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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0:10:13

노태우/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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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중립적 별명
2.1. 큰 바보2.2. 이화장2.3. 보통 사람2.4. 원조 노짱2.5. 1만분의 1
3. 긍정적 별명
3.1. 물태우/물대통령/물통3.2. 대통령 아저씨3.3. 물아저씨/물태우 아저씨/물대통령 아저씨/물통 아저씨
4. 부정적 별명

1. 개요

대한민국 제 13대 대통령 노태우의 별명에 관한 문서.

노태우 이전까지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것은 범죄였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나를 코미디 소재로 다뤄도 좋다"고 허용하고 직접 권장하며 진일보했다. 이 때문에 노태우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인 물태우가 코미디 단골 소재로 되었고 본인도 좋아하는 별명 물태우를 소재로 한 물태우 코미디를 가장 재미가 있다고 좋아했다고 한다.

의외로 역대 대통령 사상 별명 중 부정적인 별명이 하나뿐이지만 그마저도 잘 안 쓰이고 있다. 하지만 사후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본인이 대통령이 되기 전전직이었던 박정희와 기일(10월 26일)이 같아서 사후 기일 관련 중립적 별명은 조금씩 증가 된 것이다.

2. 중립적 별명

2.1. 큰 바보

나는 이름부터 '큰() 바보()'니 당신들이 많은 의견을 내 달라는 발언을 했기에 생긴 별명이다.

2.2. 이화장

역대 사망한 대통령 사상 두번째로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의식을 거행하면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거처했던 이화장을 따와서 붙여진 별명이다. 숫자 이(2)+화장=이화장

2.3. 보통 사람

13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 선거 유세에서의 발언으로 "나 이 사람 보통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발언으로 인해 생긴 별명이다. 정작 이력은 쿠데타가 없었더라도 보통과 거리가 먼 자수성가 그 자체였고 대선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받아들게 되자 정작 자신의 12.12 쿠데타, 5.17 내란 포함 5.18에 이르는 많은 권력범죄들에 관여한 이력 때문에 초반부터 지나치게 떠오르진 않으면서도 그나마 또 조용히 넘어갈 제대로 된 슬로건이 필요했기에 군복을 벗은 자신은 누구보다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용어로 보통 사람이라는 슬로건이 뽑혔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는, 한편으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별명. 어찌보면 한국의 정치 역사상 그 별명의 주인공과 대치되는 뜻의 특이한 슬로건이라 무난하면서도 참 의미심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4. 원조 노짱

노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똑같은 노 씨라는 점에서 원조 노짱이라고 불렸었다.

2.5. 1만분의 1

2013년 동생과 재산 반환 소송을 벌이면서 까지 추징금 2628억원을 다 냈고, 추징금을 완납하면서는 “1만분의 1의 도리를 했다”고 했기에 생긴 별명이다.

3. 긍정적 별명

3.1. 물태우/물대통령/물통

유한 성격으로 인해 붙여진 칭찬과 긍정적인 비판이 섞인 별명. 노태우 대통령이 실제 스스로 가장 최고로 좋아했던 별명으로,[1] 당시 사회가 이전의 군정 잔재가 남아있는 시절이었던 걸 감안하면, 대통령에게 물태우라는 별명이 '공공연히' 사용된 노태우 정부 시절은 전두환, 박정희만 걸고 넘어져도 군관경 보안방첩요원들이 순회를 돌던 5공보다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국면 이었음을 알 수 있다.[2] 물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나쁘게 볼 필요는 없는 부분. 하지만 카리스마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어 '물에 탄 듯 하다'해서 부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로 노태우 대통령 본인도 1989년 프랑스 교민 리셉션에서 프랑스 교민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물, 그것은 마시면 들어가고 흘리면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물 한방울 한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는 과정을 보면 물의 힘은 참 크지요. ‘물대통령’이란 별명 참 잘 지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밝혔다.

