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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0:04:23

유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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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사학비리
3.1. 명지병원과 명지의료재단3.2. 명지건설과 방만경영
4. KBO 총재5. 여생

1. 개요

파일:external/dimg.donga.com/5072535.1.jpg
1946년 10월 3일 ~ ([age(1946-10-03)]세)
명지학원 이사장, 명지건설 회장, KBO 총재. 명지학원 설립자이자 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낸 방목 유상근의 장남이며, 관동대학교, 명지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유병진, 명지대학교 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한 유병우의 형이다.

2. 생애

1946년 10월 3일 충청남도 대전부에서 명지학원의 설립자인 방목 유상근(1922 ~ 1992)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1],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아버지인 유상근이 1992년에 사망하자, 47살의 나이로 명지학원 이사장 및 명지원 이사장, 명지건설 회장에 취임한다. 사학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미묘한 편인데 그래도 지방에 위치한 관동대학교에 의과대학을 유치하는 등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후술할 여러 문제들로 인해서 사학의 재산에 손을 대었고 결국 명지학원이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3. 사학비리

3.1. 명지병원과 명지의료재단

본래 명지학원은 사회복지법인인 명지원을 통해 명지병원과 명지한방병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병원은 1975년에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 설립되었고, 박근혜가 이사장을 맡던 사회복지법인 경로복지원 소유였으나 비영리 병원 특성상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유영구의 부친이자 명지학원 이사장인 방목 유상근은 이를 인수하여 명지병원과 명지한방병원으로 개편하게 되었다.

이후 1995년부터 관동대학교에 의과대학이 설립되자, 당시 재단 이사장이던 유영구는 대학병원 역할을 할 병원을 필요로 하게 된다. 처음에는 관동대학교 구내에 관동대학교 대학병원을 설립할 계획이 있었으나, 강릉아산병원/강릉의료원과의 중복 문제 등이 있어, 결국 경기도 고양시에 있던 선제의료재단 세영병원을 인수합병하여 명지의료재단으로 개편하고, 병원 신관 신축 및 구 명지병원 및 명지한방병원과 세영병원을 통합하여 신 명지병원으로 개편한다.

이렇게 유영구 이사장은 1997년 명지병원을 설립하였는데, 당시가 IMF 외환 위기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대학병원 특성상 건설비나 장비를 마련하는 비용은 천 억이 넘어갔다. 시공은 명지건설이 맡았는데, 명지병원이나 명지병원의 수혜자인 관동대[2]는 당시 건물들을 올리느라 재정이 영 시원찮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명지병원은 생각보다 수익성이 안 나왔고, 이는 명지건설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또한 유영구 본인이 명지건설의 연대보증인이었던 탓에 명지건설의 부도는 곧 유영구 본인도 파산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3.2. 명지건설과 방만경영

그런데, 이 상황 속에서 명지학원은 서울 시내 노른자땅에 명지빌딩을 올리고[3] 의왕시 정원고등학교 시설을 인수해서 명지외국어고등학교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 결국 여기서 건설비가 밀리면서 2004년과 2006년에 명지건설이 부도가 난다. 명지건설의 회장이기도 했던 유영구는 천 억대의 연대보증이 자신의 이름으로 걸려 있었고 명지건설 비리도 있었기에, 명지빌딩을 매각하는가 하면 관동대, 명지대의 돈을 빼돌리는 짓까지 하고 만다.[4]

2004년 명지대 소유의 부지 340억원을 매각한 대금을 명지건설 채무변제에 사용, 그리고 명지학원 산하 부동산 매각대금 1700억 상당을 명지건설 증자에 사용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동대 양양캠퍼스[5]과 명지대학교 용인캠퍼스에 실버타운[6]을 세워보려는 등 나름 수를 써보려고 싶었지만 별 수가 없었다. 혹을 떼려다가 오히려 혹을 덧붙인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자, 2008년 명지외고[7]를 시작으로, 명지건설을 대한전선에 매각했고[8] 명지의료재단[9]도 매각했다.

4. KBO 총재

이렇게 명지학원이 천억대의 부채에 시달리는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정작 명지학원 이사장이던 유영구는 참여정부의 낙하산이었던 신상우한국야구위원회(KBO)의 총재에서 불명예 사퇴하자, 2009년 2월 24일 KBO 후임 총재로 취임했다. 다만 유영구 본인이 이 시기에 명지학원 비리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었기에 여러모로 답이 없던 상황이었는데, 정권의 친이계 낙하산이 내려올까 우려되었던 야구계가 부랴부랴 그나마 인망이 있었던 그를 앉혔다고 한다.

