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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fff> 제9대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金章煥 | Billy Kim | |
출생 | <colbgcolor=#fff,#1c1d1f>1934년 7월 25일([age(1934-07-25)]세) |
경기도 수원군 안용면 장지리 (現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장지동) | |
학력 | 수원공립농림학교 (졸업) 밥 존스 대학교 (신학 / 학사) 밥 존스 대학교 (신학 / 석사) 트리니티 대학 (신학 / 명예박사) 사우스웨스트 침례대학 (신학 / 명예박사) 켐벨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인터내셔널 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휘튼대학교 (문학 / 명예박사) 명지대학교 (문학 / 명예박사) 북침례회 대학원 (신학 / 명예박사) 리터뉴대학 (법학 / 명예박사) 댈러스 침례대학 (인문학 / 명예박사) 컴버랜드대학 (신학 / 명예박사) 서울기독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벨헤이븐대학교 (목회학 / 명예박사) 캘리포니아 침례신학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바이올라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에즈베리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부산외국어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 블루필드대학 (신학 / 명예박사) 칼슨뉴먼대학 (신학 / 명예박사) 백석대학교 (철학 / 명예박사) 한동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오클라호마 침례신학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테일러대학교 (신학 / 명예박사) |
경력 | 단테제일침례교회 목사 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1] 십대선교회 회장 극동방송 사장 명지학원 제7대 이사장 아세아지역침례교연맹 회장 침례교세계연맹 총재 백석대학교 석좌교수[2] |
종교 | 개신교 (침례회) |
수훈 |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캄보디아 외교관계 최고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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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목회자. 現 극동방송 이사장.2. 생애와 활동
1934년 경기도 수원시에서 출생했다. 어렸을 적 꿈은 정치인이었으나 집안이 가난해서 목사가 된 경우다. 한국 전쟁 때 미군부대에 들어가 하우스보이로 일하면서 영어를 배웠다. 미군 상사의 도움으로 1951년 미국으로 건너와 밥 존스 대학교로 유학하여 미국인인 트루디(1938~)와 결혼하고# 미국에서 침례회 목사 안수를 받았다.목사 안수 후 귀국하여 1960년 3월 수원중앙침례교회를 개척했다. 이후 1970년에 극동방송 한국 지부 설립에 깊숙히 관여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제주극동방송(구 아세아방송)을 개국하기에 이른다. 미국 기독교, 정계와도 깊게 인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계에서 자연스레 큰 권한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고, 극동방송 사장, 이사장 등 여러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침례회세계연맹 총재를 맡았으며, 극동방송에서는 2008년부터 사장 직에서 물러나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도 만 70세 정년을 맞아 2004년을 끝으로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났으나, 2007년부터 원천침례교회[3][4] 안디옥교회에서 원로목사 자격으로 설교하고 있다.
201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 기독교 종교의식을 집례했다.
