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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게임(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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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dd0200><colcolor=#fff> The Game
더 게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heGameApr2011.jpg
본명 제이션 테럴 테일러
Jayceon Terrell Taylor
출생 1979년 11월 29일 ([age(1979-11-29)]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콤프턴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92cm, 118kg
종교 기독교
학력 콤프턴 고등학교
직업 래퍼 · 싱어송라이터 · 프로듀서 · 배우 · 사업가
데뷔 2004년 싱글
Westside Story
2005년 정규 1집
장르 힙합 · · 서부 힙합 · 갱스터 랩
레이블 애프터매스 · G-Unit 레코드(탈퇴)
관련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인생사3. 커리어4. 성추행 논란5. 50 센트와의 불화6. 디스코그래피7. 여담


[clearfix]

1. 개요

미국래퍼. 블러즈 갱단의 얼굴마담 격 래퍼로, 2000년대 서부 힙합을 상징하는 힙합 아티스트이다. 랩 네임인 더 게임은 어렸을때부터 내기하는것을 좋아해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를 위시한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서부 힙합의 본좌에 위치한 래퍼로 인정받으며, 2000년대에 드러서면서 시들해진 갱스터 힙합을 부활시킨 장본인으로 서부 힙합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큰 형님 취급을 받는다. 다만 여러가지 구설수와 사건으로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비난을 받다보니 그만큼 안티팬들도 상당히 많다. 블러즈 와 대립관계인 미국 갱단 크립스 출신의 래퍼 스눕독 과 같이 음악을 낸 적 있다.[1]

2. 인생사

1979년 11월 29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콤프턴[2]출생. 출신지부터 범죄율 높기로 유명한 캄튼이고 부모가 그 악명높은 크립스 갱스터 단원이다. 근데 자식은 블러즈 집안에는 총기와 탄알이 나뒹굴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으며, 어머니는 매춘부였고, 아버지는 헤로인 중독자였다.

어느날 어린 게임은 누이를 강간하려는 아버지를 쏴죽이려 했지만, 탄창이 비어서 역으로 아버지한테 구타당했다. 7살때 친구가 청소년들에게 옷과 신발로 시비가 붙다 목숨을 잃고, 부모가 구속당하고, 13살때 라이벌 갱단에 의해서 큰 형인 제이본 테일러가 살해당했다. 게임은 포스터 케어에 이송되어 15살까지 지냈으며 전자 오락, 농구에 심취하는데, 훗날 이것이 자신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양육원을 나오고 어머니와 같이 살며 콤프턴 고등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곳이 크립스 갱단의 나와바리인지라 학우들이 대부분 크립스 갱단 소속이었다. 그러나 게임은 작은형인 빅 페이스 100을 따라 시더 블록 파이루 블러즈에 입단하고 1999년 학교를 졸업해 워싱턴 주립 대학교에 들어가 농구을 비롯한 운동을 잘해 농구부 팀원으로 활동하거나 육상경기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약 거래가 들통나 퇴학당한다.

결국 갱스터 짓으로 밥벌어먹는 신세가 되어 각종 범죄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집에서 마약 제조 중 손님으로 위장한 라이벌 갱단들에게 가슴에 총 5발을 맞고 오랜 기간동안 병원 신세를 진 후 퇴원 뒤 갱단 활동을 접게 된다. 그리고 진로를 래퍼로 잡아 평소 존경해오던 N.W.A 멤버들의 랩을 들어가며 혼자서 랩을 독학한 뒤 음악가의 삶으로 들어선다.(초반에 JT The Bigga Figga가 게임을 도와줬다)

3. 커리어

언더그라운드에서 한껏 실력을 내뿜다가 형인 빅 페이스 100과 작업한 믹스테입을 들은 션 콤즈가 눈독을 들여 배드 보이 레코드로 영입될 뻔 했지만, 자신이 어릴적 존경해왔고 메시아와 같은 존재인 닥터 드레의 애프터매스 레코드로 들어간다. 드레에게는 잊혀져가는 서부힙합의 연줄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더 게임이라는 래퍼의 등장은 더 할나위 없는 셈.

그뒤 드레의 추천으로 50 Cent가 이끄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있는 G-Unit의 멤버가 된다. 다만 더 게임과 애프터매스의 방향성은 달랐는데, 더 게임은 N.W.A와 같은 순수한 갱스터 힙합을 꿈꾸고 있었으나 애프터매스에선 더 게임이 상업적으로 몹시 매력적인 인물이었기에 이러한 차이점은 곧 이어질 힙합 역사에 기록될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를 야기하게 된다.

