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6:05

녹정기/등장인물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녹정기
1. 개요2. 등장인물
2.1. 주인공2.2. 위소보의 가족2.3. 청나라2.4. 오삼계 세력 (평서왕부)2.5. 천지회2.6. 대만 정씨 집안2.7. 철검문2.8. 아가의 주변인물2.9. 목왕부2.10. 신룡교(神龍敎)2.11. 청량사와 소림사
2.11.1. 오대산 청량사2.11.2. 소림사
2.12. 화산파2.13. 기타 인물

[clearfix]

1. 개요

소설 《녹정기》의 등장인물에 관한 문서.

2. 등장인물

2.1. 주인공

2.2. 위소보의 가족

2.3. 청나라

2.4. 오삼계 세력 (평서왕부)

2.5. 천지회

2.6. 대만 정씨 집안

2.7. 철검문

2.8. 아가의 주변인물

2.9. 목왕부

2.10. 신룡교(神龍敎)

2.11. 청량사와 소림사

2.11.1. 오대산 청량사

2.11.2. 소림사

2.12. 화산파

2.13. 기타 인물



[1] 도선사 부총관 태감 → 어전 시위 부총관(오늘날의 훈장과 유사한 '황마괘(黃馬褂)' 착용) 겸 정황기(正黃旗) 부도통(副都統).[2] 강희제의 본명은 현엽이다.[3] 사실상 위소보가 지닌 소인배적인 감성을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소보 특유의 소인배적이지만 도리를 완전히 저버리지는 못하는 감성은 작중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거의 없다. 심지어 사부인 진근남조차도 위소보가 영웅적 기상이 별로 없는 소인배임을 알고 그것을 농담거리로 삼기까지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원칙을 이해하는데에 이르지는 못하는데, 유독 강희제만은 위소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에는 위소보를 너무 몰아붙였다가 열받아서 튀게 만들기도 한 것을 보면 이 점을 너무 믿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위소보라고 아주 작은 양심조차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 사실 위소보는 소인배이긴 하지만 그래도 작중 누구보다 의리가 있는 인물이다. (달리 말하면 위소보는 객관적 기준에 따른 공적 윤리에는 거의 구애받지 않지만, 철저히 사적 기준에 따르는 개인간의 '의리'는 중시하여 이를 통해 자신의 윤리 부족을 어느정도 해결하는 인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점을 확실하게 인지한 건 아닌 듯 강희제는 위소보가 강희제와 천지회 사이에서 갈등할 때 그를 압박하면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 당연히 돈과 권력이 어느 쪽에 더 몰려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테니. 결국 강희제는 위소보의 소인배적인 면모만 보고 그의 의리는 너무 얕보았다고 할 수 있는 셈.[4] 그러나 이는 약간 달리 볼 면모도 있는데, 사실 위소보는 소인배가 맞긴 맞아서 위소보를 천지회 관련으로 직접 압박하지만 않았어도 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위소보가 도망친 이유는 강희제가 압박한 것도 있었지만 천지회에서 위소보를 진근남의 뒤를 이어 회주로 삼아 반청복명 운동을 지속하려 했기 때문, 즉 양쪽에서 받는 압박을 도저히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단지 강희제쪽에서만 압박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그 이전까지와 같이 요령껏 어물어물 말을 돌리고 거짓말도 섞어 면종복배하는 방법으로 매번 그 순간만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들지, 강희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려 드는 데는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강희는 위소보에게 '천지회의 회주 자리를 일단 수락한 다음 그걸 기회로 삼아 완전히 토벌해버리라'고 압박하고, 천지회(및 그에 동조하는 선비들)는 '네가 차후 황제 자리까지 노려도 좋으니 반청운동의 지도자 자리를 맡으라'(=반청'복명'은 포기해도 좋으니 멸만흥한이라도 하자)고 압박함으로써 위소보가 양측에 지켜야 하는 의리가 도저히 양립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 점에서 위소보의 도주는 지극히 세속적인 쾌락을 쫒아 번화한 도회에 파묻힌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실의 추악함을 피하기 위한 옛 선비들의 은거와 비슷한 면이 있다.) 