3. 정치성향
- 한국 기독교계의 원로 목사이며 기독교 우파 성향을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옹호[5], 전두환 대통령 시절 군사정권 옹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 대해서 '예수의 고난' 을 빗대어 옹호하는 등 목사로서 노골적으로 정치계에 관여한 정치목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과거에는 WCC나 NCCK, 기독교방송같은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 교단과 단체와 갈등하였다.[6] 그러나 2019년에는 가톨릭에 대해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고, 이슬람교, 기타 종교와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 아예 세계교회협의회, NCCK에 대해 긍정적인 곳인 침례회세계연맹의 회장까지 맡았다. 이런 정치권, 가톨릭, 중도~진보적 개신교 교단들과의 우호적인 행보로 인해서 보수적인 신학자, 목사들에게 천주교와의 모략을 꾸며 한국교회에 폐를 끼친다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 보수 정치인들은 김장환 목사에게 우호적이다. 이는 김장환 목사가 바로 미국 정계와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장환 목사는 6.25전쟁 이후 미군의 하우스보이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배웠고, 이 인연으로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아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설교했고, 1973년 6월 방한한 미국 복음주의 거두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통역을 맡고, 냉전시대 기독교 선교를 통해 반공 활동을 해온 극동방송의 한국 진출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제주극동방송 개국을 통해 미국 정계에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당시 조지아 주 주지사였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이런 강력한 미국 정치계 연결고리를 바탕으로 박정희, 전두환 등 항상 미국이 자기를 쳐내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군사정권 수장을 미국 정계와 연결시키고, 김영삼, 이명박 등 기독교 장로출신 대통령 만들기 운동에 앞장서는 등 한국 정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조차도 김장환 목사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박근혜 탄핵 국면이라는 혼란 속에서 2016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된 도널드 트럼프는 당시 국내에는 어떤 채널도 없어서 차기 대통령과의 협상은커녕 당선 축하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탄핵 정국의 혼란에 빠져 마비되어 갈 때쯤 앞서 언급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를 통해 문재인과 도널드 트럼프와 연결이 가능하도록 다리를 놓은 것이 김장환 목사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당시 트럼프를 공개지지한 것은 물론 미국 전역을 돌면서 유세에 참여하고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던 트럼프의 핵심 선거 참모중 하나였는데, 아버지와 연결된 목사인 김장환 목사의 부탁을 받고 당시 유력 대권주자였던 문재인이 트럼프 당선자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그 이후 7개월 뒤 문재인 후보가 정식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에 축하 전화를 걸면서 한미 관계 복원이 시작되었다.
-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부인 한인옥씨가 15대 대선 당시 수원중앙침례교회 예배에 참석해 이회창 후보 지지를 호소한 내용이 라디오를 통해 생방송되는가 하면 아나운서대회에 한나라당 조순 총재가 참석, 지지를 호소했다.# ‘라디오 예배’ 프로그램 시간에 생방송하면서 한인옥씨의 이 후보지지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한씨는 인사말을 통해 ‘이회창후보를 위해 기도해달라. 사랑해달라. 잘 부탁한다’며 사실상 지지를 호소했다. 편성국장은 “한씨의 참석은 전혀 예정되지 않았던 것”이라며 “한씨가 교회로부터 발언기회를 얻고 갑작스럽게 인사말을 하는 바람에 그대로 방송이 된 것 뿐”이라고 해명했다.
-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장례식에서 윤석열 검찰총장[7]에게 안수기도를 하여 개신교 내외에서 논란이 있었다.[8] 내년 대선 후보 활동을 하고 있는 현역 정치인에게 개신교계 영향력 있는 목사들이 공개적으로 안수기도를 해주는 것이 맞냐는 비판이 있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종교가 없다.
-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극진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데, 전씨가 2019년 12월 12일 12.12 군사반란 40주년 파티를 할 때 하나회가 아니었음에도 김장환 목사 내외를 초대하여 만찬을 즐겼다.[9][10] 그래서 전두환 사망 시 조문을 왔다. 김 목사는 전씨의 자택을 나선 뒤 오마이뉴스에 "하늘나라 잘 가길 빌어줬다"라고 답했다.# 차남 전재용이 극동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전재용의 목회자 생활도 김장환 목사가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 대표와 두 차례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건희 인터뷰 녹취록 논란으로 촉발된 무속 논란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4. 여담
- 명지학원의 초빙으로 1988~1992년에는 명지학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극동방송 사장을 오래 지냈다. 이후 이사장으로 물러났고 그 자리도 물러났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장 지금도 김장환 목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있을 정도.
- 방송사(극동방송)의 요직에 자녀들이 포진돼 있다고 한다. 차남 김요한 목사는 극동방송 사옥 구내 교회 담임목사이자 이사이며, 대전지사장을 역임한 바가 있다. # 이 때문에 90세를 넘긴 김장환 목사가 자녀들에게 극동방송을 세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며, 김장환 목사 본인과 가족들은 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 2020년 3월 2일 극동방송 라디오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방역 취약계층을 돕기위한 특별 모금 생방송 ‘힘내세요! 주님이 계시잖아요’로 후원을 모집했는데, 마스크, 손 소독제와 함께 자신의 성경말씀 묵상집 ‘승리하리라(김장환 목사와 함께 경건생활 365일)’를 끼워팔기로 1인당 1구좌 3만원에 받기로 했다가, 도서정가제에 걸려서 결국 철회했다고 한다.
