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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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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근현대 상당기간동안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했기 때문에 양국간은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존재했다.그 탓인지 지금 세월이 지나 나름 동남아시아 지역 강국이 되고, IMF 통계 기준 2012년부터 명목 GDP 총합에서 앞서는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를 바라보는 느낌은 아주 희열감이 느껴지는 정도라고... 물론 네덜란드도 엄연한 선진국에다 탄탄한 강소국이라, 아직은 개발도상국이자 갈길이 먼 인도네시아에게 결코 꿀리지 않는다.[1] 특히 1인당 GDP는 2021년 IMF 통계 기준으로 네덜란드는 5만 8,003달러인데 비해서 인도네시아는 4,256달러로 그 간격이 크다.
하지만 네덜란드 국왕과 총리, 외교부 장관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로 서서히 개선되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2. 역사적 관계
2.1. 17~19세기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 지배는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인도네시아에 영토를 확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602년부터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으로 쳐들어가면서 지배를 시작했는데 네덜란드는 이러면서 다른 동남아나 스리랑카로도 쳐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하나하나 싸우거나 여러가지 방법을 쓰면서 엄청 오래 걸렸다. 마지막으로 발리 섬과 수마트라 섬 북단 아체 지역을 뺀 인도네시아 다수를 차지한 해가 1878년으로 276년이나 걸렸다.마지막 남은 발리 섬의 경우 일대의 국가들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네덜란드에게 수십 년에 걸쳐 불굴의 저항을 했고, 그 가운데 몇 차례 네덜란드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네덜란드에게 패배했고 발리까지 복속되면서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정복을 306년 만에 완수했다. 그러나 1906년과 1908년에 벌어진 고위 귀족의 집단 자결 의식 푸푸탄은 당시 전쟁을 벌였던 네덜란드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덕택에 발리 문화가 네덜란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로서 네덜란드는 19세기 인도네시아 전역을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복속시켰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무역 기지 및 플렌테이션을 조성했다. 인도네시아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시켜 후추, 정향 등의 재배를 강제하였고,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자급할 농산물을 재배할 여력이 부족해 기근에 시달리는 고초를 겪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어도 네덜란드의 식민지배 이전에는 아랍 문자를 개량한 자위문자를 썼지만 네덜란드의 영향에 따라 로마자로 바뀌게 되었다.
네덜란드는 식민 지배 인력 상당수를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징집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 남미의 네덜란드 식민지 수리남에도 상당수의 인도네시아계 노동자들이 끌려갔으며, 일부 말레이들이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스리랑카 해안 지대에 둔전병으로 정착했다. 스리랑카 및 남아공 내 말레이인/자바인 인구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인구가 희박했던 수리남에는 인도네시아 자바계 인구가 인구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2.2. 20세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가 계속되는 듯 하다가 2차대전 와중이던 1940년대 초에 일본이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를 점령하면서 일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인도네시아는 일본령 동인도 시대 동안 많은 수난을 당했는데 인도네시아인, 네덜란드인들이 위안부로 끌려갔다.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한 이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다시 식민지배를 하려고 했다. 일명 인도네시아 재침략. 2차 대전 동안 독일에게 점령당하면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서 식민지의 자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네덜란드는 미국의 압박을 받고 인도네시아에서 철수를 선포했다. 그리고 나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했다.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와 벌인 독립전쟁 당시 벌인 학살과 인권 침해는 세계적인 논란을 가져온 바 있다. 인도네시아의 보수 이슬람 세력들이 기독교 소수민족들에 대해 적대적인 이유 중에는 네덜란드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다.
식민지 시기 다수 이슬람 교도 주민들을 견제하기 위해 식민정부는 적대적인 소수민족들에게 기독교를 포교하고 개종한 주민들을 우대했다. 그리고 기독교를 믿는 소수민족들을 통해서 다수의 무슬림들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령 뉴기니는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에도 별개로 네덜란드의 지배가 유지되었다. 인도네시아가 영유권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1961년 인도네시아가 침공하여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는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미국의 중재로 네덜란드는 서뉴기니를 포기했고 인도네시아에 병합되었다.
