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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2 18:06:20

남산의 부장들/실제 역사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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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 실제 역사와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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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실제 역사와의 비교3. 오류

1. 개요

영화 남산의 부장들과 실제 역사와의 비교 및 차이점을 서술한 문서이다.

영화 시작 전 픽션을 가감했다는 자막이 나오며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이 실제 인물과는 바뀌어 나온다. 이는 재현 오류에 대한 의혹을 피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사실 이렇게 논란이 있는 역사 소재를 영화화할 때는 명예훼손모욕죄 등이 걸릴 위험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반대로 의도적으로 역사와 떨어뜨려놓기 위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동일한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개봉 당시에 관련자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나 소송을 진행한 사례가 있었다.[1] 실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우민호 감독은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하였으나 영화가 실제 사건에만 갇혀있지 않고, 인물들의 내면, 심리, 감정을 파헤치며, 10.26 사건을 다른 시각과 시선으로 영화적 확장성을 가지고 표현하고 싶었다'고 GV를 통해 밝혔다.

실제 역사와 보다 가까운 드라마로는 제4공화국[2][3]제5공화국이 있으며,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장르가 블랙 코미디이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다르게 희화화한 부분도 있지만 이 작품에 없는 실제와 인물들도 있기 때문에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이하 서술은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 등장한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할 경우 [사실], 아닐 경우 [허구], 사실을 차용해 다르게 묘사한 경우 [각색]이라 표기한다.

2. 실제 역사와의 비교
















파일: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png









2.1. 10월 26일, 안가





파일:김계원발언.png
파일:차지철발언.png





3. 오류

당시 시대상의 재현과 오류에 관련한 항목을 분리해 서술한다.