이러한 내막속에서 2005년, 더 게임은 데뷔 앨범 'The Documentary'를 발매해 힙합 역사상 손에 꼽을만큼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앨범은 힙합 역사에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부활을 전반적인 앨범 분위기로 삼았으며, 앨범 곡명에 전설적인 래퍼들의 명반 이름들을 하나씩 집어넣어 자신도 그들과 대등한 래퍼가 될것임을 다짐하고 이 앨범은 미국 전역에서 엄청난 히트를 치게된다. 이러한 성공에서 더 게임을 상업적인 틀에 가두어 통제하려 했던 50 Cent와 순수한 갱스터 힙합을 원했던 더 게임과의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 것이다. 결국 더 게임은 자신의 리더였던 50 Cent와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G-Unit에서 방출당하게 된다.

G-Unit에서 방출당한 더 게임은 빡이 돌아버려 총을 들고 총격전까지 벌이며 50 Cent의 G-Unit에 반항하며 존재감을 피력했으나, 50 Cent가 이끌던 G-Unit의 파워를 이기지는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닥터드레 역시 50 Cent의 편을 들어주며 더 게임은 모든것을 잃어버린채 원히트 래퍼로 생명이 끊어지나 싶었으나...

2006년 2집 앨범 'Doctor's Advocate'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 역시 힙합 음악사의 클래식 반열에 올라 소포모어 징크스는 개나 줘버리며 최고의 래퍼로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전작에 비해 더 강렬하고 더 독해진 웨스트코스트 스타일을 보여주며 클래식으로 평가 받는다. 1집을 관통하던 키워드는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의 부활이었는데, 2집에선 1집 발매 이후 겪었던 시련. 특히 닥터 드레에 대한 애증, G-Unit에 대한 분노를 화제로 삼았는데, 듣는이에겐 더 게임이 가진 캐릭터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해 지금의 더 게임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결국 애프터매스는 궁지에 몰릴수록 진가가 드러나는 괴물을 만들어낸 셈.

뒤이어 2008년 'LAX'의 성공으로 오존 어워드에서 베스트 웨스트 코스트 랩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였다. 다만, 앞선 1집과 2집의 평가보다는 박한데, 아무래도 1집의 포부와 2집의 분노에 이어 특별한 주제를 관통하지 못했다는 점. 물론 앨범 자체를 어우르는 곡들과 타이틀곡 My life의 히트는 호평을 받았다.

그 후 닥터 드레에게 다시 인정을 받고, 관계를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같이 작업한다는 뜻을 전해 모든 힙합 팬들의 기대를 모았고, 곧 이어 2011년 그의 4번째 정규앨범 'The R.E.D Album' 을 발매하나, 평가는 꽤나 박하다. 1집과 2집에서 이어지는 스토리는 4집 닥터 드레와의 화해에서 이어지며 기대를 모았고, 그 스토리를 이어가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외의 앨범전체를 어우르는 유기성은 엉망이었고,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고 난잡한 구성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서 후반부 트랙을 지우면 4집 역시 상당한 명반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 앞서 전반부만큼은 굉장한 곡들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앨범의 실패는 더 게임과 닥터 드레의 화합이라는 엄청난 키워드가 존재함에도 1,2집에 비해 부족한 평가를 받는 3집 판매량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둔다.

그 이후로도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중. 다음해 2012년에 발매한 'Jesus Piece' 는 어느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간간히 계속 발매하는 믹스테잎들도 평가가 예전만하지 못하다. 더 게임의 큰 매력 요소인 목소리도 맛이갔다는 평가 까지 받았으니... 그리고 2014년에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인 'Blood Moon: Year Of The Wolf' 는 커리어의 바닥을 찍을 정도로, 더 게임에게 남은건 스타성밖에 없다는 평가까지 받으며 몰락해가는 수순을 밟았다. 다만 이때 더 게임은 다음앨범은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앨범인 'The Documentary'의 정식 후속작인 'The Documentary 2' 를 예고하며 기대를 다시 끌어올리긴 했으나, 반대로 기념비적인 앨범을 다시 쓴다는것은 그만큼의 만족을 시켜줘야 되는데 지금 더 게임에겐 기대보단 걱정을 자아냈다.