따라서 결과론적으로 보면, 강희가 만약 '위소보는 다른 일은 몰라도 천지회 토벌만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위소보의 시선을 적당히 돌려놓은 채 그 사이에 천지화를 토벌해버렸다면 위소보 역시 강희제의 곁에 남았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진근남, 오륙기등의 죽음 이후에는 위소보가 천지회에 대해 지켜야 할 의리도 많이 약해졌는데(게다가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강희에게 책임이 없다) 정작 이들은 위소보에게 계속 '강희제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라'고 강요하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 따라서 위소보의 입장에서는 (대만 연평왕부의 멸망을 방치한 것처럼) 천지회 토벌 역시 그냥 방치한다는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둔다'와 '자기 손으로 숨통을 끊는다'는 천지차이인데 강희제가 굳이 그 일을 자기에게 꼭 맡겨야겠다고 고집하니 차마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던 위소보로써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것. 따라서 이 점에서는 강희제가 단지 위소보가 얼마나 의리를 중시하는 인물인지 몰랐다기보다는, 그 의리의 비중을 잘못 판단한 것, 즉 '자신과의 의리를 다른 의리보다 중시해 줄 것이다' 라고 오판한 것이라 해석할수도 있어보인다. 아닌게아니라 강희제의 경우 위소보가 충의와 같은 큰 도리는 알지 못하지만 의리는 중시하는 인물임은 알고 있었고, 황제인 자신에 대한 도리와 강호의 친구들에 대한 도리를 '같은 의리'로 보고 저울질하는 태도에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네가 이익을 탐해 나를 배신한 것이었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았겠지만, 그것이 의리라는 나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한 것이고 나에 대한 의리를 지킬 때에도 목숨을 걸 것이라 믿기에 용서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런데 위소보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던 진근남이 죽었으니 (그것도 반청복명 세력 내부에서 배신당해 어이없게 죽었으니) '이제 위소보에게 천지회와의 의리보다 자신(황제)과의 의리가 더 중요해졌을 것이다'라고 판단하고 빨리 자기 편에 확실히 서라고 압력을 가한 것일 가능성도 제기할 수 있는 것. 다른 정황을 보더라도, 강호 여기저기에 친구가 많은 위소보와는 달리 현엽에게는 (물론 신하는 많지만) 친구는 위소보 딱 하나뿐이다.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인 만큼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 오판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위소보의 삶의 태도를 일단은 인정했지만 도리 (특히 유교적 도리)에 훨씬 밝은만큼 '언제까지 그러고 살래? ㅉㅉ'하고 답답하게 여기는 면도 있던 현엽인 만큼, 이 기회에 위태로운 줄타기를 청산하고 확실하게 이기는 편인 자기 편에 서라고 위소보를 잡아 끌어주고 싶어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다만 이 관점에서 볼 경우 위소보가 '스승의 동지들'인 천지회에 대해 느끼는 의리가 강희의 예상보다 훨씬 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5] 녹정기에서도 강희제의 어머니는 효강황후라고 역사대로 나온다. 현엽이 위소보의 보고를 받으면서 가짜 태후 모동주가 단경황후를 살해했다는 말은 심상하게 듣다가 효강황후도 살해했다는 말에 엄청나게 동요하는 장면이 있으며 친모를 살해한 모동주에게 증오심을 불태우다가도 모동주가 동악비와 영친왕을 죽이지 않았으면 자신은 황제가 되지 못했으니 그 점은 모동주의 덕을 보았다고 판단하는 장면도 있다. 위소보의 친구였던 구중궁궐 도련님 귀요미 소현자가 냉철한 제왕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6] 모동주는 해대부가 무당파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공동파의 고수였다. 모동주는 해대부의 무공을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했으나 해대부는 모동주에 대해 이미 파악해놨기 때문에 싸웠으면 십중팔구 모동주가 졌을 것이다.[7] 다만 이용해먹은건 이쪽이 먼저다. 그리고 입막음까지 하려고 했으니 어찌보면 자업자득.[8] 김용의 직계 조상이다. 김용의 본명은 사량용(査良鏞)으로, 김용이라는 필명은 마지막 鏞자를 파자한 것이다.[9] 서량 출신으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감숙성을 거쳐 운남으로 옮겼고 따라서 다들 오삼계와는 별로 연이 없다. 