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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18:05:54

김기동(목사)

서울성락교회 창립자
김기동
파일:22042_23549_2054.jpg
출생 1938년 6월 25일
충청남도 서산군
(現 충청남도 서산시)
사망 2022년 10월 22일 오후 7시 (향년 84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신촌세브란스병원
학력 명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 학사)
대한신학교, 총회신학교, 대한신학교 대학원
침례회 신학대학 목회대학원
종교 개신교(기감예장대신기침 →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1] → 세계베뢰아교회연맹[2])
약력 서울성락교회 원로감독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명예총장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월산재단 이사장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 설립자 및 총회장

1. 개요2. 일생
2.1. 약력
3. 신학적 주장4. 목회5. 논란
5.1. 이단 논란
5.1.1. 각 교단의 이단 조치 내용
5.2. 성추문 의혹(최종 무혐의 결정)
5.2.1. 성추문 의혹에 대한 (최종 무혐의 결정) 법원판결5.2.2. 분쟁 경과5.2.3.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서울성락교회 창립자. 1938년 충청남도 서산군 출생. 목사, 시인, 수필가. 호는 월산(문학 활동과 문학 저서에만 사용), 시무언(목회 활동과 개신교 저서에만 사용).

2. 일생

김기동은 1938년 6월 25일 서산에서 출생했다. 가정 형편은 매우 가난했다고 한다. 1957년 10월 처음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후 새벽예배와 부흥회 등에 참여했고, 1958년에는 보령 성주산 산상집회에도 참여했다. 1963년 비봉감리교회에 서리 전도사로 첫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1957년 12월 25일 세례를 위해 예산감리교회에서 세례 학습을 1년간 받았고 1년 뒤 성탄절에 오경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후 침례가 맞다고 생각하여 1963년 2월 침례교회 목사인 오관석 목사에게 금강으로 흐르는 지류에서 침례를 받았다. 이후 침례교회 전도사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한 적도 있는데 이때 120명이 침례를 받았다. 이 일로 인해 감리교회 세례 교리를 어겼다는 이유로 감리교에서 제명당한다. 이후 '신유복음전도회'를 조직하였고 전국을 다니며 부흥집회를 하였다. 1964년 대한 신학교에 입학했다. 1970년 2월 명지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11월 30일, 교인 7명과 함께 성락교회를 창립하였다. 1972년 12명의 소모임을 시작으로 특유의 신앙관인 베뢰아아카데미를 가르치기 시작했다.[3]

2.1. 약력

학교법인 베뢰아아카데미학원 설립과 이사장 역임
1987년 비인가 신학교 서울침례신학교 설립
1998년도부터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를 운영, 제 1~3대 총장, 명예총장 역임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이사회의 이사장 등 역임.
사단법인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역임
1985년 12월 Canada Christian College에서 목회학박사(D.Min) 학위 취득
1987년 5월 Southwest Baptist University에서 명예신학박사(D.D.) 학위 취득
Canada Christian College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S.T.D.)와 신학 박사 학위(Th. D.) 취득
NGO 단체인 재단법인 월산재단 설립과 이사장 역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Harris Manchester College 명예이사 역임
미국 SBU '김기동박사교회성장학석좌' 특임교수 역임
남침례기독교연합, 기독교베뢰아연합, 세계베뢰아기독교연합 총의장 등 역임

3. 신학적 주장

김기동 목사는 베뢰아 사상이라는 교리를 주장했다. # 1972년 12명의 소모임을 대상으로 자신이 해석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베뢰아 아카데미의 시작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이 따르며 사도적 권능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마귀론을 이해하는 것이 구원의 절대적인 조건으로 주장했다. 예수를 모르면 마귀를 모르고 마귀를 모르면 예수를 모른다는 것이다.[4] 그는 귀신이 모든 병과 사고, 중독, 범죄, 자살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5] 그의 마귀론에서 독특한 점은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예정된 수명을 다 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죽은 후에 자연 수명이 차기까지 귀신으로 활동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자연 수명이 백살인 사람이 암으로 60살에 죽으면 자연수명이 차기까지 40년간 마귀와 그 사자들과 활동한다는 것이다.[6] 이러한 교리적 특성으로 귀신을 쫒아 병을 낫게하는 축사(逐邪) 및 치유를 중시한다. 그렇다고 병원을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성경과 성서를 구분해서 가르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같이 예수의 행적과 교훈을 기록한 복음서는 성경이지만 이를 증거하는 사도행전이나 편지서들은 성서라는 것이다.[7]

