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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8-11 16:33:56

대한국민회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한국의 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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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립3. 활동

1. 개요

1920년 중화민국 지린성 옌지에서 창설된 독립운동 단체, 독립군 부대.

2. 성립

3.1운동은 국내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있는 전역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만주에서도 다를 것이 없었는데 당시 용정에서 의사부가 중심이 되어 3월 13일에서도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이후 의사부는 조선독립기성회로 개칭되었다가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직되면서 대한국민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국민회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승인을 받아 재정과 군사에 관한 사무를 개별적으로 집행하는 대한국민회의 군대로 안무를 사령관으로 하고 있었고 본부는 춘흥촌에 위치하고 있었다. 구성원들은 다음과 같았다.

제1중대장 조권식, 제2중대장 임병극, 군무위원 마룡하, 마천룡, 최기학, 이원.

3. 활동

대한국민회은 만주 지역의 독립군 부대와의 통일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시에 따라 열린 첫 통합 회의에 참가, 봉오동에서 열린 통합 회의에서도 얼굴을 보였다. 회의의 결과 대한국민회가 행정을 담당, 대한국민회군, 대한독립군, 군무도독부의 통일 전선인 대한북로독군부가 군사를 담당하기로 했다.

일본 경찰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1920년 8월 대한국민회군은 그 수가 450명에 달했고, 군총 600정, 탄약 7만 발, 권총 160정, 수류탄 120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대한북로독군부로 발전한 국민회군은 안무가 사령관을 맡았고 그 아래 4개 부대를 만들었다. 부대 당 인원은 백 명 정도였으며, 제1~4대의 각 대장들은 최문무, 홍범도, 강승범, 조권식이었다.

봉오동 전투에 참전해 성과를 올렸으나 퇴각 문제를 두고 대한독립군의 홍범도와 군무도독부의 최진동이 의견 갈등이 발생하였고, 최진동이 이끄는 군무도독부는 대한북로독군부에서 이탈하며 통합 전신이 깨지게 되면서 대한국민회군은 안무를 사령관으로 하는 독자적 군부대 대한국민군사령부를 창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