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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20:11:28

디아벨리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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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창작 배경
2.1. 작품의 탄생 과정2.2. 작품의 제목에 대해
3. 곡의 해설
3.1. 성격 변주곡3.2. 곡의 구성3.3. 골드베르크 변주곡과의 비교
4. 평가5. 명연주 및 음반

1. 개요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변주곡의 끝판왕. 작품번호는 120이며 기본 조성은 C장조이다. 원 제목은 33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von Diabelli(디아벨리의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

건반악기 변주곡 분야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며[1]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곡 가운데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와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크고 기법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전인미답의 경지를 이룩한 작품이다. 그만큼 제대로 된 연주와 감상을 위해 연주자와 청자 모두에게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작품으로 악명이 높다.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의 연주.

2. 창작 배경

2.1. 작품의 탄생 과정

1819년에 작곡해 4년 후인 1823년에 완성되었고[2], 다음 해 6월에 빈의 'Cappi und Diabelli'사에서 출판되었다.

당시 유명한 출판업자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였던 안톤 디아벨리[3]는 1819년에 베토벤을 비롯하여 빈에 체류하고 있는 인기 작곡가들에게 자신이 작곡한 왈츠를 주제로 각각 하나의 변주곡을 써달라고 의뢰한다. 이 기획은 베토벤 외에도 50여명 가량의 작곡가(체르니, 훔멜, 크로이처, 리스트[4], 슈베르트, 루돌프 대공, 슈타들러 신부 등이 포함됨)가 섭외되었는데 심지어 모차르트의 아들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도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빈에 거주하는 전업 작곡가들을 모두 섭외해서 1곡씩의 변주곡을 작곡하게 한 후 이를 정리해서 출판하겠다는 대단히 거창한 프로젝트였다. 디아벨리가 당시 비인 악보 출판계의 큰 손이었기 때문에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했던 것.

그런데 정작 당시 작곡가중에 본좌급이었던 베토벤은 '이런 시시껍적한 곡으로 변주곡을 만들라는 거야?'라고 불평하면서[5] 이 기획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곧 마음을 바꿔 독자적으로 이 주제를 바탕으로 한 변주곡을 만들어보기로 하고 디아벨리와 출판계약을 맺는다.[6]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변주곡의 역사를 새로 정립한 명작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작곡에 착수하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막상 작곡이 시작되자 베토벤은 이 작곡을 꽤 즐겼다고 한다. 베토벤 말년의 비서였던 안톤 쉰들러에 의하면 당시 베토벤은 조카 칼 양육권문제와 경제적 압박, 악화되는 건강, 합창교향곡장엄미사와 같은 대작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얼굴을 펴는 경우가 별로 없었는데 유독 이 디아벨리 변주곡을 작곡할 때만은 자주 웃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이 변주곡이 32번 피아노 소나타나 현악 4중주 14번처럼 끝모를 심각함으로 빠져드는 대신 곳곳에서 익살스러움과 아이러니함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쉰들러의 말이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7]

한편 베토벤의 변주곡과 별도로 디아벨리가 원래 구상했던 '조국 음악가 동맹' 기획은 그대로 추진되어 베토벤을 제외한 다른 작곡가들이 모두 한곡씩 작곡한 곡을 묶어 "애국 예술가 동맹((Väterandischer Künstlerverein)의 변주곡" 이라는 손발이 살짝 오그라드는 제목을 붙였다. 이렇게 해서 디아벨리 변주곡 1부는 베토벤의 변주곡, 2부는 이 애국 예술가 동맹 변주곡으로 구성하여 출판하였다.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달리 이 거창한 기획 변주곡 모음집은 아쉽게도 오늘날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50곡이나 되는 많은 곡수에 비해 정말 재미가 없다. 세부적인 작곡플랜이 없이 단순히 여러 사람의 변주를 모아놓은 탓에 악상의 통일성도 없고 변주양식도 다들 전형적인 19세기 초 비엔나 고전파 양식이라 엇비슷하게 들린다. 그래서 잘 연주가 되지 않고 설령 연주가 되더라도 50개의 변주가 한꺼번에 연주되는 경우는 정말 없다. 이렇게만 말하면 괜히 궁금할테니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자.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출판 후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von Brenntano)에게 헌정되었다.[8]