4. 목회

김기동 목사가 세운 서울성락교회는 누적 등록교인이 23만 명이넘는다고 알려져 있다.[8] 교회 분쟁 사태로 인해 2017년 6월경 8000~10000명의 교인들이 교회측과 개혁측 양측 진영으로 나뉘었다. 2017년 기준 교회측 출석교인은 8천 명 정도로 추정된다. 또한 주일 3부 예배시 사용하는 크리스천세계선교센터의 대성전은 1만 5천 석으로 단일예배당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성락교회는 50곳이 넘는 지예배당이 있고 이 지예배당들마다 담당목사가 있다. 담당목사는 감독자를 대신하여 각 지예배당을 시무하는 부목사들이다.

김기동은 2013년부터 아들인 김성현에게 감독직을 위임하고 후견인으로서 원로감독으로 물러나 주일예배 설교나 금요철야특강 등을 통해 김성현 감독의 목회를 이어 갔다. 2019년까지 예배, 집회, 여름수련회 설교를 어느 정도 맡았는데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금요철야특강만 진행하였다.

2017년 교개협이 김성현 목사의 이단사면사태를 문제삼으며, 각종 성추문과 재정비리 의혹을 유포하겠다고 하자, 김기동목사는 2017년 3월 12일에 "내가 세웠으니 내가 해임할 권한도 있다."면서 김성현 목사를 해임시켰다. 김성현은 교인들이 안 그래도 성락교회와 교개협으로 이분되어 있는 상황에서, 성락교회 교인들마저 원로감독파와 감독파로 나뉠 것을 염려하여 이 해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향후 법원 결정에 의해 김성현목사가 성락교회의 현 감독직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김기동은 다시 원로감독직으로 돌아가 금요철야특강, 저서 집필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23년 1월 기준 베뢰아아카데미 51기가 졸업을 앞두고 있다.