[1] 외국에서는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정권의 내부 이야기를 그대로 실명까지 쓰면서 비판적으로 다룬 바이스 같은 영화들도 나오는 것과 대조적이다.[2] 10.26 사건 당시 상황을 심수봉에게 직접 감수받았다. 당시 심수봉의 남편이 MBC에 재직하고 있어서 가능했다고. 촬영 당시 처음에 금테 안경을 쓰던 박근형(김재규 역)은 조언을 들은 뒤 검은 안경으로 바꿔 썼고, 이 밖에도 문갑의 위치나 높이, 대통령의 의자 모양까지 설명해 제작진이 소품을 다시 준비했다고 한다.[3] 동시대에 방영했던 드라마 코리아게이트는 심수봉이 감수를 맡지 않아 실제 역사와는 조금 다르다.[4] 초반에는 박통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단 둘이서 김규평과 논의하는 모습 등 곽상천보다는 김규평을 총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궁정동 안가에서 단 둘이 술을 마시며 그 시절이 좋았다며 일본어로 대화하는 장면도 보여준다.[5] 박정희 시대 한국 정치계의 고위 인사들을 오랫동안 취재했던 문명자 기자에 의하면, 당시 김형욱은 이른바 회고록 출판 문제로 박 정권과 막판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측에서는 김형욱에게 "회고록을 출판하지 않는 대가로 5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고 실제로 김형욱한테 1백만~1백 50만 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명자 기자가 김형욱의 미국 뉴저지 저택을 직접 가보니, 화장실 손잡이는 18금으로 되어 있었고 쓰레기통은 은제품이고 수도꼭지도 금제였다고 한다. 그렇게 김형욱은 자기 집을 호화롭게 꾸며놓고 2천만 달러를 쌓아놓고 살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회고록 출판을 하지 않는 대가로 받을 돈 5백만 달러를 더 탐내다 최후를 맞은 것이다.[6] 이 당시 김형욱이 구술한 내용을 갖고 회고록을 대필한 인물이 후일 동교동계를 거쳐 친박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김경재다. 민주화 운동 중 미국에 망명했고, 회고록 집필 덕분에 김형욱과 가까워졌다. 회고록 집필때는 박사월이란 가명을 사용했다.[7] 이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신직수였는데 신직수는 과거 김재규가 5사단장 박정희 밑에서 5사단 참모장을 하던 시절에 법무참모를 맡았던 인물로 상하관계가 역전되면서 김재규가 불쾌해했다는 후문이 있다.[8] 한편 김규평이 5.16 당시 자신이 대령이었다고 묘사했는데, 실제로는 5.16 당시 준장(국방부 총무과장)이었다.[9] 다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영화 내에서도 나라 돌아가는 꼴에 대한 우려, 미국의 압박에 대한 두려움, 박정희에 대해 깊어지는 서운함, 차지철에 대한 분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처럼 그려진다. 특히 은근히 박용각을 죽이게 유도해놓고 정작 일을 해치우자 자신은 박용각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하거나 '친구 죽인 백정'이라고 모욕하는 박통에 대한 원망이 커보인다.[10] 죽이기 직전에도 혁명에 대한 얘기("우리가 백 이백만 탱크로 밀어버리려고 혁명한 게 아니다")뿐만 아니라, 굳이 박용각을 언급하고 박통을 원망하는 말을 늘어놓는다. 실제 김재규가 한 말인 "너도 죽어봐"나 "넌 너무 건방져" 역시 감정적인 말이며, 위에 탱크 운운 대사도 한 숨 돌리고 나서 새 총으로 박정희를 최종적으로 살해할 때 한 말이다.[11] 참고로 김재규는 최후진술에서 자신이 1924년생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호적과 실제 출생연도가 다른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 있긴 하다.[12] 김형욱이 중정부장으로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 김재규는 현역으로 야전을 돌고 있었다. 그나마 김형욱이 3선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던 중정부장 끝물 시절과 김재규가 육군방첩대장에 취임해서 한참 조직을 키우던 시점이 약간 겹친다. 하지만 3선개헌이 성사되자 박정희는 자신 주변의 권력핵심들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는데, 곧 김형욱은 토사구팽 되면서 밀려났고, 그 즈음부터 김재규는 보안사령관으로 권력핵심부에 진입한다.[13] 남산에서 돈가스를 파는 식당들 중 오래된 곳들은 1970년대에도 영업을 하긴 했으나, 이 때는 평범한 기사식당이었고 돈까스가 아닌 순두부를 주로 팔았다고 한다. 이들 식당들 중 일부는 2020년대에도 순두부를 판매한다.[14] 강압수사 금지 조치는 김재규가 중정부장 취임사에서 언급했고 박흥주가 증언하였다. 1978년 교육지표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었던 송기숙 전남대 교수는 "당시에는 정보부에 붙들려가면 초주검이 되어 나온다고 여기던 때였다. 죽을 고문을 당할 각오를 했는데 수사관이 상부 지시라며 의외로 부드럽게 조서를 받더니 그냥 풀어줬다. 한동안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는데 이듬해 10.26이 나자 아하 싶었다."라고 그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15] 이후에는 철거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공식 취조실이 아닌 사적인 곳에서 취조를 했을 가능성도 크다. 