이러한 관심속에서 2015년 더 게임은 'The Documentary 2'를 발매하는데, 간만에 큰 성공을 거두어 다시 평가는 전화위복. 이후 'The Documentary 2.5' 까지 발매해 웨스트 코스트 왕의 건재함을 다시금 알리는데 성공했다. 지금껏 시도했다가 아쉬웠던 랩 스타일의 변동, 목소리와 가사 등에서 완성적으로 뽑아내며, 이제는 죽었다고 평가받는 웨스트코스트 힙합을 간만에 터뜨리는데 성공했다. 2와 2.5의 합본까지 발매해내며 다시 주가를 상승시키는 중. 반면에 같이 몰락수순을 밟던 50 Cent는 돈 문제로 계속 구설수에 오르며 주가가 폭락하는 중이다.

2016년 7번째 정규 앨범 '1992' 를 발매해 더 진한 웨스트코스트 갱스터 힙합을 선보였다. 평가는 간만에 느끼는 깡통 웨스트코스트 힙합이라는 것이 중론. 간만에 느껴보는 정통 웨스트코스트 비트에 랩을 선보였다는 것에서 많은 지지를 받는 중.

그리고 곧 이어 다음 앨범이자 은퇴 앨범일지도 모른다고 예고한 'Westside Story" 를 예고해 드라마의 종지부를 찍으리라 예고하고 있다. 과가 LAX 발매 전에도 마지막 앨범이라 홍보했으나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진심으로 들려 팬들에겐 아쉬울 따름.

2019년 앨범명을 ‘Born to Rap’ 으로 바꾸며 발매. 평가는 호불호가 다소 있는 편이지만, 현지에서의 비평가들에겐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종합적으로 잘 만든 앨범이지만 더 게임이라는 레전드의 은퇴 앨범에는 다소 기대치에는 미치지 못한듯 하다. 일부 힙합 팬들에겐 흥행적 요소에서 더 이상 더게임의 스타성은 많이 죽었다고 느껴졌다는 반응도 꽤나 있는 부분. 그래도 클래스는 어디안간다고 주간 차트에선 상위권에 랭크하긴 했지만 전성기 시절 빌보드를 휩쓸때나, 전성기 이후에도 종합 빌보드 순위권에 들었지만 커리어 최초로 진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뒷통수를 치며 2021년 새로운 앨범인 '30 for 30' 앨범을 예고하며 또 다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3] 이쯤되면 불사조...

4. 성추행 논란

2015년 리얼리티 TV쇼 'She's Got Game' 촬영 후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여성 출연자 Priscilla Rainey의 음부와 둔부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재판은 시카고 법정에서 진행됐는데 피고인 더 게임은 첫 재판부터 등장하지 않아 피고 패소로 법정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고 피고인 더 게임에게는 원고에게 $7,000,000을 배상할 것을 명령하였다. 현재까지 피해자가 지불받은 돈은 배상금의 반의 반도 안되고 더 게임은 가상화폐와 유령회사로 자금을 은닉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어서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5. 50 센트와의 불화

더 게임의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인 50 Cent와의 디스전은 힙합 역사상 가장 화끈하고 유명한 디스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집 ‘The Documentary’의 큰 성공은 더 게임에게 큰 돈을 안겨주지만, 그 이후 의견충돌로 애프터매스에게 버림받고 모두에게 공공의 적인 상태가 된다. 이러한 극적인 상황에서 더 게임의 진가가 극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자신의 아버지와 같았던 닥터 드레에게까지 버림을 받은 더 게임은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 50 Cent를 포함한 G-Unit과 심지어 애프터매스 전체와 일당백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더 게임은 자신을 G-Unot으로 칭하고 G-Unit을 거세게 디스했는데, 실력으로는 게으른 천재라는 명성아닌 명성이 있던 Lloyd Banks나 디스의 아이콘인 50 Cent도 더 게임을 향해 디스 폭격을 퍼붓는다. 이런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더 게임은 결국 당시 최고의 크루였던 G-Unit을 몰락시키며 이후 천하의 50 Cent마저 더 게임을 피하게 된다. 이후로 G-Unit 재결합 이야기가 종종 나오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50 Cent가 부정하며 10년 넘게 싸우는 중...

근데 그러다 2016년 드디어 10년만에 50 Cent와 화해했다.