이 작품은 베토벤 생전에는 딱히 연주된 기록이 없는데, 사실 디아벨리 변주곡 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후기 작품 대다수가 당시의 악기와 연주기술로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베토벤 사후 한참 지난 후에야 제대로 연주가 이루어졌다. 특히나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연주기술과 별도로 음악적으로 너무 어렵고 청중들에게 어필하기 쉽지 않은 곡이었기 때문에 베토벤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정말 뒤늦게서야 제대로 알려진 작품이다. 어느 정도냐면 20세기 중반까지도 레코딩 횟수가 베토벤의 다른 피아노곡에 비해 보잘것 없었을 정도.

다행히 20세기 후반부터 이 작품의 작품성과 가치에 걸맞는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며 21세기 이후 현재는 매우 활발한 연주와 레코딩이 이루어지고 있다.

2.2. 작품의 제목에 대해

베토벤은 원래 이 거대한 변주곡의 제목을 Große Veränderungen über einen bekannten Deutschen Tanz (유명한 독일 춤곡에 의한 거대한 변주곡)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출판시에는 제목을 33 Veränderungen über einen Walzer von Diabelli(디아벨리의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으로 바꾸었고 오늘날에도 이 명칭이 통용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것은 베토벤이 자신의 변주곡을 통상적인 이탈리아식 용어인 바리아치오넨(Variationen) 대신 페어엔더룽엔(Veränderungen)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이 페어엔더룽엔은 단순한 의미의 변화보다는 transformation(변성/전환)의 뜻이 강한데, 그가 굳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이 작품에서 단순한 주제의 변용보다는 좀더 본질적이고 심도있는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국말로 딱히 저 단어를 표현할만한 적절한 용어가 없는 관계로 변질곡? 변성곡? 그냥 통상적으로 변주곡으로 번역한다.

3. 곡의 해설[9]

3.1. 성격 변주곡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소위 '성격 변주'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베토벤 이전의 고전파 시기의 변주곡은 대체로 주제의 패턴을 유지하고 주제와 같은 마디수를 유지하면서 주제의 선율/리듬/화성/조성/템포와 같은 요소 중 한두가지를 변화시키거나, 선율에 장식음을 추가하거나 아르페지오 형태로 선율을 화려하게 바꾸거나, 기교적인 반주를 추가하는 식으로 작성되었는데, 이를 음형변주곡이라고 한다.

이러한 통상적인 음형 변주곡의 예로 베토벤이 20살에 작곡한 리기니의 아리아 '사랑아 오너라(Venni Amore)' 주제에 의한 24개의 변주곡을 들 수 있는데, 변주곡 수가 24개로 상당히 많지만 주제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통상적인 변주곡의 문법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반면 디아벨리 변주곡과 같은 성격변주곡은 주제로부터 한 두마디의 선율이나 리듬, 화성 등에서 일부의 요소만 취해서 좀더 자유롭게 변화발전시키는 변주방식으로, 주제의 패턴이나 마디수를 유지할 필요가 없고 주제의 분위기에 구속되지도 않기 때문에 각 변주가 음형변주곡에 비해 훨씬 독립적으로 구성된다. 따라서 이런 성격 변주 방식은 작곡가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변주가 나올 수 있으며, 곡을 연주할 때에도 매우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성격변주 방식에 비해 음형변주 방식이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명백한 착각이니 오해가 없도록 하자. 모차르트의 뒤포르의 미뉴엣에 의한 변주곡(K. 573)이나 멘델스존의 엄격변주곡처럼 음형변주로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특히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의 2악장은 음형변주의 최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예술에서 작품성을 담보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의 역량이지 형식이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자.