하지만 친이계 낙하선설은 전혀 근거도 없는 음모론에 불과하며 실제로 유영구가 발빠르게 총재가 된 것은 야구계 원로들의 권력싸움의 결과였다는 평이 존재한다. 당시 야구계의 원로 중 한 명이었던 초대 사무총장 이용일이 총재자리에 욕심이 있었고, 자신이 직접 총재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자신과 친분이 있던 유영구를 내세운 것. 유영구 본인 자체가 이후의 행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에 개신교계에 가까웠던 인물이므로 친이계 낙하산을 막기 위해 유영구를 앉혔다는 말 자체도 앞뒤가 안 맞는다. 하지만 김현철씨의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부임을 전후해서 대선 당시에 이명박 후보를 도왔던 김영삼 대통령의 최측근 상도동계 박종웅 전 국회의원이 KBO 총재로 부임한다는 설이 돌았던 것을 보면 낙하산 총재를 막는다는 적당한 명분이 먹힐 수 있었고 합심한 원로들이 유영구 이사장을 급하게 앉혀버린 쪽에 가깝다.

유영구는 KBO 총재 시절 KBO 회계감사도 두고, 서울대학교 베이스볼 아카데미 창설 등의 일을 했다. 허구연 MBC 야구 해설위원에게 야구발전위원장을 맡겨서, 야구 인프라 및 시스템 개선을 추구하기도 했다.

5. 여생

명지학원 비리가 워낙에 커서, 2011년 구속되었고, 2012년 징역 7년을 선고받으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10] 그의 아들인 유재훈은 명지학원 이사를 지내고 있다.

2018년 출소 후 2022년 4월 재단법인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제5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다만, 명지학원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재단과 수익사업체를 방만 경영하는 바람에 명지학원이 좋지 않은 쪽으로 뉴스에 나올 때마다 만악의 근원으로 언급되는 수준이다.


[1] 61회 졸업생이며 졸업 동기로 손학규, 서상목, 김근태 등이 있다.[2] 1995년부터 양양캠퍼스가 개교했으며, 강릉캠퍼스 역시 의대건물을 짓고 있었다.[3] 정확히는 세영병원 후적지를 놀릴 수 없으니 오피스 빌딩을 세워 임대료를 받은 것이다. 그나마 명지건설이 추진한 사업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었다.[4] 명지건설이 망하면 유영구 본인도 같이 수백억대의 부채를 고스란히 뒤집어 쓰게 된다. 명지학원 자체를 빼앗길 수도 있단 소리.[5] 관동대학교 양양캠퍼스가 답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명지학원은, 관동대학교에 50주년 기념관이 완공될 무렵, 대대적으로 공간을 재배치했다. 그 과정에서 대학본부가 50주년 기념관으로 이동했으며, 행정연구관에는 인문대학과 경영대학이 배치, 본관과 예술관에는 공과대학이 양양에서 새롭게 배치되었다. 남은 양양캠퍼스 후적지는 실버타운으로 리모델링하고, 사회복지학과와 물리치료학과 등을 설치할 계획이 있었으나 사회복지학과만 설치되었고 그 마저도 1년만에 강릉으로 이동하면서 방치되었다.[6] 이렇게 지어진 것이 사회복지법인 명지원이 운영하는 아파트형 실버타운 명지 알펜하임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도 처음 계획에 있던 골프장(9홀 규모)을 안 짓는 바람에 사기죄로 고소되어서 명지학원에서 200억대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7] 똥통학교로 유명했던 의왕 정원고의 물적자산을 명지학원이 인수하여 해당 부지에 2004년에 명지외고로 개교했으나 부실재단이 경영을 포기했지만, 결국 자산가치가 높아서 1번으로 대교그룹에 매각되었다.[8] TEC건설로 사명변경, 다만 2012년경까지 협력관계는 유지되었다. 이후 대한전선이 망하면서 양우건설이 인수하여 양우종합건설로 사명을 바꾸었다.[9] 관동대 의대와는 협력관계에 있었다. 애초에 관동대 의대를 위해서 고양시에 2003년에 신설된 병원이었으나, 명지재단의 자금난으로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이사장에게 매각되었다. 이후 이왕준과 명지학원(관동대)와의 관계 악화로 관동대 의대는 존폐위기에 몰리기 까지 했다.[10] 유영구 역시 2년 임기 중 갑작스럽게 사임을 한지라, 유영구를 추대한 이용일 전 초대 사무총장이 책임을 지고 총재 대행을 맡은 뒤 희성그룹 구본능이 후임 총재직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