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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드라이스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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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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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킴버 존 하킨스 헨리 포터 밥 카루더스 미키 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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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Drysdale%20Don%20Plaque_NBL_0.png
돈 드라이스데일
헌액 연도 1984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78.4% (10회)

돈 드라이스데일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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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엠블럼(1958~1967).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59 1963 1965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1959 1961 1962 1963
1964 1965 1967 1968

파일:MLB 로고.svg 1962년 메이저 리그 사이 영 상
화이티 포드
(뉴욕 양키스)
돈 드라이스데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코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6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워렌 스판
(밀워키 브레이브스)
조이 제이
(신시내티 레즈)
돈 드라이스데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코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후안 마리샬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59년~196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샘 존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돈 드라이스데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코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6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탈삼진왕
샌디 코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돈 드라이스데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코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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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rysdale.png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 53
돈 드라이스데일
Don Drysdale
본명 도널드 스캇 드라이스데일
Donald Scott Drysdale
출생 1936년 7월 23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밴 나이스
사망 1993년 7월 3일 (향년 56세)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96cm / 86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BRO)
소속팀 브루클린-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56~1969)

1. 개요2. 현역 시절3. 은퇴 이후4. 피칭 스타일5. 연도별 기록6. 명예의 전당 입성
6.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7. 불멸의 기록8. 여담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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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는 타자들이 죽도록 미웠다. 나는 경기가 시작되면 미쳐 버렸고, 끝나고 나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타석에서 홈플레이트 쪽으로 가까이 붙는다면 내 할머니라도 맞혀버릴 것이다."[1]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샌디 코팩스와 함께 1960년대 전성기를 이끈 우완 사이드암[2] 투수. 물론 본명은 도널드 드라이스데일이고, 돈(Don)은 애칭이다.

2. 현역 시절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태어나 고향팀 다저스에서 현역 시절을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 1936년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밴나이스 (Van Nuys) 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에는 야구부에서, 나중에 배우가 되는 로버트 레드포드 (드라이스데일과 동갑이었다)와 한솥밥을 먹기도. 고등학교 졸업 후 브루클린 다저스와 계약하는데, 1만불팔 쿠팩스가 "1만 달러 이상의 계약금을 받으면, 반드시 메이저리그에 직행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6년이나 고생을 한 반면, 드라이스데일은 입단 후 3년 동안 조용히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수업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팩스가 5승밖에 못 거두며 고생하던 1957년에 드라이스데일은 21세의 나이로 17승을 거둔다.

드라이스데일은 1958년 다저스가 LA로 연고지를 옮긴 직후에 4년 동안 쓴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선 좀 고생했지만, 다저 스타디움이 개장한 1962년부터 구장빨 같은 걸 끼얹었나? 미치기 시작한다. 1962년 25승 9패를 거두며 돈 뉴컴 (1956년)에 이어 다저스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사이 영 상을 받은 것.[3] 그리고 무엇보다 1963년부터는 쿠팩스까지 미치기 시작하면서 둘이서 44승을 합작하고, 1964년 37승, 1965년에는 49승을 거두며 콤비로서 절정의 시기를 보낸다. 그리고 그 보상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연봉 10만 달러 투수 타이틀[4]이었다.

1966년 쿠팩스는 27승을 기록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월드시리즈에서 다저스가 짐 파머데이브 맥널리의 볼티모어한테 4연패로 박살나자 부상도 있고 해서 깨끗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거기다 드라이스데일은 1966년 13승밖에(?) 거두지 못하면서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1969년 부상의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32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한다.

3. 은퇴 이후

은퇴를 선언한 뒤로는 해설가로서 활동했다. 특히 1988년부터는 빈 스컬리와 함께 다저스 경기만을 전담하는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오렐 허샤이저가 자신의 58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넘어서자 중계 부스에서 뛰쳐나가 허샤이저를 부둥켜 안기도 했다.

1993년 7월 4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몬트리올 엑스포스전 경기 중계를 앞두고, 호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때 그의 나이 56세.

본래 다저스 통산 다승 2위였으나 54년 후 대후배가 210승을 거두며 드라이스데일을 제치고 다승 단독 2위로 올라섰다.

4. 피칭 스타일

9이닝 당 볼넷 비율이 2.2로, 사이드암 투수로서는 정상급 제구력을 자랑했다. (같은 시기의 쿠팩스의 비율은 3.2였다) 또 인용구를 통해 짐작할 수도 있지만, 위협구와 빈볼을 자주 활용했던 투수였다. 3,000이닝을 던지면서 154번이나 타자를 맞춰, 이 분야에서는 내셔널 리그 최다 기록.[5]

드라이스데일이 활약하던 시기는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이었기에 득점지원이 나빠서, 통산 166패 중 40%에 해당하는 67경기는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도 패전한 경기다. 자신이 치고 던지고 다 해먹는 경기도 많았다. 이에 관한 일화로 1958년 8월 14일부터 8월 23일 경기까지, 자신이 등판한 3경기에서 투수로는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고, 특히 23일 밀워키 브레이브스전때는 4회말과 6회말에 홈런을 때려내, 3경기 4홈런이라는 스탯을 쌓게된다. 1965년에는 3할 타자가 한명도 없는 팀에서 투수로 3할의 타율과 7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7개의 홈런을 친 시즌이 58년, 65년 두번이나 되며 기록한 적도 있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 리그의 특성 상, 대타로 기용된적도 있다.