여튼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성격 변주곡 분야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작품이며 주제는 왈츠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즉흥곡/연습곡/미뉴에트/푸가/스케르초 등등의 다양한 변주양식을 선보이고 있다. 직접 들어보면 알겠지만 각 변주가 정말 자기 마음대로 전개되는 것 같으면서도 신기하게 원 주제인 디아벨리의 왈츠와 어떻게든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런데 디아벨리 변주곡은 통상적인 성격 변주의 경지를 한단계 넘어서 구성 방식도 통상적인 관념을 완전히 깨뜨리고 있다. 예를 들면 익살스럽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에서 갑자기 조용하고 심각한 분위기로 바뀌거나(예를 들면 22,23변주와 24 변주), 일종의 서주와 푸가처럼 즉흥곡 풍의 변주 다음에 엄격한 형식을 갖춘 대위법적인 변주가 나타나는(31 변주와 32 변주) 등 여기저기에서 갑작스러움과 반전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음악사가 도널드 그라우트(Donald Jay Grout)는 이 작품의 기상천외함에 대해 '기괴함과 숭고함', '소박함과 심원함이 공존'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얼핏 들으면 이러한 해괴함과 의외성이 잘 이해가 되지 않고 뜬금 없어 보이지만 제대로 들어보면 바로 이런 구성 덕분에 이 장대한 곡이 지루해지지 않고 곡 전체의 역동성이 배가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성적으로 또 한가지 특이한 것은 마지막 곡으로 피날레에 어울리는 장엄한 푸가나 기교와 에너지로 충만한 곡이 아니라 중간 쯤에 등장하면 어울릴 듯한 우아한 미뉴에트가 배치되었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전곡의 연주가 끝나도 이게 정말 끝난게 맞는지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완전히 종결을 짓기보다는 일종의 여운을 남기는 결말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내가 이 주제로 얼마든지 변주곡을 더 쓸 수 있지만 그냥 이 정도에서 끝낼께'라는 메시지로 들리기도 한다.

3.2. 곡의 구성

각 곡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여기 잘 되어 있으니 이 링크를 참조하자. 이 항목에서는 간략하게만 설명한다.
파일:diabellivariationtheme.jpg
주제(디아벨리의 왈츠)의 첫부분
파일:22var.png
제 22 변주의 시작부

3.3. 골드베르크 변주곡과의 비교

예로부터 건반악기 변주곡 분야의 쌍벽인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과 디아벨리 변주곡을 비교하는 떡밥이 계속 회자되고 있는데, 작품성 측면에서 이 두 작품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만 이 두 변주곡은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상당히 다른데,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긴 곡 전체를 아우르는 엄격한 구성미가 돋보인다면 디아벨리 변주곡은 특정한 규격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의외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실 특정한 주제에 묶일 수밖에 없는 '변주곡'과 '자유로움'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 디아벨리 변주곡은 이와 같은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리고 있다. 즉 디아벨리 변주곡은 주제의 음악적 요소들(조성, 선율, 리듬 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어디까지 주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 주제의 흔적을 남기면서도 어디까지 다른 음악을 만들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극한의 음악적 실험을 추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 이런 점들이 디아벨리 변주곡의 연주와 감상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한편으로 연주자들 입장에서는 오직 자신만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가질 수 있도록 무궁무진한 해석의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이 곡에 도전하는 연주자 입장에서 해석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즐겨야 하는' 과제인 셈인데, 설득력 있는 해석을 하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음악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4. 평가

바흐골드베르크 변주곡과 이 디아벨리 변주곡이 이룩한 성취에 대한 위압감이 너무 큰 탓인지 베토벤이 걸작을 남겼던 다른 분야(교향곡, 현악4중주, 소나타, 협주곡 등등)에서는 이후에도 많은 명작들이 탄생했지만 이 변주곡 분야만큼은 필적할만한 작품이 잘 나오지 않고 있다.[10]

독일의 위대한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한스 폰 뷜로는 디아벨리 변주곡에 대해 "베토벤 예술의 소우주(a microcosm of Beethoven’s art)"라고 했으며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은 "모든 피아노 작품 중 가장 위대한 작품(the greatest of all piano works)"라고 평한 바 있다.

