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해태/ KIA 타이거즈 등번호 9번 | ||||
김호 (2000.6.2.~2000) | → | 김민철 (2001~2006) | → | 김연훈 (2007~2008.5.4.) | |
KIA 타이거즈 등번호 52번 | |||||
최경환 (2008~2009) | → | 김민철 (2010) | → | 윤정우 (2011) |
김민철 金玟綴 | |
출생 | 1982년 3월 14일 ([age(1982-03-14)]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송정동초 - 무등중 - 광주제일고 |
신체 | 178cm, 76kg |
포지션 | 내야수[1]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 입단 | 2001년 2차 7라운드 (전체 54번, 해태) |
소속팀 | 해태-KIA 타이거즈 (2001~2011) |
가족 | 3남 2녀 중 다섯째 |
[clearfix]
1. 개요
前 KIA 타이거즈 소속의 내야수.2. 선수 경력
광주일고 시절 팀의 리드 오프로 타격과 주루에서 돋보였으며 우투좌타이자 유격수와 2루수를 모두 소화했다. 그러나 팀 전력은 동향 라이벌 제춘모의 광주상고에 못 미쳐 지역예선에서 번번히 패퇴했다.[2][3]2001년, 2차 7라운드로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되었다. 빠른 발로 유명했지만,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입단 후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2005년, 101경기에 출전하여 11도루를 기록했지만 수비 중 머리를 그라운드에 부딪히는 부상을 당했다.
이후엔 다리 부상으로 경기에 거의 못 나오고 2011 시즌 후 구단에서 육성선수로 전환하려고 했으나, 본인이 거부하며 방출당했다.
김민철의 고교 후배들인 도루왕 이대형과 신종길이 술회하길 본인들보다 달리기 스피드가 훨씬 빨랐다고 한다.
3. 은퇴 후
현재는 광주에서 오두철, 최용규, 윤성윤과 함께 광주YMCA스포츠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4. 여담
- 2000년 황금사자기 1회전 세광고와의 게임에서 6타수 6안타(1홈런 포함)를 기록한 적이 있다. 이날 경기에서 양팀은 31개의 안타를 주고받았고 14-13으로 광주일고가 승리했다.[4] 2회전에서는 성인고(現 야탑고)에 승리를 거두고 8강전에 진출했다. 황금사자기 우승교는 이동현과 오승환의 경기고였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1 | 해태 / KIA | 62 | .200 | 9 | 0 | 0 | 0 | 3 | 8 | 1 | 2 | 0 | 11 | .234 | .200 | .434 |
2002 | KIA | 58 | .261 | 12 | 1 | 0 | 0 | 3 | 9 | 0 | 4 | 1 | 10 | .333 | .283 | .616 |
2003 | 26 | .108 | 4 | 0 | 0 | 0 | 0 | 2 | 1 | 3 | 1 | 4 | .195 | .108 | .303 | |
2004 | 11 | .200 | 2 | 1 | 0 | 0 | 0 | 2 | 0 | 0 | 0 | 2 | .200 | .300 | .500 | |
2005 | 101 | .218 | 39 | 7 | 3 | 0 | 13 | 21 | 11 | 10 | 3 | 41 | .271 | .291 | .561 | |
2006 | 75 | .276 | 21 | 1 | 2 | 0 | 10 | 15 | 2 | 7 | 0 | 14 | .333 | .342 | .675 | |
2007 | 1군 기록 없음 | |||||||||||||||
2008 | ||||||||||||||||
2009 | ||||||||||||||||
2010 | ||||||||||||||||
2011 | ||||||||||||||||
KBO 통산 (6시즌) | 333 | .221 | 87 | 10 | 5 | 0 | 29 | 57 | 15 | 26 | 5 | 82 | .278 | .272 | .550 |
6. 관련 문서
[1] 주 포지션은 2루수이다.[2] 광주일고는 1999년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1년 선배 투수 조영민, 동기생 투수 정원의 활약으로 우승한 거 외에는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2000년 무등기에서는 제춘모와 박남섭이 활약한 광주상고가 우승했다.[3] 2001년은 김진우, 손주인의 광주진흥고, 2002년은 김대우, 오준형, 고우석, 모창민 등이 활약한 광주일고, 2003년은 김주형, 이원석, 한기주의 광주동성고가 광주지역에서 가장 앞서 나갔다. 많은 야구 유망주들이 광주에서 계속 배출되었고 광주일고, 광주동성고, 광주진흥고 3개교는 지역에서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전력을 강화해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4] 9회초에 5실점하며 13-14로 쫓겼으나 겨우 막았다.[5] 동구에 있는 히딩크관광호텔 인근에서 소주방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