5. 논란

5.1. 이단 논란

김기동 목사는 본래 기성 개신교 교단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며 기독교한국침례회(이하 '기침') 소속이었다. 그가 이단 논란에 휘말리게 된 가장 큰 쟁점은 귀신론[9][10][11]이다. 기성 교단의 신론에도 천사론과 귀신론이 있다. 천사론은 천사에 대한 신학적 연구이고, 귀신론은 소위 '사탄'에 대한 신학적 연구이다. 그러나 김기동의 귀신론은 기침 교단의 원세호, 최삼경 목사 등이 교리적으로 이단이라며 1987년 기침 총회 때 김기동 목사의 이단 정죄를 총회 안건으로 상정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김기동 목사가 교단을 탈퇴한다고 선언하고 '기독교남침례회'(현 세계베뢰아교회연맹)를 창설하였다. 이에 격분한 기침은 1987년 10월에 김기동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이후 1992년까지 대한민국 기독교 주요 교단들이 김기동 목사를 교리적인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일부 교계 인사는 김기동 목사에 대한 이단 정죄가 실제 그의 가르침을 많이 왜곡해서 바라본 것이라거나 '이단'으로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기에는 다소 지엽적인 교리 해석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한편, 김기동 목사와 서울성락교회를 아예 신천지와 같이 사이비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기동 목사의 성추문과 재정비리 의혹을 제기하여 교인들을 규합하고 별도의 단체를 세운 (자신들은 교회 내부의 임시조직이라고 주장한다) 성락교회교회개혁협의회(교개협)의 핵심 인물인 윤준호 목사는, 무려 변상욱 대기자가 진행하는 '변상욱의 싸이판'(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이라는 CBS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김기동 목사와 서울성락교회를 사이비로 매도하려고 하였다. 서울성락교회가 뒤늦게 CBS의 보도 사실을 알고(CBS는 성락교회 측에는 뒤늦게 방영사실을 알려, 반론권 보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방영금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법원은 성락교회와 김기동 목사가 교리적 이단을 넘어서 '사이비'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고 판결하고 CBS의 방영을 금지하였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8카합20288). CBS에서 가처분이의를 제기하였는데,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교회용어사전에 의하면, 이단이란 정통과는 다른 학설을 주장하는 교파를 말하고, 사이비 종교란 이중교리, 교주의 신격화, 시한부 종말론적 성격,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 기성종교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게 함, 요행을 바라고 운명에 기대게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해당 방송에서 이단과 사이비는 다른 용어라고 설명하면서도, 이단적인 주장을 하면서 반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면 사이비 종교라고 자의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이 경우 이단인 단체는 반사회적 문제가 생기면 사이비가 되지만 정통 교단에서 반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사이비가 될 수 없다는 모순이 발생한다'며 CBS의 주장을 배척하였고, 이어 '김기동 목사와 성락교회가 사이비라고 표현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그러한 의혹을 받는 정도만이 아니라 그들의 교리에도 그러한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내용이 있음을 명백하게 명시한 후에야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8카합20330). 이 판결은 서울고등법원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였고 CBS 측에서 상고를 포기하여 판결 확정되었다(서울고등법원 2019라20014).

2009년 5월 30일 입당예배를 시작으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약 15000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인 1만5천석 '크리스천세계선교센터'를 건축한 후 교회 본부를 옮겼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소재한 신길본당(1500석)은 부수적인 역할들을 감당해왔으며, 성락교회 분열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주일에드려지는 4개의 예배(1부, 2부, 3부, 연합)중 1~2부를 신길본당에서 드렸다가, 현재는 교개협이 무단으로 점유하여 사용하고 있다.

2016년 9월 12일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에서 총회 100주년을 기념하여 총회 산하 이단사면위원회가 변승우 목사(사랑하는교회), 박윤식 목사(평강제일교회), 이명범 목사(레마선교회)와 함께 김기동 목사(서울성락교회)를 이단에서 특별 사면하였으나..# 사면 이후 열린 총회에서 '이단을 사면하면 이단에 연결되었던 교인들이 다시 이단교회로 출석할 것'이라며 대대적인 반발을 하였고, 결국 채영남 총회장이 이단 사면을 철회하였다.

5.1.1. 각 교단의 이단 조치 내용

교단명 연도/회기 결의 결의내용
기독교한국침례회 1987/77 이단 신론, 기독론, 계시론, 창조론, 인간론, 사탄론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1991/41 이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1991/76 이단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1992/77 이단 "
기독교대한감리회 2014/31 예의주시 "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1998/? 이단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98/? 이단 "

5.2. 성추문 의혹(최종 무혐의 결정)

2017년 6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성락교회 분열 사태와 김기동 목사의 성추문 의혹들이 방영됐다. 하지만 법원과 검찰은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다뤄진 주요 성추문 의혹들에 대하여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 "도저히 성추행 당한 사람의 모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등 사실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2022도2518, 서울고등법원 2018초재749, 서울고등법원 2018초재4458). 심지어 법원은 SBS의 방송으로 인해 김기동 목사와 성락교회 교인들이 부당한 공격을 당했다고 판단했다(대전지방법원 2020노56 → 대법원 2022도2518).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성락교회 분열 사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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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5.2.1. 성추문 의혹에 대한 (최종 무혐의 결정) 법원판결