2.3. 21세기
지금까지도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와 수교만 했었지 별다른 외교교류가 없었고, 갈등도 상존하는 상태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더 이상 네덜란드어가 많이 쓰이지 않는다.거기에다 인도네시아 국민 다수의 무슬림들을 억누르기 위해 말루쿠 제도나 술라웨시, 수마트라 등 기독교도로 개종한 비이슬람계 소수민족들을 중간역으로 활용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는 종교간의 갈등도 남겨놨다. 현재도 인도네시아의 화교들과 이슬람을 믿지 않는 산간 오지의 소수민족들은 네덜란드 식민 지배의 앞잡이였다는 부정적인 스테레오타입 선동으로 공격받는 형편이다.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던 네덜란드인 관료들은 인도네시아인 현지처를 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면서 이들 상당수가 네덜란드로 난민이 되어 탈주하여 오늘날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이 되었다.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들은 주로 기독교인이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네덜란드와 다르게 인도네시아는 종교를 갖지 않을 수는 없고 법정 종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며, 이는 원래 50-60년대 종교가 허용되지 않았던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제정된 법이었으나 현재까지 남아 네덜란드로 이민간 인도네시아인들 중 무종교인의 귀국 및 개입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는 인도네시아의 교과서에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그만큼 국민감정도 묘하지만, 사이가 안 좋은 것과는 별개로 사회 인프라는 네덜란드식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도 50Hz, 전화기 교환기 및 교환음도 유럽식, 아날로그 TV는 물론 디지털 TV도 네덜란드식(엄밀히는 유럽 표준인 PAL과 DVB)으로 도입했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우측 통행을 도입하기 이전에 식민 지배를 당했고, 본토와 달리 통행 방향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 네덜란드식 좌측 통행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2] 네덜란드 지배 당시의 민법, 상법, 형법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엔 훗날 일본의 지배를 받은 것과 이후 구 영국 식민지인 주변국들(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파푸아뉴기니, 호주)의 영향을 받은 상황도 있다.[3]
인도네시아어도 그간의 지배 때문에 조금씩 바뀌어 네덜란드어와 유사한 어휘가 많이 남았고, 1972년에 말레이시아와 표기법을 통일하기 전에는 네덜란드어 표기법으로 인도네시아어를 표기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어 연합의 특별회원국으로도 가입되어 있다.
2020년에는 네덜란드 국왕이 68년만에 네덜란드 식민지 지배와 독립과정에서 있었던 폭력에 대한 공식사과를 했으므로 관계는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배에 대한 악감정 때문인지 인도네시아에도 나치 독일을 옹호하는 네오나치들이 존재하며 나치를 테마로 한 레스토랑도 존재한다.
다만 정치/외교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것과 별개로 네덜란드 동물원에서는 수마트라호랑이, 검은짧은꼬리원숭이, 오랑우탄, 말레이맥, 반텡들소 등 인도네시아에서 서식, 분포하는 야생 동물들을 사육하며 이들을 원 서식지인 인도네시아의 동물원과 국립공원에 공급하거나 재방사해주기도 한다.
2.3.1. 2020년대
조코 위도도 대통령 집권 이후, 두 나라의 협력은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2020년 3월 10일, 네덜란드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이 처음으로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2013년 네덜란드 외교부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희생된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애도를 표시한 적이 있었지만, 이는 네덜란드 법원의 판결에 의한 것이었다. 독립 이후 네덜란드 왕가의 방문은 처음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에 뒤이어 등장한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은 과거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하고, "과거 네덜란드 정부와 왕실이 저지른 학살과 폭력을 후회하며, 사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뒤이어 두 나라는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는 협정문에 서명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서 배울 수는 있다. 앞으로 두 나라가 평등한 관계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정부가 과거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진압 과정에서 즉결처형한 모든 피해자 자녀에게 5천 유로(670만원)씩 배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022년 2월에 마르크 뤼터 총리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당시 네덜란드군이 저지른 폭력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발표했다.#
2023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게 식민지 시대때 인도네시아에서 약탈했던 문화재를 반환하였다.#
3. 관련 문서
- 네덜란드/외교 / 네덜란드/외교/옛 식민지 국가들과의 관계
- 인도네시아/외교
- 네덜란드/역사
- 인도네시아/역사
- 네덜란드/경제
- 인도네시아/경제
- 네덜란드/문화
- 인도네시아/문화
- 네덜란드인 / 인도네시아인 / 인도네시아계 네덜란드인
- 네덜란드어 / 인도네시아어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남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1] GDP에서 인도네시아가 앞서는 것은 네덜란드보다 인구가 10배는 훨씬 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2] 흔히들 일제시대에 좌측통행을 하게 되었다고 알지만 틀린 정보다.[3] 다 좌측통행이며 한국,일본,대만과 달리 유럽식 제도 영향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