개국 90작가 |
7회 | 연례보고:일년동안의 전시 | 2008.09.05~2008.11.09 | 36개국 116작가 |
8회 | 만인보 (10000 Lives)[8] | 2010.09.03~2010.11.07 | 29개국 133작가 |
9회 | 라운드 테이블 (ROUNDTABLE) | 2012.09.07.~2012.11.11. | 40개국 92작가 |
10회 | 터전을 불태우라 (Burning Down the House) | 2014.09.02~2014.11.06 | 36개국 105작가 |
11회 | 제8기후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The Eighth Climate (What does art do?)) | 2016.09.05~2016.11.09 | 50개국 101작가 |
12회 | 상상된 경계들 (Imagined Borders) | 2018.09.07~2018.11.11 | 43개국 165작가 |
13회 |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 2021.04.01~ 2021.05.09 | 40개국 69작가 |
14회 |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soft and weak like water) | 2023.04.07 ~ 2023.07.09 | |
15회 | 판소리 - 모두의 울림 (PANSORI - A soundscape of the 21st country) | 2024.09.07.~2024.12.01. |
3.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가 짝수 해에 개최되면서 행사를 개최하지 않는 홀수 해에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5회까지는 광주비엔날레 재단에서 시행했으나 6회부터는 광주디자인센터에서 별도로 진행하게 되면서 별도의 문서로 분리했다.자세한 내용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문서 참고하십시오.
4. 비엔날레 전시관 신축
5. 교통
5.1. 자가용
5.2. 시내버스
비엔날레전시관[9] (광주 4381/4597) |
비엔날레전시관입구 (광주 4381/4597) |
5.3. 도시철도
| ||
내선순환 ← 1.1km | (223)(계획중) | 외선순환 0.8km → |
6. 주변
자세한 내용은 중외공원 문서 참고하십시오.
7. 여담
- 1회 비엔날레가 개최되었을 때에는 나름대로 로고송이 있었다. 개똥벌레를 부른 가수 신형원의 '마음의 문 열고'가 비엔날레의 주제가였다.
- 1995년 1회 비엔날레의 전시작품 중 누에고치를 이용한 설치작품이 있었는데,[11] 설치 후 관리실패로 한때 용봉동 지역의 누에나방 개체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 민원이 잇따르기도 했다.
- 1회 비엔날레 참석자였던 대만 원로 수묵화가 관집중(管執中)이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 2007년 광주비엔날레때는 신정아 스캔들로 때문에 이사진이 전원 사퇴하기도 했다.# 결국 2007년 광주비엔날레는 오쿠이 엔위저 혼자 진두지휘 했다.# 2007년 행사의 성공은 이 오쿠이 엔위저의 공이 크다. 오쿠이 엔위저는 세계 미술계에서 꽤 유명한 전시기획자이다. 엔위저는 '연례보고:일년동안의 전시'라는 제목으로 별도의 주제를 내세우기보다 지난 1년간 국내외의 주목할 만한 기획전의‘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광주의 전시공간-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광주시립미술관, 의재미술관으로 옮겨오는 컨셉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이것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아 성공했다.
- 2000년 3회 비엔날레 작품중에 일본 작가인 미야지마 타츠오와 재일교포 미술 수집가 하정웅이 나가사키 원폭 현장에서 살아남은 감나무의 2세목을 심는 프로젝트 '시간의 소생'이 있었다.이때 심어진 감나무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선포하자 누군가에 의해 고사되는 수모를 당했다. 2001년 하정웅이 감나무 2세목을 다시 심었으나 2008년 또 고사되었다. 2002년 하정웅이 3번째로 심었고 이번에는 감나무의 위치를 비밀로 한 채 광주 시립미술관이 관리해 2014년 감이 열렸다.
- 2014년~2015년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 관련 컨테이너와 뼈 한 상자가 전시관 광장에 전시된 적이 있다. 모르고 보면 전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또한 전시실에는 과거사위원회 조사 당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촬영한 영상을 상영했다. Navigation ID 참조.
- 2016년 광주비엔날레 홍보대사는 현빈이다.
- 구 도청 자리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 후, 비엔날레 전시의 일부분이 문화전당에 옮겨져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 그러다가 2017년부터, 기존 북구 비엔날레관에서 개최하던 광주비엔날레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새로 이주하여 개최를 한다고하여, 접근성과 퀄리티가 더 높아질것으로 기대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2017년 8월 28일 광주광역시 발표에 따르면 2018년 비엔날레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하고, 그 후에는 구 비엔날레관 주차장 자리에 새 비엔날레관을 지어서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시아문화전당 건설로 인해 훼손되었던 구 전남도청 건물군을 5.18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여 아시아문화전당의 5.18 기념관으로의 역할 변화 등이 예정된 것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2018년 광주비엔날레 홍보대사는 진영이다.
- 2018년 11월 처음으로 북한 미술작품 전시를 했는데, 작품 일부가 유엔과 한미의 제재 대상인 만수대창작사의 중국 미술관 대표 지모씨의 소유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재단은 대여료로 우리 돈 2천800여만원를 지씨의 개인 계좌로 입금했다. 지씨는 한족이며 지씨의 미술관은 민간 법인이라 제재 대상에 올라있지는 않다. 광주비엔날레 재단 관계자 또한 '지씨의 미술관이 만수대창작사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제재 대상에 오른 것은 아니어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밝혔다.
-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참여작가인 '바킷 부비카노바'가 카자흐스탄서 별세했다.
8. 관련 문서
[1] 제51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및 12대 차관 역임, 더처치교회 협력목사[2] 1회부터 11회까지의 메인 전시장[3] 12회의 메인 전시장. 실질적인 개장 첫 해였던 2016년에는 보조 전시장으로 활용되었다. 12회 이후에도 메인 전시장으로 기능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구 전남도청 복원 문제로 무산되고 원래 북구 메인 전시장을 리모델링하여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되었다.[4] 2027년부터 현 비엔날레 전시관 주차장의 새로운 전시관으로 이전할 예정이다.[5] 3년마다 열리면 트리엔날레, 4년마다 열리면 카토리엔날레라고 부른다. 5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으로는 카셀 도큐멘타가 있다.[6] 예전부터 광주를 예(禮)의 고장이라는 의미에서 예향이라고 많이 불렀다.[7]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건립이나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전 개최도 백남준의 영향력 덕분에 성사된 일이었다.[8] 고은 시인의 작품에서 이름을 따왔다.[9] 419번은 전남대 방향만 가능.[10] 광주예술의 전당 안에 소재[11] 작품명은 전수천 작가의 '자연과 문명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