같은 클럽에서 만났는데, 더 게임은 "자신은 괜찮다. 그 사건은 벌써 10년 전 일" 이라고 말하며, 클럽에서 50 Cent와 포옹까지 하며 과거 총격전까지 하고 죽어라 디스하던 형제는 결국 화해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변덕이 심한 둘이라 또 언제 서로 X까라고 해! 라며 돌아설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서로에게 쌓인 감정은 상당수 풀어졌을듯.

많은 팬들이 이 둘이 다시 합쳐 ‘Hate It or Love It’, ‘Westside Story’, ‘How We Do’ 와 같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주길 바라고 있다.

6. 디스코그래피

정규 음반
앨범 아트 제목 발매
파일:ejrpdla111.png
The Documentary 2005년 1월 18일
파일:2wlq123.jpg
Doctor's Advocate 2006년 11월 14일
파일:LAX11.jpg
LAX 2008년 8월 26일
파일:fpem11.png
The R.E.D. Album 2011년 8월 23일
파일:wltjtm11.jpg
Jesus Piece 2012년 12월 11일
파일:ekzb22.jpg
The Documentary 2 2015년 10월 9일
파일:더다큐이쩜오.jpg
The Documentary 2.5 2015년 10월 16일
파일:1992.jpg
1992 2016년 10월 14일
파일:본투랩.jpg
Born 2 Rap 2019년 4월 27일
DRILLMATIC - Heart vs. Mind

7. 여담


[1] 사실 둘은 음악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임과 동시에 사적으로 굉장히 친밀한 관계이다. 서부 힙합의 얼굴마담으로 스눕독의 뒤를 이은 래퍼가 더 게임이고 게임이 인터뷰에서 스눕을 서부 최고의 래퍼로 생각한다고 말했었다.[2] 유명한 슬럼가이자 갱스터랩의 성지와도 같은곳이다. 전설적인 그룹 N.W.A의 Dre, Eazy, Ren 역시 콤프턴 출신이다.[3] 새로운 앨범을 준비하며 50 센트를 언급하며 같이 작업하면 좋을것 같다라는 늬앙스를 품겼고, 50 센트도 최근 인터뷰에서 더 게임과의 더이상 불화는 없다며 화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나, 본인은 더 게임과의 작업은 없을거라며 단호하게 말한 바가 있다.#[4] 하지만 이렇게 말해놓고는 본인이 더 낫다면서 시비를 털어서 어그로가 엄청 끌린적이 있다.[5] rapradarpodcast에 출연했을때 왜 에미넴을 디스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이렇게 답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개인적인 디스는 아니야. 처음 "My Name Is"를 들었을 때를 기억해. 비기의 "Juicy"를 처음 들었을 때와 같은 인상을 받았어. 그래서 그와 어울리곤 했지. The Documentary에도 피처링 시켰잖아. 힙합은 더 재밌어져야 해. 래퍼들이 요즘은 너무 지루해. 언제나 누군가 비프를 원하면 누군가는 죽어야지. 신사 숙녀 여러분, 때때로 이런 것이 힙합이고 여러분께서는 이걸 있는 그대로 놔두셔야 합니다." 즉 힙합씬의 재미를 위해 누군가는 디스를 걸어야 했고 그걸 자신이 했다는 입장.[6] 그럼에도 대다수 사람들은 앨범 홍보용 노이즈 마케팅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다만 게임이 에미넴과 디스 프로그램인 Verzuz에서 직접 에미넴과 디스전으로 맞붙고 싶다 밝혔던 만큼, 슬슬 커리어 황혼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디스로 도전을 걸어보고 싶었던 것도 맞는 것 같다. 이제 게임 정도면 에미넴과의 디스전에서 진다고 커리어 망칠 일도 없을 테고, 요즘 래퍼 시장이 외부 눈치를 너무 보는 점이 있어 몸이 근질근질 할 만은 할테니. 일단 둘이 붙으면 둘 다 디스 왕이라 불리는 만큼 굉장히 재미있는 디스전이 나올것 같다는 의견은 많다.[7] 참고로 40 Glocc은 과거에 싸움영상이 CCTV로 공개된적이 있고 절대 싸움질에서 만만한 래퍼가 아니다.[8] 다만 이 사건의 경우엔 같이 농구를 하다 생긴 해프닝.[9] 게임과 트러블이 있어서 대판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링크[10] 물론 전에도 흑인 갱단의 화합을 바라는 캠페인을 펼친적 있었고, 노래에서도 갱스터 인생에 관한 자전적인 서사를 간간히 풀긴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