모텔이나 소형 호텔에서 취조를 했을 가능성도 크다. 당시에는 호텔 수사가 행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건너편에 있는 15층짜리 세종호텔과 현재는 리모델링 된 아스토리아호텔도 예전에 남산 중정-안기부의 주요활동지였다. 중앙정보부는 남산뿐만 아니라 성북구 쪽(이문동. 이후 안기부로 재편되면서 2청사가 됨.)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덕수궁 쪽(조선일보 본사 뒤쪽)에도 중앙정보부가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현재 국정원도 마찬가지이지만 중정/안기부의 경우 전국 도처에 출장소/보안분실 형태의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경찰이나 검찰과는 다르게 보안상의 이유로 시설 자체가 민간에 공개되지 않아 소재파악 자체가 불가능하고 특히 중정/안기부 시절에 만들어진 시설 중 일부는 현재까지도 사용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소재파악 자체부터가 국가보안법 위반 소지가 있는 불법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16] 또한 중정과는 별개로 김재규 본인 역시 정보부장 취임 이전부터 고문수사나 정치공작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기도 한데 보안사령관을 지내던 시절부터 수경사령관 윤필용 등을 도청하여 발각되거나 고문수사를 자행했던 사실이 있었고 정보부장 시절에도 김종필 등을 도청하거나 야당인사들을 감찰한 흔적이 남아있다. 또한 그 악명높은 보안사 서빙고 분실을 만들어 보안사가 중정/안기부와 경찰 이상으로 막나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17] 후일 <시사저널>에서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의 전신) 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지 25년 만에 김형욱 부장을 위와 같이 처치했다고 털어놓은 현장 암살 실행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현장 암살 실행조는 중앙정보부가 양성한 특수 비선 공작원. 그는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파견되어 김형욱을 암살했다고 말했다.[증언록] "우리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1979년 10월7일 밤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 레스토랑에서 납치했다. 김형욱이 한국 여배우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레스토랑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그 여배우가 보낸 안내자 행세를 하며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 캐딜락 승용차 안에서 김형욱을 마취시킨 다음 밤 11시께 파리시 서북 방향 외곽 4km 떨어진 외딴 양계장으로 가서 분쇄기에 그를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19] 중앙정보부의 개입 없이 단독적으로 국내 요원들로 꾸려진 암살조가 마취되어 의식을 잃은 상태의 김형욱을 인적 드문 양계장으로 납치해 산채로 닭모이 믹서에 넣어 갈아버렸다는 설.[20] 1976년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대학살극 킬링필드를 말하며, 불과 3년밖에 안된 시점이었다.[21] 여기에서 정 대행체제라는 것은 9월 7일, 서울민사지방법원이,‘김영삼이 불법으로 총재가 되었다’며 신민당 조일환 등 3명의 신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낸 “총재단집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정당한 사유로 받아들인 결과 김영삼의 총재직을 박탈하고 정운갑을 총재로 하는 대행체제를 출범시키라고 법원이 판결한 것을 의미했다.[22] 주한미군 철수는 카터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였다. 실제 카터 행정부는 내부적으론 주한미군 축소 계획까지도 세워두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한민군 철수 취소를 공식화하지는 않으면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압박용 카드로 계속 사용하였다.[23] 윌리엄 헨리 글라이스틴 주니어(William Henry Gleysteen Jr.)[24] 영화 초반 '이아고'라는 박통의 스위스 계좌 전담 인물에 대해 CIA와 박용각이 의문을 품고 이것을 김규평에게 말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이아고는 김규평이 박통을 의심하고 관계가 틀어지는 시발점을 제공하는 역할만 하고 사라지는 맥거핀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마지막 에, 전두혁이 이 금고를 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아고=전두혁(하나회 수장)이라는 해석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다.[25] 1979년 당시 금액으로 6억 원이었다. 현대 시세로 치면 수십억원 이상의 거금이었다.