2017년 6월 24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1081회 방송 내용'에서 1972년도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교인의 진술과 관련해 법원은 해당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기의 학교 출결 변화, 진료 기록을 포함하여, 성폭행 피해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기록이 없고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이 없으며 해당 여성의 성폭행 피해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인다면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방송으로 인해 성락교회와 김기동 목사가 부당한 공격을 당했다고 최종 판단했다(대전지방법원 2020노56 판결 → 대법원 2022도2518)

다른 성추문 주장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에서 무혐의로 불기소처분하였으며 서울고등법원에서 불기소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종결됐다(서울남부지방검찰청 2017형제43711 → 서울고등법원 2018초재749)

이후 모든 성추문 의혹에 대해 무혐의로 판결되었으므로 성추문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5.2.2. 분쟁 경과

[직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 1심: 기각/ 2심: 인용/ 3심: 기각
[감독지위부존재확인][12] 1심/2심/3심: 인용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위반 교사] 무혐의 불기소
[재물손괴교사] 무혐의 불기소
[예배방해교사] 무혐의 불기소
[강제추행] 무혐의 불기소
[특경법 위반(횡령): 목회비 자체] 무혐의 불기소 → 기소→ 1심 징역 3년 → 2심 무죄 → 3심 진행 중 사망 수사종결
[특경법 위반(배임): 목회비 대여] 무혐의 불기소
[특경법 위반(배임): 부산 위치 빌딩 관련] 기소→ 1심 징역 3년 → 2심 징역 1년 6개월 → 3심 진행 중 사망 수사종결

5.2.3. 관련 문서



[1] 김기동 목사의 세습, 성추문과 축재 의혹 등으로 2017년 10월 17일 김기동 및 베뢰아운동과 단절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목회자와 김기동 측을 지지하는 목회자 양측이 교단을 해산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2] 2017년 10월 성락교회 사태로 기독교베뢰아교회연합이 해산되면서 김기동 목사를 반대하는 측은 한국침례교회연합으로, 김기동 목사를 지지하는 측은 세계베뢰아교회연맹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3] 김기동 목사가 저술한 '베뢰아서적'은 거의 300여 권에 육박한다.[4] 마귀론 상권 14-15페이지[5] 마귀론 하권 170-174페이지[6] 마귀론 상권 137페이지[7] 테이프 24-1[8] 2016년 12월 기준 출석교인은 약 15000명 정도 이상으로 추정된다.[9] 성경에 기록된 '귀신'의 존재가 '타락한 천사의 영'이 아닌 '죽은 자의 사후존재'라는 설.[10] 이에 대한 근거로 예수의 축귀사역 당시의 모습을 예로 들어 천사는 지음을 받은 이후로부터 완전하기에 귀신들렸다고 소경되고 눈이 멀게 된다면 그건 소경으로 죽은 사람의 귀신이 붙어 그 귀신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하며, 군대귀신에 대해서도 당시 로마의 군대명칭인 레기온을 사용한 것을 들어 그들의 정체가 로마군인의 귀신이라 주장한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들어 근거로 세우고 있다.[11] 또 본인의 저서에 서술한 축귀(축사(逐禗))라고도 한다.) 경험에 의하면 그들이 자신을 드러낼 때 '내가 어디사는 누구였다'라는 주장을 했으며 그 말이 일치하는 케이스도 있었음을 밝힌다. 다만 귀신론을 지지하는 목사가 아닌 다른 유명 목사분 중에서도 자신이 저술한 서적에 축귀 경험을 쓰시며 비슷한 경험담을 밝힌다. 그러나 그 저자의 의견에 따르면 그들은 어차피 타락한 존재이며 악에 속한 거짓의 영이기에 그들의 말하는 바 대로 생전에 인간이던 아니면 타락해서 하늘에서 내쳐진 천사이던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다 믿을 거 없이 그저 쫓아내고 신앙에 전념할 것을 격려한다.[12] 성락교회 교개협에 의해 걸린 소송으로 김기동 목사가 성락교회 감독자인지 아닌지를 다루는 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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