한편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명성과 가치에 비해 의외로 연주횟수가 적고 대중적인 인기도 낮은 편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의 연주나 감상이 너무 어려운 탓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연주자들은 이 곡의 연주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데, 큰 규모나 난해한 연주기술의 문제와 별도로 곡의 해석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연주시간부터 연주자마다 48분~65분으로 편차가 심한 것만 봐도 얼마나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다.[11] 예를 들어 분명 같은 악보로 연주했는데도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와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는 거의 다른 음악처럼 들린다. 폴리니나 소콜로프 급의 거장 연주자들의 연주 가운데 어떤 연주가 더 좋고 더 옳은지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면서도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에 호불호의 판단은 100% 청자의 몫이다.

이 디아벨리 변주곡은 현재까지도 딱히 표준이라고 할만한 연주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초심자들이 참조할만한 권위있는 해석이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다, 변주곡의 특성상 아름다운 선율미나 연주자의 기교를 자랑할만한 화려한 패시지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청중들에게 청각적으로 어필하기기도 쉽지 않다.[12] 연주자들이 이 곡의 연주를 꺼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청중과 음반 제작자들의 눈에 띄어야 하는 신예 연주자가 이 곡을 레파토리로 삼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주로 거장 반열에 오른 연주자들이 이 난곡에 도전하는 편이다.

한편으로 이 곡에 대한 해석이 무척이나 다양하듯이 이 곡에 대한 감상도 정말 다양할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별다른 사전정보 없이 단지 위대한 명작이라는 세간의 평만 믿고 이 곡을 한참 듣다 보면 괴상망측한 곡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통에 머릿속이 혼란과 어리둥절함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단순히 감동이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이 곡을 선택했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고, 좀더 음악적인 이해를 갖추고 분석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이 디아벨리 변주곡이다. 다만 이성적 차원이건 감성적 차원이건 이 곡의 의외성과 기상천외함을 즐기기 시작하게 됐다면 드디어 디아벨리 변주곡이 추구하는 진정한 세계로 들어왔다고 생각해도 좋다.

5. 명연주 및 음반

전술한 것처럼 연주자에 따라 각양각색의 연주가 행해지는데, 거장 연주자들의 경향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참고 연주로 링크한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는 연주시간이 1시간 정도로 표트르 안데르제프스키(Piotr Anderszewski)의 연주와 더불어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연주의 대표주자로 거론된다. 반면에 다른 참고 연주로 링크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의 연주는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와 더불어 연주시간이 50분 내외로 훨씬 속도가 빠르며 박진감과 피아니즘이 돋보이는 연주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다. 유명한 연주 가운데 가장 빠른 연주는 프리드리히 굴다(Friedrich Gulda)의 연주로 4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13]

21세기 이후 연주회나 레코딩에서 연주되는 디아벨리 변주곡의 전곡 연주시간은 대략 52~55분 정도로 명상적인 연주와 피아니즘을 추구하는 연주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을 잡는 것이 대세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베토벤에 대한 애착으로 유명한 김선욱이 2016년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전국 순회 리사이틀을 가지기도 했다. 같은 한국의 피아니스트 임동혁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전국 순회 리사이틀을 열었던 것과 대비되는 행보.