그리고 드라이스데일은 무엇보다 선발로 엄청나게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데뷔시즌과 은퇴시즌을 제외하면 선수시절 내내 200이닝 이하로 소화한 시즌이 없고, 58년부터 66년까지 매 시즌 40경기 이상을 선발로 출장했다. 이 기간 동안 300이닝을 넘긴 시즌만 4번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닝을 던진 것이 결국 독이 되어, 쿠팩스와 드라이스데일의 조기 은퇴를 초래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5. 연도별 기록

파일:MLB 로고.svg 돈 드라이스데일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56 BRO
-
LAD
25 5 5 0 0 99 2.64 95 9 31 3 55 1.273 152 1.7 1.8
1957 34 17 9 0 0 221 2.69 197 17 60 7 148 1.167 153 5.1 6.0
1958 44 12 13 0 1 211⅔ 4.17 214 21 72 14 131 1.351 100 3.3 3.0
1959 44 17 13 2 0 270⅔ 3.46 237 26 93 18 242 1.219 122 5.8 5.9
1960 41 15 14 2 0 269 2.84 214 27 72 10 246 1.063 139 6.2 7.0
1961 40 13 10 0 0 244 3.69 236 29 83 20 182 1.307 116 3.5 5.4
1962 43 25 9 1 0 314⅓ 2.83 272 21 78 11 232 1.113 128 6.5 5.4
1963 42 19 17 0 0 315⅓ 2.63 287 25 57 10 251 1.091 114 5.8 4.3
1964 40 18 16 0 0 321⅓ 2.18 242 15 68 10 237 0.965 147 6.9 7.8
1965 44 23 12 1 1 308⅓ 2.77 270 30 66 12 210 1.090 118 3.4 3.3
1966 40 13 16 0 0 273⅔ 3.42 279 21 45 17 177 1.184 96 4.1 2.8
1967 38 13 16 0 0 282 2.74 269 19 60 8 196 1.167 112 4.3 4.5
1968 31 14 12 0 0 239 2.15 201 11 56 12 155 1.075 128 3.0 4.4
1969 12 5 4 0 0 62⅔ 4.45 71 9 13 2 24 1.340 75 -0.2 -0.2
<rowcolor=#373a3c> MLB 통산
(14시즌)
518 209 166 6 2 3432 2.95 3084 280 855 154 2486 1.148 121 59.3 61.4

6. 명예의 전당 입성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1984년 10수만에 헌액되었는데, 이것도 78%의 낮은 지지율로 턱걸이 수준으로 헌액된 것이다. 1960년대가 극심한 투고타저 시대였으며, 늦게 터져서 짧고 굵게 불사른 동료 샌디 쿠팩스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2인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6.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드라이스데일 27 200 134 43
HOF 입성자 평균 40 185 100 50
career WAR7yr-peak WARJAWS
드라이스데일 67.2 44.7 56.0
선발투수 HOF 입성자 평균 73.9 50.3 62.1

7. 불멸의 기록

메이저리그 연속 완봉승 최고 기록을 가지고 있다[6]. 58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는 사이 1968년 5월14일부터 18일, 22일, 26일, 31일. 그리고 달을 넘겨 6월 4일까지 등판한 6게임(54이닝)을 전부 완봉으로 승리했다. 6경기 연속 완봉승의 대기록. 58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은 다저스의 후배 투수 오렐 허샤이저가 59이닝으로 경신했지만 연속 완봉승 기록은 현재까지 경신되지 않았다. 드라이스데일이 저 기록을 세울 때의 페이스를 보면 한 번 4일 휴식한 것을 빼고는 모두 3일 휴식만 하며 완투했다. 완투 경기의 투구수는 보통 100개 이상, 120개도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투구수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완투를 하였다면 아무리 공을 아껴도 80개 이상은 던졌을 것이다.[7] 6경기를 모두 80개 정도씩 던졌다고 해도 현대 야구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혹사로 구르며 공을 뿌려댄 것이다.그러니 힘이 빠질 수 밖에

6경기 연속 완봉의 기록은 투수 분업화와 한계 투구수의 설정을 확립한 현대 야구에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현대 야구는 선발 투수가 소화하는 이닝이 점점 줄어들고, 완투에 대한 로망은 있으되 실질적 가치는 떨어진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저 기록에 도전할 만한 선수도 나오질 않는다. 6경기는 커녕 2경기 연속으로 완봉하는 투수도 근래에 보기 어렵다. 기사-완봉승도 귀하다

8. 여담

9. 관련 문서



[1] 원래 300승 투수 얼리 윈의 대사다.[2] 하지만 그의 피칭을 보면 로우 쓰리쿼터에 가깝다.[3] 당시에는 내셔널리그/아메리칸리그를 합쳐 사이 영 상을 한 명에게만 주었다. 나중엔 리그별로 나뉘었지만.[4] 물론 쿠팩스의 성적이 더 좋았으니까 쿠팩스가 좀 더 받긴 했다.[5] 이 분야 역대 1위는 놀란 라이언. 다만 라이언은 158번이나 타자를 맞추긴 했지만, 5,000이닝을 넘긴 투수이다 보니 드라이스데일에 비하면 비율은 훨씬 낮다. 게다가 라이언은 드라이스데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제구가 불안한 파이어볼러였다. 9이닝 당 볼넷 비율이 2.2인 드라이스데일의 통산 힛바이피치 갯수가 상위권이라는 건, 상당수를 노리고 맞췄다고밖에 볼 수 없다.[6] 아메리칸리그 최고 기록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소속으로 독 화이트가 1904년 9월12일부터 16일, 19일,. 25일, 30일에 걸쳐 5경기 연속 완봉승의 기록을 세웠다.[7] 투구수가 기록된 후 메이저리그 최소 투구 완투는 레드 바렛의 58구 완투이며, 그렉 매덕스는 76구 완투를 펼쳐보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