- 민주당 성향 유튜버 김용민 PD가 한 때 극동방송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근무 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김장환이 좌천시키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김용민을 반 강제적으로 사직시켜 버렸다. 이 일로 김용민 PD는 개신교계 개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연관시켜서 김장환을 디스한다.
- 교회 세습을 하지 않았으나, 김장환 목사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학교인 중앙기독초,중학교 이사 겸 교목으로 장남 김요셉 목사가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학교 개척 초기에 수원중앙침례교회의 재정[13]이 투입된 점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 다른 대형 교회 목사들이 8~90대에 들어서면서 확실히 노화가 오거나 아예 은퇴하는 모습이 두드러지는데, 김장환 목사는 만 90세를 넘긴 고령임에도, 매주 설교를 하고 있으며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상당히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건강 관리를 잘 하는 것으로 보인다.
- 개신교 근본주의 세력에서는 승려 성철이 죽기 직전 불교를 부정하며 '나는 지옥에 간다'라고 유언했다는 날조를 거의 30년째 계속해오고 있는데, 김장환 본인도 이런 거짓말에 동참해서 성철을 모독하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타종교와 진리를 타협하지 않는 선에서 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과 달리 NCCK 같은 진보적 기독교 단체, 교단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침례회세계연맹 회장을 맡았을 때는 보수 기독교 교단과 진보 기독교 교단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 2004년 12월 원로목사 추대[2] 예장백석의 신학대학이다. 장로교임에도 침례교의 거물을 석좌교수로 임명했을 정도로 김장환 목사가 상당한 거물이긴 하지만 백석에서도 트리니티부터 명예학위만 가득한 김목사를 석좌교수에 앉혀놓은 것은 그의 명성만 보고 준 자리임은 변명할 수 없다. 여담이지만 예장백석 또한 긴 역사도 없고 돈만 많은 교단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3] 1996년에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분리된 교회로, 하나의 교회가 인원이 계속 늘면 분립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하나의 예배당 건물을 여러 교회 공동체들이 사용하는 것이 특징. 다른 교회들의 교구 개념만 교회로 바꿔서 차용한 격이다.[4] 이 교회들의 대표는 안디옥교회 담임 겸 다음교회 담임 겸 넥스트교회의 담임목사인 김요셉 목사이다. 김요셉 목사는 김장환 목사 장남으로 1996년에 원천침례교회를 개척하여 초대 담임목사 자리에 올랐다.[5] 미국인 목사가 인혁당 사건을 폭로해서 누명을 쓰고 추방당했는데,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박정희는 종교를 탄압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미국에 능통한 김장환 목사가 자신이 한국의 목사인 점을 어필하여 한국에서 선교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여 종교 탄압 논란은 와해되었다. 이 내용은 밑에 유튜브 영상 참고.#[6] 이는 대학생선교회 창립자인 김준곤 목사,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자인 조용기 목사도 공통된 문제인데, 셋 다 5공 시절에 군사정권과 야합했다는 비판이 크게 제기된다.[7] 당시 대선 예비후보[8] 실제로는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가 기도를 인도했다.[9] 광주 기독교단체 등 기독교 단체들이 김장환 목사의 극동방송 이사장 사퇴를 요구했다.#[10] 당시 공개된 영상에서 김장환 목사의 목소리가 들린다.[11] 참고로 김우생 목사는 1970년부터 극동방송의 5분 말씀을 진행하고 있다.[12] 또한 김장환 목사는 과거에 한국성서침례친교회 목회자 수련회에 참석하여 강연하기도 하였다.[13] 1994년부터 1996년까지 25억원 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