2017년에 Opus 레이블에서 한국의 피아니스트 허원숙의 디아벨리 변주곡이 음반으로 발매되었는데 나름 좋은 평가를 받았다.[14]


[1] 후배인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25 변주곡과 이 두 곡을 묶어서 3대 변주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 물론 4년 내내 작곡되었던 것은 아니고 1819년 초 의뢰받은 직후에 이미 23개의 변주곡을 완성했고 이후 뜸을 들이다 1823년 겨울에 다른 10곡(1,2,15,23∼26,28,29,31)을 완성했다. 이 공백기간 동안 장엄미사를 비롯한 다수의 대작들이 작곡되었다.[3] 나름 음악에 욕심이 있었던지 자신의 출판사에서 자작곡도 많이 출판했다. 하지만 현재는 정작 자신의 작품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단지 이 변주곡 제목의 주인공으로만 유명하다.[4]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진다면 그게 맞다. 그 당시 리스트는 불과 12살이었다![5] 베토벤은 이 왈츠를 당시 구두방에서 수선용으로 쓰는 쪼가리 구두가죽(Schusterfleck)이라고 빈정댔다.[6] 일설에 의하면 디아벨리가 거액을 제시해서 변주곡 작곡이 성사됐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가 있는 주장은 아니다.[7] 베토벤 항목에 있듯이 쉰들러의 이야기는 그대로 믿으면 안되고 교차검증이나 정황증거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쉰들러가 말년의 베토벤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무턱대고 무시해서는 안되겠지만 기본적으로 쉰들러는 신뢰할만한 전달자는 아니다. 한때는 그의 주장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었지만 베토벤에 대한 각종 자료들이 발굴되면서 그의 주장에 대한 반증이 많이 나오고 있다. 쉰들러의 이야기에 대해서 '오해한 것으로 보인다', '일리가 있다'와 같은 2차적인 비평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8] 한동안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으로 거론되었던 사람이다. 이미 브렌타노와 연애가 끝난지 한참 지난 상황에서 이런 대작을 그녀에게 거리낌없이 헌정한 것을 보면 헤어지고 나서도 그녀를 계속 잊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베토벤은 이 사람의 딸에게도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헌정했으며, 학자들은 가곡집 '멀리 있는 연인에게(op. 96)'를 이 안토니 브렌타노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보고 있다.[9] 이 항목에는 매우 기본적인 내용만 서술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전문가가 저술한 책이나 논문, 인터넷 사이트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10] 디아벨리 변주곡 이후 그나마 훌륭한 피아노 변주곡으로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 .24' 이나 라흐마니노프의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등이 거론된다. 다만 낭만주의 도래 이후에 변주곡 분야에서 명작이 적은 이유는 주제나 동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훨씬 다양해지면서 변주곡이라는 장르 자체가 쇠퇴한 측면도 있다. 리스트의 돈주앙 환타지나 파가니니 연습곡 등이 대표적인 예.[11] 디아벨리 변주곡과 사정은 좀 다르지만 연주시간 편차가 심한 것은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장르를 막론하고 규모가 큰 곡들은 해석에 따른 연주시간의 편차가 많이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디아벨리 변주곡은 정말 연주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악이 창출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12]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을 처음으로 완성한 베토벤 해석의 권위자 아루투르 슈나벨이 스페인 공연을 마치고 부인에게 써 보낸 편지내용이 이렇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연주할 때면 늘 청중들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다오. 연주회장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나 뿐인 듯 한데 난 돈까지 받지 않소. 그런데 저들은 돈까지 내고 와서 괴로움을 당하고 있거든!"[13] 들어보면 알겠지만 호흡이 없이 너무 급하다는 느낌이 든다. 감상의 관점에서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지만 베토벤이 직접 자기 작품에 지시해 놓은 말도 안되는 빠르기를 감안하면 나름 작곡자의 의도(?)에 좀더 부합하는 연주라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참고로 굴다는 이 디아벨리 변주곡 뿐만 아니라 소나타를 비롯한 베토벤의 다른 피아노 작품도 엄청나게 빠른 템포로 연주했다.[14] 허원숙은 중견 피아니스트로 2017년 현재 호서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이 음반에 한국의 작곡가 류재준의 피아노 모음곡도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나름 흥미로운 곡이다.