심지어 본인은 "사람들이 나를 물태우 또는 물대통령으로 부르고 있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은 매우 좋은 별명이며, 나는 물 같은 지도자로 보이는 게 좋다." 노태우는 소크라테스의 지도자론을 인용하면서 "물과 같은 사람이 지도자로서 가장 바람직하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사람들이 나를 물태우라고 부르는 것은 약하다는 뜻인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겉으로 어떻게 보이든 대통령 심중에 강한 의지만 있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물 같은 성품 덕분인지 그는 정치인들과 별로 부딪치지 않았다. 국가 간에 매우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외교 분야에서도 그의 이런 성향은 나름대로 빛을 발해 북방정책으로 큰 공헌을 세워서. 소련, 중국 등 공산권과도 외교를 맺는 성과를 발휘했고, 사망 이후 국가장을 치루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3.2. 대통령 아저씨

취임 직후인 1988년 어린이날 청와대 행사에서 어떤 어린이가 '대통령 아저씨'라는 호칭을 쓰면서 질문을 했는데[3][4], 답변을 하려고 했다가 갑자기 좋아하면서 "내가 대통령 아저씨로 보여요? 기분이 좋구만. 할아버지보다 아저씨가 나은데?"라는 말을 했기에 생긴 또 다른 좋아하는 별명이다. 사실 저 때 나이가 만 55세였기 때문에 아저씨로 호칭할 수도 있긴 했지만[5] 아무래도 겉모습이라든지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할아버지로도 부를 수 있었으므로 본인이 흡족해 한 듯 하다. 당시 보도 영상.

3.3. 물아저씨/물태우 아저씨/물대통령 아저씨/물통 아저씨

위 두 긍정적 별명인 대통령 아저씨와 물태우/물대통령 별명에서 따온 별명으로 두 별명 모두를 합친 것이다. 물태우/물대통령/물통 + 대통령 아저씨 = 물아저씨 & 물태우 아저씨 & 물대통령 아저씨 & 물통 아저씨

4. 부정적 별명

4.1.땅크

노태우 대통령의 유일한 부정적 별명으로, 어원은 전두환과 땅크를 합친 전땅크에서 유래된 별명이지만, 전땅크라는 전두환의 별명보다는 사용 빈도가 매우 낮고 드물게 사용된다. 엄연히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로서 전두환이 이후 5.18 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것에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라서 붙은 멸칭이긴 하나, 전두환이 발포를 지시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 무력 진압의 총책임자로 자주 지목되기도 했고 전두환 자신도 '광주는 폭동이었다' 운운하며[6] 어그로를 훨씬 더 많이 끌어모은 만큼 노태우에게 관련 멸칭이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1] 제5공화국을 보면 서인석이 연기하는 노태우의 유한 모습이 잘 묘사되었다고 한다. 극중에는 "물태우 물태우 하니까 진짜로 인 줄 아나?"라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2] 노태우 정권 당시의 유화적 분위기를 상징하는 사례로 당시 서울대 학생회에서 공공연히 내 걸었던 '광주학살의 원흉 노태우를 찢어죽이자' 란 현수막이 있다. 물론 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학생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류 언론들이 조장하며, 안기부공안정국 국면을 돕는 일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유인물 몇 장만 배포해도 군경관 보안방첩기관에 끌려가며 극심한 탄압에 시달려야 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수위가 매우 높은 비판조차 일단은 용인되었던 것. 즉 군사반란 세력의 수괴로써 권력 범죄를 자행했고, 자행하던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던 상황이었으나, 일단 비판 자체는 가능해진 것이다.[3] 이때 한 질문은 국민학교때 성적이 어땠냐였다. 노태우는 이 질문에 가물가물하지만 1등을 했을때도 있고, 제일 못했을때는 5등을 한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노태우는 육사시절 매우 우수한 성적을 가졌었다.[4] 그 다음에 질문을 한 아이도 대통령 아저씨라는 호칭을 썼는데, 질문은 청와대에서 식사 할때 반찬으로 뭘 먹냐는 질문이었다. 노태우는 지금은 어린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깻잎무침과 된장 쌈을 좋아한다 답했다.[5] 물론 1960년대까지는 일찍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1980년대 기준으로 50대 정도면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가 될 나이이기는 했고, 빠르면 40대 정도에 손자, 손녀를 보는 경우도 아직은 적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다만 영상을 보면 MC부터 대놓고 아저씨라고 불렀다. 사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40대 나이에도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들을만한 외모의 사람이 많았다. 지금은 아무래도 찾기 힘들겠지만 당시만 해도 60대 이상이면 허리가 90도로 꼬부라져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어르신들이 꽤 많았다.[6] 노태우도 '광주사태가 문화혁명보다는 덜했다'라는 망언을 한 적은 있으나 이후 어쨌든 사과는 하였고, 사망 전에도 아들 노재헌이 노태우의 5.18에 대한 추모사를 대신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