이후 오응웅과 함께 수도로 왔기 때문에 오삼계의 일파로 의심받았으나 위소보는 오응웅을 잡기 위해 그들을 풀어주었고 도움을 받아서 오응웅을 사로잡았다.[10] 이것은 작중 배경시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명, 청대의 중국 통일왕조는 지방군이 독립된 군벌화되는 것을 극히 우려하였기에 무관을 일정 기간마다 전근시켜 해당 지역에 밀착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예방조치를 취하였고, 장, 왕, 손 등도 이러한 제도에 따라 근무지를 옮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삼계(경중명, 상가희의 삼번)는 청나라(만주족)의 입관을 도운 공로로 강남의 영토를 받아 반독립적인 통치를 허용받은 번왕이었기에 군사권 및 인사권도 사실상 독자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니 중앙 조정의 인사권에 의해 운남으로 전근해 온 세 장수는 오삼계의 인사권으로 구성된 운남 평서왕부의 군부에서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소외되는 처지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11] 작중 조양동의 출세 과정이 매우 특이한데 위소보가 공을 세우고 고위직에 앉아 거들먹거리게 되자 다른 이들은 전부 위소보의 위세에 고개를 숙였지만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었던 조양동은 위소보를 탐탁찮게 여겼다. 물론 직위 차이는 넘사벽이라 그랬던 것도 있지만 위소보는 조양동이 자신에게 숙이지 않는 걸 보고 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강희제의 명령을 받고 반란군을 처리하러 가게 되었을 때 조양동을 찾아 오히려 그를 띄워주게 되고 조양동은 이런 위소보의 모습에 자신이 오해한 것을 깨닫고 서로 심중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이후 위소보는 조양동으로부터 배운 병법을 강희제에게 보여주고 조양동을 추천하였고 조양동은 높은 자리를 얻게 되면서 출세길이 열리게 되었다.[12] 그리고 다들 작중 삼번의 난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13] 쌍아와 위소보가 잘 되기를 바랬는데, 쌍아의 신분이 하녀라 의남매를 맺어 신분을 올려준 것이다.[14] 현엽에게 위소보의 정체를 일러바친 흑막. 평소 과묵하게 지내서 위소보는 그가 청나라의 끄나풀이라고 짐작하지 못했다. 진근남이 죽은뒤에야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위소보를 핍박하려 하다가 쌍아저격으로 죽는다.[15] 위소보가 스승(진근남)의 복수를 하려 들 것이라 예상한 강희가 '내가 황제의 이름으로 그를 보호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그를 해쳐서는 안된다'고 엄명을 내린다. 뿐만 아니라, 진근남 역시 죽기 직전에 '반드시 정극상을 죽여 스승님의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고 울부짖는 위소보에게 어찌됐건 그는 주군의 아들이라며 해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물론 위소보는 '해치지 않겠다고만 약속했지 빚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은 한 적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억지로 만들어둔 700만냥의 빚을 거의 태반 이상 받아내며 실컷 괴롭히지만.[16] 빚을 조금씩 잘라서 지인이나 부하들에게 나눠줘서 하루가 멀다하게 빚독촉 하게 만들었다.[17] 사실 여춘원 난교시 하려고 했으나 "갈이단은 나의 친구인데 어찌 내가 그의 아내를 뺏는단 말인가? 아홉수(마누라)를 다 못채우겠는가?" 라고 안한다.[18] 이 이야기가 당대 널리 퍼져 진원원은 지금도 중국역사에 손꼽히는 경국지색의 미녀로 알려져 있다.[19] 사실 녹정기에서 나오는 고수들은 전체적으로 벽혈검보다 한 카테고리 정도 약해져서 녹정기에서 천하 제일 고수라고 하는 진근남 클래스의 고수들은 한 시대 전인 벽혈검의 주인공에 비해 떨어지던 화산파의 귀신수 가족이나, 제자가 된 하철수 같은 인물들 보다 다소 약하게 묘사된다. 물론 벽혈검에서 녹정기 사이에 오랜 시간 동안 수련을 한 결과이겠지만, 진근남 클래스의 고수들이 녹정기에 나오는 벽혈검 출신의 상중 레벨의 고수들 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게 묘사 되는 것은 사실이다.[20] 사고전서의 편찬자 중 하나로 그의 저서인 《교요서론(敎要序論)》 은 사고전서 중 속수사고전서(續修四庫全書)에 편입되어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462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462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