[26] 부산경남 사투리 억양이 살짝 섞였다는 의견도 있다.[27] 또한 영화 끝자락의 김재규의 육성을 들어보면 알 수 있지만 실제로는 외모와 매치가 잘 안되는 허스키한 하이톤의 빠른 목소리였다. 이 역시 극중 김규평과는 많이 다르다.[28] 다만 어렸을 때는 서자 출신이라 설움을 많이 받아 내성적인 성격이였다가, 군사정변에 참가 후 박통의 측근으로 출세가도를 달리자 사람이 갑자기 오만해지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피스톨 빼들고 수틀리면 사람을 겨누거나 총대로 사람을 팼던 전 경호실장 박종규만큼은 아니여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안하무인으로 대했으며 이는 당대 증언으로 확인이 된다. 오죽하면 박통의 피격 소식이 들려오자 당시 자리에 있던 내각 각료 대부분이 차지철의 평소 행동이나 성격을 근거삼아 진범으로 오판했을 정도였다.[29] 전두환이 호전적인 성격인 것은 생전에 출연한 여러 방송자료에서도 잘 볼 수 있는 대목인데, 1980년대에 개최된 새마을 사이클 대행진에서는 자전거를 타면서 초등학생과 농담을 주고받는가 하면, 교도소에서 출소할 때도 기자들에게 교도소 가지 말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30] 한편, 박통과 김부장이 막사를 마시며 일본어로 대화를 하는 장면은 확인되지 않은 픽션이다. 이렇듯 박정희를 다룬 매체에서는 왜색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많다. 궁정동 안가에 일본식 가옥 구조인 다다미를 깔아놓은 것도 사실과 다르며, 동일한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엔카를 부르는 장면 역시 사실과는 다르다.[31] KBS 당진 송신소 시설 보강 준공식이었는데 왜 중앙정보부와 관계가 있냐면, 이 당진 송신소의 진짜 목적은 북한 등 당시 공산권에 대한 심리전 방송(대북방송)을 하는 시설이어서 중앙정보부가 관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2]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한석규 캐릭터.[33]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김응수 캐릭터.[34] 2015년 당시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었던 김성근의 응원가 한화의 김성근 감독님 사랑해의 원곡이다. 그 응원가 관련으로는 인터넷 방송인 케인의 밈이 되기도 했다.[35] 제4공화국제5공화국에서 노래가 나오는 풀영상은 유튜브에는 없어서 중국 동영상 사이트 빌리빌리로 대체. 중국에서는 그 곡이 밈이라 인기가 많다.[36] 한 때 황제국을 칭하며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중심에 있었던 고려왕조가 몰락하여 폐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황성옛터 가사의 내용인데 유신정권 역시 10.26 사건 이후 박 대통령과 비롯한 핵심인물들이 모조리 죽거나 권력에서 밀려났고 헌법까지 씹어먹던 중앙정보부 역시 김 부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모조리 숙청되고 이름 또한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37] 營繕,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수선함.[38] 전기가 갑자기 합선되면 펑 하는 폭발음이 난다.[39] 밖에서 계속 이어지는 총소리와 고함 소리에 합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강무홍은 다시 차단기를 올린 후 보일러실 문을 잠근 채 몸을 숨겼다. 만약 불이 조금 일찍 꺼졌더라면 박선호는 오히려 정인형과 안재송에게 역습을 당할 수도 있었다.[40] 리볼버는 구조상 해당없음[41] 한편 육군본부로 가는 차 안에서 보여주는 김규평의 피에 젖은 양말은 박용각이 프랑스에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암살되기 직전 맨 발로 도망치느라 땀에 절은 발을 보는 모습과 흡사한 장면으로 2인자였던 박용각과 김규평의 처한 현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연출이다.[42] 당시 중앙정보부장 운전담당 사무관도 차를 정리하려고 봤을 때 사탕이 껍질도 까지 않고 그대로 떨어져 있었다고 증언했다.[43] 실제 이병헌은 지 아이 조 시리즈 등 여러 편의 헐리우드 영화 출연 경력에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한 적도 있을 만큼 영어 대화나 인터뷰도 잘하는 편이며, 발음도 매우 좋은 편이다.[44] 여담으로, 이병헌은 2016년에 이미 영화 마스터에서 동남아식 영어를 일부러 구사한 전례가 있다.[45] 다만 박정희 대통령은 쓰리피스 정장을 잘 입진 않았다.[46]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의 관저로 쓰이던 건물이었는데 해방 이후에도 1993년까지 대통령의 집무실 및 관저로 계속 사용되었다. 건물 자체가 워낙 작고 내부가 협소하여 1970년대부터 청와대 신축이 계속 거론되고 또 무산되다가 1991년 현재의 청와대 본청을 신축하였고 구 본관은 1993년 완전히 철거되었다.[47]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전부 철거한 뒤 시민공원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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